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82)
>82 화>
“그, 흐…….”
카리나의 입술이 새빨갛게 변해 번들거렸다.
밀라이언이 제 입술을 혀로 핥으며 그녀의 입술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밀…… 라이언……?”
카리나가 당황한 듯 밀라이언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이었다.
생각한 적도 없는, 정말로 갑작스러운 입맞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기다리기도 했다.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죽을 때까지 그와 어느 정도 이상 가까워지는 것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이렇게 입술을 맞추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
당황한 카리나의 눈을 마주하고서야 밀라이언은 제가 저지른 일의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했던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미쳤군.’
미쳤다. 상상만 하다가 돌아 버린 게 분명했다.
아니면 욕구 불만이라도 온 것인가? 애초에 자신에게 욕구 불만이 올 필요가 뭐가 있는가.
“…….”
“…….”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카리나는 조심히 밀라이언을 살피다가 숨을 들이마셨다.
카리나는 그가 어떠한 마음을 자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격 없이 굴었구나.’
자신이 손을 잡으면 밀라이언이 맞잡아 주는 것이 좋아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그 온기가 좋아서, 하나둘 모른 척했던 것이 어느새 그의 가슴에도 스며든 모양이다.
“좋은 저녁이네요.”
“……뭐?”
“북부의 저녁은 무척 아름다운 것 같아요. 밤은 이르게 오지만 쏟아지는 별빛으로 하늘이 밝아서 밤인데도 무섭지 않아요.”
날이 조금 춥고 주변에 마물이 조금 많고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피하고 내켜 하지 않는 곳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와 보면 북부는 그다지 춥거나 단단하지 않았다.
나직하게 읊조린 카리나가 슬쩍 고개를 돌려 밀라이언을 바라봤다. 여전히 손은 서로 맞잡고 있어서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하늘엔 은빛 강이 있는 것 같고 땅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많아요. 밀라이언도 참 다정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종류의 위로를 받아 보는 건 처음이지만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오늘 밤은 아프지 않고 푹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답을 찾기에 망설이고 있다면 카리나는 얼마든지 출구를 내줄 마음이 있었다.
샛길이든 중간에 억지로 통로를 파내어서든 말이다.
“…….”
밀라이언의 입이 닫혔다. 여전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카리나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위로…… 라고?”
낮게 읊조리는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위로든 위로가 아니었든 충동이었든, 카리나는 그가 감정을 깨닫지 않길 바랐다.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간에. 동정이든 동정에서 피어난 애정이든,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그는 그저 자신을 안타깝고 불쌍한 전 약혼녀 정도로만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헤집어 놓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이 아닐 순 없었지만 말이다.
“……그대에겐 위로였군.”
“……이만 자야겠어요. 조금 피곤하네요.”
카리나가 가볍게 목소리를 냈다.
축객령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밀라이언이 말없이 옆에 앉아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카리나의 옆얼굴을 봤다.
“그래, 오늘은 일단 쉬도록 해.”
밀라이언이 별말 없이 순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을 뻗어 언제나처럼 그녀의 머리를 한 차례 부드럽게 쓸어 넘겨 준 그가 수순처럼 그녀의 볼을 엄지로 살짝 쓸었다.
“혹시 몸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부르고.”
“……네.”
“내일 보지.”
카리나가 결국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밀라이언은 어떤 말도 없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로 몇 번이나 자신을 걱정하고 나갔다.
탁.
닫힌 문을 가만히 보던 카리나가 손바닥을 들어 제 눈을 꾹 눌렀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괜찮아.”
눈에 힘을 준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욕심껏 그에게 제 마음을 고백하고 그의 마음을 깨닫게 할 것인가?
그래서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죽어 버리면 그만인 자신과는 다르게 밀라이언은 크게 다칠 것이다.
‘화도 내지 않고 갔어.’
차라리 화를 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에 했던 말은 그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하는 자신을 향해 불만을 표출했으면 했다.
화를 내도 좋았고 짜증을 내도 좋았다. 그러면 같이 화를 내고…… 그렇게 틀어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괜히 받아 줬네.’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버렸다. 아주 조금은 욕심도 있었다. 그의 다정함에 몸을 기대고 싶었다.
“좋아해요…….”
차마 그 앞에선 말하지 못했던 감정 한 조각을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꺼냈다.
어쩌다 좋아하게 됐는지, 언제부터 마음에 스며들고 말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그가 있을 법한 곳에 시선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좋아해, 밀라이언…….”
물기 젖은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방에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누가 들어도 듣기 힘든, 곧이라도 꺼져 버릴 촛불 같은 작은 목소리였다.
왜 이 고백에 대답을 듣고 싶지 않겠는가. 보답받고 싶지 않은 사랑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카리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와 자신이 살아갈 시간이 너무나도 달라서. 다가오고 있는 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그에게 무엇하나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끔찍해서.
겹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어느 한쪽이 괴로워할 것이 분명한 시간.
그러니까 카리나는 이것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감정을 이렇게 드러내는 것은 오늘이 끝이었다.
자신이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그가 상처를 입을 거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감정이다. 책임감이 강한 그가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카리나는 아직 침대 위에 남아 있는 그의 온기 위에 손바닥을 올린 채 한참이나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온기가 식고 달이 하늘 높이 떠오를 때까지.
* * *
“이런 종류의 위로를 받아 보는 건 처음이지만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오늘 밤은 아프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방으로 돌아가는 길, 떠오르는 목소리에 밀라이언은 복도 가운데에서 우두커니 멈춰 섰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열기를 채 감추지도 못한 채로 이별을 고하는 사람과 같았다.
“마치 끝을 보고 있는 듯해.”
혼자서 세상의 마지막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벼랑 끝에 선 사람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그녀는 차분하게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군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생각했다.
“위로라…….”
과연 방금 그것이 위로였는가?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 밀라이언의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 나갔다. 어이없고 황당해서 새어 나가는 웃음이었다.
위로는 무슨. 위로일 리가 있나.
밀라이언은 그렇게까지 세심하고 감성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뭣보다도 돌봐야 할 상대에게 위로랍시고 입술을 맞추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카리나 역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생각을 미리 말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카리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뻔히 아닌 것을 알 터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랬을까?
의문은 그것이다. 왜 굳이 그런 단어를 써서 자신을 자극했는가?
평소였다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한마디 덧붙이고 불쾌감을 표현했을 거다.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마치 자신이 화내길 기다리는 것 같아서였다.
자신이 화를 낼 것을, 짜증을 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돌겠군.”
위로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자신은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저 돌봐야 하는 귀찮은 상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샌가 제게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두고 있다.’
마음에 두고 있다니. 머릿속에 불이 번쩍 들어오는 듯했다.
갈팡질팡했던 감정의 정체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름을 찾지 못했던 수많은 기묘한 현상들이 드디어 이름을 갖췄다.
미쳤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였던가. 정말 자신은 미친놈이었다. 동생 같다고 생각했던 때는 언제고.
“젠장.”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조금 전 상황을 더 납득하기 힘들었다.
위로라니.
제 키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돌려 말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돌려 말할 정도의 성격은 되지 않는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자신과 손잡는 것을 좋아할 리는 없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말해 주지 않으니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적군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숙제가 더 간단할 것도 같다. 밀라이언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일단 쉬자.’
쉬고 내일 제대로 생각하는 편이 좋았다.
오늘은 그도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정신적으로 지치니 몸도 피로한 느낌이다.
우두커니 서 있던 밀라이언이 다시 멈췄던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서둘러 제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