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83)
* * *
“…….”
“…….”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는 도중, 올라오는 밀라이언과 마주쳤다.
퍼뜩 떠오른 어젯밤 일에 카리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밀라이언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올라왔다.
“좋은 아침이군.”
“……네, 좋은 아침이에요.”
언제나와 다름없는 인사에 그녀가 밀라이언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다행히 그는 어제 일을 그렇게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에게 자신이 딱 그 정도라는 의미였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속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해도 불만을 표할 순 없다.
“그대를 깨우러 가는 길이었어.”
“……저를요? 왜요?”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싶어서.”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가 눈을 끔뻑였다.
카리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일어나는 시간이 늘 제각각이었다.
통증에 괴로워하다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왕왕 식사를 거르기도 했다.
“아, ……그래요?”
그녀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대답하자 밀라이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래서 그대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어.”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렇다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냐고 묻기도 조금 그랬다. 사실 싫지는 않았다.
‘……이제 손은 안 잡아야지.’
그의 마음을 자꾸 부추기는 것이 자신이라면 자신부터 행동을 바꾸면 될 일이다.
욕심이 하나둘 추가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네, 같이 가요.”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적당히 거리감을 둔 채 차분히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옆으로 밀라이언이 바싹 붙어왔다.
카리나가 몸을 조금 움츠렸다.
“식사는 꼬박꼬박하도록 해.”
“……알겠어요.”
“그리고 그대가 원한다면 토벌에 함께 가도 좋아. 대신 안전하게 있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이야.”
밀라이언의 말에 마지막 계단을 밟은 카리나가 뚝 멈췄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사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거절당할 확률도 제법 있다고 생각했었다.
“결과가 벌써 나왔어요?”
“헤르타가 있다면 그대의 호위는 따로 필요 없을 테니까.”
“네.”
카리나가 고개를 냉큼 주억였다.
함께할 시간을 벌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떨어져 있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은 원하던 바였다.
“토벌에 함께하게 된다면 그대에게 겨울의 끝을 보여 줄 수 있겠군.”
“그 겨울 산맥이요?”
“그래. 다만, 토벌 자체엔 참가 하지 못하니 우리가 토벌에 나간 동안 그대는 야영지에 있도록 해.”
그쪽에는 따로 의료반 등을 포함해 인선할 예정이니 안전성에 서는 훨씬 유리할 것이다.
카리나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옷은 반드시 따뜻하게 입을 것. 보온이 되고 활동성이 좋은 겨울옷을 몇 벌 맞추도록 지시해 뒀으니 그걸 입도록 해.”
“네, 알겠어요.”
한껏 밝아진 표정의 카리나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나의 밝아진 얼굴을 보며 밀라이언이 옅게 미소 지었다. 역시 그녀는 웃는 것이 훨씬 좋았다.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야.’
일단 확실히 벌어진 거리를 줄이고 그녀의 기분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젯밤 제법 고민하던 참이었다.
결국 그녀가 바랐던 것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좋아, 내 말을 잘 따라 주겠다고 하면…… 그대도 후발대에 포함하도록 하지.”
“페리얼도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여기서 그놈의 이름은 또 왜 나온단 말인가?
차마 짜증을 부릴 수가 없어서 밀라이언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
“그놈을 뭐 하러 데리고 가?”
“어차피 연구를 할 거라면, 아예 하론이 나오는 데서 바로 연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요.”
“…….”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의 말에 틀린 곳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말이 맞다.
하론을 옮기는 수고를 하는 것보단 아예 데리고 와서 바로바로 연구하는 편이 더 빨랐다.
“그건 그렇지.”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밀라이언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페리얼은 여기 저기 안 엮이는 곳이 없다.
아카데미를 다닐 때도 그게 싫어서 피해 다녔었는데.
‘결국 졸업장도 같이 받았지.’
심지어 시험이든 뭐든 매번 자신의 옆에 있었다.
그놈은 자신을 놀리는 것이 즐거운지 나중에는 아주 실실 웃어 대는 꼴이 보기도 싫었다.
“그래, 페리얼에게 물어봐야지.”
“네.”
두 사람이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은 연회였다. 원래는 오늘 이 회의 일정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영주들의 항의를 받아 낮에는 회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여튼 싸움에 미친 것들.’
하루 빨리 토벌하고 싶다고 아주 눈이 돌아가서 아침부터 제 방으로 쳐들어왔었다.
그래서 낮에 회의를 하고 저녁에 연회를 하고 그 다음날 마지막 회의를 한 후 흩어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북부의 마수 토벌은 대규모로 이뤄지며 북부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된다.
각자 영지로 돌아가면서부터 토벌 준비가 시작된다.
보통은 겨울 초입 즈음 준비를 시작해서 회의를 마치고 가벼운 준비를 2, 3일 동안 끝내고 곧장 출발하곤 했다.
그래도 마수엔 이골이 난 이들이라서 매년 큰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이번 헤르타가 가장 큰 변수고.’
자신이 수색으로 자리를 비운 날 영지를 습격한 헤르타에 관한 보고를 얼마 전에 받았다.
놈들은 분명히 지성이 있었다.
보고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학습을 한 것처럼 놈들이 보인 공격 패턴 중에 앞발을 드는 경우는 없었다.
말 그대로 0이었다.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놈들이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거다. 몸을 사리고 자신 있는 돌진으로 공격 패턴을 바꿔 버린 것이다.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마수 따위가 학습하고 생각해서 전략을 짜다니.
‘애초에 영지를 찾아내 습격했다는 것 자체부터 놀랍지.’
놈들은 위험했다.
헤르타를 뿌리 뽑거나 혹은 그들을 눌러놓지 않으면 내년, 내후년에는 더 위협적인 놈들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특히나 놈들이 생각하고 성장하는 종류의 마수라면 더욱더.
이례적으로 하루면 끝나는 회의를 2, 3일 정도의 일정으로 잡은 것은 헤르타라는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놈들의 힘은 강인하고 놈들의 약점은 제한적이다.
배가 약점이기는 하나 땅과 배의 간격이 상당히 낮아서 놈이 뒤집히지 않는 이상 공격하는 것은 무리였다.
눈앞에 차려지는 식사를 보며 밀라이언이 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런 복잡한 일이 생길 때마다 정말 자리를 때려치우고 싶어질 때가 많다.
“무슨 고민 있어요?”
“음? 아니, 왜 그러지?”
“표정이 좋지 않아서 무슨 고민 있나 해서요…….”
걱정스러운 카리나의 표정에 밀라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게 무서웠다. 혹시나 또 능력을 써서 쓸데없는 일을 할까 봐서.
그것이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생명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웬만해선 쓰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다.
“없어. 그저 회의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픈 것뿐이야.”
“다른 영주는 어떤 분들이에요?”
“망나니.”
“네?”
밀라이언의 한마디에 카리나의 고개가 옆으로 쓱 기울었다.
방금 귀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나온 것 같은데.
“망나니라고.”
‘잘못 들었나?’
그녀가 귀를 꾹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