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94)
>94 화>
그것이 남자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뒤늦게 오른팔로 그림을 그려 보고자 했으나 그쪽 역시 이미 감각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둔화 되어 있었다.
“어떤 수를 써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런 팔일 바엔 없애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스스로 잘라 버렸습니다.”
날카로운 칼을 구해 와 몇 번이고 팔을 내려쳤다.
울부짖으며 차라리 아픔이라도 느껴지길 바라며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무슨 고깃덩어리라도 떨어지듯 무게 중심이 가벼워졌다.
나뒹구는 것은 자신의 팔이었다.
“통증조차 느낄 수 없었습니다. 팔이 잘려 피를 뿜으며 바닥을 나뒹구는데도 나는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그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렇게 떨어져 나갔죠.”
오랜만에 상황을 보러 왔던 친구가 의원을 불러 조치해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죽었을 거다.
모든 걸 다 잃고 승승장구하는 다른 이들을 보지 못하고 남자는 도망쳤다.
예술과는 가장 관련이 없다는, 가장 먼 북부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결국 그림을 완전히는 놓지 못해서 이곳에서 화방을 열었다. 손님이라고는 정말 거의 없는 수준이었지만.
북부는 정말로 예술의 ‘예’자에 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검이나 도끼를 손에 쥐어도 붓이나 연필을 손에 쥐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렇게 흘러흘러 여기로 오게 된 겁니다.”
“통증이 오는 부위를 잃는 건가?”
“네, 제 경우 다른 곳에 통증이 오진 않았습니다.”
오로지 팔이었다. 팔 위, 즉 어깨를 기준으로 다른 곳에 통증이 오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마치 괴물처럼 자신을 집어삼킬 듯이 점점 아가리를 벌렸다. 그렇게 통증의 영역을 넓혀 갔다.
“그건 괴물입니다. 자신이 먹을 부위에 계속해서 통증을 주죠. 물감처럼 점점 번져 나가는 겁니다.”
“……그 통증이 심장에 오는 경우도 있나?”
“……심장이요?”
“그래. 심장이나 아니면 몸살처럼 몸 전체가 아픈 경우.”
가끔 통증이 올 때 그녀는 손을 대는 것조차 벌벌 떨었던 적도 있다. 대개는 심장이 아픈 정도였던 것 같지만.
밀라이언의 물음에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당황한 듯 입을 꾹 닫았다.
남자는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두 번째 담배를 비벼 끄고 허둥지둥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남자가 하나 남은 손으로 제 눈두덩이를 꾹 누른다.
얼굴을 벅벅 문지르듯 움직이던 그는 세 번째 담배가 반쯤 타들어 갈 때까지 한참이나 망설이듯 입을 닫았다.
밀라이언이 답답함에 결국 입을 열려는 찰나 남자의 입이 드디어 벌어졌다.
“혹시 그 아가씨께선 어떤 기적을 일으키십니까?”
“그림을 그리면 그려진 그림이 살아서 튀어나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봤지만 경이로운 광경이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나비떼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도 하나의 풍경과 같이 아름다웠다.
몇 번이고 다시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하고 싶을 정도로.
얘기를 들은 남자가 또다시 담배를 깊게 빨았다. 그가 네 번째 담배를 찾다가 텅 빈 담배 갑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라도 괜찮다면 피우게.”
밀라이언이 제 궐련을 내밀었다. 무슨 긴장을 저렇게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의 궐련에는 약간의 진정제 성분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긴장을 풀어 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가 궐련을 입에 물고 능숙하게 성냥에 불을 붙였다.
두어 번 궐련을 빨아들인 남자의 눈이 살짝 풀렸다. 긴장이 풀린 듯 느슨해지는 표정에 밀라이언이 한숨을 삼켰다.
“그래서?”
“……한 가지만 더. 혹시, 어느걸 보통 만들어 내십니까?”
“보통은 살아 있는 거지.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만들어 내더군.”
“맙소사, 그녀는 창조하는군요…….”
남자의 목소리에 밀라이언이 황급히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페리얼이 창조가 어쩌고저쩌고 설명했던 기억도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제가 되는 건가?”
“……창조의 기적은 일반적인 예술병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 궤가 다르다고 해야 하지요.”
남자가 조금 필사적으로 궐련을 빨아들였다. 구겨진 얼굴에서 느껴지는 당황함을 밀라이언도 느낄 정도다.
밀라이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내가 지금 여유롭지 못해. 빨리 설명해 주겠나.”
밀라이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힘줄이 도드라진 주먹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건 한계가 없습니다. 가진 것을 전부 쏟아 부을 때까지 뭐든지 허용됩니다.”
“……뭐든지?”
“네. 그것이 뭐라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도 원한다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의 권능 중에서도 창조를 부여받은 이들이니까요.”
설명하는 남자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남자 역시 치료법을 알아보기 위해 예술병에 대한 각종 문헌과 각종 저서를 찾아보고 찾아본 끝에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때 자신이 가진 능력이 창조의 기적이 아닌 것에 얼마나 안심했던가.
“저는 보통 자연경관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풍경화라고 해야겠죠. 그리고…… 제가 가졌던 기적은 그림을 머리맡에 두고 잠든 사람에게 그린 그림의 풍경을 보게 해 주는 종류였습니다.”
그다지 대단한 기적도 아니었다. 예술병에 걸리고 나서야 자신이 팔았던 그림을 수소문한 끝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정도로.
겉으로는 드러나지도 않는 우스운 기적.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머리맡에 뒀던 이들은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자신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저는 두 팔의 생명을 그림을 그리는 대로 바치고 있었던 거죠.”
“눈동자 색이 바뀌지 않나?”
“기적이 발현될 때는 보통 밤이었고 혼자 살다 보니 눈동자 색이 바뀌는 것도 몰랐죠.”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난 후에 같은 그림으론 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것은 예술병에 걸린 뒤에 유심히 살핀 끝에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럼 심장이 아픈 건? 때때로 몸 전체가 아픈 것도 같아.”
밀라이언이 불안함을 애써 억누른 채 물었다.
기묘한 불안감이 속을 긁어 댔다. 무서웠다. 이 불안감이 무슨 이름을 하고 있을지 두려웠다. 그저 기우이길 바라야 했다.
“창조의 기적은,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대개 죽었습니다.”
“뭐……?”
“예술병 중에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밀라이언이 숨을 멈췄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입을 틀어 막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제 귀라도 틀어 막고 싶었다. 스스로 알기 위해 이 밤에 이곳까지 찾아왔으면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제가 찾은 자료는 몇 개 없긴 하지만…… 창조의 기적의 소유자들은…… 모든 이들이 예술병에 걸리고 대개 목숨을 대가로 하며, 대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
콰앙-!
더듬더듬 대답하던 남자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허름한 집에 구멍이 뚫렸다. 밀라이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 졌다. 남자가 난감한 듯 미간을 좁혔다.
그가 이런 반응을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용 자체가 이토록 자극적이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밀라이언이 카리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지.’
그때 눈치를 챘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내 그때 귀띔을 해주었든 지금 말을 해 주든 반응은 크게 다를 것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밀라이언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남자의 숨이 그대로 멈췄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무언가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라고 명령받은 기분이었다.
“그 말에…….”
“…….”
“거짓은 없겠지.”
밀라이언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았다.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기라도 할 줄 알았던 상대는 의외로 얌전한 목소리였다.
그 마수보다도 더한 살기가 넘실거리는 얼굴을 보지 않았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거짓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죽는다고……?”
“……일단 기록에 따르면.”
남자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기세가 매섭다. 대답을 들은 밀라이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페리얼 칼로스!”
이를 으득 악문 밀라이언이 몸을 그대로 돌렸다. 그가 성큼성큼 화방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