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97)
>9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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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하게 읊조리는 밀라이언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처연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심장이 지끈지끈 아팠다.
예술병으로 인한 통증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다.
“……가지고 싶은 귀한 꽃이 있어서 얼마 전부터 가꾸기 시작했는데 시들어 간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설마설마하면서 갔는데, 시들어서 곧 사라진다고 하더군.”
“아……. 세상에, 그랬군요. 그, 밀라이언이 꽃을 가꿨어요?”
“비슷해.”
“아, 정원사를 고용했구나. 밀라이언이 꽃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무척 귀한 꽃이야.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됐거든.”
분명히 밀라이언이 자신을 끌어안고 있을진대, 어쩐지 그가 그녀의 품에 파고 들려고 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고깝거나 싫지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다른 곳에도 꽃은 있을 거예요. 다시 구해서 키워 보면 되죠.”
“없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밀라이언의 목소리가 짙은 슬픔에 흠뻑 젖어 있었다. 카리나의 눈동자가 열심히 도르르 도르르 굴러갔다.
“혹시 아직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려 보면 안 될까요? 아니면…….”
자신의 그 물약이라면 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알고 있기론 굳이 사람에 한정될 건 없는 물약이다. 거기서 눈을 크게 뜬 카리나가 고개를 홱 들었다.
“저번에 보여 드린 그 물약을 하나 드릴까요? 그거라면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카리나의 목소리에 밀라이언의 붉은 눈이 한 차례 빛났다. 이채를 띤 그의 눈빛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대는 왜 그 물약을 먹지 않지? 그게 만병통치약 같은 거라고 한다면 발작도 낫지 않을까?”
밀라이언이 넌지시 물었다.
다행히 카리나는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는지 선선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만들어 낸 건 저한텐 효과가 없어요.”
“써 봤나?”
“네, 예전에 넘어져서 난 생채기를 치료하려고 했었는데 저한텐 전혀 효과가 없더라고요. 근데 제 동생은 효과가 있었으니…….”
처음 그 물약에 대해 알게 됐을 때였다.
괜히 다친 걸 가족들이 알게 되면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다고 혼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무서워서 일전에 보던 책에 있던 물약을 그려본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아픈 동생에게 마음이 쓰여 밤중에 몰래 약을 먹였을 땐 상태가 금방 호전됐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어차피 그 아이에겐 자신이 아니더라도 걱정해 줄 사람이 아주 많을 텐데.
“동생에게도 먹였었다고? 그런 데도 낫지 않았나?”
“글쎄요, 예전엔…… 잠시 거의 낫는 수준으로 호전됐다가 서서히 다시 돌아왔었어요. 그때는 어렸었고 지금보단 좀 더 미숙 했었거든요. 지금은 또 모르겠네요.”
예술병이라는 것이 인간이 성장하는 것처럼, 실력이 늘어 갈수록 더 뛰어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지금 그린 약으론 완전히 나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제게는 통하지 않아요. 그건 확실해요.”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창조자들은 그런 방법을 써서 수명도 늘리고 생명도 늘리고 아픈 몸의 통증도 없앴을 거다.
그들이 그러지 못했다는 건 그녀도 그럴 수 없다는 거다.
“그렇군.”
밀라이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녀를 살릴 방법은 결국 유일하게 통증에 효과가 있는 하론에 있다는 거다. 밀라이언이 미간을 좁혔다.
‘죽이지도 못하겠군.’
페리얼을 반쯤 죽여 놓을까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똑똑.
노크 소리에 밀라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허락의 말을 내뱉자 문이 열렸다. 집사인 팽이었다. 팽이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연회장에 일이 생겨 조금 늦었습니다.”
“일?”
“네…… 과음을 하신 분들이 계셔서.”
팽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가 이윽고 손에든 작은 상자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찾으신 물건입니다.”
투박하지만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밀라이언이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적당히 묵직한 것에 나름대로 기분이 좋아졌다.
“수고했다. 연회장은 적당히 해산시켜.”
“……네, 능력이 닿는 한 해 보겠습니다.”
팽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 봐야 사실 그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북부의 영주들은 기본적으로 호전적이고 자기 의사가 분명했다. 그런 이들이 술에 취하면 어찌 될지는 굳이 어려운 상상도 아니리라.
“가 봐.”
“네.”
팽이 다시금 허리를 굽히곤 지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영주들이 사용인들을 얼마나 달달 볶아 대고 있을지 눈에 훤했다.
대개는 같이 술을 마시자거나 새 술을 가져오라는 종류의 명령이겠지만.
“이건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야.”
“제게 선물이요? 뭔데요?”
“열어 봐.”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가 그에게서 상자를 받아 들었다.
밀라이언의 품에 기댄 채 그녀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카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잘 세공된 목걸이와 팔찌였다.
양팔에 차는 용도인지 팔찌가 두 개 있었고 그 주변에 목걸이가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상자 안을 꽉 들어 채운 것을 보며 카리나가 떨리는 시선을 고개를 돌렸다.
“밀라이언, 이건…….”
“하론으로 만든 팔찌와 목걸이야. 최대한 압축해서 무겁지 않게 만들어 달라고 했어. 시간이 좀 걸렸지만…….”
세공이 무척 고급스러웠다.
원래는 돌덩어리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웬만한 보석에 지지 않을 정도로 광택이 있었고 빛에 비추는 것에 따라 색깔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세상에…….”
카리나가 입을 가렸다.
얼마나 번거로운 공정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녀가 아주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서 팔찌를 꺼내 들었다.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의 팔찌였다.
엄청 얇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용하기에 부담스러운 수준도 아니었다. 카리나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밀라이언.”
“……그래.”
“정말, 정말로요!”
그녀가 냉큼 밀라이언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밀라이언의 등이 뻣뻣해졌다. 그가 당황한 시선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카리나는 이미 액세서리에 푹 빠졌는지 그것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미리 다른 선물이라도 해 줄 것을 그랬나?
벌써 후회가 됐다. 카리나가 조심스럽게 팔찌를 차고 다른 쪽에도 팔찌를 끼웠다.
“밀라이언, 목걸이 채워 줄래요?”
“그래.”
그의 굳은살이 가득한 손이 가느다랗기 짝이 없는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그가 쥐니 거의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수준이다.
그뿐이랴, 고리는 얼마나 작은지 얼굴을 바싹 들이밀어야 간신히 보였다.
한참이나 끙끙거리던 밀라이언은 10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간신히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채울 수 있었다.
목걸이의 장식도 목걸이를 연결하는 쇠도 전부, 하론이 섞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힘겹게 하론을 끄집어내는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했다.
“정말 고마워요.”
“고마우면 아까 하고 싶었던 일을 해도 되는 건가?”
“하고 싶었던 일이요?”
밀라이언이 짓궂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카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하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어쩐지 씁쓸한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았을 뿐이다.
“카리나.”
“네.”
‘죽지 마.’
차마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밀라이언은 그저 말없이 그녀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겹쳤다.
여전히 달콤하고 말캉한 그녀의 입술은 아직은 분명히 온기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