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119)
특성 쌓는 김전사-119화(119/300)
119화 청혼 -1-
“……졌다.”
차남이 피를 토하며 말했다.
장남?
진작에 항복하고 저쪽에 널브러져 있었지.
“잘 생각하셨어요.”
성희영이 날개를 거뒀다.
금빛 깃털과 금빛 마법진이 결합하여 커다란 광선검처럼 보이던 빛 덩어리가 해체된다.
오만하게 서서 차남을 내려다보는 성희영.
차남이 성희영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글쎄요. 이미 3전 2승 했는데요? 뭘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흥.”
차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성희영도 여기서 더 몰아붙일 생각은 없는 모양.
진행자를 빤히 쳐다보자 진행자가 급히 소리쳤다.
“단체전은 막내 사장님의 승리입니다! 이걸로 3전 2승! 막내 사장님께서 최종 승리에 가까워지셨습니다!”
“우와아아아!”
“사장님 만세!”
“축하드립니다!”
“만세! 만세! 만세!”
판정은 이사회가 직접 한다.
3전 2승이라고는 하나 2선승제는 아니다.
왜?
마지막 결투에서 성희영이 질 수도 있으니까.
항복하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또, 일대일에서 지면 아무래도 불리하지.
개인의 무력이 최고인 세상이고, 힘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금오 그룹에서라면 더더욱.
“흥.”
성희영이 한 번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도도하게 내게 걸어온다.
“고마워요. 묵호검주님.”
자기 혈육을 볼 때의 냉엄한 눈과는 전혀 다르다.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얼굴.
주위의 초인들이 놀라 넋을 잃고 쳐다볼 정도로 의외인 모습으로 내게 웃음을 던졌다.
“이번에도 묵호검주님 덕에 이겼네요. 묵호검주님이 없었으면 제가 졌을 거예요.”
“과찬이십니다.”
“절대 과찬이 아니에요. 왜 묵호검주가 되셨는지, 토르 교단과 가이아 교단의 명예 성기사가 되셨는지, 4레벨에 정식 수호자가 되셨는지 알 수 있었어요.”
“다 의뢰받고 한 일인데요, 뭘.”
“보상은 확실히 챙겨 드릴게요. 저기 보이죠?”
성희영이 장남과 차남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장남이 쓴 까마귀 형상 모자와 차남이 찬 까마귀 장식 허리띠를.
“다음 결투 때 저거 빼앗아서 드리려고요. 안 그러면 가문 금고를 털어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해요.”
거의 사람을 전리품 취급하는 태도.
당연히 장남과 차남이 화를 벌컥 냈다.
“저게 진짜!”
“누가 순순히 당해 줄 줄 알고?”
“그럼 오빠들, 나 이길 자신은 있어? 살고 싶으면 김 비서 통해서 금오모랑 금오대 내놓고 독일 가. 아니면 미국 가든가. 중국이나 일본은 안 되지만 독일이랑 미국은 봐줄게. 오빠들도 벌써 죽고 싶진 않잖아?”
성희영이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장남과 차남이 이를 갈지만 덤비지는 못했다.
이미 대세는 결정됐으니까.
그나마 방법이라면 일대일 결투에서 뒤집는 건데…….
특수한 외부 도움 없이 과연 가능할까?
“두고 보자!”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는 걸 보여 주지!”
둘이 부축받으며 퇴장.
거만하게 웃고 있던 성희영도 안색을 싹 바꿨다.
“묵호검주님.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뭡니까?”
“제 훈련 좀 도와주세요.”
역시 재벌 2세라고 할까?
성희영도 방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만한 표정은 어디까지나 보여 주기에 불과했던 것.
나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바로 금오금용 사옥 비밀 훈련장에서 훈련에 돌입했다.
7레벨과 검을 맞대는 건 나도 처음.
그래서 꽤 긴장하고 들어갔는데 성희영은 의외로 허당이었다.
땅!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돌진했는데 성희영은 아무것도 못 하고 묵호검에 목을 내줬다.
“어…….”
당황해서 날 보는 성희영.
“뭐, 뭐가 이렇게 빨라요?”
진짜 당황스러운 건 나다.
금오 그룹 까마귀 마력 회로는 올라운더 아냐?
근접 박투, 중거리 견제, 고화력 모두 갖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쉽게 거리를 내줘?
“사장님. 진심으로 하세요, 진심으로.”
“저 지금 완벽히 진심이에요.”
“그런데 왜 반응도 못 하셨습니까? 신경계 의체 삽입 안 하셨어요? 금오 그룹이면 꼭 삽입하는 걸로 압니다만.”
“삽입했죠.”
성희영이 귀 아래 박은 보석을 툭 건드렸다.
신경계를 전자 회로로 대체했으면 이 정도는 반응해야 하는데?
나는 금방 성희영의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사장님. 혹시 실전 경험이 별로 없으세요?”
“그럴 리가요. 저 경험 많아요. 금오보안 작전에도 많이 참가했고 아버지 명령으로 중동이랑 중앙아시아에서 반란군 소탕 작전에도 참전했었다고요.”
“그때 뭐 하셨는데요? 뒤에서 화력 지원만 하셨죠?”
“그야 뭐, 그랬죠.”
“그게 문제네요.”
금수저 강화병은 이게 문제다.
호위받으면서 화력 지원만 날리는 거.
그럴 거면 마법사를 하지 왜 강화병을 해?
강화병의 장점은 빌드마다 다르지만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모두 준수한 성능을 뽐낸다는 것.
나는 장남과 차남을 떠올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 둘은 달랐어.’
훈련 시설 앞에서 나와 처음 맞붙었을 때도 그랬다.
원거리 지원 대신 근거리 박투를 선택했지.
실력도 준수했다.
기갑병과 화염마에 비교해서 밀리고 손발이 안 맞았을 뿐.
이 상황에서 성희영과 붙는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악을 쓰고 달라붙어서 성희영을 죽이려고 들겠지.
자기 팔 하나가 날아가든 말든.
태양 까마귀 폭격에 하반신이 날아가더라도.
고레벨 강화병은 그 정도쯤 버틸 수 있으니까.
“결투가 사흘 뒤라고 하셨죠?”
“네.”
“그때까지 최대한 제 공격을 막는 걸 목표로 하죠. 사장님이 근접전에 약하시네요.”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사실 근접 전투를 벌인 적이 거의, 아니 아예 없어서. 잘 부탁드릴게요. 묵호검주님.”
“네. 안 봐드릴 겁니다. 흉터 남을 각오로 하세요.”
“흉터는 안 돼요.”
성희영이 한쪽 벽면에 시선을 보냈다.
벽면이 시선에 반응해서는 한 바퀴 회전했다.
그러자 드러나는 마법 벽장.
엘릭서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생채기만 나도 엘릭서를 쓰겠다는 태도.
과연 재벌은 재벌이다.
나는 실소를 흘리면서도 묵호검을 곧추세웠다.
“갑니다!”
“네!”
꽈르릉!
1도 봐주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봐줄 형편도 못 되었다.
경험 없고 반응이 느리다고는 하나 성희영은 7레벨.
뇌에서 대응이 입력되는 순간 나보다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묵호검으로 내리긋고 묠니르로 강타하고.
타탕! 타타탕!
잠깐 떨어져서는 쌍권총을 난사했다.
“허억!”
“흑!”
“자, 잠시만요!”
“조금만 살살!”
성희영이 비명을 질렀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고 폐가 찢어지도록 숨을 쉴 무렵에야 쉬는 시간을 주었다.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성희영이 항변했지만 나도 할 말은 있었다.
“이 정도면 오빠분들한테 10초 컷 납니다. 제가 싸워 봐서 알지만 오빠분들도 만만한 인간이 아니에요.”
“그야 그렇지만요…….”
“회장 자리가 한 걸음, 아니 한 발짝도 아니고 반 발짝 앞에 있는데 여기서 죽을 생각입니까? 그러면 저도 살살 해 드리죠.”
“하…….”
성희영이 짧게 한숨을 뱉었다.
“오빠들은 어쩌면 미국 갈지도 몰라요.”
독일 아헨에 대미궁이 있다면 미국 그랜드 캐년에는 대균열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마신과 악마 대신 이계신과 이족이 출몰한다는 것 정도.
“그게 관례거든요. 아니면 죽어야 하니까. 다른 오빠 언니들은 승자에게 굴복하기로 했지만, 큰오빠랑 둘째 오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안 갈 수도 있지요. 저라면 자폭하는 심정으로 사장님한테 돌진할 겁니다.”
“하하, 우리 오빠들이요? 제가 볼 땐 아니에요. 그릇이 좁쌀만 하거든요. 묵호검주님과는 다르게.”
성희영이 내게 묘한 시선을 보냈다.
따듯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욕망에 찬 눈길.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했다.
이미 몇 차례 봤던 감정이라서.
특히, 본사 사옥을 볼 때 성희영의 눈이 딱 저랬지.
바로 정복욕.
더불어서 소유욕.
언제부터인지 성희영은 나를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도 대비는 해야죠. 오빠들이 미쳤다고 절 들이받을 수도 있으니까. 외부 세력이 발을 담글 수도 있고.”
“맞습니다. 사람 일은 합리적으로만 돌아가진 않아요.”
“저 엘릭서 하나만 마실게요.”
꼬박 사흘.
나는 미친 듯이 성희영을 몰아붙였다.
성희영은 수천 번도 넘게 묵호검에 찔리고 베이고 얻어맞았다.
묠니르에 머리를 맞고 기절한 적도 수십 번은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제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펑펑펑!
불규칙적으로 날아오는 불덩어리.
쭈웅! 쭈아앙!
음험하게 찔러 오는 금빛 광선.
차르륵, 착!
부챗살처럼 전개되어 날 포위하는 까마귀 깃털.
쌔애액!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는, 직접 맞돌격해 오는 성희영.
왼손에는 광선검이, 오른손은 마법 도끼가 구현되어 있다.
훌륭하다.
이게 강화병이지 뒤에서 깔짝깔짝 불꽃놀이만 하는 게 무슨 강화병이야?
“후읍.”
5레벨인 나로서는 성희영의 공세에 박살이 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난 사흘 동안의 경험이, 또 아직은 어설픈 성희영의 공세가, 마지막으로 내 특성 전환 능력이 날 성희영과 대등하게 맞서게끔 해 주었다.
[육감][민감][밝은 눈] [통찰][탐지][위기 감지]우선 감각 계열 특성으로 성희영을 주시한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공세 속, 실낱같은 작은 틈을 확인한다.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면서 특성 전환.
[거인의 힘][금강체][실전 격투] [마력혼][대공습][육감]틈을 통해 빠져나간다.
다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어할 길은 있었다.
묵호검을 신들린 듯이 휘둘렀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염탄은 아이기스로 막았다.
그런 내 앞으로 홍염이 장막처럼 펼쳐지고, 그 장막을 뚫고 나오자 성희영이 벼락처럼 돌진했다.
“드디어 한 대!”
살짝 들뜬 목소리.
사흘 만에 처음으로 한 방 먹이게 생기니까 좋아?
하지만 나는 이것도 예측하고 있었다.
[거인의 힘][금강체][실전 격투] [마력 방패][통찰][검술]정확한 시점, 정확한 각도로 묵호검을 내민다.
마력 방패가 검기처럼 칼날을 감싸고 있었다.
그 위를 성희영의 마법 도끼가 후려갈겼다.
끄그극!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흘리기였다.
정면으로 막으면 나라고 피해가 없을 수 없으니 흘리기를 시도한 것.
성희영이 그대로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었다.
“악!”
놓치지 않고 뒤통수를 걷어찼다.
그 반탄력으로 반대쪽 벽까지 쭉 물러나자 성희영이 눈을 부라렸다.
“자꾸 이러기예요? 한 대 맞아 주는 게 그렇게 싫어요?”
“당연히 싫죠.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엘릭서 먹여 줄게요.”
“됐습니다. 아예 안 맞는 게 낫죠.”
나는 묵호검을 한 번 흔들었다.
묘한 느낌이 올라왔다.
낭창낭창 부드럽게 휘어지는 듯한 감촉.
딱딱한 검이 아니라 채찍을 들고 있는 것만 같다.
[흘리기] 특성이구나.지난 사흘 성희영과 훈련하면서 의식적으로 흘리기를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검 전문가 특성의 마지막 조각.
바로 특성을 조합하려고 했는데 머리 위에서 요란하게 종이 울렸다.
따르르르릉!
결투 세 시간 전을 알리는 알람이었다.
성희영이 미련이 남은 듯 광선검과 마법 도끼를 불태웠다.
“한 번만 더해요.”
“나가죠. 조금이라도 쉬고 씻으려면 세 시간도 모자랍니다. 우리 72시간 동안 계속 했어요.”
“아…….”
성희영은 못내 아쉬운 기색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결투도 결투지만 정말로 밑천 다 털리게 생겨서.
성희영은 이미 감을 잡았다.
아마 한두 번만 더 싸우면 날 이기지 않을까?
나도 자존심이 있지, 72시간 내내 이겨 먹던 여자한테 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200전 199승을 했는데 마지막에 1패 해서 [너 개못하잖아.] 소리를 듣고 싶진 않다고.
“가죠.”
“후, 알았어요.”
그리고 결투장.
어느덧 익숙해진 금오 그룹 사옥 옥상.
성희영이 옥상 중심에 우두커니 서서 둘이 오길 기다렸다.
곱던 생머리가 묵호검에 싹둑 잘리는 바람에 숏컷으로 정돈한 성희영.
황금 갑옷을 입은 덕에 한 명의 여전사처럼 보였다.
실제로 날카롭고도 삼엄한 기세가 물씬 풍겼다.
그저 부잣집 아가씨 같기만 하던 며칠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장님께서 조금 바뀌신 것 같지 않습니까?”
“자네도 느꼈어?”
“제가 보기에도 좀…….”
“예전보다 나아 보입니다. 예전엔 솔직히 회장 자리와는 안 어울려 보였어요.”
“묵호검주님께서 과외에 일가견이 있다더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야.”
“저기 제일보안 서 본부장도 묵호검주님 제자 아닙니까.”
“제자 두 명 다 금방 3레벨 됐다고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둘은 오지 않았다.
휑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대신 드론 두 기가 배달을 왔다.
금오모와 금오대를 매달고서.
진행자가 드론을 확인하고는 고함을 질렀다.
“금오전자 사장님과 금오보안 사장님께서 기권 선언하셨습니다!”
그게 합리적이지.
몸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던 사흘 전의 성희영이라면 모를까, 지금 시점 성희영을 장남이나 차남이 이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희영 진영 초인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내 환호가 터졌다.
“만세!”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봤냐? 봤어?”
“우리 사장님이 회장님 됐다!”
“회장님 만세!”
“Long live the queen!”
성희영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갈라진 틈 사이로 흐린 햇빛이 유리 조각처럼 번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실감했다.
이번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날 밤.
야심한 시간, 성희영이 나를 자기 침실로 불렀다.
맞은편에 앉아서는 SSR 등급 반지를 내밀며 말했다.
“전사 씨. 저랑 결혼해 줄래요?”
고혹적이고 우아하지만 욕망으로 가득 찬 눈동자.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