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25)
특성 쌓는 김전사-125화(125/300)
125화 아차원 미궁 -2-
그것은 아무 전조 없이 다가왔다.
정장 입은 노인이 불쑥 바닥에서 솟구치자 김마법이 기절할 듯이 놀랐다.
“허억! 조, 조 장로님!”
마탑에서 본 모습 그대로.
존재감은 없다.
허공에 허깨비처럼 떠서는 우리를 노려볼 뿐이다.
나는 무시하고 조 장로 뒤를 향해 묵호검을 찔렀다.
푸욱!
익숙한 감촉과 함께 마력핵이 딸려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력핵을 골프백에 집어넣었다.
김마법이 질린 얼굴을 하고는 내 뒤로 숨는다.
“으, 묵호검주님은 진짜…… 그러고 보니까 진짜 조 장로님이 아니네요?”
“미궁 중심에서 의식하기 바쁜데 여기까지 오겠습니까? 환영이나 뭐 그런 종류일 겁니다.”
“흥.”
조 장로의 그림자가 코웃음을 쳤다.
“바보는 아니였구나. 그렇다. 미궁이 소란스럽기에 한번 나와 보았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월척을 낚았어.”
조 장로가 독사 같은 눈빛을 보냈다.
“감히 내 제자를 죽인 전사 놈과 그 개 같은 탑주 놈의 친손자라…… 후후후. 이 기회에 쌍으로 복수를 할 수 있겠어.”
“난 그렇다 치고 마법 씨까지? 당신 그러다 탑주한테 죽어.”
“흥. 의식만 완성되면 탑주도 두렵지 않다. 아니, 탑주야말로 내 좋은 마력원이 되겠지. 이 섬에 왔을 때부터 모두 예정된 일이었다.”
그렇긴 해.
일식 대 태양.
둘이 싸우면 누가 유리하겠냐고.
‘그래도 이상해.’
상성에서 유리한데도 일식 학파가 수백 년간 태양 마탑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못 잡은 이유가 있다.
흑마법 기반이라 부작용과 약점이 여럿 있었던 것.
나는 슬며시 조 장로를 떠보았다.
“태양 까마귀로 보신 좀 했나 봐? 갑자기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 보면.”
“태양 까마귀요?”
뭔 소리냐는 듯 나를 돌아보는 김마법.
조 장로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흥…… 그래. 그것도 네놈 덕에 좌절했지. 내 불쌍한 제자 녀석이 십 년 넘게 공을 들이고 몸까지 바쳐 가며 까마귀 아들놈의 부하가 됐거늘…… 상관없다. 칠흑 까마귀로도 충분해. 아니, 차라리 낫지. 우리 학파의 근본을 되살릴 수 있으니까!”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구나.
단순히 돈에 눈이 어두워 금오 그룹에 선을 댄 게 아니었다.
그 전부터 조 장로가 사주한 거였다.
금오 그룹 오너 가문의 태양 까마귀 마력 회로를 노리고.
내 개입으로 태양 까마귀는 얻지 못하고 6레벨 칠흑 까마귀 마력 회로만 가져왔지만, 거기서 얻은 것도 상당한 모양이다.
몇 년 이르게 의식을 시작한 걸 보면.
“여기까지다.”
조 장로가 오른손을 들었다.
“너희 둘 다 여기서 죽어라.”
쿠르르릉!
나와 얘기하면서 시간을 끈 이유가 있었다.
미궁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텅! 텅! 텅!
벽이 접힌다.
블록처럼 제멋대로 들어가고 솟구치기를 반복하다가 거대한 통로처럼 변한다.
그리고 끝에서부터 말려 오기 시작.
벽을 움직여 우리를 압착시켜 죽이려는 것이다.
“미친!”
김마법이 눈을 크게 떴다.
“중화기 쪽으로! 중화기 쪽으로 가야 해요! 늦으면 죽어요!”
그나마 마법 주사위 몇 개를 설치했다고 이 정도에서 그친 것.
그게 아니었으면 벽과 천장, 바닥이 몽땅 일어나 우리를 짓눌렀겠지.
급히 몸을 돌렸다.
김마법을 낚아채고 달리기 시작하자 조 장로가 미친 듯이 웃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달려라! 죽도록 달려 보아라! 네 앞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린다!”
퍽이나.
게임에서도 몇 번 겪어 봤던 패턴이다.
던전 전체가 출렁이면서 미니 게임이 작동되는 바람에 유저 여럿 잡았지.
몇 번 겪고 나면 단순한 패턴이라 금방 클리어하지만.
[거인의 힘][대공습][육감] [통찰][탐지][민감]내게는 보인다.
붉게 빛나는 함정들이.
금오안과 위기 감지까지 최대한 발휘하고 있으니 못 피하려야 못 피할 수가 없다.
유일하게 부담스러운 건 어깨에 짊어진 김마법뿐.
“처, 천천히 가요!”
“그러다 죽습니다.”
“그, 그럼 빨리 가요!”
“가만히 좀 있으세요.”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격하게 출렁이는 미궁.
아슬아슬하게 터지는 함정.
마법이 폭발하고, 전격이 터지고, 땅이 쑤욱 꺼진다.
그러니 김마법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척거렸다.
아, 제압 마렵네.
거인의 힘 대신 실전 격투를 채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던졌다.
꽝!
아슬아슬하게 불꽃이 나와 김마법에게 달라붙었다.
“으헉!”
김마법이 다급하게 손을 휘젓는다.
화염 폭풍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지극히 화염술사 다운 대처.
기름때처럼 달라붙었던 불길이 떨어져 나갔다.
“저 꽉 잡으세요! 이번에는 못 피합니다!”
“어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일자 통로의 마지막.
화염벽 함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못 피한다.
발동형이 아니라 원거리 작동형이고, 게임에서도 무슨 수를 쓰든 무조건 발현되었으니까.
‘마법 저항은 안 되지.’
김마법까지 같이 보호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시구르드 연공법][마력혼][마력 방어막] [영역 방어막][마력 방패][마력 갑옷]4중 방어막이다!
시구르드 연공법이 심장과 마력 회로에 자리를 잡았다.
마력 회로에 영혼이 깃든 듯 맹렬한 힘을 뿜어낸다.
그 힘이 피부 밖으로 방사된다.
구형의 방어막이 쳐지고, 방패 모양 방어막이 전면을 막고, 무형 방어막이 몸을 감싸고, 영역을 보호하는 힘이 나와 김마법을 함께 감쌌다.
대부분 내게 집중되지만 김마법도 어느 정도 감싼다.
“어헝?”
이상함을 느낀 김마법이 눈을 부릅떴다.
거의 동시에 함정이 작렬했다.
화염이 분출되며 우리를 집어삼켰다.
후욱, 느껴지는 열기.
그러나 4중 방어막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김마법에게는 열기가 전달되었으나 기본 화염 저항이 강력한 화염술사다.
결국 화염벽을 뚫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고야 말았다.
“후아!”
우선 심호흡 한 번.
김마법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서 내려왔다.
“따돌린 것 같죠?”
“예. 미궁 내 다른 구역 같네요. 분위기가 달라요.”
“그러네요. 와, 그리고 깜짝 놀랐어요. 예전에 태양불꽃을 어떻게 버티셨나 했는데 이게 비결이었네요.”
“믿는 구석 없이 태양불꽃에 도전할 수는 없죠.”
“확실히 그래요.”
대화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본다.
여태 보이던 잿빛 음울한 세상은 없다.
대신 까맣게 말라붙어 있다.
끈적한 타르를 고체화해서 도배한 듯한 공간.
벽은 없고 삐죽삐죽 가시 같은 기둥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울창한 숲에 들어온 듯 시야가 제한될 정도로.
“여긴 뭐지…… 조금 으스스하네요.”
게임으로 치면 2층.
아차원 미궁 중심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
여기서부터는 나도 긴장해야 한다.
묵호검은 허리에 잘 꽂고, 묠니르에 손을 가져가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지.’
통상적인 투사체 공격은 기둥에 막힌다.
여기서 유효한 건 원거리 범위 지정형 공격이었다.
아쉽게도 내겐 그런 특성이 없지.
그래도 대체할 방법은 있었다.
골프백에서 저격총을 꺼냈다.
탄창도 미리 허리띠에 꼽자 김마법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총은 왜요?”
“이게 필요해서요.”
다산총끼린 능력을 공유하니 권총을 써도 된다.
하지만 지금부터 상대할 적은 대부분 멀리 떨어져 있으니 문제.
아무리 나라고 해도 권총으로 수백 미터 밖을 맞히긴 힘들다.
[총잡이][조준][저격] [육감][통찰][탐지]주위를 둘러본다.
보이는 것은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까만 기둥뿐이다.
슬슬 눈이 아파올 무렵.
붉은빛이 저 멀리서 번뜩였다.
공격 신호.
그리고 울려 퍼지는 귀곡성!
“흐어어어어.”
“후우우우웅.”
“흐히흐히히히.”
“뭐, 뭐예요?”
김마법이 화들짝 놀라선 두 팔을 펼쳤다.
양팔에서 불길이 치솟기 무섭게 공격이 도달한다.
흐릿한 회색 덩어리들.
유령 특유의 공격.
나는 저격총은 잠깐 내려놓고 쌍권총을 들었다.
타타타타탕!
영탄 능력으로 마구 갈겨 대자 느릿하게 날아오던 투사체들이 공중에서 격추되었다.
“휴, 깜짝 놀랐네. 뭐에예?”
“유령들입니다.”
“안 보이는데요?”
“다 멀리 있어요. 유령 저격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지역이 무서운 이유가 그거다.
시야를 가리는 흑기둥의 숲.
화면 바깥에서 생성되어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유령 저격수.
끝도 없기 튀어나오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원거리 공격에 침몰하고 만다.
투사체 속도가 느려 육안으로 보고 피할 수는 있다곤 해도 영원히 그럴 수는 없으니까.
‘난 상관없지.’
공격이 뜸해진 틈을 타 저격총을 들었다.
붉은빛이, 공격 신호가 번쩍이길 기다린다.
김마법에게는 보이지 않을, 통찰 특성 때문에 보이는 경고.
이윽고 빛이 번뜩였다.
탐지 특성 덕에 기둥을 뚫고서, 거의 투시되다시피 하며.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앙!
5발들이 탄창을 전부 비웠다.
그때마다 붉은빛이 스러진다.
유령을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내 감각은 유령의 죽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저격총이 다산총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고생했을 것이다.
김마법이 화염술을 쓰게 하거나 직접 찾아다니며 유령을 잡아야 했을 테니.
“어…… 전 뭘 하면 되죠?”
나 혼자 총을 쏘고 있자 김마법이 옆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생각해 보니 김마법은 한 게 없네.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나는 어깨만 한 번 으쓱여 주었다.
“팝콘이나 튀기세요.”
“괜히 따라왔네요.”
“정 걱정되면 제 등이나 지켜 주세요. 저도 지금은 무방비 상태에요.”
“저만 믿으세요!”
저격총은 볼트액션 방식.
총을 쏘다 보면 투사체를 격추하기 힘들다.
그 역할을 김마법에게 맡겼다.
김마법이 신을 내며 화염을 흩뿌렸다.
느릿느릿 날아오던 회색 덩어리가 공중에서 녹아내린다.
이것도 나름 괜찮네.
방어는 김마법에게 맡기고 오롯이 대응 저격에 집중한다.
영탄이 물리적 장애물을 통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얼마나 방아쇠를 당겼을까?
골프백에 항상 갖고 다니는 탄창 수십 개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시점, 마침내 마지막 유령이 쓰러졌다.
“후우우.”
나는 침침한 눈을 한 번 문질렀다.
그러자 눈이 화악 밝아지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숲처럼 솟은 검은 기둥 반대편이 훤히 들여다보인 것.
[투시] 특성 획득.기분 좋은 일이었다.
원래는 함정을 직접 설치하고 벽 너머로 파훼하면서 얻으려고 했는데 일식 학파 아차원 미궁에 들어와서 계획을 즉석에서 수정했지.
그 결과 새로운 특성을 얻은 거고.
“후우우.”
시간 끌 거 없지.
즉석에서 특성을 조합한다.
[통찰][추적][탐지] [위기 감지][약점 파악][투시]눈이 빠질 듯이 아팠다.
눈물이 줄줄 났다.
아예 핏줄이 터져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머리 깊숙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뒤통수에 드릴을 꽂고 마구 헤집는 것만 같다.
“허억, 허억.”
감각과 인지 양쪽에 작용하는 특성이라 그럴까?
육감 때와 사뭇 달랐다.
김마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쳐다본다.
“묵호검주님? 왜 그러세요?”
“이제 괜찮습니다.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모양입니다.”
“진짜요? 호, 혹시 마력 폭주는 아니죠?”
“괜찮습니다. 마력 회로는 멀쩡해요.”
“다행이에요. 그래도 이거 하나 드세요. 묵호검주님이 잘못되면 저 할아버지한테 맞아 죽어요.”
김마법이 마법 호주머니에서 수정병을 건넸다.
피처럼 붉은 액체가 금빛 은빛 별빛을 담고서 반짝이고 있었다.
최상급 치유 물약.
이거 한 병에 수억은 가뿐히 넘는데?
역시 금수저.
나는 감사히 치유 물약을 받아 마셨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뭘요. 제가 5레벨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묵호검주님 덕분인데요.”
“하하.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그럼요.”
사실 몰래 꼬불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
치유 물약을 마신 다음 지역을 돌아다녔다.
마법 주사위를 설치하고, 유령의 마력핵을 수거하기 한참.
김마법이 스마트폰을 꺼내 뭘 계산하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중화기 하나만 더 설치하면 끝이에요.”
“좋은 소식이네요. 그런데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그게, 여기서 더 들어가서 하나를 설치해야 한다네요. 그런데 미궁 규모로 봤을 때 여기서 더 들어가면…….”
김마법이 말끝을 흐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궁 규모로 볼 때 3층이 마지막.
3층에는 조 장로가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컸다.
‘결국 그렇게 되네.’
들어올 때부터 생각했지.
어쩌면 조 장로와 검을 맞대야 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묵호검을 한 번 쓰다듬었다.
“들어가죠.”
“괜찮을까요?”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제가 조 장로 시선을 끌 테니까 마법 씨가 중화기 설치하세요.”
“묵호검주님…… 조 장로는 7레벨이에요. 어쩌면 8레벨이 됐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완벽한 8레벨은 아니죠. 아직은 의식이 진행 중일 겁니다. 밖에서 마탑주님과 장로님들이 의식을 방해하고 있으니 벌써 끝나진 않았겠죠. 그 점을 생각하면 시간은 끌 수 있습니다.”
지금 조 장로는 자기 실력을 완벽히 발휘할 수 없다.
기껏해야 5레벨, 6레벨 마법을 날리는 게 고작.
7레벨 마법을 쓴다고 해도 위력을 대폭 약화해서 쓰겠지.
그럼 가능하다.
김마법이 맥점을 계산하고 중화기를 설치하는 몇 분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특성 전환은 쓰면 안 돼.’
아차원이 중화되는 즉시 마탑주가 난입할 테니까.
그때 신나게 특성 전환을 하고 있으면 마탑주도 내 비밀을 눈치채겠지.
그것만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신중하게 특성을 골랐다.
[검 전문가][실전 격투][귀안] [호왕검법][시구르드 연공법][육감]삼위일체 빌드도 더블 파워 빌드도 채용하지 않는다.
이건 무사, 그것도 감각계 무사라고 봐야 한다.
검 한 자루에 인생을 건.
외로이 칼날 절벽 위를 걷는 무사.
“갑시다.”
다음 지역으로 진입했다.
유리알처럼 반질거리는 흰 모래로 가득한 분지.
검은 태양 아래 조 장로가 까마귀처럼 떠 있었다.
몸통은 저승철 합금 의체.
이마와 심장에는 고레벨 마력핵을 박았고.
양쪽 어깨에는 반정령 불사조 머리와 기계 까마귀 머리를 꽂은.
사람도 변이체도 정령도 기계도 아닌 기괴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