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171)
특성 쌓는 김전사-155화(171/300)
155화 스톡홀름 대궁정 -1-
2월 서울은 지독히 추웠다.
눈은 오지 않았다.
하늘은 섬뜩하도록 맑았고 빙산처럼 떠오른 태양이 시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이 뚝뚝 떨어져 유리에 반사된다.
빌딩 겉면을 채운 청회색 유리 외장재.
거기서 번들거리는 빛이 날카롭게 내 눈을 할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푸근했다.
“여깁니다.”
보석 넥타이를 매고 마법 안경을 쓴, 정장의 신사 때문에.
“구 사단장님께서 이 건물을 묵호검주님께 양도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 15층 건물.
지하에도 6층이 딸려 있다고 했지.
1층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편의점이, 2층부터는 여러 초인 단체 사무실이 빼곡하게 입점해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부동산이 메디컬 빌딩이라면, 이 세상에서는 초인 업종 건물이 단연 선호도 1위.
“와아. 와아아.”
백소린이 입을 크게 벌렸다.
“선생님 건물주 되시는 거예요? 이런 건물은 얼마나 해요?”
정장 입은 변호사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1년 전, 구 사단장님께서 정확히 1,100억에 매입하셨습니다. 요즘 시세가 조금 더 올라서 1,200억 정도 할 겁니다.”
“1,200억!”
백소린의 눈이 커진다.
쟈네트는 거의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금수저인 칼리 혼자만 괜찮은 건물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취등록세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 중에 최 소장 혼자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변호사가 씨익 웃어 보였다.
“구 사단장님께서 대납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묵호검주님께서는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화통하시네요!”
“하하. 구 사단장님께서 그러신 면이 있죠. 군단장님 장남이시니 오죽하시겠습니까.”
기왕 줄 거 화끈하게 밀어줄 모양.
조금 아쉬운 점은 있다.
원래 세계에서 이 정도 건물이라면 1,200억이 아니라 500억에서 600억 정도 했을 거라는 점.
인구가 많고 부동산 가치가 높은 세상이라 이걸로 만족해야지.
‘나중엔…….’
대로 남쪽, 마천루들이 밀집한 곳을 쳐다보았다.
15층 20층 정도 건물이 아니다.
100층 200층짜리 마천루들이 도심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1조를 넘게 줘도 파는 사람이 없어 못 사는 건물.
언젠가는 나도 저런 마천루의 주인이 되고 싶다.
한편으로는 실소가 나왔다.
가진 것이라곤 2평짜리 고시원의 보증금이 전부였던 나.
어느새 내 집이 생기고 저택의 주인이 되고 건물주가 되었나 싶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돌아가기 싫어지네.’
더 강해지고 많은 것을 가질수록 드는 생각.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
미래의 에피소드 폭격을 파훼할 정도로 강해지면, 이 세상을 평정해 버리면 다 해결되는 문제잖아.
생각해 볼 일이다.
최소한 플랜 B로는 남겨 두는 게 낫겠지.
“어? 저 사람…….”
“묵호검주! 묵호검주다!”
“뭐? 묵호검주라고?”
내 건물이 있는 곳은 강남대로 한복판이었다.
그중에서도 신사역 부근.
당연히 유동 인구가 엄청나게 많았다.
이 세상 강남대로는 원래 세계 강남대로보다 2배는 넓은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할 지경.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 소장이 급히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내받아 들어간 곳은 15층 꼭대기.
건물주 전용 펜트하우스였다.
업무 공간과 주거 공간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가구는 모조리 최고급품.
아니, 마법 명품.
새겨진 마법진마저 정갈하고 마력 회로에선 단아한 마력이 향기처럼 풍겨 나왔다.
“저기저기요. 이것도 다 주시는 거예요?”
“하하, 그럼요. 당연히 다 드리지요.”
“우와아!”
받은 건 난데 어째 백소린이 더 신났다?
하지만 나는 펜트하우스를 한번 돌아보고 신경을 껐다.
왜냐.
수련실이 없었거든.
나는 하루 대부분을 수련실에서 보내는데 그게 없으면 여기서 살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 저택에는 마법 정령 컴퓨터에 각종 시설,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옮겨 올 수는 없지.
“잠깐 업무 보기에는 괜찮겠네요.”
“음? 아, 하하하, 묵호검주님께서는 그러시겠습니다. 사실 구 사단장님께서도 그래서 많이 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재산관리인이 썼지요. 강남 일대에 구 사단장님 건물이 몇 채 더 있어서, 거길 관리해야 했으니까요.”
“아…… 수련실이 없네요.”
“만들려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안이 좀 안 좋을 것 같아요.”
“그야 그렇지요.”
펜트하우스는 나도 구 노인처럼 적당히 누구 하나 고용해서 쓰라고 하는 게 낫겠다.
그렇다면…….
나는 정신없이 펜트하우스를 구경하던 최 소장을 불렀다.
“최 소장님.”
“예?”
“혹시 저 대신 이 건물 관리하실 생각 없습니까?”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최 소장.
“제, 제가 말입니까?”
“예. 제가 따로 아는 사람도 없고요. 여기가 초인 단체도 많으니 최 소장님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그야…….”
“최 소장님 사업을 접으라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최 소장께 수수료로 이 건물 임대 수익의 10%를 드리지요. 대신 관리만 확실하게 해 주세요.”
강남 빌딩의 임대료는 얼마나 나올까?
건물마다 다르지만 비율은 원래 세계나 이 세상이나 비슷하다.
약 1%에서 2%.
따라서 이 건물은 1년에 12억에서 24억 정도 수익이 생긴다.
앉아서 월 1억에서 2억 정도 버는 셈.
그중 10%쯤, 내가 아무 신경도 안 쓰게 한다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
“묵호검주님…….”
최 소장이 눈물을 글썽였다.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수수료를 받을 수는 없지요. 게다가 제 사업을 계속해도 좋다고 하셨는데요. 기꺼이 묵호검주님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아니죠. 소장님. 제가 언제까지 이 건물만 갖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어…….”
“제가 장담하는데 조만간에 이런 건물이 몇 채는 더 생길 겁니다. 어쩌면 1조짜리 마천루가 제 소유가 될지도 모르지요. 그때도 무료 봉사하실 겁니까?”
“그, 그게 말입니다…….”
“계산은 확실하게 하는 게 낫죠. 수수료 받으세요. 대신 최 소장님 본인 일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 주시고요.”
당장 천만 원 이천만 원 더 벌자고 수수료를 아끼는 건 멍청한 짓이다.
차라리 지분 조금 주고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게 낫지.
최 소장이 열심히 할수록 내 배가 부를 테니까.
잠시 눈을 굴리던 최 소장이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장님!”
“하하. 잘해 봅시다.”
최 소장과 악수를 나눴다.
그런 나와 최 소장을, 구 노인이 보낸 변호사가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흔한 관리소장 자리.
하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조만간 날아오르리라는 것이 확실하니까.
“그럼 도장 찍으실까요?”
“그러시죠.”
“임대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지금 들어오라고 할까요? 임차인들에게는 연락해 놨습니다.”
“묵호검주님께선 바쁘십니다. 제가 대리인 자격으로 계약 갱신하겠습니다.”
“뭐…… 좋습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협상을 좀 해 볼까요?”
최 소장이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눈이 하이에나처럼 번뜩이는 게 임대료를 왕창 올릴 생각인 모양.
임대차 3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원래 세계에서도 임대인이 갑이었지만, 이 세상에선 아주 슈퍼갑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2년 정도는 기존 계약대로 가기로 하죠. 2년 뒤에도 제 사정이 나쁘지 않으면 동결하거나 조금만 인상하고요.”
“허어.”
“묵호검주님께선 아주 관대하십니다.”
“우리 선생님이니까요!”
조금 머쓱해진다.
신경 쓰기 싫어서 임대료 동결을 선언한 거였는데 반응이 너무 열렬해서.
알고 보니 건물주가 바뀌면 임대료가 최소 10%, 많으면 20%까지 올리는 게 국룰이라나?
여러모로 원래 세계와 비교되는 곳이다.
‘헬조선이 선녀라니, 말이 돼?’
거기가 헬 난이도였다면 여기는 지옥불 난이도 정도 되겠지.
나는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일어났다.
“나머지는 최 소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아주 심각한 일 아니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세요.”
“예! 저만 믿으십쇼! 목숨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아저씨 횡재했네요?”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다 묵호검주님 덕분이지요.”
“그럼 나중에 봅시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제자들과 가볍게 대련한 후 수련실에 틀어박혔다.
6레벨이 되고 벌써 2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나는 내 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힘드네.”
가벼운 푸념.
제자들의 성장세가 무섭다.
백소린은 벌써 5레벨 중반에 이르렀고 쟈네트는 5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두 달만 지나면 넥타르를 먹여도 되지 싶다.
칼리?
마찬가지지.
쟈네트가 5레벨이 될 때쯤 4레벨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질 순 없어.’
검을 들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린다.
내 대뇌에 저장된 기억.
묵호검을 휘두르는 군단장의 모습을.
군단장은 광폭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검기가 치솟고 검강이 태어나 세상을 가른다.
더불어 읊조리는 초식명을 나 또한 속으로 따라 했다.
‘묵호맹아, 묵호섬뢰, 묵호단천, 묵호흑영, 묵호검광, 묵호강림.’
순서대로 검기, 섬광, 단월, 검막, 신검합일, 검강이다.
묵호무적검법은 그야말로 매뉴얼이었다.
검기부터 검기를 이용한 기술을 익히고, 궁극적으로 검강에 다다르게 하는.
무서운 것은 이건 전반부라는 것.
후반부는 심검.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이걸 내가 할 수가 있나?’
게임에서 심검은 오로지 SSR 검신 캐릭터만 사용했다.
후반에나 업데이트되는 중국인 캐릭터.
심지어 군단장도 심검은 못 쓴다.
심검은 9레벨, 성좌경의 영역이니까.
‘확실히 고유 특성은 아닌데…….’
문제는 획득 방법도 모른다는 점.
유일한 방법은 검신 캐릭터를 유료 뽑기로 먹고, 검신 캐릭터에게 전승받는 거였다.
성능이 떨어져서 3대장에게 밀리는 신세였지만.
전사 특성이면서 발동 시간이 대마법보다 오래 걸리고, 마력은 겁나게 잡아먹고, 광역기도 아닌 단일 기술이다.
‘묻어 두자.’
당장은 검강 발현만도 벅차다.
“후우읍.”
묵호맹아, 묵호섬뢰, 묵호단천까진 비슷하게 따라갔다.
그 이후에 막혔다.
묵호흑영과 묵호검광.
검막과 신검합일. 내가 아직 습득하지 못한 두 특성에.
‘이거 두 개만 가져오면 되는데.’
그러면 검의 주인 완성이다.
나도 검강을 막막 뿌릴 수 있다고.
5레벨에 검의 주인은 과하지만 6레벨에 검의 주인은 나쁘지 않다.
특성과 능력치만 받쳐 준다면.
“하압!”
과아앙!
검을 내민다.
철저히 묵호흑영의 마력 운영법에 따른 일격.
[묵호무적검법][검 전문가][검기] [시구르드 연공법][집중][훈련]방어막이 연거푸 일어난다.
타타타탕!
세팅한 드론들이 기관단총을 갈긴다.
불완전한 검막이 총알을 튕겨 낸다.
완전하지는 않다.
최소 절반 이상이 검막 사이로 새어 나와 날 강타했다.
그런데 그리 아프지 않다.
나는 멍든 피부를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너무 약해.”
내가 너무 강해진 게 문제.
차라리 경기관총을 배치하고 갈길까?
그럼 또 과한데.
화력을 조금만 올려서 소총 정도로 하고, 거기에 적당한 마법을 담아 물리적 마법적 공격을 함께 가하는 게 최선이다.
나는 속으로 짧게 한탄했다.
‘다산 소총은 어디에 있는 거야.’
최 소장이 열심히 찾고는 있지만 못 찾았다.
게임에서도 정말 희귀했으니깐.
‘마력을 때려 박아?’
그것도 한 방법이다.
검기와 집중을 빼고 마력 방어막과 영역 방어막을 쓰는 거지.
말 나온 김에 해 보았다.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비슷하게는 구현된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너무 비효율적.
‘실전에선 못 쓰겠다.’
안 그래도 구 노인 상대로 마르스 검투법을 펼칠 때 느꼈다.
마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그러나 여기서 마력을 올릴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마력혼의 최상위 특성은 존재하지만 그건 오로지 마법사를 위한 것.
전사는 마력혼이 한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토르 연공법…….”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연공법.
검을 회수하고 두 팔을 펼쳤다.
새로 얻은 특성을 발현한다.
[지옥불]화악!
화염이 방사된다.
핏빛 불길이 화염 방사기처럼 뻗어 나간다.
드넓은 수련실을 가뿐히 불사르는 불꽃.
벽이 빠르게 그을린다.
마법진이 발동하지만 아무래도 약하다.
심지어 마법진에 깃든 마력마저 녹여내고 있었다.
“끄응!”
하지만 나는 오래 방사하지 못하고 불을 껐다.
[마력혼][마력심][시구르드 연공법] [마력 회복][마력 흡수][심호흡]몽땅 마력 계열 특성으로 채워도 이랬다.
하도 많은 마력이 들어서 채 10초를 버티기가 어려웠다.
지옥불에는 계열 제한이 없지만 하도 많은 마력을 소모해서 그렇다.
그래서 화염 마법사들은 화염 숙련, 화염 특화 같은 특성을 달고 다니곤 했다.
김마법이 그런 것처럼.
‘주무기로 쓰긴 어려워.’
대신 의외의 일격으로 쓰는 건 가능하다.
딱 하나.
마력 소모 문제만 해결하면.
‘스톡홀름에 갔다 와야겠다.’
조금 긴장이 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츄리닝 지퍼를 살짝 풀었다.
끝까지 올려 입지 않았는데도 목이 갑갑했다.
괜찮을까?
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토르 연공법, 오딘 연공법, 티르 연공법.
이런 최상위 연공법은 신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얻는 것도 신에게 직접 받아야 하기 때문에.
즉, 신을 대면해야 한다.
6레벨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시점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
6레벨 이하는 신을 보자마자 즉사한다고.
얼굴이라도 구경하려면 7레벨은 되어야 한다.
이건 영혼의 격에 달린 문제라 상위 특성을 도배해도 해결 불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가 있었다.
무적기를 활용하면 된다.
물약이든 마법칩이든 뭐든 써서 구경은 할 수 있다.
무적 하나 믿고 개겼다간 끔살 나겠지만.
‘유료 아이템 말고 무적기가…… 있지.’
마침 무적 아티팩트가 있는 곳도 스톡홀름 대궁정.
바로 레드 쿠거에 올랐다.
토르 연공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