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195)
특성 쌓는 김전사-195화(195/300)
195화 대균열 –1-
잡아먹힌다!
누구에게?
아마도 옛 아버지에게.
손을 허우적거리지만 닿지 않는다.
올림포스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다음.
정신을 차려 보니 올림포스산 저 아래 평지였다.
미티카스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지점.
나는 몸을 꿈틀대다가 피를 왈칵 토했다.
“우웨엑!”
토르를 만났을 때와 똑같은 현상.
최상급 치유 물약, 성수, 마력 물약을 연달아 복용했다.
예전엔 최상급이 없어서 엘릭서를 마셨지.
몸이 진정되자 강력한 의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두 번째 물결이라고?’
뭘 지칭하는지는 뻔하다.
에피소드 2, 좀비 사태.
안 그래도 좀비 사태 전조인 재벌 암살은 이미 실행되었다.
두 번째 전조인 귀신 소동은 주체인 서울 지부가 박살 나서 벌어질 수 없다.
하지만 세 번째 전조 병원 테러는 분명히 발생하겠지.
병원 테러는 서울 지부가 벌인 일이 아니니까.
‘물결을 거스르고 운명을 뒤집으라고 했지.’
피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뜻.
나는 작년 12월 24일을 상기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야 성녀에게 끌려갈 뿐이다.
넋 놓고 좀비 사태를 맞이하면 끝장이라는 예감이 요즈음 나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꼭 가이아의 경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좀비 사태를 파괴한다.’
이 생각을 한 순간.
이런 결심을 한 바로 그때.
뱃속이 뜨끈해지며 안도감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가이아가 내게서 뭘 봤는지는 모른다.
내 행동이 어떤 나비 효과를 일으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게 바로 정답이라는 것은 내가 장착하고 있던 육감 특성을 통해, 또 손가락에 끼고 있던 예언자의 고리를 통해 직감할 수 있었다.
차분히 손가락을 꼽아 본다.
‘좀비 사태를 구성하는 네 축.’
그중 전염병 대비는 끝났다.
어둠 재규어 교단도 깨뜨려 놨다.
남은 것은 둘.
시체룡과 좀비 떼.
‘대균열에서 시체룡을 죽인다.’
이 시점이라면 어둠 재규어 교단이 시체룡을 한참 제압 중일 터.
시체룡도 대균열 지부도 무너뜨릴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좀비 스폰 지점을 모조리 청소한다.’
여기까지 하면 사실상 모든 축을 부수는 셈이 된다.
그러면 어둠 재규어 교단이 어떻게 대처할까?
어, 실패했네. 하고 포기할까?
그럴 리가 없지.
성녀의 공작으로 어둠 재규어 교단은 서울에 좀비 사태를 일으키는 게 어둠 재규어를 부활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교단의 모든 힘을 기울여 좀비 사태를 일으키려 할 것이다.
바다를 건너서라도.
본부를 송두리째 옮겨서라도.
대제사장이 직접 비행기를 타는 한이 있더라도.
‘어둠 재규어 교단 본부. 대제사장. 화신체…… 혹은 망령왕.’
게임에서는 에피소드 2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력.
잔당 퀘스트로만 등장하다가 한참 후 에피소드에 업데이트됐던 이들이 좀비 사태 네 축을 대체하지 싶다.
게임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쪼그라드는 것.
좀비 사태가 아니라 좀비 사건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물론 방심해선 안 된다.
평균 레벨은 이들이 훨씬 높으니까.
‘좋아.’
레드 쿠거를 타고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대미궁.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선생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몇 달 만에 본 제자들.
다들 홀쭉했다.
눈에서는 안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셋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동안 열심히 했구나? 셋 다 많이 강해졌어.”
“헤헤헤. 알아보시네요.”
“6레벨 축하한다. 소린아.”
“감사해요!”
“선생님! 저는요?”
“너도 조금만 더하면 6레벨 되겠다. 잘했어. 그리고 칼리 너는…….”
아직 어린 칼리.
기껏해야 중학생.
하지만 체내에 깃든 마력 회로만은 얕볼 수가 없었다.
[여신의 피][그림자 이동][혈신무] [시간 조작][초능력]시작 특성 네 개에 초능력이 새로 붙었다.
칼리에겐 최고지.
곧 얻을 칼라라트리도, 다른 특성들도 초능력 영향을 받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내가 대균열에서 얻어야 할 특성이기도 하다.
저게 없으면 칼라라트리 획득 자체가 안 돼.
“넥타르만 마셔도 레벨 오르겠다.”
특성 영약까지도 필요 없다.
적당히 법제만 해서 먹이면 되겠다.
그럼 영약이 아니라 영맥 주사로 놓는 게 낫겠네.
넥타르 흡수는 주사가 더 효율적이니까.
“정말요?”
“그래. 가면서 주사 한 대 맞자. 12시간이면 충분할 거다.”
“주사요? 어…….”
눈을 굴리는 칼리.
나는 가볍게 실소를 흘렸다.
“영약보다 주사가 나아. 영약은 마시면 피도 토하고 피똥도 싸지만 주사는 맞기만 하면 끝이야. 부작용도 없다.”
“정말이죠? 안 아픈 거 맞죠? 저 속이는 거 아니죠?”
“아니니까 믿어 봐라.”
서우진이 개조한 탓에 하늘배는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텅 빈 선실과 갑판이 다고, 밥을 하려고 해도 내 골프백의 캠핑 장비를 꺼내야 했던 과거.
지금은 움직이는 호텔 수준이 되었다.
하늘배를 구경한 제자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토했다.
“와, 엄청 바꼈어요!”
“우진이 오빠가 확실히 센스가 있어.”
“이젠 여행이 즐겁겠어요! 근데 우리 어디 가요? 서울로 가는 거 아니에요?”
“어, 그러게. 서쪽으로 가고 있네.”
마침 석양이 지고 있었다.
선실마다 마법 유리창을 끼운 탓에 붉은 광선이 배 안까지 들어온다.
나는 셋을 앉혀 놓고 말했다.
“그랜드캐년으로 갈 거다.”
“그랜드캐년…… 대균열에요?”
“그래.”
수호자 연맹이 지키는 장소 둘.
대미궁과 대균열.
대미궁에는 악마와 악신이, 대균열에는 이계종과 이계신이 호시탐탐 지구를 노린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꼬옥 쥐는 칼리.
나는 칼리를 눈여겨보며 말했다.
“칼리. 5레벨이 되면 칼라라트리를 네게 새길 수 있어. 혹시 준비가 안 됐으면 말해라. 지금이라도 기수를 돌려서 서울로 돌아갈게. 더 강해지고, 결심이 선 후에 미국에 가도 된다.”
마음에도 없는 말.
사실 나는 칼리가 어떻게 반응할지 다 알고 이러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고민하던 칼리가 머리를 들었다.
두 눈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 선생님한테 제자로 받아 달라고 할 때 마음 정리 다 끝냈어요. 괜찮아요. 바로 가요.”
“정말로 괜찮겠니?”
“괜찮아, 언니. 이족화되면 죽을 때까지 끔찍하게 고통받는다며. 내가 할머니를 편하게 해 드릴 거야.”
칼리의 개인 퀘스트.
이계종이 된 할머니를 죽이고, 칼라라트리를 얻고, 유품을 가져가 인도 대사와 화해하는 거다.
사실 할머니를 꼭 죽일 필요는 없다.
선택지를 잘 고르면 할머니가 자살하고 칼라라트리를 넘겨준다.
‘사실 그게 가장 쉬운데.’
여기서는 가장 어려운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칼리의 할머니를 변이시킨 이계종.
7레벨 별의 자손.
놈을 꾀어내서 죽인 다음 칼리의 할머니를 일시적으로 제정신을 되찾게 하고, 칼리에게 칼라라트리를 넘겨주게끔.
내 재구성 영약 재료로 써야 하니까.
“대균열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리니까 그동안 또 훈련하자.”
“선생님! 도전할게요! 저랑 대련해요!”
“너 6레벨 되더니 자신감이 넘친다?”
“아하하, 예전의 제가 아니라고요.”
확실히 백소린은 강해져 있었다.
지금은 나와 동레벨.
미친 호랑이처럼 달려들어 검을 갈겨대는데 한 수 한 수가 섬뜩했다.
실린 힘도, 비집고 들어오는 각도도, 강맹한 기세도 모두.
하지만 날 어쩌진 못했다.
[검의 주인]이 특성 때문에.
[무적총]또 이 특성 때문에.
열 번을 내리 진 백소린이 갑판 바닥을 걷어찼다.
“으아, 이건 사기예요! 사기! 어떻게 권총만 드셨는데 절 이기실 수가 있어요?”
“마르스 검투법을 더 잘 써 봐. 아직 부족한 느낌이야.”
“끙…….”
백소린이 머리를 싸맸다.
그러더니 쟈네트와 칼리를 데리고 2 대 1로 대련을 시작.
칼리는 이미 넥타르 영맥 주사를 맞고 5레벨이 되어서 어느 정도는 상대가 됐던 것이다.
나도 한쪽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꽈릉! 꽈르릉!
[방패술][마력 방패][마력 폭발] [마력혼][마력 집중][훈련]내가 연습하는 것은 하나.
마력 방패를 생성하고, 마력을 최대한 불어넣어 터뜨리는 것.
그냥 폭발시켜선 안 된다.
특수한 파장이 발생하여 지면을 따라 흐르고, 땅에 서 있는 존재의 마력을 교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마비되도록.
충격파.
방패 전문가 특성의 마지막 조각.
‘쉽게는 안 되네.’
이게 다 레벨이 높아져서 그렇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열심히 노력했더니 많이 구현되었다.
계기만 있으면 바로 특성을 획득할 정도로.
“저기가 대균열인가 봐요!”
그랜드캐년.
겹겹이 쌓인 지층이 고스란히 노출된 협곡.
붉은 바위 절벽 위 대균열이 있다.
하늘부터 땅까지 이어지는 차원의 틈.
수천 겹의 결계로 막아 놓았으나 완전 차단은 불가능.
대안으로 건설한 요격 기지가 지상에 수도 없이 깔려 있다.
여기도 수호자 연맹이 존재한다.
아헨과 다른 점이라면 미국인들이, 또 마마퀼라 교단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는 것.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대균열로 들어갔다.
그러자 우주도 지상도 아닌 기이한 공간이 우리를 맞이한다.
“어…….”
칼리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상하네요. 여긴.”
하늘도 땅도 없다.
회색의 뿌연 공간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물속에 부유하듯 떠 있는 느낌이 드냐면 또 그건 아니다.
분명히 바닥이 없는데 멀쩡히 서 있고, 걸어가려면 걸어갈 수 있다.
위로도 아래로도.
사다리 타듯이 올라갈 수도, 경사로 내려가듯 내려가는 것도 가능.
하지만 칼리가 이상하다고 한 건 이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스타 스폰 방호복을 벗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꿈틀거리는 표면의 촉수 떼.
그건 건네자 칼리가 소스라치며 놀랐다.
“웩! 이건 왜 이래요?”
“별의 자손 시체를 재료로 써서 그래. 별의 자손은 자기들끼리 텔레파시로 교신한다. 그 텔레파시에 자극받는 거지.”
“엄청 징그럽네요…….”
“그렇지? 빌려줄게. 너 입어. 돌아갈 때 돌려주면 된다.”
“예에엑? 제가요? 아니에요! 선생님 거잖아요! 무려 대통령님한테 받으신! 그런 귀한 걸 제가 입으면 안 되죠!”
“입어 보면 내가 왜 그러는지 알 거다.”
강제로 들이밀었다.
칼리가 울상을 하고 스타 스폰 방호복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더 꿈틀거리는 방호복.
방호복 표면에 문어와 오징어, 낙지를 수십 마리도 넘게 달아 놓은 듯한 장면이다.
“으아아아…….”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백소린과 쟈네트가 칼리의 환복을 돕는다.
비명 몇 번 지르고 엉엉 울기도 하며 환복 완료.
칼리가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어…… 뭐지?”
“목소리 들리지?”
“어어, 네! 목소리, 목소리가 들려요! 어, 응, 그러니까, 어어어, 아, 으으, 으으으.”
칼리의 눈동자가 돌아간다.
입에서는 거품이 흐른다.
여신의 피 특성만으로는 모자랐던 모양.
나는 손을 뻗고 칼리에게 특성 하나를 사용했다.
[피해 흡수]오랜만에 쓰는 특성이다.
꿈틀대던 칼리가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대신 내 귓가에, 아니 내 머릿속이 기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근소근소근소근.] [수군수군수군수군.] [속닥속닥속닥속닥.]의미를 알 수 없는 속삭임.
괜찮아.
견딜 수 있어.
나한테는 금강체도 있고 불굴도 있으니까.
“허억!”
칼리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 이게 뭐예요?”
“이계종의 텔레파시다. 인간의 뇌를 자극해서 평범한 사람은 금방 미쳐 버리지.”
“으, 죽는 줄 알았어요…….”
“안 죽어. 성수도 충분히 준비해 왔다. 못 버틸 것 같으면 성수 마시면 돼.”
“진짜 우리 선생님은 스파르타식이라니깐.”
듣고 있던 백소린이 투덜거렸다.
“어느 쪽이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어딘지는 알 수 있을 거야.”
“어…… 저기요. 저 방향이에요. 그런데 방향은 왜요?”
“거기가 우리 목적지니까.”
“우리 목적지요? 아.”
지금 칼리한테 누가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을까?
간단하다.
칼리의 할머니.
같은 피로 이어진 혈족을, 여신의 피 특성을 공유하는 초인을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것.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만들려고.
“후우.”
칼리가 잠깐 심호흡을 했다.
“가요.”
그러더니 씩씩하게 앞장섰다.
백소린과 쟈네트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마치 칼리를 호위라도 하려는 것처럼.
철컥.
나도 준비했다.
다산 저격총을 꺼내 장전한 것.
스타 스폰 방호복을 이용한 직선 주파.
스트리머 방송에서 본 건데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하는 대신 중간에 강력한 이계종들과 마주친다는 것.
그래서 그 스트리머는 비추천했다.
저레벨 파티로 가면 몰살당하기 십상이라고.
“조심.”
탕!
빠르게 권총을 꺼내 쏘았다.
영탄이 허공을 후려갈기고 괴악하게 생긴 넝쿨 식물이 튀어나왔다.
“꿰에엑!”
“엄마야!”
사람 살점과 가죽을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생긴 넝쿨.
산전수전 다 겪은 셋이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다.
이런 함정이 많고도 많았다.
이면 공간에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해 대는 괴물들.
귀안과 육감이 아니었으면 선제공격 당했겠지.
누구도 죽진 않았겠지만 무척 귀찮았을 거라고.
그렇게 돌파했다.
괴물들을 쓰러뜨리고 함정을 분쇄하며.
미궁은 아닌데 미궁보다 더 위험한 이 기이한 공간을 헤쳐 나갔다.
그러기를 한참.
선두에 서 있던 칼리가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저, 저게 뭐예요?”
우리 앞에 기괴한 건축물이 서 있다.
아니, 회색 공간을 부유하는 중이다.
초거대 짐승 뼈를 겹쳐서 쌓은 듯한 요새.
건물이라기보단 우주 정거장에 야만 세계 외형을 덧씌웠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구오오오오오!”
주기적으로 울려 퍼지는 굉음.
음파가 마력을 머금고 후려칠 때마다 회색 공간이 흔들린다.
백소린, 쟈네트 칼리도 물결처럼 출렁인다.
“어둠 재규어 교단 대균열 지부다.”
“어둠 재규어 교단이요?”
“그래.”
에피소드 2 최종 보스.
시체룡이 저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