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207)
특성 쌓는 김전사-207화(207/300)
207화 오래된 내기 –4-
기이이잉.
기계가 돌아간다.
초대형 고리가 바닥에서 분리되어 떠오른다.
입체 마법진이 고리와 공간을 잇고 빛나고 있었다.
그 중심에 떠다니는 마법 무구 하나.
아니 둘, 셋.
마법 정령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해석된 마법진 출력합니다.]황금 까마귀 모자와 허리띠, 신발.
거기 새겨진 마법진이 낱낱이 해체된다.
하나하나 해석되어 공간에 출력된다.
마탑 슈퍼 컴퓨터가 그걸 중앙 모니터에 옮겨 놓았다.
[공중 도약, 정신 보호, 마력 증폭, 인체 방어막, 속성 공격…….]이어서 다음 단계.
[마법진 분리 시행합니다.]치익, 치이익.
마법 드론들이 근거리에서 마법 광선을 쏜다.
그에 따라 노출된 마법진이 조금씩 분리되었다.
해체 후 섞고 조합하여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려는 것.
물론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아무리 태양 마탑의 설비가 최신식이어도, 마법 정령이 어마어마한 연산 능력을 자랑해도 사람의 손이 닿아야 한다.
[지고화 용융 단계입니다.]“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두툼한 문을 열고 제작소 안으로 들어갔다.
구구구궁.
원통형 구조물이 내 머리 위로 내려온다.
정확히 말하면 금오 세트 세 점 위에.
“후우.”
긴장되네.
구조물 안에 담긴 건 다름 아닌 지극화.
폭발형이라 조심해야 한다.
내가 지고화 제어에 실패하면 바로 폭발하니까.
죽지는 않겠지만 죽고 싶을 만큼 아프겠지.
손을 뻗는다.
정신을 집중하고 지고화 방출.
황금색 불꽃이 꽃잎처럼 피어나 금오 세트를 감쌌다.
화악!
불길이 마법 무구를 녹인다.
완전히 녹일 수는 없다.
대신 마법과 마법, 금속과 금속, 마력핵과 보석 사이를 헐겁게 만들 수는 있다.
[지극화 용융 시작합니다.]웅웅웅웅.
원통형 구조물이 광폭하게 울부짖는다.
이윽고 적색 화염 분사.
완벽한 지극화는 아니다.
지극화는 힘을 최대한 응축했다가 폭발시키는 마법.
응축된 불꽃이, 지극히 순수한 불의 원소가 금오 세트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손을 휘저었다.
금빛 지고화가 소용돌이치듯 길게 한 바퀴 휘돈다.
잘 움직이지 않았다.
지극화는, 저 광기 어린 폭군의 불꽃은.
주르륵, 땀이 한 방울 이마를 타고 흐른다.
실수 한번 했다간 바로 터지겠지.
나는 적색 지극화를 노려보며 차분히 마력을 제어했다.
다행히 최근 며칠, 마탑주와 대담 후 지극화 안정에 기여하면서 얻은 특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해]이게 없었으면 내가 쓴 마법도 아닌 지극화를 제어하진 못했겠지.
마력도 무시무시하게 들었다.
토르 연공법에 마력혼, 총명을 동원해서 겨우 맞췄지.
마력 회복이나 심호흡, 마력 흡수도 좋지만 총명은 머리도 맑게 해 주니 더 좋다.
오로지 마법만 사용 중인 이 상황에선.
[용융 끝났습니다. 해체 단계에 들어갑니다.]위이이잉.
마법 드론들이 날아온다.
저마다 특수하게 제작된 집게와 끌, 정 따위를 들고 있다.
나도 묠니르를 쥐었다.
장인을 장착하고 적당히 특성을 교체.
섬세하게 세 마법 무구를 깎아 낸다.
쩌엉! 쩡! 쩡!
마법진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부품이 망가져도 안 된다.
지극히 세밀하고 복잡한 작업이라 손가락이 저절로 떨려 왔다.
안 되지, 안 돼.
집중 특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며 마법 정령이 보조하는 대로, 금오 세트 위에 덧댄 마법 청사진대로 한 땀 한 땀 깎아 나갔다.
“휴우!”
마침내 해체 단계는 끝.
바깥에서 마탑주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게 보인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재조립 시작합니다. 추가 재료 투여합니다.]마법 드론이 기계 팔에 재료를 한 아름 들고 날아온다.
용의 뿔, 뼈, 비늘 같은 희귀 재료.
그대로 쓰는 것도 아니다.
며칠 동안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최대한으로 가공하고 압축했다.
검을 만들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고, 방어구를 만들면 드래곤 세트가 될 재료들.
마법 드론들이 부품 위에 재료를 얼기설기 쌓는다.
이어서 마법 광선으로 간단히 접착.
어린아이가 가볍게 밀기만 해도 무너지겠지만 이건 녹여서 붙이면 된다.
[지고화, 지극화 결합 단계입니다.]결합은 내 몫.
묠니르에 이어 아이기스도 전개했다.
신중하게 마법 무구를 올려놓은 다음 특성을 교체한다.
[지고화][토르 연공법][마력혼] [마법 저항][이해][총명]먼저 지고화.
화염으로 충분히 지져 준다.
대충 쌓여 있던 부품들이 적당히 녹아서는 서로 엉겨붙는다.
그 사이로 마법진 투사.
마법 정령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내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융합 단계입니다.]“흡!”
숨 한 번 들이쉬고 특성 전환.
[장인][제작][개조] [신기][감응][마법 저항]묠니르를 내리친다.
깡!
다시 내리친다.
까앙!
또 한 번 내리친다.
까아앙!
가장 중요한 단계다.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
용 재료는 물론 금오 세트도 몽땅 날아가는 수가 있다.
지고화와 지극화를 다스리는 한편으로 완벽한 융합을 이뤄 내야 한다.
당연하게도 특성을 고정해 놓고 망치질하면 안 된다.
지고화에 올인?
장인 특성이 부족해져서 융합이 안 된다.
망치질에 올인?
지고화와 지극화가 폭주해서 터져 버린다.
그래서 내 선택은 특성 전환.
망치를 내리칠 때는 장인 세트로.
반대로 망치를 올릴 때는 지고화 세트로.
그렇게 동작 절반 절반에 특성을 바꿔 가며 아티팩트 제작에 전력을 다했다.
“허…….”
밖에 있는 마탑주가 입을 벌린다.
다른 장로들도 감명 깊다는 표정이지만 마탑주만큼은 아니다.
마탑주는 보이겠지.
내 특성 전환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천품이, 또 재능이.
“허억, 허억, 허억.”
호흡이 가빠 온다.
마법 저항은 계속 쓰고 있음에도 숨을 쉬기 어렵다.
미리 산소 호흡 마법 마스크를 끼고, 전신 방호복을 입지 않았으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용암에 들어가도 웃으며 헤엄쳤을 장비.
이런 걸 입었는데도 이 정도 열기면, 거의 태양 가까이 다가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깡! 깡! 깡!
계속해서 망치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법 무구 세 점이 조금씩 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러나 마법 무구가 망가지지는 않게 정교한 손놀림으로 망치질을 해 나갔다.
후앙. 후아앙.
빛이 일렁인다.
마력광이 번진다.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광채가 심장 박동하듯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왕관은 홀로 고고했고 허리띠와 신발은 서로 어우러지고 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최후 각인 단계입니다.]단 한 번의 망치질만이 남았다.
“후으으읍.”
허파가 터지도록 심호흡 한 방.
[장인][신성력][감응] [신기][벼락][지구]마법 저항도 지워 버렸다.
불길이 마스크도 방호복도 뚫고 피부도 내장도 태워 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묠니르와 아이기스가, 하늘번개와 무한대지가 정통으로 부딪혔다.
꽈아앙!
각인.
두 신의 힘이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예전처럼 두 신이 나를 축복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해체되었던 마법진이, 분리되었던 마력핵과 부품이 재결합하고 융합되는 데에는 충분한 힘이고 격이었다.
태양 마탑의 본래 아티팩트 제작 공정을 최소 30%는 생략할 정도로.
번쩍!
섬광이 번뜩인다.
머리 위에 드리워졌던 원통형 구조물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대신해서 제작소 전체에 새하얀 빙결 마법이 퍼부어졌다.
수천 도를 가리키던 온도계가 빠르게 하강.
덜컹 문이 열리며 마탑주가 뛰어들었다.
“검성! 괜찮습니까?”
“전 괜찮아요.”
치이이이.
마법 저항과 화염 저항, 지고화 등 특성을 모두 장착한 상태.
수증기가 증발하고 있었다.
응결된 수분이 허연 김이 되어 피어오르는 것.
마탑주가 날 확인하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입니다. 그냥 저희한테 맡겨 놓으시지 그러셨습니까.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렇지 안정적으로 만들었을 텐데요.”
“너무 오래 걸리잖습니까.”
“그래 봐야 한 달입니다.”
“한 달도 길어요.”
내가 망치질을 한 것은 겨우 8시간.
지극화 안정에 조언을 하고 관찰하며 체류한 것도 고작 일주일.
한 달 대 일주일이잖아.
이건 못 참지.
3주라는 시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데.
“확인해 볼까요?”
“그러시죠.”
마탑주가 휘리릭 손가락을 돌렸다.
숨 돌리는 사이 통신기와 영상 장치 등, 여러 전자 장비를 설치한 마법 무구가 둥둥 떠서는 내게 다가온다.
드래곤이 아닌, 동방의 용을 닮은 황금용 허리띠.
날아갈 듯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는 불사조 신발.
흑과 금의 위엄찬 뿔이 교차하여 장식된 왕관.
아니, 격이 조금 낮으니 군주관이라고 해야겠지.
마법 무구를 받아들자 마법 홀로그램이 퐁퐁 활성화된다.
태양 마탑 마법 정령이 띄운 말풍선.
그 안에 세 마법 무구의 제원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허허. 예측보다 더 좋게 나왔습니다그려.”
“벼락과 지구의 축복이 깃들었으니까요. 제가 성기사였으면 더 좋았겠죠. 신기급으로 나왔을 겁니다.”
흔히 말하는 신성장.
사제이면서 장인인 특성.
난 신앙이 없으니 신성장 특성은 못 만든다.
아무래도 좋아.
세 마법 무구 모두 SSR급에서 끝판왕 격으로 나왔거든.
“허리띠랑 신발이 세트네요.”
“그렇지요. 3세트를 2세트로 줄였습니다.”
황금용 허리띠에는 금오 강화가, 불사조 신발에는 금오 도약이 들어갔다.
금오모의 금오안은?
2세트 효과다.
원래의 세트 효과였던 금오는 1세트 효과로 들어갔고.
만약에 2세트를 같이 쓰면?
금룡으로 강화된다. 금오의 모든 효과가 증폭되는 것.
실상 2세트 효과로 2개가 붙은 것이다.
“군주관은 제가 봐도 굉장하네요.”
“제가 장담하는데, 모든 투구 중에서도 수위권일 겁니다. 전설에나 나오는 용왕관이 아니면 이보다 좋은 건 없지요.”
용의 군주관이 가진 특성은 [군주관].
용군주와 이름만 비슷하지 무척 달랐다.
[위엄]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굴복시킨다. [자존] 외부의 마법적 정신적 공격을 배제한다. [냉엄]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유지한다. [용뇌] 마력 제어 능력과 마법 연산 능력을 강화한다. [용언] 용의 언어로 소통한다.솔직히 말하면 마법사나 사제에게 더 유용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아.
중첩 특성으로 하위 특성이 다섯 개나 달렸다고.
묠니르나 아이기스처럼.
스타 스폰이 상의 하의 합쳐서 다섯 특성인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신기급.
신격을 족쳐 진퉁 신기를 강탈하기 전에는 최고의 물건이다.
마탑주가 입맛을 다셨다.
“금오 세트에도 시체룡 재료를 넣었으면 좋았겠습니다만.”
“그건 힘들죠. 군주관은 처음부터 다시 만든 거나 다름없지만, 태양불사 세트는 금오 세트를 강화한 거 아닙니까.”
“태양불사 세트라, 참으로 멋스러운 이름입니다.”
“마탑주님께서 지으셨으니까요.”
마탑주가 흐뭇하게 웃는다.
태양 마탑이 얻은 것도 많다.
황금룡과 시체룡 재료에, 지고화 실험 자료에, 금오 세트를 뜯어 보았고 용의 군주관 설계도와 태양불사 세트 설계도도 얻었지.
그렇다고 용의 군주관이나 태양불사 세트를 찍어 낼 수 있느냐?
불가능하다.
지고화가 없으니까.
또, 지극화만으로는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없으니까.
폭발형 마법에 뭘 바라?
결국 지극화를 제작용으로 개조하거나 태양불꽃의 화력을 올려야 하는데, 이것도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것이다.
애초에 게임에서는 에피소드 9가 나오도록 연구 마무리가 안 됐고.
“검성. 선물입니다.”
“이게 뭡니까?”
“열어 보시죠.”
마탑주가 내민 작은 마법 상자.
뜯어 보니 태양 마탑 휘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귀찮다고 잘 안 차고 다니지만 나는 이게 뭔지 잘 안다.
태양 마탑 장로 휘장.
내가 여태 차고 다니던 명예 성기사, 수호자 휘장보다 훨씬 급이 높은 물건이었다.
“검성을 우리 마탑 명예 장로로 임명하고, 마탑 차상층에 연구실을 내 드리겠습니다. 매달 품위유지비와 연구비가 지급될 거고, 필요하시면 연구 마법사와 마법학 조교를 배정해 드리지요.”
“명예 장로라면서요?”
“원하신다면 실제 장로 자리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장로들의 얼굴이 썩 좋지 않다.
당연히 그렇겠지.
내가 정말로 마탑 장로가 되면 권력을 나눠야 하니까.
마법사가 아닌 전사가 장로가 되는 것도 마땅치 않을 거고.
나도 귀찮다.
뭐 하러 태양 마탑에 기어 들어가?
명예 장로 자리나 받고, 품위유지비와 연구비 정도만 받아먹는 게 낫지.
그것만 해도 한 달에 수십억은 가뿐히 넘는다고.
“아닙니다. 장로직이라뇨.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거 받으면 정기 회의에도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연구 성과도 내야 하고요.”
“하하, 그렇지요.”
“명예 장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속이 다 보인다, 보여.
마탑주가 장로 휘장을 내 가슴에, 기존 세 휘장 위에 달아 주자 장로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박수를 쳤다.
“축하드립니다!”
“검성께서 우리 마탑 일원이 되셨으니 우리 마탑이 쭉쭉 발전할 일만 남았습니다!”
“시간이 나시면 합동 연구를 진행하시는 게 어떨까요?”
“보니까 지극화와 지고화가 참 잘 어울리던데……”
“지극화랑 지고화를 합치면 아마테라스의 불도 부럽지 않을 겝니다. 어쩌면 능가할지도 몰라요!”
관심 없다.
게임에서는 구현이 안 된 지극화와 지고화 합일.
떡밥 정도는 있었다.
확실한 것은 합일에 성공한다면 마법사 계열 특성이 될 거라는 점.
태양불꽃과 용왕염은 혼돈화 덕에 계열 제한 무시하고 썼지만, [아마테라스의 불]과 동격일 특성은 혼돈화로는 부족하다.
그림의 떡이라고.
내가 쓰지도 못할 마법을 연구하는 취미 따윈 없다.
“제가 좀 바쁩니다.”
“아쉽습니다. 그래도 취임식은 하셔야겠지요?”
“그럴 필요가 뭐 있습니까. 적당히 보도 자료나 내 주시면 충분합니다. 전 바로 가 봐야 해서요.”
“아니,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급하지.
에피소드 2가 코앞인데.
태양 마탑에서 보낸 일주일마저 아까울 지경이다.
적당히 얘기를 나누고 레드 쿠거에 올랐다.
목표는 정해 두었다.
좀비 사태 때 고레벨 좀비가 특히 많이 쏟아지는 지점.
시체룡과 싸우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
7레벨 보스인 강화 골격 시체 골렘이 출현하는 던전.
마도과학 외골격 공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