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240)
특성 쌓는 김전사-240화(240/300)
240화 강의 권속 –1-
안개가 짙다.
적란운 보듯 피어오른 안개 기둥이 버섯구름처럼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
[경고! 경고!]전용기 통제 마법 정령이 적색 광점을 띄웠다.
[마법 감지기 차단 지역입니다. 마법 레이더, 마법 통신기도 먹통이 됩니다. 안개 지역을 돌아가시길 권합니다.]“저거 넓이가 어떻게 되지?”
[위성 사진으로 계산하면 약 1만 제곱킬로미터입니다.]“히야, 넓네.”
서울특별시 넓이가 6백 제곱 킬로미터 정도 된다.
경기도랑 비교해야 비슷하겠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저 앞쪽 안개 지역을 쳐다보았다.
땅에서 피어올라 하늘까지, 내가 있는 성층권까지 장악한 안개 지역.
절대 자연스럽지 않다.
신의 힘이 개입한 결과물이었다.
비록 그 신이 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고작 8레벨짜리 소신격이자 미친 정령이라고는 해도.
‘모험할 필요는 없겠지?’
이집트 남부 나세르 호수.
아스완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
원래 세계에서는 약 5천 제곱킬로미터였는데 이 세상에선 두 배로 커졌다.
강의 여신 때문이지.
미쳐 버린 탓에 시도 때도 없이 마력 안개를 피워 대서, 이집트 정부와 오시리스 신전은 나세르 호수를 접근 금지 지역으로 선포했다.
“아스완으로 가자.”
이 근처에 그나마 행정력이 살아 있는 곳은 바로 아스완.
아스완 댐이 있는 곳.
그쪽으로 조종간을 밀었다.
마법 정령이 불빛을 깜빡이며 바쁘게 교신했다.
[입국 허가, 착륙 허가, 체류 허가 떨어졌습니다. 아스완 국제 공항에 착륙하시면 됩니다. 주인님께서 체류하시는 동안 아스완 국제 공항 격납고에 보관될 예정입니다.]초인의 특권이지.
내가 일반인이었으면 아무리 전용기 몰고 와도 따로 입국 심사를 거쳤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정할 점이 하나 있다.
“격납고? 그럴 필요 없어. 직접 보관하겠다고 해.”
[예?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신하겠습니다.]착착착.
마법 활주로가 전개된다.
신중하게 멀리서부터 착륙하고 어쩌고 보조 날개를 어쩌고 할 필요도 없다.
마법 정령이 어려운 건 다 알아서 해 줬으니까.
속도가 줄자 나는 스카이 하피에서 몸을 던졌다.
미리 활주로에 내려가 주머니에서 하늘배를 꺼냈다.
최대 크기, 즉 항공모함 크기로 전개한 후 착륙 완료.
하늘배째 접어서 넣으려고 하는데 마법 정령이 통신을 보냈다.
[시청에서 환영식을 준비하겠다고 합니다.]“환영식? 왜?”
[성흔의 수호자이자 바울의 기사께서 오셔서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꼭 참석해 주시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얘는 좀 기계적이네.
레드 쿠거 마법 정령은 이유까지 분석해서 알려 줬을 텐데.
가만히 따져 보았다.
시청에서 부랴부랴 환영식을 준비하는 이유를.
뻔하지.
강의 여신 때문이다.
강의 권속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강의 여신 토벌은 못 하겠지만, 강의 권속 정도는 잡아 죽일 수 있거든.
오시리스 교단은 주기적으로 강의 권속 토벌을 하는 만큼, 나한테도 그걸 부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참석해야겠다.
나 혼자 털래털래 저 안개 속으로 들어가 봐야 헛걸음이니까.
강의 권속 토벌은 하지 않더라도 퀘스트 아이템 하나는 필요하다.
“좋아. 참석한다고 전해. 어디로 가면 돼?”
[리무진을 보내겠다고 합니다.]얘기하는 사이 까맣고 긴 리무진이 조용하게 다가왔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 길쭉한 리무진.
내가 저번에 브라질에서 탔던 것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검성님을 모시게 된 아흐메드 압달라입니다.”
까무잡잡한 남자가 내게 정중히 인사했다.
아스완 시청이 신경을 꽤 쓴 모양이다.
남자는 초인이었다.
그것도 3레벨. 본격적으로 초인으로 대접받는 레벨.
“시청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리무진 안은 편안하고 쾌적했다.
수천만 원짜리 샴페인이 얼음 양동이에 담겨 싸늘한 안개를 흘리고 있었다.
뽕!
개봉해서 맛을 봤다.
상큼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혀를 황홀하게 했다.
‘넥타르보단 별로네.’
넥타르는 진짜 맛있거든.
그 맛을 만끽하기도 전에 마력이 전신을 부술 듯이 내달려서 그렇지.
샴페인 한 모금만 마시고 잔도 병도 내려놓았다.
그런데 잔에 담긴 샴페인 액이 미동도 없다.
리무진에 적용된 마법 서스펜션이 모든 충격을 100% 흡수하고 소멸시키는 것.
펑! 펑!
마법 대포가 예포를 터뜨렸다.
폭죽이 높이 치솟자 길 가던 시민들이 뭔 일인가 싶어 돌아본다.
심지어 군악대까지 동원되었다.
저마다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리고, 성기사들이 모여 일제히 S자형 외날검을 들어 올렸다.
“성흔의 수호자, 바울의 기사, 신격의 친견자, 아시아의 검성께 경례!”
“경례!”
“이집트의 성벽, 아스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짝짝짝짝!
급히 준비한 것치고는 충실하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열렬히 손뼉을 치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얼굴 가득, 두 눈 가득 나에 대한 호기심과 환영의 빛이 차 있었다.
조금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유명해지긴 유명해졌구나.’
서울 테러를 막았을 때는 대한민국 안에서만 알려졌었지.
상파울루에서 망령왕을 잡은 뒤로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간 느낌이다.
하긴 수천만을 살렸잖아.
마마퀼라 교단에서, 포카 소교단에서 열렬하게 선전하기도 했고.
나는 고개를 정중히 숙여 보였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하시니 그야말로 영웅의 풍모입니다. 검성님! 아스완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스완 시장이 날 안으로 잡아끌었다.
시청 연회장.
화려한 음식과 술이 과장 조금 보태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오케스트라 악단이 고혹적인 선율을 일으키고, 그 앞에선 헐벗다시피 한 무희들이 흐느적흐느적 춤을 췄다.
예쁘긴 하네.
내 시선이 잠깐 한 무희에게 머물자, 시장이 옆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원하신다면 체류하시는 동안 시중들게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하나로 부족하시면 저 무희들을 전부…… 아, 혹시 미동도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남자아이들도…….”
“됐다니까요.”
이 작자가 뭔 소리를 하고 있어.
찌릿, 눈빛을 보내자 시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애꿎은 오케스트라 악단에게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거냐! 귀빈께서 오셨는데 그딴 곡이나 연주하고!”
음악이 바뀌었다.
흐물흐물 유혹적이고 고혹적인 느낌에서 웅장하고 경쾌한 행진곡풍으로.
무희들도 다 나가고 악기가 더 들어온다.
풍성하게 귀를 채우는 음악.
나도 남자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억지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여자에 정신 팔 때가 아냐.’
성녀의 독니가 바로 목줄기 앞까지 다가왔다.
하루하루 아니, 1분 1초가 아쉬운 시점.
발이 부러지도록 달릴 생각을 해야지 여자에 눈이 팔려서 헬렐레하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
죽기 싫으면 한눈팔아선 안 돼.
그리고 시장이 호의로 나한테 여자를 안겨 주려고 했겠어?
다 노리는 게 있어서 저러지.
“음악이 멋지네요. 같이 합주해도 될까요?”
“예?”
허락은 필요 없다.
골프백에서 만파식적을 꺼냈다.
[연주][용언][노래] [마력혼][토르 연공법][심호흡]길게 숨을 담는다.
용의 노래를 피리로 불어 낸다.
내 광대하고도 웅혼한 마력이 깊고 깊은 숨결에 담겨 연회장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전문 오케스트라 악단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의 경력을, 실력을 모조리 압살한 만큼.
그러나 그러진 않았다.
그들을 꺾지 않았다.
대신 섞여 들어갈 뿐.
조화롭게, 흐드러지게 어울리면서.
꽃다발에 섞인 한 송이 꽃처럼.
아니, 꽃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꽃다발 색종이처럼.
“허…….”
한바탕 합주가 끝나자 시장이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검성님께서 이리 예술혼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생뚱맞게 피리를 분 이유?
분위기를 내게 가져오기 위해서다.
시장이 준비한 대로 환영 연회 치르고, 지역 유지들 만나고, 술 마면서 친목질도 하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시장님. 사실 제가 여기 온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시장이 묵직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시겠지요. 그 검성께서, 바울의 기사께서 괜히 아스완에 오셨겠습니까? 저도 그 이유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가볍게 손을 휘젓는 시장.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오케스트라 악단도 내외 귀빈도 호위병도 성기사도 싹 사라진, 그래서 나와 시장 둘만 남은 연회장.
방음 방진 결계도 전개되어 완벽한 밀실을 만들어 주었다.
시장이 다 알고 있다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저 물고기 놈들 잡으러 오신 거 아닙니까?”
응?
뭐라고?
아…… 틀린 말은 아니다.
안개 속에 사는 강의 권속.
물고기 인간처럼 생긴 그들.
잡으면 제법 쓸 만한 재료를 내놓는다.
게임에서는 후반 에피소드에 업데이트되어서 별로 쓸모는 없었지만.
“그런 셈이지요.”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었다.
강의 여신에게 핏방울 받으러 간다고 하면 의심할 테니까.
8레벨이잖아. 강의 여신은.
7레벨이 혼자 털래털래 가서 8레벨 보스를 잡는 방법은 없어.
오시리스 교단은 기본적으로 강의 여신과 적대적인 관계니 수상쩍게 생각할 그 어떤 여지도 주지 말아야 한다.
“역시!”
시장이 자기 무릎을 내리쳤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긴 놈들 잡아서 남는 게 많지요. 놈들의 체액을 정화하고 추출하면 넥타르의 재료가 되지 않습니까? 검성님은 빠르게 7레벨이 되셨으니 넥타르가 많이 필요하시겠지요. 놈들의 핵을 모아 정제하면 마법 부여에 쓰기 딱 좋은 마법석이 되고 말입니다.”
“아하. 그게 여기 특산품인 모양이죠?”
“그렇긴 합니다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놈들 레벨이 높아서요. 성기사단이 주둔하고는 있습니다만, 놈들이 공격하는 걸 방어하는 게 고작이지요.”
“토벌은 안 하시고요?”
“몇 번에 한 번씩 국지적으로 하는 게 다입니다. 저놈들, 안개 속에서는 너무 강력해요. 사악한 악신이 가호하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마퀼라 교단처럼 현인신이 계시는 것도 아니고요. 법황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수도 없고…… 삶이자 죽음께서 언젠가 성자님을 내려 주시길 기다려야지요.”
8레벨 성자가 생겨도 힘들걸.
저 안개 속은 강의 여신이 지배하는 권역.
힘이 훨씬 증폭된다.
8레벨 보스 중에서는 성녀와 비슷하게 강력했다고.
특수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공략하기 힘들어.
“위험하겠네요.”
“그렇지요. 하지만 그 망령왕보다 더하겠습니까? 그 망령왕을 단신으로 쓰러뜨린 검성님이라면, 추악한 물고기 인간 몇 마리 잡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몸이 달았네, 달았어.
그럴 수밖에.
내가 강의 권속을 사냥하기만 해도 시장은 크게 이득을 보니까.
그게 다 치적이거든.
만약에 아스완에서 부산물을 판다?
혹은 가공한다?
그럼 아주 대박 나는 거지.
대미궁의 고레벨 악마, 대균열의 고레벨 이계종만큼 가치 있는 게 강의 권속이라고.
사냥 난도는 훨씬 높아서 잘 잡히지도 않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장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안 그래도 물 속성이 좀 필요해서요. 제가 대미궁이나 대균열 대신 굳이 여길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쩐지! 그렇지요! 물 속성 아티팩트를 만들려면 전 세계에서 그놈들 마력핵처럼 좋은 재료가 없지요!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검성님께서 체류하시는 동안 전력으로 보조하겠습니다!”
시장이 자기 양복 앞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이 팔뚝까지 들어간다.
저것도 공간 확장 주머니였네.
이어서 꺼낸 오른손에 작은 손전등이 하나 들려 있었다.
저거다.
내가 시장의 장단을 맞춰 준 이유.
환영식을 단호히 거절하지 않고 따라온 원인.
시장이 내게 손전등을 내밀었다.
“오시리스 교단에서 만든 아티팩트입니다. 손전등 빛이 비치는 범위에 한해서 안개를 무효화시켜 주지요.”
안개 안에서는 내 귀안도 안 먹힌다.
그야말로 신의 권능.
안개 속을 탐사하고 싶다면, 강의 권속과 접촉하고 싶다면 이 손전등이 필수였다.
시장이 양쪽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흉측한 악의 종자들을 모조리 쓸어 주십쇼. 그놈들이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걸핏하면 가뭄이 와서 곡식이 말라 죽고, 홍수가 터져서 집이 쓸려 나갑니다. 그뿐입니까? 안개의 마력에 사로잡혀서 제 발로 호수로 걸어 들어가 죽는 시민도 1년에 수십 명씩 나옵니다. 놈들을 잡을 때마다 코와 귀를 베어 오시면 소소하게 보상금도 드리겠습니다. 한 마리당 백만 달러, 저희의 성의입니다.”
백만 달러?
환율 1,300원으로 계산하면 13억?
소소하기는. 원래 세계에선 거의 로또 1등 수준이잖아.
시체를 빼고도 이 정도.
그만큼 강의 권속이 가지는 의의는 컸다. 아스완 시민들이 강의 권속에 품는 증오도 엄청났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성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죠. 튼튼한 보트 한 대만 내주시겠습니까? 좋은 거 안 주셔도 됩니다. 싸우다 보면 침몰할 수도 있어요.”
“가장 좋은 걸 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쇼. 그깟 보트, 침몰하면 다시 사면 그만입니다. 물고기 놈들이나 많이 잡아 주세요.”
바로 출발.
큼직한 보트에 나 혼자 올랐다.
마법 정령도 인공지능도 없는, 완전 수동 보트.
과과과광!
용기사를 장착하고 달린다.
안개 속으로 접어든 보트.
허옇게 번지는 세상 속, 내가 비추는 손전등 앞쪽에서만 흐릿하게 물결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흐어어어…….] [흐어엉…….] [흐윽, 흐윽, 흐으으…….]귀신 울음소리 같다.
안개에 반사되며 사방에서 메아리쳐 진원지를 알 수도 없다.
다 무시하고 달렸다.
그저 일직선으로.
호수 중심을 향해 쭉쭉.
첨벙!
이제는 물보라 소리까지 들린다.
그것까지 듣고 엔진을 정지시켰다.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호수.
적막이 내려앉았다.
귀곡성도 첨벙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짙은 안개 속에서 시퍼런 불꽃이 하나둘 돋아났다.
안광.
한 쌍씩.
육식동물처럼 그렇게.
수십 개가 물 위에 둥둥 떠서는 날 노려보고 있다.
손전등을 비췄다.
지독히 못생기고 징그럽게 생긴 존재가 비친다.
단순한 물고기 인간이 아니다.
심해 아귀처럼 짓눌리고 뭉개진 얼굴로, 머리카락 대신 뾰족뾰족 흉악한 가시를 잔뜩 매달고, 시퍼런 눈을 굴리며 나를 보는 중이다.
그야말로 악신의 권속.
세상 모든 증오와 분노를 담아 만든 모양새.
“캬아악!”
“키악!”
“키이이잇!”
물고기 인간들이 입을 벌린다.
칠성장어처럼 괴악한 구강이 쫘아악 늘어난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모습.
본능이 내게 속삭이고 있다.
도망가라고.
저 괴물들이 곧 덮쳐 올 거라고.
하지만 나는 도망치는 대신 불꽃을 피웠다.
지고화를.
황금의 화염을.
저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글자를 새기는 것으로.
[Hello]물고기 인간들이 멀뚱히 나를 쳐다본다.
한참이나 대치한 끝에 물고기 인간 하나가 손을 휘저었다.
강물이 치솟아 그림을 그린다.
어설프기만 한 그림.
자세히 보니 그림이 아니었다.
글자였다.
[Hi]구강 구조가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강의 권속.
그들과 대화하는 유일한 방법.
바로 필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