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300)
특성 쌓는 김전사-300화(300/300)
특성 쌓는 김전사 300화 완결
에필로그
[대미궁과 대균열 봉인 5주기를 맞이하여, 드라코 연합과 세라프 성계, 마키나 동맹에서 차원 사절을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수호자 연맹 총재 권왕님께서는 이를 계기로 차원 간 연계가 긴밀해질 것을 강조하셨으며…….] [아쉽게도 이번 기념식에도 검천님은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따악!
장기알이 최고급 장기판에 꽂혔다.
“장군이오!”
경쾌한 목소리.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인상을 팍 썼다.
“이 영감탱이가 회춘하더니 머리만 좋아져서는.”
“흐흐. 그럼 할멈도 반로환동하면 되지. 누가 하지 말래?”
“제자 하나 잘 둬서 반로환동한 주제에 말이 많아.”
“흐흐흐. 아주 기똥찬 놈이지. 기똥찬 놈이야. 인간으로 10레벨이 된 건 최초라며?”
“끙. 그놈은 그때 왜 철원으로 가서. 파주로 왔으면 당장 제자 삼았을 건데.”
“남의 생떼 같은 제자 보고 놈이라니!”
“어휴, 그래. 니 팔뚝 굵다. 이 영감탱이야.”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은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년.
덩치가 컸다.
일부러 길렀는지 사자 수염이 위맹하게 뻗쳐 있었다.
화악!
허공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커다란 새가 나타났다.
전신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불사조.
새 위에 타고 있던 노인이 뛰어내렸다.
칼같이 다린 정장, 황금용 장식 지팡이가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어, 왔냐?”
“여긴 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찾아왔어?”
장기 두던 청년 소녀가 타박질하듯 인사했다.
그러자 노인이 깊숙이 허리를 굽힌다.
“두 분께서 은퇴하시고 적적하실까 봐 찾아왔지요. 허 참, 그런데…….”
노인이 장기판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요즘 재밌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장기 두고 계십니까? 제가 이번에 새로 만든 장난감이라도 가져올까요?”
“됐어!”
“이거 그놈이 만들어 준 거야.”
“그놈이라면…….”
“검천 말이야! 이 영감탱이 제자!”
“치매에 좋다고 직접 자단목을 깎아서 만들었다는데, 그 성의를 봐서라도 해 줘야지. 안 그래?”
제자.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노인의 허리가 더욱 깊이 내려갔다.
“어이쿠! 미처 그런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장기 두셔야지요! 암요!”
“쯧쯧. 나이 망백이 넘은 놈이 저리 경망스러워서야.”
“마법사들이 다 그렇지 뭘.”
“영감탱이야! 마법사 혐오 좀 그만해!”
“그래서 여긴 왜 왔어?”
“왜 오기는요. 좋은 술이 들어와서 말입니다.”
노인이 길쭉한 수정병을 꺼내 마개를 땄다.
뽕!
상큼한 딸기향 사과향 배향 포도향이 산뜻하게 퍼졌다.
청년이 코를 벌름거렸다.
“엘프주? 엘프주 맞지?”
“예. 세계수 수액으로 만든 최고급품입니다.”
“허! 이걸 어디서 났어? 돌연변이 놈들 깍쟁이라 죽어도 수액 못 내놓겠다고 하던데.”
“흐흐흐.”
노인이 음충맞게 웃었다.
“알프 대륙에서 사 왔지요!”
“차원문을 넘어갔다 왔다고?”
“그럼요. 제가 한 인맥 하지 않습니까.”
“그 인맥 내 인맥이랑 겹치는 거 알지?”
“알죠, 알죠. 그러니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온 거 아니겠습니까.”
장기판을 치우고 술판을 벌인다.
밝혀진 차원계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알프 대륙의 엘프주.
안주가 없어도 좋았다.
금방 셋의 얼굴이 불콰하니 달아올랐다.
“참, 그거 들으셨습니까?”
“뭘?”
“성 회장 독신 선언했답니다.”
“쯧…….”
청년이 입맛을 다셨다.
“적당히 허우대 멀쩡한 놈 하나 잡아서 살지. 성 회장은 욕심을 너무 부렸어.”
“그래도 성 회장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도깨비들 덕에 재계 1위까지 찍었는데요.”
“괜찮지! 아주 괜찮지! 그런데 내 제자 놈이 워낙 잘났어야 말이야. 그런 주제에 순진한 구석이 있어. 진실한 사랑이라니,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어?”
“있어.”
소녀가 과거를 추억하는 얼굴로 말했다.
“분명히 있다고.”
“그야 세상 물정 모르던 때 이야기지. 그땐 할멈도 초인이 아니었잖아. 이젠 초능력 때문에 상대방 속이 훤히 보이는데, 순수하게 사랑을 할 수나 있나?”
“영감탱이가 닳고 닳아서 그래. 쯧, 검천 그놈도 좋은 것만 배우지 나쁜 것까지 다 배웠구먼.”
“하하하.”
노인이 한 번 웃고는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검천님은 결혼 안 하시겠답니까?”
“하려고만 하면 삼처 사첩, 아니 백처 천첩을 두고도 남지. 그런데 요즘도 순수하게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하겠대. 여자 만날 생각도 없어 보이더라고.”
“너무 강해지셔서 그럽니다.”
“그놈이 정신 계열 초능력자보다 독심술에 능하잖아. 뭐가 목적인지 다 보이는데, 적당히 만나고 끝낼 거 아니면 시작도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꽈르릉! 꽈르릉!
한참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이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새카맣게 피어오르며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번뜩이는 번개.
청년이 설마 하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날씨가 갑자기 왜 이래? 설마 그놈이 또 오나?”
번쩍!
벼락이 내리꽂혔다.
거기서 커다란 체구의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동생아! 형님 왔다!”
“아이고!”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개코를 달았소? 아니, 무슨 술만 마시면 바로 쳐들어와.”
“흐흐흐! 그 좋은 술을 동생들끼리만 마시면 쓰나? 이 형님한테 재깍재깍 보고해야지!”
“일없소. 아스가르드 가서 넥타르나 마시쇼.”
“정 없기는. 자, 어서 한 잔 가득 따라 보니라. 어? 자네는 주름살이 더 늘었네?”
“가장 위대하신 번개를 뵙습니다.”
노인이 정중히 인사하자 중년 남자는 머리만 벅벅 긁었다.
“아, 됐어! 됐으니까 앉아! 난 이런 거 싫어해!”
“그래도 신과 인간의 차이가…….”
“지금이 중세야? 신보다 더 센 인간이 있는데 신과 인간의 차이는 무슨. 술이나 퍼먹어. 아 참! 돌멩이 놈이랑 땅 할매도 곧 올 거다.”
“예? 헉!”
공중에 흑요석이 돋았다.
그런가 하면 땅이 융기하여 사람을 만든다.
금세 도착한 둘.
라틴 인종 남자와 키가 껑충한 남유럽 미녀.
미녀가 눈을 감고 깊이 향을 들이마셨다.
“엘프주…… 라그나로크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세계수 수액 엘프주는 다시는 못 마실 줄 알았는데.”
“이게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후후후, 그렇답니다. 화산의 어린 신이여. 어디, 우리도 한번 맛을 볼까요?”
미녀가 노인을 지그시 주시했다.
노인이 찔끔해서는 술병을 몇 개 더 꺼냈다.
하지만 조금 아까웠는지, 살짝 구시렁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세 분께서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화신 조작해서 돌아다니는 재미가 좋으신 모양입니다.”
“하핫. 그럼요.”
라틴 인종 남자가 쾌활하게 웃어 보였다.
“다 검천님 덕분이죠. 화신체를 제작해 주신 덕분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잖아요? 차원문 넘어서 다른 차원계도 가 보고 말이죠.”
“으하핫!”
번개에서 나타났던 중년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아나? 드라코 연합에서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다네!”
“용병이요? 아니, 아스가르드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본체는 당연히 아스가르드에 박혀 있지! 아사 신족 중에 남은 건 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용병질하면서 전쟁질하니까 좀 살 것 같아! 검천 그 인간이 내 은인이라니까!”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끄응. 어떻게든 처음 봤을 때 내 전사장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미녀가 소담하게 웃었다.
“그게 되겠습니까? 무리하지 않아서 다행이지요. 가장 위대한 번개, 그대의 뜻을 강요했다면 지금쯤 옛 아버지나 오시리스 신세가 됐을 겁니다.”
“그랬겠지? 흐!”
중년 남자가 술을 벌컥벌컥 퍼마셨다.
그걸 보던 소녀가 미녀를 보며 묻는다.
“가장 무거우신 어머니께서도 바쁘시지 않나요? 오시리스 교단을 흡수하고 아프리카를 안정시키느라 사제단이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거요.”
미녀가 침착한 얼굴로 엘프주를 홀짝였다.
“페르세포네를 독립시킬 생각이에요.”
“아, 저승의 여왕님…….”
“오시리스는 생명과 죽음의 신격이었죠. 페르세포네라면 잘할 거예요. 오시리스에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황금 사도가 도와줄 거고요.”
황금 사도.
소녀는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종의 이유로 용신 라돈이 유폐되고, 새롭게 출현한 가이아 교단의 사도.
생명의 힘을 가진 그자라면 페르세포네와 손을 맞춰서 오시리스 교단을 잡아먹고도 남는다.
“포옹하는 강께서 나일 강에 가셨으면 좋았겠습니다만.”
“내 제자가 좋다고 양쯔 강에 아예 정착한 걸 어떻게 해? 사실 우리한텐 그게 더 좋지.”
“그건 그래.”
“군단장님들께서도 무릉도원에 가 보셨지요?”
노인의 물음에 청년과 소녀가 한꺼번에 머리를 끄덕였다.
“암! 가 봤지!”
“잘 만들었던데.”
중년 남자도 동의했다.
“신격 둘이 합심한 보람이 있어. 나도 심심하면 놀러 가서 샘물주 마시고 온다니까? 그 누구냐, 거수곰? 그놈이랑 씨름도 한판하고.”
“샘물주 파수꾼이 순순히 내어 줍니까? 제가 가도 마지못해서 한 잔 주고 말던데.”
“동생은 공짜로 받아 마시니까 그렇지. 난 넥타르 한 병 주고 한 모금 마셔.”
“크, 그거 폭리네요. 과연 해골뱀, 샘물주 파수꾼답습니다.”
미녀는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기색.
“그래도 신들이 장사를 한다니요. 이거야말로 말세 아닙니까.”
라틴 인종 남자가 타박을 했다.
“가장 무거우신 어머니. 요즘엔 그렇게 말씀하시면 틀딱 소리 듣습니다. 신이 용병 뛰고 신이 테마파크 운영하는 시대예요. 저도 기업 하나 차린 거 모르시죠?”
“타오르는 연기께서 기업을 차리셨다고요?”
“네. 차원 무역 회사예요. 드라코 연합 용신이랑 세라프 성계 천신, 마키나 동맹 기계신과 직접 협정을 맺었죠.”
“세상에…….”
미녀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검천을 처음 봤을 때부터 세계가 급변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땅 할매. 신이라고 섬김만 받는 시대는 지났어. 요즘엔 그냥 좀 센 놈 1이라니까? 그게 싫으면 뭐, 승천해서 신계 가야지.”
“적응이 안 되네요.”
술병이 비워지는 만큼 하늘은 석양으로 차오른다.
유라시아 동쪽에서는 술판이 벌어지는 이때.
그 반대편, 서쪽에서는 출정식이 한창 치러지고 있었다.
연단에는 양팔이 다 의수인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며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마도과학 레이저가 허공에 홀로그램을 그린다.
거대한 불사조.
인간들이 진형을 짜 공격하는 모습을.
“3년 전! 우리는 신수 불사조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오오!”
“와아아!”
“비록 검천 이사님께서 함께하셨지만, 또한 태양 마탑주님과 많은 초인분들께서 함께하셨지만, 그 주축이 우리 사냥꾼 협회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냥꾼 협회 만세!”
“그리고 오늘, 저는 우리 협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또 한 번의 신수 사냥을 제안합니다!”
남자가 열정적으로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홀로그램이 변화하며 새로운 신수를 출력한다.
불사조 보다 두 배는 큰 신수.
어떻게 보면 거대한 뱀 같지만 입에 문 여의주와 사슴뿔, 메기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용.
드래곤이 아닌 동방의 용.
그중에서도 황룡.
서식하는 중국은 물론 세계 전체를 뜯어봐도 최고 레벨 신수.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남자가 상체를 내밀며 말했다.
“우리끼리는 힘들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어 열정적으로 연단 한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래서 모셔왔습니다! 저 천산 산맥의 대종주, 위대한 전사들의 고향, 인류의 영원한 성지! 천마신교에서 오신 전대 무림맹주 신군님과 전대 수호자 연맹 총재 혈왕님이십니다!”
“헉!”
“신군님이랑 혈왕님이시라고?”
“우아아아!”
“신군님! 여길 봐 주세요!”
“혈왕님이시다!”
두 남자가 나란히 일어섰다.
호리호리한 신군.
곰 같은 체구의 혈왕.
여전히 8레벨이지만 강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경험이 있으니까.
불사조도 잡고, 남극신도 잡고…….
비록 핵심이었던 검천은 없지만, 오늘 참여하는 면면으로도 황룡은 잡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황룡 사냥에 참여하게 되어…….”
신군이 창창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여성 엘프가 슬쩍 하품했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지루한 걸 하는 거야? 대충 마법 폭죽 몇 번 터뜨리고 출발하면 되지. 중국까지 가야 한다며.”
“하하하.”
옆에 앉아 있던 노르드 여전사가 웃었다.
“그래야 투자를 받지.”
“응? 투자?”
“어. 알잖아? 신수 사냥에 돈 많이 드는 거.”
“알지.”
“이런 거 하면서 사진도 좀 찍고 연설한 다음에 박수도 치고 해 줘야 정치인들이랑 부자 노친네들이 이것저것 지원을 해 준다구. 다 필요해서 하는 거야.”
“저 인간 돈 많지 않아?”
“돈은 많지. 하지만 황룡 잡을 정도는 아냐. 그리고 저 인간은 금배지 달아 보겠다고 저러는 거라서.”
“금배지?”
“국회의원 말이야. 국회의원.”
“7레벨 달면 그 정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텐데.”
“강화병들이 다 그렇지 뭐. 우리 형제 말로는 예전엔 안 저랬다는데, 요즘엔 사람이 바뀌었다나 봐.”
“권왕은 안 그러잖아.”
“그 사람은 우리 형제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좋은 영향을 받은 거지.”
“엄마!”
금발 꼬마가 타타탓 달려왔다.
“볼숭이 또 싸워!”
“또? 요 녀석을 그냥! 아빠는 뭐 하고?”
“아빠는 술 마셔!”
“이 인간이 또!”
노르드 여전사가 몸을 일으켰다.
여성 엘프는 쓰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 대 때려 주고 와. 효르디스.”
“그래야겠어! 아니, 아예 뼈를 분질러 놔야겠어! 이 인간이 간경화까지 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닌다니까! 7레벨 전사가 간경화 걸린다는 게 말이 돼?”
“하하하.”
여성 엘프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자신도 면역 억제제를 달고 사는 신세라서.
‘그래도 요즘엔 한 달에 1번씩만 먹으면 되니까…….’
정말로 세상 좋아졌다.
이게 다 그분 덕분이지.
북극제로부터 오빠와 친구들을 구해 주고, 빙궁을 재건해 주신 그분.
가만히 추억에 잠겨 있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 이거 한몫 단단히 잡겠어.”
“성공해야지. 성공해야 이득 보지.”
“8레벨 초인이 이렇게 참전하고, 드라코 연합에서 들여온 용아 골렘에 세라프 성계의 세계석, 마키나 동맹 특산 최첨단 무기를 이렇게 쓰는 데 실패한다고? 그럴 리가 없지.”
“돈을 엄청 썼나 보네. 그렇게 많이 쓰면 오히려 적자 아니야?”
“아니지. 황룡 같은 신수는 다른 차원계에서도 희귀하다고. 차원계 귀족이나 왕족한테 팔면 완전 대박이야.”
“흐, 우리 고물상님 차원 상사 차리더니 얼굴에 부티가 자르르 흐르네, 흘러.”
“요즘엔 경쟁자가 늘어서 이 짓도 힘들어. 젠장, 신격이 직접 무역 회사 차리는 건 반칙이잖아.”
“아, 브라질 그분? 고생하라고.”
“내가 고생하면 니들도 손해야!”
“흐흐흐. 우리 위대하신 김춘복 사장님께서 잘하시겠지.”
몇 번 얼굴 봤던 자들이다.
콜로세움 파티라고 했나?
초인 넷이 부유해 보이는 뚱땡이 한 명과 시시덕거리는 중이었다.
4명 다 7레벨.
여성 엘프는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저 넷은 하도 혈향이 강해, 본능적인 꺼림칙함이 느껴졌던 것.
‘그분은 뭘 하고 계실까…….’
사냥꾼 협회가 황룡 사냥을 선언하던 시점.
태평양 어느 한 섬에서는 한참 고기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엿차!”
특수 기름을 끼얹자 황금색 불길이 치솟았다.
법황복에 법황관을 쓴 남자가 싱글거리며 웃었다.
“지고화를 고기 굽는 데 쓰다니, 형이 알면 화내지 않을까요?”
고기 굽던 적발 남자가 피식거렸다.
“이거 누구한테 배웠을 것 같아?”
“어…… 전사 형한테요?”
“딩동댕! 맞아. 주군께서는 아예 무극신화로 고기 구워서 드시더라. 저번에는 절대빙점 써서 팥빙수 만들어 드시던데?”
“아하하…….”
법황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 옆, 쌍권총 찬 남자가 적발 남자를 보며 묻는다.
“형은 완전히 안정된 거죠?”
“응? 나?”
적발 남자가 팔을 크게 돌려 보곤 대답했다.
“이프리트 조합이 확실히 좋더라고. 고생은 했지만, 주군께서 도와주셔서 잘 적응했지.”
“이젠 아예 주군이라고 부르시네요.”
“흐흐. 주군께서 져 주신 거지.”
“근데 쌍팔년도 조폭 느낌이에요.”
“뭐? 이 녀석이!”
적발 남자가 황금색 불꽃을 뿜어냈다.
하지만 쌍권총 남자는 불을 뒤집어쓰고도 웃을 뿐이다.
“저 화염 면역인 거 몰라요?”
“어 그래 잘났다. 잘 났어. 검천보안 대표님 나으리.”
“하하, 네. 전임 검천보안 대표님 나으리. 아니면 총재님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권왕님?”
“권왕은 무슨…… 쪽 팔린다. 옛날처럼 불러.”
“알았어요. 철권 형.”
쌍권총 남자도 고기 굽는 걸 거들었다.
소도 굽고 돼지도 굽고 닭도 굽고 랍스터에 새우와 전복도 굽고.
법황 남자는 칼칼하게 김치찌개를 끓였다.
셋 다 지고화를 공유하고 있어 화력 조절은 쉬웠다.
[고기!]섬 구석에서 자고 있던 드래곤이 달려왔다.
몸길이만 수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
적발 남자가 질색하며 드래곤을 보았다.
“야! 너는 왜 또 이렇게 쪘어?”
[고기!]“너 또 고기라고 했지?”
[고기이!]“알았다, 알았어. 참나, 너처럼 살찐 드래곤은 처음 본다. 하늘 날 수는 있냐?”
적발 남자가 잘 구운 돼지고기를 던져 주었다.
레드 드래곤이 그걸 깨물었다가 퉤 뱉어 버린다.
[소고기! 소! 소오오!]“나 용언 모르는데 왜 저놈 말은 알아들을 것 같냐?”
“저도 알아들었어요.”
“저도.”
“흐, 주군이 안 데리고 나가시니까 저놈 저거 아주 살판이 났네.”
“나이 많아서 오래 못 산다고 하잖아요. 맛있는 거라도 많이 먹으라고 해요.”
“그래도 우리보단 오래 살걸. 근데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슈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행차가 날아와 착륙했다.
거기서 부리나케 내리는 통통한 남자.
“이봐! 철권이! 나 늦은 거 아니지?”
“딱 맞게 도착했어.”
“검천님은?”
“안에서 쉬고 계시지. 바쁘신 모양이야. 다 오면 부르라고 하셨어.”
“휴, 안 늦어서 다행이네. 레드도 안녕?”
[소고기 내놔!]“선수 형! 오랜만이에요!”
“사제야, 오랜만이다.”
“형. 나한테는 인사 안 해?”
“넌 인마 어제도 봤잖아.”
통통한 남자가 구운 소시지를 집어 먹었다.
소시지를 굽던 쌍권총 남자가 질색하며 노려본다.
“형! 전사 형이 먼저 먹어야 된다고!”
“맛만 봤어, 맛만.”
“아, 진짜!”
“먹을 거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라. 짠! 내가 뭘 가져왔게?”
통통한 남자가 클러치백을 탈탈 털었다.
그러자 거기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고기들.
법황복 남자가 침을 삼켰다.
“이거 용고기 아냐?”
“정확해! 드라코 연합 특산 식용 용고기다. 최고급품이라고.”
“거기도 참 이상해. 왜 같은 용들끼리 서로 잡아먹지?”
“종이 다르다고 하잖냐. 식용 용은 용보다는 악어에 더 가깝다는데?”
“악어? 우웩!”
“왜 그래. 악어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하여튼 이것도 같이 굽자고.”
“예, 예, 회장님.”
“회장은 무슨. 바지 회장이지.”
“어차피 전사 형은 회사에 신경 별로 안 쓰잖아.”
“확실히.”
“선수 형이 실질적으로 넘버원이지 뭐.”
용고기만 가져온 것도 아니다.
최고급 엘프주에 세계수 열매, 황금 밀면 따위를 화수분처럼 꺼내고 있었다.
그걸 또 요리하고 조리하는 사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속속 도착한다.
지이이잉.
공간이 검에 베인 것처럼 갈라졌다.
모습을 드러내는 전신 강철 중갑 여기사.
번쩍!
반대편에서는 혈광이 세상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키 작은 인도 혼혈 여전사가 걸어 나온다.
여전사와 여기사의 눈이 마주쳤다.
꽈르릉!
불문곡직 내지르는 일검!
칠흑 장검과 핏빛 곡도가 부딪쳐 굉음을 터뜨렸다.
충격파가 섬 전체를 뒤집을 듯이 덮쳐 오지만, 그 전에 먼저 폭발을 제압하는 검이 있었다.
맥점을 짚어 힘 자체를 흐트러뜨리는 일본도.
요도 마사무네의 주인이 여기사와 여전사를 보며 타박했다.
“야. 니네 대련할 거면 다른 차원계 가서 해. 니들 진심으로 싸우면 나라 하나 날아가는 거 몰라?”
“가볍게 인사한 거야.”
“오랜만에 봤잖아.”
“아주 한마디도 안 진다? 어휴, 우리 선생님은 쟤들을 왜 저렇게 키우신 거야. 검법만 가르치고 인성 교육은 안 하니까 애들이 이 모양이지.”
“사실 언니한테 가장 많이 배웠…….”
“조용히 해!”
마사무네의 주인, 여검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여기사와 여전사가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한 명은 복수의 여신.
다른 한 명은 살육의 여신.
전 세계를 돌며 인체 실험하는 자들을 싹 죽이고, 선 넘은 지배자들을 쳐 죽인 그들도 여검사는 무서웠던 것.
“으아앙!”
“응응, 그래, 엄마가 미안해. 응응.”
품에 안은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돌이나 됐을 남자아이.
하지만 안고 흔들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도리어 더 악을 쓰며 울기 시작.
여검사 옆에 있던 정장 입은 남자가 보다못해 아이를 빼앗았다.
“내가 달랠게. 쭈쭈쭈쭈.”
아이를 안고 괴상한 표정을 짓는다.
입도 삐죽이고 이마도 찡그리고 혀를 내밀고.
“에헤헤!”
아이가 금방 울음을 그쳤다.
이내 방긋방긋 웃기 시작하자 여기사와 여전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천사가 따로 없네!”
“근데 언니가 달래면 왜 계속 울어?”
“언니가 제대로 달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우진 오빠 아니었으면 큰일 났다니깐. 진짜.”
“우진 오빠씩이나 되니까 참고 살아 주는 거지. 우진 오빠 아니었으면 소린 언니는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을걸.”
“야! 니네들 진짜!”
“아하하하!”
여전사가 웃음소리와 함께 도망쳤다.
속도만 따지면 여기 있는 넷 중 최고인 여전사.
여기사는 어어하다가 여검사한테 귀를 잡혔다.
“언니!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이년아!”
“아프다니까!”
“9레벨이나 된 년이 뭐가 아프다고 그래? 너 오늘 어디 한번 죽어 봐라.”
“현우가 보고 있잖아!”
“겨우 돌밖에 안 된 애가 보긴 뭘 봐? 에잇!”
“아악! 진짜 아파!”
정장 입은 남자가 머리를 흔들었다.
“에휴.”
소녀 같아서 좋긴 한데, 가끔은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다.
아이를 안고 고기 굽던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총재님. 대표님. 법황님.”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신혼이니 깨가 쏟아지십니다.”
“그게요, 재미는 있는데 가끔 머리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잘 지내시니 다행입니다. 두 분이 잘 어울려요.”
“9레벨 부부라니요. 그야말로 지구 최고 커플 아닙니까?”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장 남자가 섬 한쪽, 별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선생님께서는요?”
“쉬고 계십니다. 모셔 올까요? 다 모이셨는데요.”
“그러시죠. 그래야 조용해질 것 같습니다.”
아웅다웅하는 여검사와 여기사를 보며 말하자, 통통한 남자가 잽싸게 달려나갔다.
“조금만 기다리십쇼! 바로 모셔 오겠습니다!”
“직접 안 가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초거대 다국적 기업의 회장이면서 자질구레한 일을 직접 처리하는 장면.
하지만 기분 나쁜 기색 따윈 없다.
달려가는 얼굴에 기쁨만 가득했다.
적발 남자가 다 구운 고기를 갈무리하며 중얼거렸다.
“최 회장은 진짜 사람 많이 바뀌었어.”
“그렇습니까?”
“예. 처음 알고 지냈을 땐 동네 양아치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인간들 등쳐 먹으면서 살았죠.”
“그러다 선생님 만나면서 바뀌셨다고요.”
“예. 처음에는 돈이나 벌려고 접근했다가 주군께서 목숨 걸고 살려 준 게 계기가 된 모양입니다. 사업만 벌이면 전권을 맡겨 준 것도 컸고요.”
“남자는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최 회장이 바뀐 것만큼이나 저도 많이 변했으니까요. 뒷골목에서 보호비나 뜯던 양아치 깡패 새끼가 수호자 연맹 총재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하.”
정장 남자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는 둘을, 법황복 남자와 쌍권총 남자가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검천님! 검천님!”
통통한 남자가 별장 밖에 서서 외쳤다.
“모두 도착하셨습니다!”
[그래요?]정신파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지금 나가겠습니다.]“예!”
별장 안.
정확히는 별장 내부 부지에 펼쳐진 새하얀 백사장.
선베드 위에 누워 있던 남자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무슨 날이오? 제자들과 측근들이 다 모였구려.]수염을 구불구불 기르고 높다란 마법사 모자를 쓴 노인.
사람 손바닥 크기의 환영이 나타나 말을 붙였다.
[멀린. 그것도 몰라?]일곱 쌍의 날개에 두 쌍 후광을 두른 천사.
마찬가지로 작은 환영으로 노인에게 면박을 주었다.
[오늘이 5월 30일이잖아.] [그게 뭐?] [나이 먹더니 치매라도 걸렸어? 오늘이 그날이야. 성녀의 소환 의식이 발동한 날!] [아, 오늘이 그날이었어?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지? 10년 전이구나!] [이제야 기억났어? 쯧쯧, 천재 마법사 내 친구 멀린은 어디 가고 치매 노인만 남았나 몰라.] [이거 왜 이래! 지브릴, 너랑 나 동갑이야! 동갑!] [하지만 나는 신의 축복 덕에 완전 쌩쌩하지! 난 아직도 20대라구!] [피차 육체도 없이 정신체만 남았는데 20대는 무슨.]노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천사가 남자 뒤로 비잉 돌아간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차라리 이 세상 가상현실 게임 같은 거 하지. 저번에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도 나왔다며.]“저랑은 코드가 좀 안 맞습니다.”
[너무 잔인하다고 그랬나? 네가 너무 물렁한 세상에서 살아서 그래.]“그냥 이 게임이 가장 재미있어요.”
[내가 만들었지만 이해 안 되네.] [네가 만들었냐? 내가 만들었지! 넌 인마 차원만 연결했잖아!] [나한테 검수받은 건 기억 안 나?] [어, 그래서 기여 1%쯤 했냐?] [이게! 어차피 내가 차원 연결 안 했으면 지구가 이미 멸망했을 거야!] [그렇게 따지면 내가 이 차원 단말기를 안 만들었으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똑같아!] [이 주름살 백만 개 할아방구가!] [이 늙지도 못한 괴물 할망구가!]“하하하.”
남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 좀 싸우세요.”
[큼, 큼, 못 볼 꼴을 보였구려.] [그래도 재미있었지?]“젊게 사시니까 보기 좋습니다.”
[거봐. 재밌었다잖아.] [휴우, 지브릴…….]노인이 고개를 젓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천사가 날개를 펼쳐 황급히 쫓아갔다.
[어? 같이 가!]언제 봐도 사이좋은 둘이다.
남자는 한 번 웃고는 발을 옮겼다.
사락. 사라락.
신발이 모래를 스치며 묘한 소리를 냈다.
남자가 떠난 선베드 위.
투명한 물체가 둥둥 떠 있었다.
오로지 남자만 볼 수 있는, 또 남자만 조작할 수 있는.
태블릿 PC를 닮은 차원 단말기가.
웅. 웅. 웅.
간헐적으로 진동하는 차원 단말기.
인터넷 화면에 댓글이 주르륵 올라가는 중이다.
[엑스(EX) 김전사 실화냐?] [ㅋㅋㅋ] [과금러 절단기가 또 한 건 했네.] [무1이 어서 오고.] [무1이 뭐임?] [무과금 랭킹 1위.] [무과금으로 랭킹 1위라고? 그게 가능함?] [엑스 김전사만 있으면 쌉가능.]그리고 게임 화면.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로그 몇 줄만 남아 아른거렸다.
[철갑지존] 젭알 자비 좀. 다른 캐릭터 없음? [무과금다죽는다] 그럼 자동으로 돌릴게. [무과금다죽는다 님 WIN!] [무과금다죽는다] ㅈㅈ [철갑지존] 이이익! [철갑지존] 김전사 좆망겜! 으아아!절전 모드로 들어가 암전되는 차원 단말기.
반면 섬 반대쪽은 마법등이 환하게 점등된다.
“까르르!”
“서현우라고 했지? 많이 컸다.”
“그럼요! 벌써 돌이에요!”
“축하한다. 축복이라도 해 줄까?”
“정말요? 저희야 감사하죠!”
밤이 찾아왔지만 세상은 어둡지 않았다.
지상에서 빛나는 마법등.
그리고 까르르 웃는 돌잡이 아가 덕분이겠지.
가슴을 간지럽히는 이 몽실몽실한 감각.
김전사도 검을 내려놓고 고요히 미소 지었다.
<특성 쌓는 김전사 완결>
–작가 후기–
특성 쌓는 김전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10번도 넘게 후기를 썼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감회가 새롭습니다.
문피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과분하게 독자분들의 사랑을 받은 까닭입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한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김전사처럼 아케인펑크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쉬운 장르는 아닌 만큼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작하려고 합니다.
봄이 눈앞에 왔지만, 아직도 날씨는 춥고 겨울바람은 차갑습니다. 독자분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아무쪼록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남태평양에서 건너온 콜레라 걸린 산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