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31)
특성 쌓는 김전사-31화(31/300)
암흑 시장 -1-
암흑 시장
신원 시장.
신림역 근처, 도림천을 따라 설치된 시장이다.
원래 세계에서 재래시장은 대형 마트에 밀려 힘을 잃어가는 형국이었다.
이 세상에서는 달랐다.
재래시장에는 대형 마트에 없는 것이 있으니까.
“어휴. 여기도 예전 같지 않아.”
“물건들 상태가 왜 이래?”
“내 단골 가게도 문 닫았어. 당분간 안 나온다네.”
“개 같은 깡패놈들. 싸울 거면 지들 구역에서 싸우지 왜 시장에서 지랄이야?”
자정이 넘은 시간.
시장은 불이 꺼져 있다.
지붕 없이 노출된 거리, 다닥다닥 달라붙은 점포에선 퀴퀴한 냄새마저 풍겼다.
그 점포들 사이로 사람들이 사라졌다가 밖으로 뿅 하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내가 들은 말도 막 밖으로 나오던 사람들이 투덜거린 거였다.
‘예전 같지 않다고? 깡패놈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며칠 전 내가 단검파를 무너뜨린 것 때문에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 모양.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쯤이면 철권파가 신림동은 다 먹었어야 정상 아냐?
일단 들어가 보자.
출입구는 점포와 점포 사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지 형광등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거린다.
또 한쪽 벽면에는 역겨운 토사물이 쌓여 있고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심각하네.’
길고 좁은 복도를 따라 내려간다.
사람 둘이 간신히 교차해서 내려갈 정도로 좁은 통로.
거의 3개 층을 내려간 다음에야 지하 시장에 도착.
“싸요! 싸요! 단숨에 뿅 가는 최고급 마력 담배가 단돈 3만 원!”
“의체 재료 삽니다! 의체 재료 사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전설의 무공 비급, 신화 속 마법서를 팝니다!”
“거 삼재검법을 전설의 무공 비급이라고 광고하는 건 사기 아뇨?”
“무협 소설에 필수로 나오는 게 전설의 무공 비급 아니면 뭡니까?”
“사기꾼 새끼!”
나는 입구에 서서 지하 시장을 한 번 쭈욱 둘러보았다.
뿌옇게 흔들리는 형광등.
현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입간판.
술 먹고 고함을 지르는 아저씨.
마약에 취해 흐드러지게 몸을 흔드는 매춘부.
올올이 퍼져 나오는 청록색 마약 연기.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잡동사니.
안쪽에 숨겨놓은 보물을 내오며 음흉하게 웃는 사장.
음험한 눈빛과 함께 은밀하게 주고받는 돈다발.
마약, 독물, 총기, 폭탄, 무술서, 불법 의체, 마법 물품, 불경한 성물 등등 없는 게 없는 곳.
신림동 최대 규모의 암흑 시장.
‘내가 가야 할 곳이······’
김춘복 고물상.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게임에서는 갈 수 있는 상점을 메뉴 형식으로 늘어놓은 게 다였거든.
아무래도 좋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구경하도록 하자.
‘문 닫은 데가 많긴 많네.’
신원 시장은 암흑 시장이 원 시장보다 더 크다.
규모로 따지면 3배 정도.
천천히 구경하면 10분이 아니라 30분은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많은 점포 중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아 놓았다.
점포 전체를 천막으로 꽁꽁 싸매고, 청테이프와 마법 봉인으로 감아 열지 못하게 한 것.
닫은 점포마다 이런 문구를 걸어놓았다.
[시장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휴업합니다.]나 말고 시장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욕설을 내뱉었다.
“진짜 언제까지 이럴 거야?”
“짭새들은 뭘 하는지······”
“뭔 개소리야. 짭새들 얽히면 더 골치 아파지는 거 몰라?”
“그래도 돈 받아 처먹은 값은 해야지.”
“어쩌겠어? 철권파 놈들이 해결하든, 독약파나 나체파 놈들이 알 박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어휴, 병신 같은 놈들.”
독약파는 금천구 독산동을 지배하는 갱단이고, 나체파는 관악구 봉천동을 지배하는 갱단이다.
신림동 기준 바로 양 옆.
철권파가 생각보다 일을 못 한 모양이다.
신원 시장은 단검파 사업장에서도 알짜배기인데 단숨에 못 먹어치우고 다른 갱단이 비집고 들어오게 한 걸 보면.
‘설마 그 고물상도 문 닫은 거 아냐?’
불길한 느낌에 발걸음을 빨리 했다.
약 10분 뒤 내 걱정이 현실화되었다.
시장 구석에 위치한 [김춘복 고물상] 입간판.
점포가 비닐 천막에 싸인 채 꽁꽁 봉인되어 있었다.
“아 진짜.”
정말이지 욕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김철권 뭐해!
응? 뭐하냐고!
경쟁 갱단을 치워줬으면 인마, 시장쯤은 간단히 잡아먹어서 잘 운영되게 해야 할 거 아냐!
일은 이미 벌어졌고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상점이 문 닫았으면 상점주인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
마침 옆에 점포는 멀쩡히 운영 중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물담배를 뻐끔뻐끔 마시는 주인장 눈깔이 썩은 동태 같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요즘 물건 좀 어떻습니까?”
주인장이 흐릿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물담배 상점인지 물담배 물품들이 가득하······
아니, 취소, 취소다.
여긴 마약상이다.
물담배 형태 마약은 물론 담배, 주사, 껌, 과자, 사탕, 좌약, 화장품, 연고, 립스틱, 향, 패치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마약이 모여 있었다.
“어떻기는. 손님도 없고 죽겠어. 깡패 새끼들이 허구한날 치고 받으니 손님이 올 턱이 있나.”
퉁명스럽게 말하는 주인장.
“여기 철권파 영역 아니었습니까?”
“하! 철권파는 무슨. 단검파 넘버투가 먹고 있던 곳이었지. 그치가 약삭빠르고 경찰이랑 구청에 기름칠도 잘해서 모두 좋아했지. 보호비도 조금만 받았거든.”
“아······ 그, 눈 하나 의체 박으신 분 말이죠?”
“잘 아네?”
암. 잘 알지.
그놈이 나한테 로켓탄을 선물로 줬잖아.
“그 인간도 이번에 단검파 작살 나면서 같이 작살 났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철권파가 여기 먹을 줄 알았는데 병신들이, 여긴 안 들어오고 빈민가 쪽 사업장에만 신경을 쓴 거지.”
“거긴 머리 쓰는 사람이 없나 봅니다.”
“내 말이. 며칠 지나니까 철권파에서도 사람을 보내긴 했는데 이미 늦었어. 옆 동네 독약파랑 나체파에서도 사람이 왔거든. 그것도 유명한 놈들이 왔어.”
“유명한 놈들요?”
“어. 둘 다 넘버투를 보냈더라고.”
독약파랑 나체파 서열 2위면 2레벨 초인이다.
철권파는 보스인 김철권이 직접 오지 않는 한은 상대하기 어렵지.
김철권 혼자 2레벨, 나머지는 1레벨밖에 안 되거든.
그나마 세 명밖에 없고.
‘원래는 김철권이 배신당해서 1레벨로 떨어지는 스토리였지.’
돌아가는 상황은 알겠다.
나는 닫힌 김춘복 고물상을 한 번 보고는 주인장에게 물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왔네요. 혹시 저기 상점은 언제 문 여는지 아십니까?”
“흠.”
나를 멀거니 쳐다보는 주인장.
“맨입으로?”
오른손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그려 보인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나는 지갑에서 신사임당 두 분을 꺼내 내밀었다.
주인장이 지폐를 낚아채더니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다.
“흐흐흐! 말이 통해서 좋구먼. 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여기 사장님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습니까? 저도 많이 급해서요.”
“그야 나도 모르지.”
“예에?”
“여기 사람들 인생을 몰라서 그래? 다 약쟁이, 도박쟁이, 빚쟁이야. 김춘복? 그거 그 인간 본명도 아닐걸. 어디 사는지, 평소에 뭘하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
“하? 그런 얘기는 저도 하겠습니다. 돈을 받아먹었으면 받아먹은 값은 하시죠?”
나는 얼굴을 대놓고 찌푸렸다.
주변에 은은하게 흐르던 검은 불꽃이 화악 하고 번진다.
그러자 움찔해서는 검은 불꽃을 보는 주인장.
마약으로 정신이 흐릿한 탓에 내가 초인인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 그렇지! 돈 받았지! 내 정신 좀 봐, 흐흐흐. 김춘복 그 인간은 그냥 문을 닫은 게 아냐. 바로 어제 깡패들끼리 싸우는 바람에 휘말려서 갈비뼈가 부러져서 닫은 거지.”
“갈비뼈가 부러졌다고요?”
“엉. 철권파 놈이 독약파 놈한테 한 대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는데 하필 김춘복 그 인간을 덮쳐버린 거지. 어휴, 부실한 인간. 그러게 평소에 약 좀 빨라니까 약을 안 빨아서 그래. 하여튼 어제 그러고는 바로 문 닫고 휴업한다고 하고 갔어. 지금은 병원에 누워 있겠지?”
병원, 병원이라 이거지.
“보나마나 불법 무허가 병원일 거야. 잘 찾아보라고! 아마 이 근처 병원이긴 할 거니까. 흐흐, 돌팔이 새끼들이 갈비뼈 고쳐준답시고 몇 개 빼먹지 않았을지 모르겠네. 왜, 내가 아는 병원이라도 소개해줄까? 그 병원에 가진 않았겠지만 원래 돌팔이는 돌팔이가 가장 잘 아는 법이거든. 그치들 네트워크 따라가면 어디 있는지 바로 나올 거야.”
“됐습니다.”
이 주인장 말 참 많네.
투머치토커가 따로 없어.
‘갈비뼈 골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알기로 갈비뼈 골절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
아예 부러졌으면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하고, 실금만 갔으면 진통제 먹으면서 누워 있는 게 전부.
직접 상점을 봉인하고 집에 갔다는 것으로 보아 실금만 갔을 확률이 높다.
그럼 집을 찾아야 한다는 얘긴데······
주인장 말을 듣고 판단하기로는 굉장히 힘들 것 같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활기에 찬 듯 하면서 침체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시장.
문을 닫은 점포들.
저 멀리서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덩치들.
퍼뜩, 생각 하나가 공기 방울처럼 떠올랐다.
“혹시 말입니다.”
“뭐가?”
“시장이 안정되면 저기 사장님도 돌아올까요?”
“아암, 돌아오지. 우리 같은 하루살이 인생이 장사 안 하면 뭐해? 다리 몽둥이가 부러져도, 중풍에 걸려도 문은 열고 봐야 한다고. 장사할 여건만 되면.”
“그렇겠죠.”
역시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고물상 사장이 약국에서 진통제만 타 먹었을지, 진짜 병원에 갔을지, 불법 무허가 병원에 갔을지 누가 알아.
시장부터 안정시켜놓고 생각하자.
고물상 천막 더미에 앉아 사방을 훑어보았다.
특히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덩치들을.
크게 세 부류.
하나는 익숙했다. 그냥 평범한 깡패들이었다.
“뭘 봐?”
“콱 그냥!”
“눈 안 깔아?”
야구 방망이와 골프채를 들고 건들거리고는 있으나 위축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증거로, 바로 앞에서 한 여자를 필두로 걸어오는 무리를 보고는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돌아가 버린다.
대머리 여자.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눈꺼풀, 코, 귓바퀴, 입술, 심지어 두 갈래로 갈라진 혀에 빼곡하게 심어놓은 피어싱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왼손 중지만 합금 의체로 대체했고, 오른손에는 흉악한 가시 쇠장갑을 꼈다.
[N 쇠전갈]독약파 부두목.
원래는 자동 산탄총을 갈겨 대는데 총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시장에서 총질하다가 상인들 죽어 나가면 대형 사건이지.
아무리 뇌물을 많이 찔러줘도 경찰이 움직이기 마련.
“비켜, 병신들아!”
“으, 으힉!”
“우리는 철권파······”
“꼬우면 니네 보스 데려오던가!”
쇠전갈이 철권파 조무래기들을 걷어차며 지나갔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은 흰색 짧은 망토를 입은 무리.
그것 말고는 삼각 팬티가 전부였다.
와, 세상에!
저걸 내 눈으로 직접 보네!
눈이 진짜 썩는 것 같다.
생각해 봐라.
근육질 덩치들이 겨우 어깨만 가릴락 말락한 짧은 망토랑 삼각 팬티 한 장 달랑 입고 있다고.
스마트폰 화면으로 볼 때도 토 쏠렸는데 직접 보니 더 역겹고 징그럽다.
“좋은 말씀 전하러 나왔습니다.”
“형제님. 태초의 여신께 귀의하심이 어떠십니까?”
“싫으시다고요? 그럼 종교세를 내셔야 합니다.”
“세금 내셨다고요? 어이쿠, 그건 세금이지 종교세가 아닙니다. 왜 모르십니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아시잖아요?”
아주 개판이네.
선두에 선, 삼각 팬티도 아니고 빨간 티팬티를 입은 남자가 가장 패악을 부렸다.
말이 안 먹히자 괴상한 기도문을 외며 손을 뿌린다.
거기서 마력 파장이 발해지자 상인들이 급히 마약을 빨았다.
세뇌당해 돈을 바치느니 약 먹는 게 낫다고 본 모양이다.
티팬티 남자가 혀를 찼다.
“다 헛되고 헛된 것을······ 결국 여러분은 태초의 여신께 몸도 마음도 다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흐흐흐!”
“히히히!”
다들 웃었다.
덩치들도 웃고 상인들도 마약에 취해서는 웃었다.
[N 노출광]처음 만난 사제 계열 초인이 왜 이딴 놈이야.
더는 못 보겠다.
나는 성큼 몸을 일으켰다.
알게 모르게 시선이 집중된다.
내가 여태 켜놓고 있던 흑염. 암흑 시장의 현란한 조명 탓에 잘 안 보인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 쇠전갈도 노출광도 은연중에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으로 쭉 걸어갔다.
아까 돌아다니면서 확인했던 방향.
시장 거의 반대편이다.
유독 상인도 손님도 안 보이고 점포도 거의 닫은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야.”
“으······ 뭐야, 시발. 아파 죽겠는데.”
잡동사니를 대충 침대처럼 쌓아놓고 그 위에 누운 남자.
전신이 퍼런 멍투성이였다.
팔이 하나 부러졌는지 부목을 대어놓았다.
호위하던 갱단원이 날 보고는 흠칫 놀란다.
내 얼굴을 알아본 것.
나는 발로 남자를 툭툭 건드렸다.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시발, 어떤 새끼가······ 헉!”
짜증 난다는 듯 날 돌아본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당연히 알아봐야지.
이거 그놈이잖아.
인력사무소에서 김철권과 대면했을 때, 먼저 나서서 나대다가 내가 쇠 파편 셀프 수술하는 거 보고 도망쳤던 그놈.
“언제까지 쳐 누워 있을래?”
“어, 그, 그게······”
눈치를 보다 비칠비칠 일어나는 간부.
어색하겠지.
내가 자기 상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은 아닌데 동맹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을 했다.
“야.”
“뭐, 뭡니까?”
“우리 일 하나 같이 하자.”
“무슨 일을요?”
“저놈들. 여기서 쫓아내자고.”
멀리 보이는 쇠전갈과 노출광을 가리켰다.
순간.
철권파 간부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