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4)
특성 쌓는 김전사-4화(4/300)
김전사가 되다 -3-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대박이다!
생각해 봐라.
특성을 무한으로 가질 수 있다면?
허접한 공용 특성이라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은 여섯 개 가지고 빌빌거릴 때 백 개, 천 개씩 가지고 있으면 먼치킨 예약이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어디······”
고시원 방의 불을 껐다.
스마트폰 손전등을 켜고 눈에 확 들이대자 안구가 따끔거리며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아울러 어둡던 방 안이 살짝 밝아진 느낌이 든다.
[밝은 눈] 특성.“됐다!”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환호하기에는 일렀다.
밝아진 눈을 통해, 주먹에 울룩불룩 돋아 있던 힘줄이 사그라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움에 주먹과 팔을 내려다본다.
근력 특성 때문에 근육질로 변했던 팔이 원래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게 무슨······ 아!”
잠깐만.
그러고 보니 아까 전부터 몸이 묘하게 무겁다.
군대에서 천리행군을 뛴 다음 날처럼.
활기 특성이 있다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는데.
“그럼 그렇지.”
무한 특성이 말이 되냐?
알고 보니 새로운 특성을 얻은 만큼 기존 특성이 삭제되는 모양.
‘아니지.’
그래도 엄청난 거다.
나는 분명히 볼펜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처 회복 특성을 가져왔으니까.
조건 없는 특성 획득······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염동력, 염동력, 염동력.’
혹시나 해서 한 거였는데 여지없이 실패,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능력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새로 특성을 얻는 건 아케인 서울과 똑같아.’
단, 그 이후가 다르다.
이미 획득했다가 버린 특성을 다시 가져오는 것.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상처 회복과 밝은 눈 특성을 삭제하고 활기와 근력 특성을 복구했다.
아주 쉬웠다. 마음만 먹자 자연스럽게 특성이 교체된다. 눈이 어두워지고 상처 회복이 멈추는 대신 상쾌한 느낌이 치솟고 팔이 두꺼워졌다.
“하하하.”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특성 스위치?
특성 전환?
무한 특성에 비교하자면 별거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이 능력은, 특성 전환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
1만 시간 동안 내가 키웠던 김전사 시리즈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특성 전환에 시간이 많이 걸리냐면 그렇지도 않다.
집중해서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된다.
익숙해지면 1초는커녕 0.1초도 안 걸리겠지.
전투 중에 퓨어탱 김전사로 전환해서 방어하고, 극딜 김전사로 전환해서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후우.”
대박, 초대박.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느긋하게 특성 수집할 시간이 없다는 것.
돈이 문제고 돈이 원수다.
특성을 모으더라도 돈을 벌면서 해야 한다.
‘뭐, 좋아.’
계획을 바짝 당길 수 있게 됐다.
원래는 나 죽었소, 하고 한동안 광질만 뛸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
‘일단 좀 자자.’
특성 모으고 어쩌고 하는 사이 밤이 깊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지만 억지로 눈을 감고 시간을 보냈다.
새벽 3시가 넘도록 뒤척이길 한참.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고 눈을 떴을 때는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게임에서는 간단했다. 아무 0레벨 마굴을 선택해서 들어가면 됐다.
여기서는?
‘설정상으로는 정부가 마굴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지.’
0레벨 마굴은 대부분 도시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마음대로 들어가기도 어렵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내가 아는 0레벨 마굴을 검색해 보니 마굴은 허가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허가 없이 들어가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청소부로 시작해야지.’
청소부도 쉽진 않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마굴 청소부가 되는 방법은 세 가지.
지자체 공개 채용, 청소부 협회 등록, 인력사무소.
공채는 어렵다. 말이 청소부지 공무원이 되는 길이고 복지와 수당이 빵빵해서 경쟁률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청소부 협회도 마찬가지. 근대화 이후 설립된 청소부 협회의 역사는 유구하고, 그만큼 강력한 이익 집단이 되어 인맥 없이 협회에 소속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도 인력사무소냐.”
노가다를 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친숙해지는 게 인력사무소다.
원래 세계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인력사무소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근처에 작은 인력사무소 하나가 있었다.
바로 가서 문을 열자 인력사무소 안에 빼곡히 앉아 있던 사람들이 홱 돌아본다.
삶에 찌든 얼굴들.
지치고 내려앉은 어깨.
헝클어진 머리칼.
퀴퀴하게 풍기는 냄새.
남자, 여자, 고등학생이나 될 법한 어린애, 환갑은 진작 넘겼을 노인 모두 다를 게 없었다.
어디 한 군데가 일그러진 채로, 생물학적으로 변형되었거나 마도공학 의체를 삽입한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신참인가.”
“어려 보이는데.”
“우리 노루 초인님이랑 비슷하고만, 뭘.”
“흥.”
코웃음을 치는, 20대 초반의 왜소한 청년.
다리가 괴상하게 휘어 있었다.
입에는 짧은 전자담배를 물었는데, 기묘한 형광색 광채가 명멸하며 청록색 연기를 뿜어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누군지 안다.
[R 노루]선천적으로 타고난 노루 다리가 특징적인 초인이다.
노루 다리 덕에 민첩이 굉장히 높게 측정되었고 어릴 때부터 마약을 했다는 설정 때문에 도핑 한계가 꽤 높았다.
여기 있는 걸 보면 아직 초인으로 각성하지는 못한 모양.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노루가 눈을 부라렸다.
“뭘 봐?”
초면에 반말을 박아?
하긴 마약쟁이가 인성이 좋아야 얼마나 좋겠어.
어차피 R급. 나도 몇 번 써먹지도 않고 갈던 초인이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접수대를 향해 다가갔다.
예쁘장하게 생긴 접수원 아가씨가 방긋 웃는다.
“안녕하세요! 최선수 인력사무소입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 오면 일자리 소개해준다고 해서요.”
“아! 혹시 소개받고 오셨나요?”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했습니다.”
아, 하고 접수원이 살짝 미소 지었다.
대충 무슨 사정인지 짐작이 간다는 듯이.
이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먼저 서류부터 작성해주시겠어요?”
“그러죠.”
접수대에 볼펜 몇 개가 부착되어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 보듯이 스프링으로 부착된 게 아니라, 가늘지만 충분히 질긴 쇠사슬로 고정된 채로.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하나?
실소를 흘리며 서류를 작성한다.
[직업 알선 요청서] [성명 김전사] [연락처 xxx-yyyy-zzzz]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aa로bb길cc dd고시원 207호] [희망 업종] [농업□ 임업□ 어업□ 건설업□ 물류업□ 경호업□ ······ 청소업□ 정화업□]서류를 쓰던 내 눈이 마지막 부분에 멈췄다.
청소업과 정화업.
이중 청소업이 아니라 정화업에 √ 표시를 했다.
서류를 돌려주자 접수원이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화업이 뭔지는 알고 오셨죠?”
“알죠. 마굴 청소 아닙니까.”
“쯔쯔, 저런.”
“또 멀쩡한 사람 하나 죽어 나가겠네.”
뒤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접수원이 방실방실 웃으며 추가 서류를 내밀었다.
“정화가 쉽지 않다는 건 아시죠? 위험하다는 것도요.”
“당연하죠.”
“이거 서류 읽어보시고 사인해주세요. 나중에 딴소리하시면 안 돼요!”
[마력 정화 참여 신청서] [신체 오염 동의서] [신체 책임 각서] [제반 사항 청취 확인서]자질구레한 말이 많았지만 핵심은 이거였다.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오염 마력으로 인해 마력병이 발병해도, 신체가 변형되어도, 만에 하나 오염체로 변이되더라도 최선수 인력사무소에게는 일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밖에 수수료 20%, 점심 및 간식 제공 없음, 4대 보험 가입 필수라는 항목이 보였다.
‘와, 이건 또 신박하네.’
4대 보험.
원래 세계의 4대 보험과는 백만 광년쯤 거리가 있다.
모두 사보험이며, 인력사무소와 연계된 듣보잡 보험회사에 보험 가입이 필수였다.
그만큼 떼고 일당을 지급한다는 소리.
어쨌든 보험 들어주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퍽이나.
보나 마나 어떻게든 안 주려고 수를 쓰겠지.
할 수 없다.
내 처지에서는 이것마저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어느 인력사무소를 가더라도 비슷한 조건 아니겠나.
서류 작성을 끝내고 내밀자 접수원이 냅다 받아 챙겼다.
“다 되셨네요! 이제 소장님 면담하실게요. 소장님! 신규 있어요! 신규 정화업이요!”
“들어오라고 해.”
소장실은 접수대 뒤, 길고 좁은 복도를 지나 있었다.
상당히 넓다.
대기실보다 오히려 클 지경.
한쪽에는 거창한 원목 책상이 놓였고 그 앞에 있는 소파는 척 봐도 푹신해 보였다.
책상에는 머리가 다 벗겨진 아저씨가 담배를 문 채 앉아 있다.
[최선수 소장]소장이 눈만 굴려 나를 쳐다보았다.
평범한 눈이 아니다.
눈동자에서 기묘한 광채가 기름때처럼 번들거렸다.
“흠.”
소장이 자기 뺨을 한 번 긁었다.
이제 안 건데 뺨 한쪽이 강철로 되어 있었다.
괴상하게도 격자무늬를 새겨넣은 형태.
“신규라고?”
“네! 정화업 지망이세요!”
“정화업 좋지. 거기 앉으시게. 어디 보자, 김전사 씨시라고?”
“예. 김전사입니다.”
소장이 고개를 숙여 서류를 본다.
“근처 사시는고만?”
“그래서 여기 왔지요.”
“잘 생각했어. 가까운 곳이 좋지, 암. 뭘 하든 직접 얼굴 보고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단 말이야. 척 봐도 몸도 좋고 눈빛도 맑은 것이 마력 정화를 잘하게 생기셨어. 그래, 다니는 신전은 있고?”
“없습니다.”
“저런, 저런. 그러면 안 되지. 마력 오염은 놔두면 안 돼. 주기적으로 신전에 헌금하고 정화 받아야 한다고. 내가 아는 신전이라도 소개해 드릴까?”
반말과 존대를 교묘히 섞는 말투다.
나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따로 알아보지요.”
“뭐, 그렇게 하고······ 정화 경험은 있으신가?”
“아뇨. 처음입니다.”
“처음, 처음이라 이거지. 따로 속해 있는 팀도 없고?”
“예.”
“그럼 내가 적당한 팀에 넣어드리지. 운이 좋았어. 마침 결원 있는 자리가 있거든. 거기 팀장은 경력도 10년이 넘고 실력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야.”
“잘됐네요.”
“그렇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문제라뇨?”
“거기 팀장이 사람을 좀 가려. 경력이 최소한 3년은 되어야 팀원으로 받거든.”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자기한테, 또 그 팀장이라는 사람한테 뒷돈을 달라는 거지. 아니면 수수료율을 조정하거나.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온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수수료 20%로도 모자라 보험료랍시고 가져가고 뒷돈까지 챙기겠다고?
나는 얼굴을 굳혔다.
“제가 드릴 게 없어서요.”
“흠! 바로 줄 필요는 없어. 어차피 자네도 배우는 처지 아니신가? 수업료 낸다고 생각하고 팀장한테 적당히 얹어주면 그만이야. 그렇게 한 2년, 아니지 1년만 배워도 한몫하게 될 테니 다른 팀에 가도 좋고 수업료를 조정해도 좋지 않겠어?”
아하.
그러니까 1년 동안 열정페이 하라고?
나는 얼굴을 더욱 딱딱하게 굳혔다.
“죄송하지만 제가 정말로 돈이 급합니다. 좀 경력 없으신 분이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다한다고? 정신줄 놓으셨어? 마굴 청소가 얼마나 위험한데, 실력 있는 팀장 밑에서 배울 생각을 안 하고 돈부터 따지고 그래? 돈이 목숨보다 중요한 줄 아시나? 그러다 자네 죽어!”
“꼭 좀 부탁드립니다.”
“으흠.”
소장이 탐탁잖다는 시선을 보낸다.
그 와중에도 눈동자 깊은 곳에는 교활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렇게 급하신가?”
“예.”
“그럼 뭐······ 이렇게 하지. 정규 팀이 정화업의 전부는 아니야. 임시 팀이라고 들어는 봤나?”
“처음 듣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머릿수만 맞춰서 투입되는 팀이지.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팀장 몫이 빠지니 배당률은 괜찮을 거야. 어때? 생각 있으신가?”
소장과 눈이 마주친다.
짐짓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소장.
얼굴만 보면 동네 인심 좋은 아저씨 같다.
하지만 나는 소장의 눈을 보고 원래 세계에서 지긋지긋하게 봤던 속내를 읽어낼 수 있었다.
[호구 새끼.]이용해 먹겠다는 거지.
내가 임시 팀에 들어가도 정규 팀에 들어가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뽑아먹을 수 있다는 거고.
고작 0레벨 마굴에서 그게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소장이 날 어디에 던질지 알겠다.
나는 씨익 웃었다.
“기꺼이 참여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