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41)
특성 쌓는 김전사-41화(41/300)
변이체 사태 -3-
“그럽시다.”
꿇릴 건 없다.
은신을 풀고 앞으로 나섰다.
망령체가 사람처럼 빤히 나를 주시한다.
[거, 한 가지 물어봅시다.]“그러던가요.”
[남의 구역에서 깽판을 치는 이유가 뭡니까?]남의 구역?
오염 시설에 니 구역 내 구역이 어디 있어?
······짚이는 게 있었다.
“청소부 협회냐?”
[그럼 뭐라고 생각하신 겁니까?]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망령체.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래, 처음부터 이상했다.
청소팀 중 6명이 변이체가 된다?
그 와중에 생존자도 없다?
오염 마력이 통로까지 넘쳐나고, 내부 전기 시설은 다 꺼져 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테러.
그리고 오염 시설에서 벌어지는 테러라면, 첫 번째 용의자가 바로 청소부 협회다.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데. 왜, 날 여기서 죽일 자신은 있고?”
살인멸구할 생각이냐?
산탄총을 들고 유탄 발사기에 손을 가져갔다.
하필이면 망령체.
내가 챙겨온 탄종과 궁합이 나쁘지만 안 쓰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망령체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초인님의 활약은 잘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변이체 셋이면 고생하실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쓰러뜨리더군요. 그래서 협상을 했으면 합니다.]“협상하자고?”
[예. 저희는 언제나 사람이 부족하거든요.]“응?”
[진심으로 제안하는 겁니다. 초인님, 초인님 정도 전투력이면 우리 협회에서도 최상위권입니다. 회장님이나 부회장님 정도는 아니어도 그 아래 이사 정도는 충분히 되지요. 우리 협회에 입회하실 생각은 없습니까?]“내가 왜?”
[그렇지 않으면······]망령체가 말을 흐렸다.
대신하여 다른 망령체들이 일제히 한 발짝 내디뎠다.
“기아악!”
이어 전신을 떨어 기괴한 소리를 지른다.
입도 성대도 없이 외친 고함.
거의 수백 구는 되는 망령체가 터뜨린 울음이 콘크리트 벽면에 난반사되어 괴상한 합창을 자아냈다.
음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강령술사 특유의 마력이 담긴, 원혼과 저주를 켜켜이 쌓은 듯한 바람이다.
나는 뻐근해 오는 목덜미를 한 번 주물렀다.
망령체가 스피커를 통해 다시 한번 외쳤다.
[결정하시죠! 자발적으로 입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죽어서 입회하시겠습니까?]“노예 아니면 죽음이야? 아주 염병하고 자빠졌네.”
[흐흐흐. 그럴 리가요. 저희 협회장님은 인재를 우대하십니다. 초인님 같은 분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으십니다. 합당한 연봉, 합당한 업무, 합당한 직위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오셔서 근무하시면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내 대답은 이거야.”
철컥!
유탄 발사기에 유탄을 장전했다.
망령체 카메라에 붉은 광채가 스쳤다.
[후회하실 겁니다.]“후회는 니네가 하겠지. 사람 잘못 건드렸어.”
퓽!
유탄 발사.
길쭉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개조 망령체를 그대로 지나쳐서 망령체 무리 정중앙에 직격.
꽝, 하는 폭음과 함께 시커먼 먼지가 일어났다.
쇠 파편이 사방을 갈기갈기 찢지만, 나는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망령체는 총에 강하지.’
상성 상 안 좋다.
유탄과 폭탄 역시 마찬가지다.
고폭탄이나 소이탄을 챙겨왔으면 모르겠으나 내가 가져온 것은 모조리 대인유탄과 세열수류탄.
쇳조각이 물컹물컹한 내부를 찢어봐야 뭐하겠냐고.
운 좋게 마력칩을 부수지 않는 한 모조리 재생된다.
역시나 그랬다.
망령체 십여 구가 쓰러졌지만 재생되며 일어서고 있었다.
[크크크.]선두에 선 개조 망령체가 비웃음을 흘렸다.
[총잡이 주제에 내게 대적하겠다고? 후후. 얌전히 시체 기사나 돼라!]스스슥, 스스슥.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망령체.
전후좌우 모든 방향이 막혔다.
자칫 잘못하다간 압사당해 죽을 판이다.
“흥.”
밀려오는 긴장감.
콧방귀 한 번 뀌며 떨쳐냈다.
내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채앵!
검을 뽑는다.
R 등급 성검.
기묘한 빛이 검신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성검을 얻고 처음 보는 반응.
표면의 신성 문자가, 문자를 상감한 신성 금속이, 칼끝을 장식한 보석이 공명하면서 맑은 성광을 뿜고 있었다.
[아니?]경악하여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망령체.
[서, 성검? 그게 왜 여기서 나와!]성검이 단 줄 알아?
나는 입술을 비틀며 특성을 교체했다.
한 땀 한 땀, 특성 하나마다 충분히 고민해서.
[파산검법][에인헤랴르 연공법][마력심] [오염 저항][근력][흑염]내가 총잡이인 줄 알았다면 완전히 오산.
지금 나는 전사다.
아니, 성기사다.
느릿느릿 꼬물꼬물 지렁이처럼 기어오는 합성 좀비 따위 간단히 썰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탓!
땅을 박찼다.
성검을 양손으로 쥔다.
머릿속에 주입된 지식이, 재생되는 영상이 하나의 궤적을 그린다.
궤적이 눈앞의 망령체와 겹쳤다.
거의 본능에 가깝게, 지난 며칠 수련했던 바로 그 동작대로 성검을 내리쳤다.
산 부수기!
깔끔한 일격이 들어간다.
강타도 참격도 필요 없었다.
파산검법이 정확히 시연되었다.
깔끔하게 그어진 흰 빛이 머리통을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으적!
그 끝에 마력칩이 걸렸다.
순간 희고 검은 빛이 번뜩였다.
성검 고유의 [광격] 효과.
추가 화염 피해를 입히는 [흑염].
두 속성이 마력칩을 부수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부 마력 회로를, 생산하는 마력을 폭주시켰다.
펑!
안에 폭탄 넣고 터뜨린 것처럼 터져나가는 머리통.
오물 덩어리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나도 바로 앞에서 오물을 뒤집어썼지만 무시했다.
더럽다고 불평하기에는 망령체가 너무 많다.
많고 많아서 망령체 해일처럼 보일 지경이다!
치직, 치지직.
[말도 안 돼······]떨어진 스피커가 그 말을 내뱉곤 작동을 중지했다.
파직.
스피커를 짓밟으며 전진한다.
“기아아악!”
온몸으로 합창하며 내게 다가오는 망령체들.
그러나 우스울 뿐이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검을 깊게 찔렀다.
푹! 푸욱!
두 마리 한꺼번에 관통!
작은 폭발이 일었다.
이 둘도 다를 게 없었다. 머리가 수박처럼 깨지며 오물을 흩뿌리는 신세가 되었다.
베고 찌르고 자르고!
쑤시고 쳐내고 가르고!
거의 신들린 듯이 움직였다.
내가 움직이면서도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몰랐다.
그저 훈련했던 대로, 머리에 그려지는 대로, 검을 휘두르고 또 내지를 뿐이다.
어둠 속에서 열기가 피어났다.
훅훅 숨소리 사이에서 땀이 후줄근하게 증발했다.
마력이 극한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땀이 나면 나는 대로, 오물이 묻으면 묻는 대로 수증기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쩌억!
방금도 도끼처럼 성검을 내리찍어 망령체를 작살 냈다.
나는 지치지 않는다.
벌써 수십 구를 베어 넘겼지만 몸에는 활기가 넘치고 마력은 여전히 넘쳐난다.
당연하지.
지칠 것 같으면 [활기] 특성, [마력 회복] 특성, 지나치게 마력이 오염됐다 싶으면 [마력 안정] 특성을 계속해서 갈아 끼웠으니까!
순간 화력이면 순간 화력.
지구력이면 지구력.
나는 그 어디서든 정점에 달해 있었다.
2레벨이라고는 보기 힘든 전투력.
무력만으로 따진다면 나는 3레벨 초인을 이미 넘어있을 것이다.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 보고 있을 강령술사를 압도할 정도로!
“기아악!”
“기이이익!”
그러나 영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최소 수십 구를 베었음에도 망령체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인해전술.
나는 성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깔리면 끝이다.’
망령체는 사람보다 무겁다.
수십 마리가 날 깔아뭉개기라도 하면 끝.
강건에 근력까지 동원해도 벗어나기 어렵다.
‘돌파한다.’
특성 교체.
[근력][활기][질주] [방어][맷집][인내]오로지 근육 전사만을 위한 특성.
심지어 오염 저항까지 뺐다.
“기아아악!”
이젠 코앞까지 밀려온 망령체들.
손을 꽈악 쥐었다.
쭈아압, 쭈압 하고 장갑이 거칠게 내 피를 탐한다.
목걸이도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에 성검까지.
[강건]에 [치유], [성검]을 더하여 총 9개나 되는 특성.‘믿는다.’
속으로 뇌까리며 몸을 던졌다.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차고, 정면을 향해 돌진!
망령체와 부딪혔다.
성검으로 찌른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강타하듯이 밀어쳤다.
꽝!
작은 폭음.
망령체가 그대로 밀려 나갔다.
밀집되어 스크럼을 짜듯이 서 있던 망령체들이지만, 내 한 방을 견뎌내기란 불가능했다.
철썩! 철썩!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자기들 사이로 파고든 나를 향해 팔을 채찍처럼 휘두른다.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역겨운 감촉이 츄리닝도 방호복도 무시하고 전해졌다.
분명히 물리적인 타격은 적다.
그러나 접촉할 때마다 파고드는 오염 마력이, 또 썩은 독 기운이 내 머리를 핑 돌게 만들었다.
“이이익!”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중첩된 오염 마력과 독에 당해 내장이 곤죽이 된다!
오염 저항도 독 저항도 쓸 수가 없다.
특성을 교체하면, 힘들다고 바꿔 버리면 놈들에게 붙잡힐 테니까!
“으아아아아!”
고함을 질렀다.
전신의 마력을 모아 함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모든 마력을 쥐어짠다.
심장에서, 혈맥에서, 장기에서 마력을 긁어모아 단숨에 터뜨린다.
다리가 후끈해졌다.
허리부터 골반, 다리까지 몽땅 불로 지지는 것 같다.
마치 신열이 다시 찾아온 듯한 통증.
그러다 별안간 시원해지면서, 거친 마력이 야생마처럼 혈맥을 질주했다.
새로운 길이 뚫린 것처럼.
마력 회로가 새겨진 고속도로처럼!
파앙!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도저히 지나가지 못할 것처럼 밀집해 있던 망령체들을 지나친다.
아니, 머리를 뛰어넘었다.
문자 그대로 날아올라 따돌려 버린다.
거의 십여 미터 이상.
자칫 천장에 머리를 박을 뻔한 것을 겨우 피하고 정신을 차렸다.
“헉, 허어억.”
숨이 가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도약] 특성!포위망에서 벗어나기 가장 좋은 특성이자 기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멀리서 성검을 겨누고 정신을 집중하자 저절로 마력이 활성화되면서 몸을 앞으로 밀려고 했다.
이건 [돌진] 특성.
돌진과 도약!
굼벵이처럼 느린 망령체들로선 나를 잡을 방법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흐흐흐.”
역시 특성 전환은 사기다.
김전사의 백지 신체 능력과 결합하면 더 그렇다.
쉽게 얻고 쉽게 지우고 마음대로 교체하고!
“죽어!”
돌진한다.
성검으로 머리를 쪼갠다.
바로 [연격]을 장착한 후, 산 가르기를 열댓 번이나 날린다.
슉! 슈슈슈슉!
희고 검은 궤적이 세상을 자기 색채로 수놓았다.
빗물이 사선으로 내리는 듯한 광경.
마력칩이 쪼개진 망령체들이 오물 덩어리가 되어 무너졌다.
끼아아······ 끼아아······
망령체를 하도 많이 끝장내서일까?
주입되어 있던 원혼들이 풀려나 귀곡성을 낸다.
희끄무레한 영체들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살······려······줘······] [그······립······다······] [너······무······추······워······] [배······가······고······파······]그러나 내게 접근하지는 못한다.
성검 때문이다.
성검이 지금도 맑은 빛을 뿌리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퍼억! 철퍼덕!
쉬지 않고 축축한 통로를 누볐다.
돌진으로 접근하고 도약으로 빠지고.
성검으로 난도질하고 마력이 떨어지면 잠깐 쉬면서 보충하고.
신출귀몰한 내 움직임 앞에서 망령체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냥 허수아비가 따로 없었다고.
내가 검을 찍으면 찍는 대로 터지고 찌르면 찌르는 대로 폭발하는 훈련용 허수아비.
“훅, 후욱, 훅!”
나라고 멀쩡하지는 않다.
백 마리를 넘어 2백 마리에 가까운 숫자.
내려치기 2백 번만 해도 힘들다. 그런데 치고 빠지면서, 집중하여 마력을 운용하고, 일격 일격에 혼을 담아 마력칩을 쪼갠다고 생각해 봐라.
당장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직이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여기서 끝나려고 그렇게 아득바득 발악한 게 아니다.
죽을 거였으면, 무릎 꿇을 거였으면 이 막장 세상에 떨어진 즉시 목을 맸을 거라고!
“으아아아!”
고함과 함께 마지막 망령체의 목을 쳤다.
철퍼덕 떨어지는 진흙 뭉치.
오염 마력과 썩은 독이 훅 하고 올라왔다.
머리가 핑글 돌았으나 무시했다.
대신 일점으로 마력칩을 쪼개 완전히 끝을 보았다.
“허억, 허어억.”
숨을 쉬기가 어렵다.
온몸이 오염 마력과 독에 절어서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다.
짝! 짝! 짝!
누군가 박수를 쳤다.
“이야, 대단하네. 총잡이인 줄 알았는데 성기사였어? 7대 교단은 아닌 것 같고, 어디 교단 소속이야?”
“알면 살려주게?”
“설마. 말 안 해도 돼. 널 시체 기사로 개조하다 보면 당연히 알게 될 거니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력 실린 목소리만 살랑살랑 날아올 뿐.
[에인헤랴르 연공법][마력심][심호흡] [마력 흡수][마력 안정][마력 회복]이 틈을 타 잠깐이라도 회복해야 한다.
나는 내 심장에 정신을 집중하며 에인헤랴르 연공법을 극한으로 운용했다.
삐걱, 삐이걱.
찢어지듯 아픈 심장.
불로 지진 것처럼 뜨겁디 뜨거운 마력 혈맥.
위장에서, 또 허파에서 역류하여 치솟는 핏물.
오래 쉴 수도 없었다.
저벅, 저벅.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하.”
나는 탄식하듯 짧게 탄성을 질렀다.
“자신 있으면 직접 싸워 보시지?”
“전사 앞에 대놓고 나오는 마법사가 어디 있어? 있으면 호구 병신 새끼지.”
어둠 속을 뚫고 나오는 두 그림자가 보인다.
시체 방패병과 해골 총잡이.
변이체를 개조하여 만든 언데드.
어딘가 숨어 있을 강령술사의 권속.
개조 상태를 보아하니 추정 레벨 2.
저 둘만 해도 상대하기 어려운데 숨어 있는 강령술사까지 고려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럼 죽어.”
슈슈슝!
예고도 없이 날아오는 검은 마력 덩어리.
어둠 화살.
동시에 시체 방패병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