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t Hoarder RAW novel - Chapter (47)
특성 쌓는 김전사-47화(47/300)
유성검 -2- [유료 연재 시작]
투투투투퉁!
탄창 하나를 몽땅 비웠다.
총염이 세상을 할퀴었다.
“2레벨 주제에!”
벼락같은 공격이었지만 에보니는 콧방귀만 뀌었다.
몸을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뒤로 눕히더니 그대로 미끄러지며 내 전면에서 벗어난다.
덕택에 총알 세례는 허공만 갈랐다.
동시에 허리에 찬 쌍권총을 우아하게 들어올렸다.
타타탕!
총구를 뛰쳐나온 화염이 나를 덮친다.
피할 수는 있었다.
내게도 회피 특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괜히 요란하게 움직이는 대신 나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마력 방어막][마력심][방어] [인내][맷집][집중]에보니가 겨눈 머리와 복부.
두 곳을 포함하게끔 마력 방어막을 전개하고 방어까지 사용했다.
“어엇?”
에보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퍼펑!
마력 방어막에 막힌 총알이 폭발한다.
한 땀 한 땀 폭발 마법을 새겨넣은 마법 총알.
수류탄 정도 화력만 됐어도 위험했겠지. 하지만 권총에 각인한 마법이라 한계가 있었다. 그저 화염만 휘몰아쳤고, 당연히 내 마력 방어막과 방어를 둘 다 뚫진 못했다.
슈욱!
이때, 내 왼쪽 옆구리를 뜨끔한 감촉이 자극했다.
에보니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어때?”
바이퍼가 사각에서 독화살을 날린 것.
총이 아니라 굳이 쇠뇌를 쓰는 초인답게 치명적인 일격이다.
화살에 강력한 독과 마약을 합성한 극약이 묻어 있으니까.
철컥.
그러나 무시.
동맥을 타고 뇌로 올라오는 약 기운을 씹어버리고 탄창을 교체했다.
원래 그러려고 했다는 것처럼 산탄총을 겨누자 에보니가 질겁해선 몸을 뺀다.
“뭐, 뭐야! 왜 효과가 없어!”
왜 없긴.
정화 특성 때문이지.
모든 약 기운을 해소하진 못했지만 정화로 일단 꺾어놓고 마약 저항 특성만 맷집 대신 장착했다.
독이야 뭐, 나중에 해독해도 되는 거고.
투웅! 투웅! 투웅! 투웅!
이번에는 난사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쏜다.
그사이 내 옆구리와 등에 화살이 날아왔지만 방어막으로 막았다.
“흐······”
바이퍼가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잇소리를 내며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에보니는 뒤로, 옆으로, 다시 뒤로, 그래서 내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이익!”
에보니가 허리에서 수류탄을 하나 까서 던졌다.
같이 죽자고?
그럴 여자가 아니지.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산탄총을 마저 쏘았다.
쩌어엉!
눈앞에서 작렬하는 수류탄.
아니, 섬광탄.
생긴 건 수류탄이었는데 내용물은 섬광탄이었나 보다.
태양이 내려온 듯 무지막지한 광량이 쏟아졌다.
아울러 뾰족한 고주파음이 공성 병기처럼 내 고막을 관통했다.
정신이 아찔해지지만 견뎌냈다.
순간적으로 [결의] 특성을 장착한 덕분이다.
내가 계속 쓰고 있는 고글이 잘 막아주기도 했고.
‘놓칠 수 없지.’
바로 코앞에서 섬광이 터져서일까?
일순 세상이 허옇게 보이긴 한다.
하지만 하얀 세상과 유독 대비되는 그림자, 흑표범처럼 유려한 곡선의 까만 인형이 재주를 넘으며 뒤로 도망치는 것만큼은 분명히 확인했다.
처음부터 내가 유도했던 그 자리.
똑딱똑딱 소리를 내는 괘종시계가 서 있는 지점으로.
딸깍.
주머니에 손을 넣어 격발기 단추를 눌렀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초신성 번쩍이듯 불길이 터져 나왔다.
시뻘건 화염이 단숨에 검은 그림자를, 에보니를 집어삼켰다.
내가 엎드리기 무섭게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다.
“아아악!”
괘종시계에 은밀하게 설치했던 특제 소이 폭탄.
그것도 마법 백린.
이거 하나에 10억을 넘게 쓴 보람이 있다.
“에, 에보니!”
거의 복도 전체를 휩쓴 화염.
바이퍼도 낭패한 모습이다.
항상 입고 다니는 망토를 휘두르자 마법진이 반짝이며 화염을 떨쳐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낭패한 모습조차 에보니에 비교하면 별것 아니었다.
에보니가 미친 것처럼 몸을 털며 벽을 연거푸 들이받았다.
“뜨, 뜨거워! 아아악! 아아아악!”
레이디께서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면 고통을 덜어드리는 게 인지상정.
전력으로 몸을 띄웠다.
도약하듯 일어나며 성검을 뽑아든다.
치켜든 성검 표면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비친다.
벌써 눈도 코도 입술도 타버린, 아직도 불이 피부를 파고들며 불사르고 있는 에보니.
뒤늦게 날 목격했지만 아무것도 못한다.
권총도, 비장의 무기도 전부 떨어뜨린 채 발광하며 벽에다 몸을 비비적거릴 뿐이다.
쌔액!
참격!
깔끔한 호선이 에보니를 가로질렀다.
근육질이지만 가녀린, 확실히 미인이다 싶은 목선을.
에보니가 정지했다.
딱딱하게 굳어서는 입을 헤- 하니 벌린다.
그것도 잠깐.
곧 혈선이 그어지면서 머리와 몸이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크윽! 에보니!”
바이퍼가 뒤늦게 분노한다.
촤르륵! 착!
팔뚝 쇠뇌에 부가 부품을 덧붙여 X자 마법 쇠뇌를 만들고, 거기에 마법 화살을 메긴다.
X자 몸체와 화살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 파장이 번졌다.
성검을 들고 바이퍼를 마주 보는 나.
아직도 복도 전체에 화염이 넘실거린다.
나도, 바이퍼도 불길에 휩싸여 있다.
자연스레 바이퍼의 얼굴이 잔뜩 찌그러지고 손을 부들부들 떨렸다.
반면 나는 평온했다.
왜?
화염 저항 때문에.
또, 인내 때문에.
저벅.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
바이퍼의 동공이 쭈욱 확장되었다가 수축했다.
슈우욱!
파공성이 울리고 화살이 날아온다.
맞았으면 반드시 내 마력 방어막과 방호복을 관통하고 몸에 꽂혔을 마법 화살.
맞지 않았다.
집중하고 있다가 바이퍼가 방아쇠를 당긴 순간, 회피해서 흘려보냈거든.
마력 방어막 표면이 좀 긁히긴 했지만 이쯤이야.
“이거나 먹어.”
몸을 피한 직후 수류탄을 굴리듯이 던졌다.
이것마저도 투척 특성을 활용해서.
안전핀은 물론 안전손잡이도 제거하고 속으로 1.5초를 센 다음이었다.
바이퍼가 어떻게든 차려고 발을 들 때 수류탄이 터졌다.
꽝!
초인이건 뭐건 현대 문물 앞에선 평등한 법.
3레벨부터 진짜 초인이니 뭐니 하지만 가랑이 아래에서 터진 수류탄을 막는 건 방어 전사도 힘들다.
나는 이미 엎드려 있었다.
온갖 마력 회복 특성에 마력 방패를 활성화해서는 머리 앞을 보호하고 있었다.
투두둑!
그러고도 파편이 마력 방패를 관통하여 내 헬멧을 두들겼다.
헬멧을 안 썼으면 두개골에 구멍이 송송 뚫렸겠어.
“흐.”
하지만 이겼다.
바이퍼는 고깃덩이가 되어 숨통이 끊어져 있었다.
둘 다 카론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초인이지만 쉽게 이겼다.
내가 수십 억을 써서 준비한 전장에서 싸웠으니까.
카론 때와는 정반대로.
레벨 차이 난다고 둘이 날 너무 얕보기도 했고.
“후으읍, 후읍.”
마음 놓기에는 이르다.
이제 5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진짜는 곧 닥칠 부회장이고, 최후에 대면할 박대엽 협회장이다.
[에인헤랴르 연공법][마력심][마력 회복] [상처 회복][재생][활기]모든 특성을 회복 계열로 바꿨다.
연거푸 심호흡을 하며 마력과 상처를 회복한다.
마법 백린탄도 효력을 다했는지 푸들푸들 꺼졌다.
아직 방호복에 붙어 있는 불꽃을 털어내고 잠깐 벽에 기대어 섰다.
‘힘들다.’
방호복 위에 입었던 츄리닝은 다 타버린 상태.
표면이 엉겨 붙은 방호복과 접이식 헬멧만 장착하고 있었다.
츄리닝 속에 숨겼던 마총도 달랑달랑 떨어질 것 같아서 허리춤에 대충 찔러넣었다.
산탄총 재장전까지 마친 다음 복도 밖을 주시했다.
쿠웅······ 쿠우웅······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고작 몇 분 후.
숨을 겨우 돌리고, 상처와 마력을 채 회복하지도 않은 시점.
쾅!
계단과 통하는 문이 열렸다.
수류탄이 들어오면 냅다 쏴 갈길 생각에 산탄총을 조준하고 있는데, 들어온 것은 엉뚱하게도 한 남자였다.
전신을 기계로 개조한, 눈만 생체 눈이고 두 팔은 바닥에 끌릴 정도로 큰 칼로 바꾼 남자.
청소부 협회의 부회장.
[R 사이보그]산탄총은 의미가 없다.
몸통을 맞추면 튕기고, 유일하게 생체인 눈도 투명 고글로 보호하고 있으니까.
부회장이 나를 쓰윽 훑어보았다.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청소부 협회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나를 반원형으로 포위했다.
“놀랍군.”
귀로 들으니 확실히 기계음에 가까운 목소리다.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다.
“에보니와 바이퍼, 그 둘을 이리 간단히 쓰러뜨릴 줄이야.”
부회장이 시체 두 구를 훑었다.
불타고 목이 잘리고 폭발을 뒤집어써 처참하게 변한 시체.
애초에 둘의 성향, 특성, 능력을 다 아는데 이렇게 이기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는 산탄총 노리쇠를 당겨 철컥 소리를 냈다.
“너도 저렇게 될 거다.”
“후후. 나를? 그럼 쏴보시지.”
부회장이 느긋하게 자세를 취했다.
왼손은 비스듬하게 하늘로, 오른손은 반대편 땅으로.
사마귀가 칼날 팔을 크게 벌린 듯한 모습.
아울러 따라온 협회원들이 일제히 총을 들어올린다.
나도 산탄총을 부회장에게 겨누면서 왼손을 살짝 움츠렸다.
원래대로라면 총열 덮개를 잡고 있어야 할 왼손.
지금은 아니었다.
대신 작은 격발기 하나를 쥐고, 총열 덮개는 그저 지지하고만 있었다.
그 상태에서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묻자.”
“뭐냐?”
“여기 진입하면서 수류탄은 왜 안 던졌지?”
뭔 소리 하냐는 듯 쳐다보는 부회장.
그리고 협회원들.
내가 여기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왜 수류탄 던지냐는 눈치.
폭탄 함정은 발동시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랬다간 나까지 휩쓸릴 테니.
하긴 그렇긴 하지.
일반적인 폭발류 함정이라면.
“니들 진짜 멍청하다.”
꾹, 격발기를 눌렀다.
팟!
무형의 파장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마력 파장은 아니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그것.
단, 초인이 아닌 사람은 감지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힘.
복도에 타닥타닥 전깃불이 튀었다.
시야를 밝혀주던 형광등이 모조리 꺼져버리고 삑삑삑 경고음이 울렸다.
내 주머니에서도, 협회원들 주머니에서도.
스마트폰이 일순 고장 난 까닭이다.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진짜 목적은 부회장이었다.
파장을 뒤집어쓴 즉시 부회장이 꺽꺽대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끄어어억!”
눈을 까뒤집고 엎어지는 부회장.
기세 좋게 들었던 팔이 볼품없이 늘어지고 다리가 제멋대로 돌아간다.
몸통에서 기계 촉수들이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
협회원들이 기겁하여 부회장을 살폈다.
“부, 부회장님!”
“괜찮으십니까!”
EMP 폭탄 맛이 어때?
물론 기계 의체에 EMP 반사 처리는 했을 것이다. 어디서 싸구려 의체를 가져다 삽입하진 않았을 테니.
그래도 한계가 있다.
반사 처리 따위 고용량 EMP를 때려버리면 그만이라고.
아까 마법 백린이 10억짜리라고 했지?
이것도 10억짜리다!
“그래서 물어봤잖아.”
오른손 검지에 힘을 주었다.
“수류탄 왜 안 던졌냐고.”
투투투퉁!
연사로 긁었다.
EMP 폭탄이 매설된 문틀 아래 서 있던 협회원들이 우스스 쓰러진다.
추풍낙엽이 따로 없었다.
막 부회장에게 시선을 돌린 상태라 협회원들은 대응하지 못했다.
쏘면 쏘는 대로 갈기면 갈기는 대로 피를 뿌렸다.
“끄아악!”
“커헉!”
“사, 살려줘!”
“으어어억!”
다채로운 비명이 울렸다.
수십 명도 넘는 협회원들이 전멸한 것은 고작 눈 한 번 깜짝할 사이.
탄창 하나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뒀다.
역시 근거리에서는 자동 산탄총이 최고라니까.
“크아악! 이노옴!”
부회장이 노호하며 달려든다.
역시 좋은 의체를 썼다.
EMP 폭발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뒤집어썼는데 벌써 움직이는 걸 보면.
채애앵!
번뜩이는 칼날이 날카롭다.
나는 산탄총을 거꾸로 쥐고 개머리판으로 칼날을 쳐냈다.
따당!
“웃!”
부회장이 크게 한 번 휘청인다.
그 틈을 타 성검을 뽑은 후 찔러넣었다.
일점!
부회장도 역시 만만하진 않다.
몸을 반쯤 기울여서 기계 몸통으로 성검을 튕겨냈다.
성검이 거칠게 긁고 지나가 흠집이 길게 남았지만 어쨌든 치명상은 아니다.
부회장이 몸을 다잡으며 외쳤다.
“그깟 어설픈 칼질로 날 이길 것 같으냐!”
어느새 EMP 후유증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
확실히 강하긴 해.
전신을 기계 의체로 갈아버린 건 확실히 사기다.
[섬광]을 쓰지 않는 한 검으로 부회장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기는 굉장히 어렵다.그렇지만 방법이 있지.
부회장은 기계 의체를 입어 사이보그가 된 대신, 약점 몇 개가 생겼거든.
왼손으로 권총을 뽑았다.
마총 흑염.
왼손 검지를 방아쇠에 넣자 자연스럽게 마력 저장 반지가 마총과 접촉한다.
우우웅.
기다렸다는 듯 길게 울음을 터뜨리는 흑염.
총신에 새겨진 마법진이 음울한 빛을 토했다.
총구에는 검은 불꽃이 맺혀 은하수처럼 소용돌이쳤다.
부회장의 눈이 흔들린다.
유일하게 생체인 그 부위가 폭풍우에 휘말린 나뭇잎 배처럼 격랑을 일으킨다.
“잘 가라.”
쭈웅!
일직선으로 발사된 묵광.
삐걱거리는 몸 탓에 피하지도 못 했다.
부회장이 흑염을 제대로 덮어썼다.
“끄아아악!”
마도과학 의체는 기본적으로 마법으로 움직인다.
흑염은 마력의 불길, 그 자체.
자연히 의체를 기동하고 유지하는 마법을 불살라 버렸다.
부회장이 길게 울부짖고, 흑염에 휩싸인 채 발광을 했다.
아까 에보니가 그러했듯이.
천천히 다가갔다.
부회장이 내게 손을, 그 큰 칼을 내민다.
최후의 발악이었을까?
아니면 살려달라고 비는 거였을까?
관심 없다.
푸욱!
눈을 찔렀다.
성검을 거꾸로 쥐고 체중을 실어 박아넣었다.
부회장이 입을 헤 하고 벌렸다.
기름기 섞인 마력 용액이 뚝뚝 떨어지고, 꼿꼿하던 고개도 떨어뜨리고 만다.
“후.”
9부 능선이 코앞.
시체를 적당히 밀어놓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고속 유탄 발사기를 짊어진 채로.
퉁퉁퉁퉁!
“으억!”
“으아아!”
건물 앞에 모여 있던 청소부 협회.
무방비하게 서 있던 그들에게 유탄 수십 발을 먹여주었다.
폭발이 연거푸 터지고 검은 먼지가 뿌옇게 치솟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쿠웅. 쿠웅. 쿠웅.
대신 뭔가 묵직한 진동이 다가왔다.
누군가 벽을 박차며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유탄 세례쯤 퍼붓는다고 죽지 않았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인간만큼은.
이 인간은 소위 말하는 진짜니까.
“허, 참.”
내가 유탄 폭격을 퍼부은 그 지점.
두툼한 난간 위.
한 남자가 지상에서 솟구친 먼지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어른거리는 그림자만 봐도 존재감이 승천할 지경.
박대엽 협회장.
이리저리 찢어진 정장.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낭패한 몰골.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상처 하나 없다.
유탄을 수십 발도 넘게 쏴 갈겼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말이지······”
박대엽이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본다.
“살면서 별의별 꼴을 다 당해봤지만, 오늘처럼 치욕적인 순간은 없었다!”
기이잉, 척.
강철 장갑이 변형되어 손부터 아래팔까지를 감쌌다.
그것을 신호로 박대엽이 달려들었다.
한 마리 식인 호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