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03
1.
삼진은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잡을 수 있는 가장 안정하고, 확실한 아웃카운트다.
당연히 삼진을 잡는 피칭은 훌륭한 피칭이다. 삼진을 많이 잡을수록 그 투수의 가치는 매우 크게 상승한다.
그러나 삼진만 잡는 피칭은 위험한 피칭이다.
삼진을 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절대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탓이다.
하나, 투 스트라이크를 만들어야 한다.
둘,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한다.
때문에 삼진만 잡는 피칭을 하는 투수의 선택지는 그렇지 않는 투수보다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건 곧 타자가 머릿속으로 골라야 하는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의미.
이런 이유로 삼진만 잡는 피칭을 하고자 한다면 투수는 타자를 절대 쉽게 잡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포커 게임.
아슬아슬한 승부, 언제든 자신이 질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피칭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 어느 투수도 삼진만 잡는 피칭을 하지 않는다.
또라이가 아닌 이상.
그래서 이진용을 무수히 많은 이들이 또라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젠장!”
그리고 지금 새로운 또라이가 탄생했다.
‘이걸로 두 타자 연속 삼진.’
이호찬.
그는 7회 초 시작과 함께 이호찬은 이진용에게 거듭 스플리터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두 타자 상대로 던진 7구 중에 스플리터만 5구를 던졌다.’
이진용이나 할 법한 또라이 짓.
제아무리 이진용이 좋은 스플리터를 가졌다고 해도, 비효율적이고 비상적인 일이니까.
그럼에도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부터 레인저스 애들도 눈치 깠겠지.’
승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
쉽게 말하면 미끼였다.
‘스플리터 그리고 패스트볼, 두 가지만 간다. 이렇게까지 선택지를 좁혀줬으면 노려야지.’
이진용을 상대하는 레인저스 타자들에게 선택지를 두 가지로 좁혀줌으로써, 이진용을 공략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더불어 그건 도발이기도 했다.
프로라면 발끈할 수밖에 없는 도발.
‘아무렴. 자존심이 있으면 노려야지.’
그 도발 역시 노림수였다.
삼진을 잡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건 결국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이며,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미친 짓이었다.
수능 객관식 문제의 선택지를 2개로 줄여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미친 짓.
수험생 입장에서는 좋다기보다는 오히려 눈살이 찌푸릴 만큼 미친 짓.
때문에 그 효과는 곧바로 나왔다.
찌릿!
7회 초 타석에 선 레인저스의 4번 타자, 용병 타자인 애덤이 타석에 서자마자 포수인 이호찬을 아주 세게 노려봤다.
퇫!
심지어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제 옆에다가 침까지 뱉었다.
타자가 주심에게 경고를 듣지 않는 수준에서 보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노의 표현.
그 표현에 이호찬은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졌으니까.
이제부터 레인저스 타자들은 이진용이 던지는 공에 무조건 배트를 움직일 것이다.
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고, 그건 곧 이진용에게 있어 헛스윙을 이끌어낼 기회가 될 것이다.
정말 끝내주는 건 이런 상황에 처한 조금의 위기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운드 위에는 그가 있었으니까.
‘자, 그럼 삼진 사냥 시작하자.’
이 순간 이호찬은 악셀을 밟기 시작했다.
2.
8회 초 2아웃 상황.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진용이 8회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는 순간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엔젤스 팬들이 양손을 높게 들며 소리쳤다.
“호우!”
그 외침을 내지르는 엔젤스 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진용의 경기는 그랬다.
“여섯 타자 연속 삼진이다!”
“캬! 이호우 경기는 진짜 보는 맛이 달라.”
“다른 정도가 아니지. 다른 놈들하고 다르게, 이호우 경기는 무조건 이기잖아!”
“이호우 때문에 내가 엔젤스 야구를 본다, 야구를 봐.”
엔젤스 팬들은 이진용의 경기를 보면서 승패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 때문에 손에 땀을 쥐지 않았다.
대신 콘서트장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보듯 정신없이 즐기고, 응원만 할 뿐!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8회 끝이네. 이제 1이닝만 남았네?”
“아, 아쉽다. 어차피 금요일이라서 할 것도 없는데.”
“진짜 이진용이 12회까지 던지는 거 하나 보고 싶다.”
“악담을 해라, 악담을.”
1회부터 8회까지, 엔젤스 팬들은 이진용의 피칭에 환호성을 내지르기 바빴다.
“자, 그럼 마지막 호우 준비해야지.”
“아, 나 목 좀 풀고 올게.”
“나도 목 좀 풀고 와야지.”
“난 이럴 줄 알고 날달걀 가져왔지.”
“날달걀? 미친 또라이······ 아니, 이진용 같은 놈!”
목이 쉴 정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는 이들에게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8회가 끝난 후에야, 이제 마지막 9회를 앞둔 상황에 이르러서야 잠실구장의 관중들은 숨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호우, 7회부터 여섯 타자 연속 삼진 잡았잖아? 그럼 오늘 이진용 삼진 몇 개째지?”
“어디 보자, 잠깐 폰 좀 보고······ 열다섯 개네.”
“와, 역시 이호우! 장난 아니네. 한 게임에 탈삼진 15개라니, 완전 김진호네, 김진호야!”
“에이, 김진호는 아니지. 생긴 것도 다른데.”
“김진호가 잘생겼지.”
“뭔 소리야? 김진호는 그냥 덩치만 큰 놈이고 이진용은 작고 귀엽게 생겼지.”
“뭐? 야, 김진호가 얼마나 야성미 넘치게 생겼는데! 김진호가 훨씬 더 낫지!”
“이진용이 낫지!”
“진짜 웃기지도 않는 걸로 싸우네. 이진용하고 김진호가 들었으면 어처구니가 없었을 거다. 남들이 자기 둘 외모 가지고 싸우는 걸 보고. 그런 우습지도 않는 짓을 왜 하냐고.”
“아니, 그냥 둘 다 구리지 않나?”
그리고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마저 할 수 있게 된 여유 속에서 슬금슬금 눈치채기 시작했다.
“야, 잠깐. 한국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 몇 개지?”
“응? 20개 아니야?”
“20개는 메이저리그 기록이고, 한국은 17개일 걸?”
“누가 세웠는데?”
“유현이.”
“유현이? 누구 상대로?”
“누구긴 우리지.”
“아! 응? 잠깐.”
지금 이 콘서트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럼 9회에 삼진 2개만 더 잡으면 타이 신기록이네? 그리고 3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면······.”
“신기록?”
“신기록!”
그 순간 더 이상 잠실구장은 콘서트장이 될 수가 없었다.
꿀꺽!
긴장감과 초조함으로 가득 찬 무대가 될 뿐.
3.
그런 게 있다.
‘미치겠다.’
‘빌어먹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이야······.’
지금 코앞까지 악몽이 다가왔음에도, 그 사실을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
가위에 눌렸을 때, 어떻게든 소리를 질러서라도 깨어나야 하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
지금 레인저스의 분위기는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왜 아무도 말 안 하지? 나라도 말해야 하나?’
‘이대로 그냥 가야 하나? 하지만 이대로 가면······.’
레인저스 선수들은 다 알고 있었다.
7회 초부터 이진용이 본격적으로 그리고 아주 적극적으로 탈삼진 사냥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시작된 탈삼진 사냥에 여섯 명의 타자가 연달아 삼진을 당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현재 이진용이 8회까지 15개의 삼진을 잡은 상황에서 1이닝을, 세 타자를 더 상대할 기회가 남았다는 사실을.
‘젠장! 노히트 안 당한다고 좋아했는데, 더 좆같은 걸 당하게 생겼네······.’
‘아, 좆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 경기 탈삼진 18개, 한국프로야구 역사에는 존재하되, 정규이닝에서는 나온 적 없는 기록의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제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말을 꺼내면 부담만 커지겠지?’
‘말을 꺼내면 뭐해, 머리 맞댄다고 답이 나올 상황이 아닌데.’
정확히 말하면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말해봤자 선수들이 느끼게 되는 건 암담함과 부담감뿐, 말한다고 해서 무언가 확실한 대답이 나오거나, 상황이 달라질 리가 없었으니까.
‘아니, 말해봤자 속만 쓰리지.’
더 최악은 이미 다들 짐작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한 나름의 답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진용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삼진을 당하지 않기 위한 타격을 하는 것이다.
물론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격을 하는 건 타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만약 지금 레인저스 타자들이 하고자 하는 건, 안타나 볼넷으로 출루를 하기 위해 삼진을 피하는 타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땅볼이나 뜬공으로 아웃이 되기를 바라는 타격이라는 점이었다.
‘씨발.’
그건 굴욕이자 치욕이었다.
땅볼과 뜬공이 되기를 바라면서 타석에 선다는 건.
“씨발.”
“응? 뭐라고?”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절로 욕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의 일.
때문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침묵 속에서 8회 말이 끝났다.
5.
9회 초.
이제는 마지막 이닝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그 이닝.
이 게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진용이 마운드 위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진용을 향한 환호성은 없었다.
이제까지 매 이닝, 이진용이 나올 때마다 내뱉던 잠실구장의 괴성은 들리지 않았다.
꿀꺽!
대신 모두가 숨죽인 채, 긴장한 채 이진용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서 이진용은 미소를 지었다.
– 이 느낌이 좋다니까.
그리고 김진호도 미소를 지었다.
– 대기록을 앞두고 있을 때의 이 느낌. 내 공 하나하나에 모두가 숨죽이는 이 느낌.
그 미소와 함께 김진호는 떠올렸다.
– 그때도 이랬지. 양키스타디움, 2004년 그곳에서 양키스를 상대했을 때.
과거 자신이 마운드에 서던 시절,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한 경기 20탈삼진을 기록하던 날을.
– 8회까지 18개의 탈삼진을 잡은 상태에서 9회에 올라왔지.
그날 그는 8회에 무려 18개의 탈삼진을 잡은 채 9회를 맞이했었다.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매 이닝 최소 2개 이상의 탈삼진을 잡아야만 기록할 수 있는 엄청난 기록이었으니까.
– 2개를 잡으면 메이저리그 한 게임 최다 탈삼진 기록과 타이 기록, 3개를 잡으면 메이저리그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수 있는 상황.
더욱이 메이저리그 한 게임 최다 탈삼진은 20개.
당시 김진호는 그 이상인 21개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 경기를 전 세계 메이저리그 팬들이 그 경기에 집중했었다.
당장 이진용만 해도 당시 실시간으로 그 경기를 보고 있었다.
당시 김진호의 경기는 그야말로 국가가 즐겨 보는 경기였으니까.
그리고 그 경기에서 김진호는 9회에 20개의 탈삼진을 잡으면서 메이저리그의 신기록 타이 보유자가 됐다.
대한민국이 열광했었다.
다음 날 스포츠 신문은 물론, 그냥 신문에서조차 김진호의 기록을 대서특필했을 정도!
– 정말 최악의 날이었어. 최고의 기분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날이었으니까.
그러나 김진호에게 있어 그날은 그다지 좋은 날이 아니었다.
– 단 하나였어. 내가 잡은 수천 개의 탈삼진, 개중 하나만 더 잡으면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오롯한 것을 남길 수 있었는데, 그랬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지. 다른 누구 탓도 아니었어. 그날 매시니 대신 마스크를 썼던 몰리나는 애송이 주제에 어마어마한 리드를 보여줬었으니까. 그저 내가 못해서. 정말 딱 하나를 잡지 못해서 생긴 후회였지.
최고들 중 한 명이 아닌 유일무이한 최고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날이었으니까.
– 그 후에는 비슷한 기회조차 드물었지. 아니, 무언가 감이 오려고 할 무렵에 그냥 모든 게 끝났지.
그것은 후회이자, 미련이 되었다.
때문에 김진호는 이 순간 분명하게 말했다.
– 그러니까 너도 똑같이 고생 좀 하기를 빈다. 그냥 망해버려라!
그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글러브로 입가에 지은 미소를 가린 채 말했다.
“난 김진호 선수가 저주할 때가 제일 좋더라.”
그 말과 함께 이진용이 이호찬을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진용은 김진호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저주를 거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처음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다.
김진호는 만족하지 말라고 했고, 정상에 오르는 순간 그 정상을 뛰어넘을 각오를 하라고 했다.
더 나아가 준비하라고 했다.
‘김진호 선수 조언 대로 이런 날을 위해 이미 준비를 했지.’
괜히 이런 날이 닥치면 그때 가서 허겁지겁 무언가를 말고, 오히려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라고.
당연히 이진용은 기꺼이 준비를 했다.
‘삼진을 잡는 건, 결국 수싸움이다. 상대를 흔들고 그 허를 찔러야 잡을 수 있는 것.’
삼진을 잡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허를 찌르는 것이다.
대개 그 허를 찌르기 위해서는 상대가 예상치도 못하는 공을 던지고는 한다.
의식 밖의 공.
‘그러나 지금 내가 던질 공은 뻔하지.’
하지만 이진용은 지금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두 개의 공만을 던질 수 있다.
허를 찌르는 공은 없다.
그렇다면?
‘그러니까 상대를 흔든다.’
상대를 흔들어서 빈틈 투성이로 만드는 수밖에!
그것을 위해 이진용이 이미 예전에 준비한 것이 있었다.
‘사인 없이 간다.’
노 사인.
그것이 이진용이 준비한 것, 정상이 보이는 순간 정상을 뛰어넘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한 수였다.
“플레이 볼!”
그렇게 9회 초가 시작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