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1
4화. 입단 (1).
1.
[23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삼자범퇴 보너스로 1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6타자 연속 범타 처리에 성공하셨습니다. 9타자 연속 범타에 성공하시면 보너스 포인트가 적용됩니다.] [2이닝 무실점 피칭에 성공하셨습니다.]“호우!”
– 아오!
2회 초, 이진용이 백팀의 6번 타자를 잡는 순간 그는 마운드 위에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 미치겠네. 이런 병신 투수 하나한테 안타 하나 못 뽑아내는 게 말이 돼?
반면 김진호는 그런 이진용을 향해 푸념을 내뱉었다.
물론 푸념을 내뱉는 김진호의 입가에는 깊은 미소가 그어져 있었다.
그 미소가 김진호가 내뱉는 말이 진심이 아님을, 그 역시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말해줬다.
반면 기쁨을 표출하는 그 둘과 다르게 좌중의 분위기는 차갑게 그리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저 똥볼이나 던지는 투수를 상대로 6타자가 전부 범타로 물러났다고?’
‘사회인야구 수준의 선수를 상대로 출루를 한 명도 못 했다고?’
패스트볼 평균 구속 110대 중후반.
사회인야구에서나 간신히 통할 법한, 아니 요즘 수준이 높아진 사회인야구에서도 통하지 않을 법한 구속 앞에서 나름 프로를 노리고 그라운드에 등장한 타자들이 전부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투수가 보여준 구질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두 가지에 불과했다.
“이번 지원자들은 전부 맛탱이가 간 모양이군.”
“저런 공도 못 치면 프로는커녕, 그냥 야구를 포기해야지.”
그 사실 앞에서 트라이아웃을 지켜보던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은 혀를 찼다.
몇 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볼 건 없겠군.”
“이런 걸 보려고 먹을 것도 없는 고양에 내려오다니, 에잉!”
더 이상 경기를 보는 것이 시간 낭비를 떠나 인생 낭비라고 생각한 이들이었다.
“흠.”
오직 단 한 명의 스카우트는 좌중의 반응 속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이진용이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순간, 그제야 쓰고 있던 안경을 벗은 후에 새롭게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안경을 쓰면서 중얼중얼 혼잣말과 함께 벤치로 돌아가는 이진용의 모습을 바라봤다.
‘완벽한 체인지업이다.’
그의 이름은 변형채.
서울 엔젤스의 스카우트인 그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전력분석팀 또는 스카우트팀에서 일을 하던 실력자였다.
능력도 인정받고, 능력만큼 대우받는 실력자!
그런 그가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한 한국프로야구 구단의 스카우트이자, 전력분석팀의 일원이 된 건 다름 아니라 한 여인 때문이었다.
구은서.
그녀는 2016년 엔젤스의 운영팀장에 자리에 앉자마자 변형채를 영입하고자 했고, 변형채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 그는 당연히 놓치지 않았다.
‘저 정도 수준의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체인지업을 나름 주무기로 쓸 수 있는 투수와 비교해도 부족할 게 없다. 한국프로야구 수준에서는······ 장담하는데 저 정도 체인지업을 가진 투수는 각 팀에 두 명 이상 없지.’
이진용, 그가 가진 체인지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구속이 느린 투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가진 구속이 느린 투수로군.’
물론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뭐, 여기까지가 한계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110킬로미터 중후반 대의 패스트볼 구속으로는 프로 레벨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지.’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고, 가늠했다.
그렇게 그는 곧바로 분석을 마쳤다.
‘정범석 감독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저 투수를 영입할 일은 없겠군. 반대로 그를 영입한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이겠고.’
그 분석을 끝으로 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좋은 체인지업이군.’
김정호 투수코치.
고양 스타즈의 투수코치 중 한 명인 그는 사실 독립구단에 있을 법한 인물이 아니었다.
현역 시절 한국프로야구 무대에서 통산 78승을 거두었으며, 은퇴 이후에도 7년 동안 프로구단의 투수코치로 활약했던 그는 모든 프로구단이 기꺼이 모셔갈 만한 실력과 경력을 가진 이였으니까.
그런 그가 고양 스타즈의 투수코치가 된 건 일종의 재능 기부이자, 봉사였다.
한국프로야구의 보다 큰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기회를 받지 못한 원석을 닦는다는 일념 하에 이루어진 봉사.
당연히 김정호 투수코치는 이 순간 이진용이란 투수가 가진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심장도 튼튼해.’
이진용, 그는 날카로운 송곳 하나를 가지고는 맹수의 아가리를 향해 몸을 던진 후에 그 송곳으로 상처를 주는 투수였다.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타입의 투수.
때문에 김정호 투수코치는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구속이 좀만 더 빨랐다면······.’
만약 이진용의 구속이 130대 중반만 나오더라도 당장 프로구단들이 그에게 접촉하고도 남았겠지만, 반대로 지금 이진용이 이 이상 구속을 보여주리란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체격이 좀 더 좋았으면 기대라도 하겠는데······.’
더욱이 부족한 피지컬은 기대감을 품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프로스포츠가 그러하겠지만, 투수에게 피지컬은 그 무척 중요하다.
구속이 느려도 피지컬이 좋으면 구단과 코칭스태프는 기꺼이 투자를 해본다.
일단 피지컬이 좋으면 근육량을 늘리거나, 체중을 늘리거나, 새로운 투구폼을 창작하는 식으로 구속 증가를 꾀할 수 있으니까.
달리 말하면 피지컬이 부족한 투수는 약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구속 증가를 꾀할 수 없다.
‘이미 저게 한계다. 아니, 저기서 120대 근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게 대단한 거지.’
심지어 이진용은 투구폼만 보더라도 이미 온몸으로 구속을 쥐어짜내는 타입이었다.
만약 그가 일반적인 투구폼으로,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공을 던졌다면 구속은 100킬로미터를 간신히 넘겼을 터.
‘이진용의 테스트는 여기까지겠군.’
더불어 이진용에게는 더 이상 활약할 기회조차 없었다.
지금 청백전은 어디까지나 테스트를 위한 시합, 당연히 이진용 다음에도 테스트를 봐야 할 투수들이 있었다.
무조건 9이닝 안에 끝내야 하는 경기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한 투수에게 오랜 이닝을 맡길 순 없었다.
‘3회에는······.’
당연히 김정호 투수코치는 3회부터는 다른 투수를 올릴 생각이었다.
“김 코치.”
“감독님?”
정범석 감독이 그에게 다가와 요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만약 이진용 본인이 원한다면 3회에도 올리도록.”
그 요구에 김정호 투수코치는 별다른 반문을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 후 정범석 감독이 다시 벤치를 나갔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진용이 다가왔다.
다가오는 이진용은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진용 선수.”
김정호 투수코치가 그런 그를 불렀다.
“예? 아, 예! 부르셨습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이진용이 갑자기 놀라며 반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김정호 투수코치가 잠깐 고개를 갸웃한 후에 질문을 던졌다.
“3회에도 던지겠나?”
그 질문을 던졌을 때 김정호 투수코치는 이진용이 잠시 고민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이진용이었다면 이 제안을 거절했으리라 생각했다.
이진용이 좋은 체인지업으로 멋진 결과를 만든 건 맞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법은 영원하지 못한 법.
‘3회에 올라올 백팀 타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대책을 세워뒀겠지.’
하물며 이곳은 시험의 무대다.
나름 모두가 각오를 머금고 서있는 무대.
1회와 2회, 이진용을 상대한 여섯 명의 타자들이 기습에 당했다면, 그 다음에 나올 7번부터 9번 타자들은 이제는 쉽사리 기습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진용이 가진 레퍼토리가 더 있지 않은 이상, 그가 힘을 숨긴 게 아닌 이상 다음에 올라오는 건 사실상 파멸을 자처하는 꼴이 될 것이다.
‘감독님도 그걸 보고 싶어서 3회를 요구하는 거겠지.’
그게 정범석 감독이 보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이진용에게 새로운 레퍼토리가 있는지, 그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런 김정호 투수코치에게 이진용은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정말 올라가도 됩니까?”
“응?”
“정말 3회에 올라가도 되는 겁니까?”
이진용, 그는 이 순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3.
– 더, 더, 더!
김진호.
이진용보다 먼저 마운드에 서있던 그는 마치 주차 안내를 하듯 이진용을 향해 휙휙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진용이 마운드에 서는 순간 그는 말했다.
– 오케이. 저승행 열차 탑승 완료. 이제 넌 끝이다.
그 말과 함께 김진호가 좌중을 둘러봤다.
청팀 그리고 백팀, 그 두 팀의 벤치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
그리고 관중석에 있는 선수 친구, 가족들, 스카우트 그 외의 언론 관계자들의 시선.
그 모든 시선이 이진용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 기분이 어때?
그건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시선 속에 이진용을 향해 호의를 품은 시선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마치 현미경처럼, 그 시선들은 어떻게든 이진용을 알아내기 위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송곳처럼 뾰족했고, 칼처럼 날카로웠다.
“썩 좋진 않네요.”
당연히 이진용도 이런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프로 무대에 가면 이것보다 더 심하다. 메이저리그 무대는······ 정신이 나가지. 그래서? 왜 이런 곳에 제 발로 걸어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용은 망설임 없이 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번 이닝마저 무이닝으로 끝내면 포인트가 얼만데요? 이 기회를 고작 이런 시선이 두렵다고 포기하면 그게 병신이죠.”
원하는 게 있으니까.
– 하하!
그 사실에 김진호는 밝게 웃었다.
– 다행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심장을 키우는 것만큼은 못하는데 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런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여전히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른 거나 가르쳐주세요. 여기서 어떻게 합니까? 이제부터는 타자들도 날 얕보진 않을 텐데요?”
1회 초에는 기습이 통했다. 타자들은 이진용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얕봤으니까.
2회 초에 역시 1회 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자들은 경계심을 품되, 이진용이 던진 체인지업의 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승부를 했으니까.
하지만 3회 초에는 더 이상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3회 초에 타석에 오르게 되는 7번 이후의 타자들은 이진용이 체인지업으로 지금 재미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더 나아가 만약 이진용이 한 명이라도 출루를 시키게 되면, 그는 3회에 어떻게든 1번 타자와 승부를 하게 된다.
이미 한 번 승부를 본 타자와 승부를 하게 된다는 의미.
그런 타자에게 기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진용은 이미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냈으니까.
– 밑천을 드러낸 다음에 해야 할 건 하나지.
“뭐죠?”
– 판을 개판으로 만드는 것. 안 된다 싶으면 파투라도 내야지. 안 그래?
김진호는 잠시 포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 선두 타자를 상대할 때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 하나씩 던져.
“제 커브랑 슬라이더는 거의 무의미한데요?”
– 포수 미트 밖으로 나가도 좋아. 2볼을 준다는 마음으로 그냥 던져. 어차피 넌 고민할 필요 없어. 고민은 지금 네가 상대할 타자들이 아주 열심히 해줄 테니까.
그 조언에 이진용은 더 이상 김진호에게 조언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포수를 마운드로 불렀다.
4.
공 좀 던질 줄 아는 이들에게 변화구를 던지는 것이란 어렵지 않다.
변화구란 지극히 과학적인 이론의 결과물이니까.
오히려 변화가 없는 공을 던지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흔히 직구라고 표현하는 패스트볼을 패스트볼답게 던지는 투수는 실제로 많지 않은 이유다.
정말 직구라는 표현 그대로 총알처럼 곧게 날아가는 직구를 던지는 건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능이니까.
때문에 변화구를 던진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그 변화구를 쓸 수 있는 무기로 만드는 것!
총도 조준을 잘하는 사람 손에 들어가야 의미가 있듯이 변화구도 다룰 줄 알아야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진용이 가진 슬라이더와 커브, 두 개의 구질은 결코 무기가 아니었다.
“헙!”
포수가 미트로 받을 수 없을 정도.
무기라기보다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쇼에서 사용될 법한 도구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 정도 효과는 있었다.
“응?”
쇼에서 사용되는 도구답게,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슬라이더?”
“슬라이더를 섞겠다는 건가?”
동시에 관객들은 이미 봤다.
“구속은 느리지만 변화구 컨트롤이 남다른 녀석이야. 체인지업만으로 여섯 타자를 범타로 처리했다고.”
마운드의 투수가 이미 체인지업이란 강력한 무기를 마음껏 선보였던 광경을.
더 나아가 이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떠올렸다.
“구속도 안 되는 투수가 트라이아웃에 도전했다면, 구속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지.”
그저 단순히 자기 기량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프로야구라는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도전권을 얻으려 덤벼드는 자들의 투기장이라는 것을.
이곳에서의 패배는 사실상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미치겠군.’
관객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 무대에서 직접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가 된 타자들의 머릿속은 이 상황에 더 흠뻑 취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슬라이더도 던질 줄 아는 건가? 설마 다른 구질도 있나? 젠장, 슬라이더도 잘 던지면 골치 아픈데······.’
너무 취해 정신이 나갈 정도로.
– 타자가 흔들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군. 아마 저 녀석 눈에는 패스트볼도 포크볼처럼 보일 거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이진용은 아껴둔 카드를 기꺼이 꺼냈다.
‘슬라이더에 신경이 팔린 상황에서 존에 들어오는 밋밋한 패스트볼이라면 당연히 배트가 나오겠지. 그런 상황에서 체인지업은 무조건 먹힌다. 문제는 한가운데 몰리면 안 된다는 것. 몸쪽으로 제대로 붙여야 한다는 것.’
“심기일전.”
완벽하게 제구가 되는 체인지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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