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19
1.
올스타전이 끝나면 당연히 후반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되는 후반기 이야기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이야기가 되고는 한다.
– 올해 우승은 돌핀스다!
– 데블스 최근 기세 보면 데블스가 2년 연속 우승할 듯.
– 치타스가 당연히 우승이지!
이제 남은 약 두 달, 그 동안의 결과에 따라서 가을야구 티켓의 주인들이 가려지기에.
그렇기에 여전히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남은 팀과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치열하게 자신들의 승리를 자신하고 동시에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2017시즌은 달랐다.
– 다들 지랄 ㄴㄴ해.
– 응, 올해는 엔젤스 우승!
엔젤스가 있었으니까.
– 호우도 못 하는 놈들이 ㅋㅋㅋㅋ
– 호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이진용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엔젤스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니까.
– 가을 호우가 끝내주는데, 늬 팀엔 호우 없지?
– 아, 호우가 가을야구에 정말 좋은데, 어떻게 다른 팀 팬들에게 말해줄 수가 없네.
더욱이 이진용은 그 누구보다 많은 이닝과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투수였다.
엔젤스가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다면 사실상 한국시리즈에서 엔젤스를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
– 한국시리즈에서 이진용이 최소 3승은 해줄 듯.
– ㅇㅇ 오른손으로 1승, 왼손으로 1승, 양손으로 1승!
이진용이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한다는 엔젤스 팬들의 우스갯소리가 다른 팀 팬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 아오, 빡쳐!
– 내가 이번 시즌 끝나면 이진용 메이저리그 보내기 운동한다.
ㄴ 진짜 모든 구단 팬이 모여서 이진용 그냥 메이저리그로 보내기 운동해야 할 것 같다.
이진용이면 정말 그럴 것 같았으니까.
– 누가 이호우 좀 막을 수 없나?
– 이제 막을 수 있는 건 한 명밖에 없지.
그게 이유였다.
– 유현.
– 그래, 이제 유현뿐이야!
7월 18일, 대전구장에서 치러지는 호크스 대 엔젤스의 주중 3연전을 모두가 주목하는 이유.
그리고 7월 18일의 날이 밝았다.
2.
7월 18일,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던 기자들이 준비해놓은 기사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유현과 이진용에 대한 이야기로 온라인 세상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을 정도.
당연히 엔젤스 선수단도 그 기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휴, 기사 제목 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리고 기사를 본 이들은 혀를 찼다.
“너무한 거 아니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진용이 사람이라도 죽였는지 알겠네.”
“아니, 야구 잘하는 게 죄인가? 뭐, 진용이가 야구를 인간 같지 않게 잘하긴 하지만······.”
사실 선수들은 기자들의 기사 제목이 자극적이더라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기자들과 선수들은 가까운 사이이니까.
실제로 선수들은 팬보다 기자들 얼굴을 더 자주 본다.
기자가 선수들 라커룸에 들어오면 이야기를 나누지만, 팬이 선수들 라커룸에 들어오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지 않는가?
자연스레 선수들은 기자들의 사정을, 선수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성적을 만들 듯이 기자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보다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기사를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도가 있지, 이렇게 선수를 흔들다니······.”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하네. 진용이가 음주를 했어, 도박을 했어, 약을 했어? 뭐 좀 또라이 같은 짓을 했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참······.”
하지만 이진용을 향한 이번 기사들은 그 정도를 이미 벗어나도 크게 벗어난 상황이었다.
“아니, 안찬섭이 도박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안찬섭 때는 오히려 커버 쳐주기 바빴지. 나 아직도 기억한다니까? 이형세 기자가 안찬섭이 저지른 죄는 야구로 갚아야 한다고. 씨발 자기 벌어먹으려고 야구하는 게 무슨 죄를 갚는 거야?”
이진용을 한국프로야구를 망치는 괴물로 만드는 수준을 넘어, 이진용이 활약하는 것이 한국프로야구의 문제인 것처럼 상황을 꾸미고 있었다.
물론 팬들의 생각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이진용의 활약에 기뻐하는 야구팬들도 적지 않았다.
당장 올스타전 때만 해도 이진용의 사인을 받기 위해 팬들이 줄을 선 것이 그 증거다.
“여하튼 논란은 다 기자들이 만든다니까.”
그리고 그게 언론이 무서운 이유였다.
언론이 작심하고 움직이면 여론마저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니까.
“아니, 그보다 이거는 좀 위험한 거 아니야? 멘탈이 나갈 것 같은데?”
“진용이 녀석 스마트폰 보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때문에 몇몇 선수들은 이진용에 대한 본격적인 케어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상관없어.”
이호찬, 조금 전 이진용의 연습피칭을 받아주며 땀으로 젖은 유니폼 대신 새로운 유니폼을 꺼내입으며 말했다.
“상관없다고요?”
그런 그의 말이었기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그래.”
“호찬 선배, 그게 무슨 의미죠?”
“진용이 녀석한테는 굳이 그런 거 안 해줘도 돼.”
“예?”
“기사 읽고 실실 쪼개면서 거기에 리플다는 녀석한테 케어 같은 게 필요할 리 없잖아?”
그 말에 선수들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진용이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으니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나 이호찬은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기사 내용 같은 건 솔직히 귀에도,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진용에 대한 세간의 반응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이호찬은 장담할 수 있었다.
‘오늘 어쩌면······ 이진용은 말도 안 되는 경기를 만들어낼지도 몰라.’
오늘 경기가 끝난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기삿거리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진용이 녀석은 진짜 괴물이다.’
이진용이 괴물이란 사실에 더 이상 의문이나, 논란이나,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테니까.
3.
프로란 그 무엇보다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불가피한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경기는 시작되며 선수는 경기장에 서야 한다.
7월 18일 화요일도 그랬다.
맑음을 넘어 무더운 날씨, 오후 6시가 됐음에도 열기가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더욱 후덥지근해진 대전구장에 호크스와 엔젤스 선수들은 제 자리에 서있었다.
그렇게 주중 3연전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웃웃!”
그 첫 경기의 시작을 알린 건 유현, 그가 만들어낸 세 타자 연속 삼진이었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었고, 놀라울 것도 없었다.
“어우 씨발······ 저 서클체인지업 봐. 그냥 사라지네, 사라져.”
“우형이가 꼼짝을 못 하네.”
유현.
한국프로야구를 평정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도 인정할 만한 성공을 거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좌완투수인 그에게 있어서 메이저리그도 아니고 한국프로야구 수준의 타자 세 명을 상대로 삼진 세 개를 잡는 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 유현 선수 1회를 완벽하게 시작하네요.
– 유현 선수다운 피칭이었죠. 빠른 공으로 볼 카운트를 만든 후에 서클체인지업으로 낚는 것. 더욱이 메이저리그에 있는 동안 유현 선수의 서클체인지업은 더 발전한 게 보이네요. 아마 엔젤스 타자들은 공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러한 사실은 유현의 뒤를 이어 올라오는 투수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 이진용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이진용.
왼손에 갈색 글러브를 낀 채 마운드에 등장한 그 역시 1회 말에 세 타자를 상대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우웃!”
그리고 세 타자를 상대로 세 개의 삼진을 얻어냈다.
최고 구속은 141킬로미터, 결정구는 스플리터.
“저 새끼 스플리터는 도무지 봐도 봐도 좆같아.”
“눈탱이에 공 맞는 기분이라니까.”
이 사실 역시 대단할 것 없고, 놀랄 것 없었다.
탈삼진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이진용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두 투수는 2회에도 1회와 비슷한 피칭을 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삼진 아웃! 유현 선수가 2이닝만에 벌써 다섯 개의 탈삼진을 적립합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헛스윙 삼진! 이진용 선수 역시 대단하네요!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벌써 5개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은 2회에도 두 개의 탈삼진을 포함해 단 한 명의 출루 없이 퍼펙트 페이스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관중들은 놀라는 대신 오히려 예상했던 것이 왔다는 듯, 무덤덤하게 경기를 바라봤다.
“역시 둘이 붙으니 이렇게 되네.”
“이거 답이 없네. 최소한 7회까지는 무조건 무실점으로 갈 것 같네.”
“무실점 정도가 아니라 7회까지 퍼펙트게임이 될 것 같은데?”
당연히 3회에 유현이 등장해 1개의 탈삼진을 포함해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을 때도 놀라는 이는 없었다.
“응?”
“어?”
하지만 3회 말이 됐을 때 분위기가 달라졌다.
“거, 검은 거! 검은 거!”
“나왔다 블랙 호우!”
이진용, 그가 오른손에 글러브를 낀 채 등장했다.
4.
이진용이 오른손에 검은색 글러브를 끼고 등장하는 순간 호크스 선수단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진짜 꺼내 드는군.’
‘정말 좌완 피칭을 할 셈인가?’
물론 이진용이 왼손을 꺼내 드리란 것은 호크스도 나름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올스타전에서 보여준 이진용의 왼손 피칭은 충분히 실전에서 쓸 수준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대비는 하지 못했다.
‘어떤 공을 던질까?’
‘어떤 피칭을 할 속셈이지?’
자료가 없었으니까.
일단 이진용이 왼손을 꺼내든 건 올스타전 무대가 처음이었으며 그조차도 진면목을 드러낸 게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진용은 올스타전 무대를 통해 자신의 왼손을 가다듬고 있었다.
즉, 올스타전 무대는 예열에 불과하다는 의미.
실전인 지금 이 무대에서 이진용의 왼손이 얼마나 뜨거운 것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몰랐다.
‘뭐든 간에 방심해선 안 돼.’
섣불리 짐작할 수도 없었다.
‘저놈은 엄청난 또라이다. 120짜리 공을 던져도 방심할 수 없는 놈이야.’
상대는 그 누구도 아닌 이진용.
마운드 위에서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할 것 없고, 무슨 짓이라도 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까.
물론 그 사실에 마냥 겁만 먹는다면 프로 자격이 없다.
아니, 이진용의 왼손은 호크스 타자들에게 기회였다.
“이진용의 왼손은 오히려 기회다.”
호크스의 타격코치의 말대로 이진용의 오른손은 솔직히 상대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왼손은 다르다.
“올스타전에서 본 것처럼 이진용의 왼손 구속은 오른손보다 느리니까.”
다른 걸 떠나서 왼손으로 던지는 공이 오른손보다 느리다는 것.
‘이건 기회야.’
3회 말, 이진용을 상대하기 위해 왼쪽 타석에 서는 7번 타자 정호영의 생각 역시 그랬다.
‘올스타전에서 봤을 때 구속은 기껏해야 130대 초반이었어.’
좌타자인 그에게 좌완투수의 등장은 껄끄러운 일인 건 맞다.
정호영의 좌완투수 상대로 성적이 좋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정호영에게 140대 초반의 공을 던지는 이진용의 오른손과 130대 초반의 공을 던지는 왼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정호영은 망설임 없이 왼손을 고를 것이다.
정보의 부재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 정도 공을 보면 칠 수 있다.’
130대 공은 굳이 투구폼이나 연구가 필요 없이 처음 보는 공도 보이면 칠 수 있어야, 그래야 프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진용 왼손이면 혹시 모르지 않을까?”
“올스타전에 실점했으니까, 여기서도 실점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지.”
“어휴, 긴장되네.”
왼손이면 혹시 모른다!
그 사실에 대한 긴장감이 그라운드를 넘어 관중석 전체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이진용 역시 긴장한 듯 쉽사리 공을 던지지 못한 채 이제는 오른손에 끼고 있는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추스르기 위한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보였다.
“저것 봐. 이진용도 긴장한 모양이야.”
“실전에서 좌완 피칭이라니, 긴장하는 게 당연하지.”
“저기서 긴장을 안 하면 진짜 리얼 또라이인 거지.”
물론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주문을 외우는 일 같은 게 이진용에게 있을 리 없었다.
“이번에는 질문 안 해요?”
– 무슨 질문?
“자신 없냐고 질문하셔야죠?”
그 말에 김진호가 피식 웃었다.
– 질 자신이 없다고? 야, 그만 좀 써먹어라. 지가 만든 말도 아니면서 아주 그냥 우려먹네. 이제는 지겹다, 지겨워!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이 대답 대신 눈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김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당연히 없어야지.
말을 하면서 김진호는 이진용이 바라보는 곳, 타석에 선 타자를 바라보았다.
–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붙어서 만들어줬는데. 그리고······.
그 말을 하던 김진호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올스타전이 끝난 그 날 밤 이진용이 돌린 황금빛 룰렛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 장면을 떠올린 김진호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 이 게임 완전히 쓰레기 게임이니까.
그 말에 이진용의 대답 대신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렸다.
그 알림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