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23
1.
전설에 선악은 없다.
제아무리 사악한 괴물이든, 제아무리 착한 영웅이든 결국 세상을 놀라게 한 것만이 그리고 이겨서 살아남은 것만이 전설이 될 뿐.
이진용은 그렇게 전설이 됐다.
더 이상의 반문은 없었다.
유현과의 대결은 누가 보더라도 승자와 패자가 명확한 경기였으며, 그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서는 그동안 이진용을 미친 듯이 두드리던 언론도 더 이상 이진용을 두드릴 수 없었다.
이진용은 그렇게 언터쳐블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진용이 한 단계 더 뛰어넘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대전 시내 야경이 보이는 호텔방.
그 호텔방 안에 이진용이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런 이진용의 앞에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다이아몬드 룰렛이 번쩍이고 있었다.
– 볼 마스터
– 스킬 마스터
– 파이어볼러
– 스킬 [수호신]
– 스킬 [에이스 킬러]
다이아몬드 룰렛에 있는 다섯 개의 칸, 그 칸칸에 박힌 것들이 이진용의 눈에 들어왔다.
그때 이진용이 말했다.
“안 봐요?”
그 말과 함께 이진용이 고개를 돌리자, 태블릿PC을 통해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고 있는 김진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김진호는 이진용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야구 중계 볼륨이 너무 큰 탓이었다.
“김진호 선수, 룰렛 돌리는 거 안 보실 거예요?”
이진용이 이내 목소리를 좀 더 높여서 말을 건넨 후에야 김진호가 대답했다.
– 뭐하러 봐?
그러나 김진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만 할뿐이었다.
– 어차피 뻔한데.
그 이유는 이진용을 등진 김진호의 뚱한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봐봤자 배만 아플 텐데, 내가 미쳤다고 보냐?
– 아마 처음 돌리면 볼 마스터 같은 게 나오겠지. 아무렴. 그걸로 유일한 A랭크 구질인 슬라이더를 마스터 랭크로 만들겠지.
“에이, 설마요. 필요한 게 그렇게 쉽게 나오겠어요?”
말을 하던 이진용이 이내 룰렛을 돌렸다.
그렇게 룰렛이 돌아가는 동안 김진호는 여전히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태블릿PC만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 설마 같은 소리하네. 그동안 내가 당한 게 몇 번인데. 뻔해. 볼 마스터가 나오면 넌 호우를 외칠 테고 난 씨발을 외치겠지.
그때 룰렛이 멈췄다.
‘어?’
이진용이 놀란 눈을 뜨며,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호우를 꾹 참는 사이 김진호는 말을 이어갔다.
– 그다음에는 파이어볼러가 나오겠지.
“파이어볼러요?”
그 말에 이진용이 곧바로 다이아몬드 룰렛을 한 번 더 돌렸다.
‘설마 정말 파이어볼러가 나오겠어?’
돌리면서 이진용은 혹시나 했다.
사실 지금 이진용에게 가장 필요한 건 파이어볼러였으니까.
구속 증가는 그 어떤 아이템보다 좋다. 모든 공의 위력을 강력하게 해주니까.
더욱이 다이아몬드 룰렛에서 나오는 파이어볼러가 이진용의 상황에 맞게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파이어볼러는 이진용이 얻을 수 있는 가장 대박 아이템이라는 의미.
– 이 게임 쓰레기 게임이야. 트래쉬 게임이라고.
그사이 김진호는 계속 푸념을 뱉었다.
여전히 이진용을 향해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감각을 눈앞에 있는 태블릿PC에서 나오는 메이저리그 중계에만 집중한 채.
– 아니, 막말로 카지노에서도 이렇게 대박 나면 카지노 사장이 내려와서 사기 쳤냐고 판을 갈아엎는 게 정상 아닌가? 내가 신이었으면 진작에 내려와서 이 버그 쓰는 새끼하고 이진용 뒤통수를 쳤을 텐데.
그렇게 김진호가 내지르는 푸념 속에서 룰렛이 멈췄다.
파이어볼러!
‘헉!’
구속 증가에 이진용이 기쁨보다는 놀람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김진호를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순간 이진용은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을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자신을 등지고 있는 김진호를 향해 말했다.
“그럼 세 번째에는 뭐가 나올 것 같아요?”
말과 함께 이진용이 다시금 자신의 세 번째 룰렛을 활성화했다.
– 뭐 나오긴 처음 보는 거 나오겠지.
그리고 김진호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곧바로 룰렛을 돌렸다.
“새로운 거라니, 어떤 새로운 게 나올까요?”
– 뻔하지. 뭔가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쓸모 있어지는 게 나오겠지. 마무리투수용 같은 스킬 말이야. 이름은 수호신 같은 거 붙어서 나오겠지.
이윽고 룰렛이 멈췄다.
“헐.”
그 순간 이진용은 정말 그대로 굳어버렸다.
– 뭐 그래도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
그때 이제까지 이진용을 등지고 있던 김진호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재수 없게 체력만 올려주는 똥 같은 게 연달아 세 번 정도 나올 수도 있으니까. 자, 그래 한 번 보자. 돌려보······ 응?
그런 김진호의 눈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진용이 들어왔다.
– 뭐야? 갑자기 왜 귀신 보는 표정을 짓고 있어? 귀신 처음 봐?
그 말에 이진용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놀란 모습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굳어 있을 뿐.
그 모습에 김진호가 살짝 당황했다.
– 야, 진용아 왜 그래? 갑자기 무섭게······ 응? 어?
그로부터 몇 분 후.
“김진호 선수 그러지 말고 1부터 40까지 중에 숫자 6개만 찍어주세요.”
– 꺼져!
“에이, 그러지 말고요. 아니면 우리 파워볼 복권 한 번 해볼까요? 그거 당첨되면 당첨금이 김진호 선수 연봉보다 많다고 하는데? 당첨되면 당첨금 반반 콜?”
– 닥쳐!
“그러지 말고 숫자 여섯 개만······.”
– 너 자꾸 그러면 내가 아빠한다?
“아빠 받고 숫자 여섯 개? 오케이 콜!”
– 에이, 진짜! 이 빌어먹을 호우 지옥!
김진호의 절규가 호텔방을 맴돌았다.
3.
[이진용]
– 최대 체력 : 115
– 최대 구속 : 140
– 보유 구종 : 포심 패스트볼(S), 투심 패스트볼(S),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S), 컷 패스트볼(B), 체인지업(B), 슬라이더(S), 커브(B)
– 보유 스킬 : 심기일전(D), 일일특급(D), 라이징 패스트볼(A), 마법의 1이닝, 무쇠팔(D), 리볼버, 컨트롤 마스터(A), 철인, 에이스, 철마(A), 전력투구, 마구(E), 스위칭(B), 수호신
‘140이다.’
이제는 분명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찍힌 140이라는 숫자.
그 숫자를 바라보던 이진용의 눈앞으로 처음 베이스볼 매니저를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왔다.’
그런 이진용의 시선이 자신의 옆에 있는 김진호를 향했다.
– 이제야 140대 공을 던지네. 드디어 사람 같은 똥에서 똥 같은 사람 수준이 됐네.
뚱한 표정으로 거듭 투덜거리는 김진호를 바라보는 이진용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때 김진호가 휙, 이진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표정이 아주 좋아 죽는 표정이네. 그래, 좋아 죽겠지.
“그럴 리가요.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되죠. 이제야 겨우 140이 됐는데. 최소한 김진호 선수만큼은 던져야죠.”
그 말에 이진용은 김진호가 가르친 그대로,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김진호는 뚱한 표정을 조금 풀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왔다는 의미.
그런 김진호 앞에서 이진용은 재차 말을 이어갔다.
“일단 다음 경기부터 확실하게 잡는 게 우선이지만요. 무실점 이닝을 계속 이어가야죠.”
말을 하던 이진용의 마음속에서는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는 욕망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화산처럼.
“이대로 무실점 이닝을 이어가고, 한국시리즈 무대에까지 올라가서 엔젤스를 우승시킨 후에 메이저리그에 가야죠.”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소망이, 욕망이 이진용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나왔다.
그 모습에 김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래야지.
그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가슴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이진용의 모습은 그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를 만한 진짜 맹수가 되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렇게 이진용은 거침없이 자신의 목표를 말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줄 겁니다. 3일 휴식 후 등판,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연투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왼손은 이제 이진용에게 있어 오른손만큼 믿을 수 있는 손이었으며, 두 손을 이용하면 보다 쉽게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렇기에 이진용은 이제는 그 누구도 쓸 수 없을 전설을 이룩할 생각이었다.
마운드 위에 보다 많은 발자국을 남길 속셈이었다.
– 진용아.
그렇게 불타오르는 이진용에게 김진호는 말했다.
– 그건 아마 힘들 거다.
“예?”
– 3일 휴식 후에 등판하는 건 힘들 거라고.
이진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 될 게 있나요? 당장 3일 휴식 후에 던져도 몸에 문제없었잖아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3일 휴식 후 등판이 가능하다고 말해준 건 김진호 아니었던가?
또한 봉준식 감독 역시 오케이 사인을 냈으며 이제 더 이상 언론조차도 이진용의 이런 짧은 휴식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이 보기에 자신이 3일 후 등판을 하는데 문제될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진호는 단호했다.
– 응, 안 돼.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이유가 뭡니까?”
당연히 이진용은 이유를 물었고, 김진호는 대답해줬다.
– 이유? 그 이유는 이번 주가 지나가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그리고 김진호의 말대로 이번 주가 지나기 전 이진용은 김진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4.
– 게임 끝! 엔젤스가 토요일의 밤을 자신들의 밤으로 만듭니다!
7월 22일 토요일.
엔젤스 대 독스의 주말 3연전 두 번째 경기의 승자는 엔젤스였다.
– 이도섭 선수가 완투로 팀의 승리를 홀로 선물했습니다!
– 이도섭 선수가 드디어 그동안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엔젤스에 보답하는군요.
그리고 승리투수는 엔젤스의 만년 유망주, 이도섭이었다.
“도섭아 축하한다!”
“짜식,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던지는구나!”
“완투 축하한다!”
“캬, 마지막에 호우하는 거 봐라!”
9이닝 2실점 8탈삼진 투구수는 124구, 이도섭이 자신의 커리어 첫 완투승에 성공했다.
엔젤스 입장에서는 크나큰 수확이었다.
– 엔젤스의 이번 후반기 기세가 심상치 않을 듯합니다. 이도섭 선수마저 제 몫을 해준다면 사실상 엔젤스의 선발진에는 틈조차 보이지 않겠습니다.
선발 투수가 제 몫을 해준다는 건 치열한 체력전이 될 수밖에 없는 후반기 전쟁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강점이 될 수 있으니까.
심지어 엔젤스에서 기세가 오른 투수는 이도섭 하나만이 아니었다.
– 그 정도가 아니죠. 그야말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손꼽히는 투수진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죠. 당장 후반기 시작과 함께 5연승을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 네, 두 외국인 투수인 벤자민과 앤디 그리고 차운호 선수도 모두가 멋진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세 선발투수가 24.1이닝을 소화하면서 5실점밖에 하지 않았죠.
24.1이닝 동안 고작 5실점.
이미 리그에서 검증된 세 명의 선발투수들이 올스타 브레이크란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절정에 다다른 기량을 선보이며 팀에 달콤하기 그지없는 승리를 안겨줬다.
– 그리고 내일은 어느 때보다 확실한 승리카드가 올라오지요.
– 예, 내일 이곳 잠실구장에서 이진용 선수가 자신이 시작한 한 주를 마무리하기 위해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런 투수진의 정점에는 그 누구도 아닌 이진용이 있었다.
– 아니, 시발 이도섭까지 완투하면 다른 팀은 어쩌라는 거냐?
– 엔젤스 선발진 씹사기네.
– 젠장, 이도섭도 못 이기는데 이진용은 퍽이나 이기겠다. 내일 이진용 또 탈삼진 신기록 세우는 거 아니야?
사실상 엔젤스가 리그 최고 수준의 선발진을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도섭이가 제 몫을 해주는군요. 이거, 정말 복이 연달아 오는 기분입니다.”
“너무 기뻐하지 말도록.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어쨌거나 선발진은 큰 고민 없이 이대로 8월까지 가져가면 될 듯합니다. 모두가 기량이 절정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타자들의 타격감도 마찬가지이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더 이상 엔젤스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진용이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이제부터 3일 휴식 같이 무리할 필요가 없으니, 충분히 한 경기에 집중하면 된다고.”
“그동안 고생해서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해주게.”
“예.”
이진용을 무리하게 기용했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을.
팬들 역시 더 이상 엔젤스를 보고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정말 우승후보다운 전력을 갖춘 엔젤스에게 필요한 건 응원과 환호밖에 없었으니까.
사실상 엔젤스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이들의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
– 내 말이 맞지? 3일 휴식 후에 등판할 일 같은 거 없다고. 3일 휴식이 뭐야, 화요일 등판했다가 수목금토 경기 치렀는데 일요일에 비 와서 다음 주 화요일에 나오는 일도 생길걸? 6일 휴식 후에 등판이라······ 캬! 메이저리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큰일 났다.’
그러나 반대로 이진용은 고민을 시작했다.
‘이러면 등판 횟수가 줄어들고, 그러면······.
아주 심각한 고민을.
‘포인트를 쌓을 수가 없잖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