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32
14.
한국시리즈는 크게 세 번의 시리즈를 치른다.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한 팀을 기준으로 홈에서 2경기 어웨이에서 3경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홈에서 2경기.
당연히 이 경기 사이사이에는 이동일을 위한 휴식일이 주어진다.
하지만 2017시즌 한국시리즈의 경우에는 이동일 같은 건 없었다.
엔젤스와 데블스, 잠실구장을 홈으로 공유하는 그 두 팀은 굳이 긴 여정을 위해 버스에 몸을 실을 필요 없이 곧바로 휴식일을 취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이었다.
“잠실벌 라이벌이 붙으니까 이렇게 경기 도중에 만나서 이야기라도 할 수 있겠군. 술이라도 한 잔 할까?”
“미친 소리하지 말고, 그냥 콜라로 만족하자고.”
황선우와 변형채, 그 둘이 한국시리즈 도중에, 밤중에 만날 수 있었던 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언질도 안 해줄 수 있냐? 응?”
“무슨 소리야?”
“이진용 말이야, 이진용.”
그런 그 둘의 이야기의 시작점은 당연히 이진용이었다.
“1차전과 2차전 출전이라니,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없는 짓을 꾀하고 있을 줄이야.”
황선우의 말에 변형채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극비로 취급했지. 이 작전이 노출되면 오히려 데블스가 제대로 찌르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이진용이 제안한 건가?”
“아무렴. 설마 코칭스태프 쪽에서 이진용보고 1,2차전에 선발로 출격하라고 제안했겠어?”
1차전과 2차전, 두 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하고 두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된 유일무이한 사나이.
“대단한 놈이야.”
그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지새우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뭐, 그 이야기는 한국시리즈 끝난 이후에 마저 하고.”
그렇기에 황선우는 그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멈췄다.
“이진용이 한국시리즈 우승 후에 조건 없이 방출된다는 찌라시가 도는데 말이야, 그쪽에서 흘린 거 맞지?”
그 질문에 변형채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운영팀이나 홍보팀 일이지, 전력분석팀 일이 아닌데.”
“그 찌라시 내용, 사실이야?”
“맞아도 내가 여기서 맞다고 말할 순 없잖아?”
그런 변형채의 모습에 황선우는 더 이상 사실여부 같은 건 묻지 않았다.
“조건 없는 방출이라······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조건으로 방출이겠지. 안 될 건 없지만, 그게 터지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태클이 들어올 텐데, 괜찮겠어?”
불도저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갈 뿐.
그런 황선우를 상대로 변형채 역시 굳이 얼굴 표정을 찌푸리지 않았다.
애초에 정말 정보를 숨기려고 했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뭐, 정말 그렇게 되면 소란스럽겠지. 하지만 우리 운영팀장님이 그런 소리 듣는 걸 무서워하실 분은 아니잖아?”
구은서.
그녀를 떠올린 황선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주변이 구 팀장을 무서워하겠지.”
“아무렴.”
그녀라면 세간이 뭐라고 하든 오히려 그들을 향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리 대답할 테니까.
“더불어 그런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손만 놓고 있으실 정도로 무능력한 분도 아니지.”
“이미 작업을 했다?”
“찌라시가 그냥 도는 게 아니잖아?”
말을 하던 변형채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진용이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엔젤스 팬 말고 반대할 팬이나, 야구계 관계자는 정말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황선우도 피식, 웃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지금 만약 이진용이 엔젤스를 떠난다면 엔젤스 팬들은 울고불고하겠지만 엔젤스 외 9개 구단 팬들은 장담컨대 이진용의 해외진출을 위한 비용 모금에 기꺼이 자기 돈을 넣어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진용이 메이저리그 어느 구단의 유니폼을 입는 순간, 한국프로야구의 팬 중 절반 이상이 이진용 이름이 박힌 그 메이저리그 구단 유니폼을 구매할 것이다.
“그 순간 국민 호우되는 거지.”
이진용을 향해 여론과 언론이 드러내는 적대감은 곧바로 환호성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홍보팀에서 반박기사 한 줄 써달라고 나오지 않은 거군.”
“글쎄 난 홍보팀 사정 모른다니까. 전력분석하러 전국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그 말에 황선우가 앞에 놓인 콜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질문을 던졌다.
“3차전 선발은 당연히 차운호이겠지?”
“아무렴. 차운호를 100억을 들여서 데려온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가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4승을 거둔 선발투수라는 것, 오로지 그거 하나 때문이었으니까.”
“앤디는 몸만 풀었으니 차운호 다음인 4차전 선발이겠고, 5차전이 이진용 등판일인가?”
“계획상으로는.”
“계획상으로는?”
황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다른 게 있어?”
“내가 보기에 이번 시리즈는 5차전까지 가지 않을 것 같거든.”
15.
– 내가 봤을 때 이번 시리즈 5차전까지 안 간다.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이 양반이 웬일이야? 뭘 잘못 드셨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이번 시리즈 4승 0패로 엔젤스의 승리다.
“성불하실 때가 오신 거 아니죠?”
– 뭐 인마?
“아니, 매일 저주만 퍼부으시던 분이 갑자기 좋은 이야기를 꺼내주시는 게 신기해서요.”
그 말에 김진호가 반발했다.
– 야! 내가 언제 저주 퍼부었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룰렛 돌릴 때 망하라고 아주 그냥 지랄지랄을 하셨잖아요?”
– 야! 그건 저주가 아니라 쓰레기 게임 밸런스 패치 좀 하라고 제작사에다가 항의한 거지!
“예예, 그러시겠죠.”
말과 함께 이진용의 자신의 능력치를 바라봤다.
– 최대 구속 : 143
– 보유 구종 : 포심 패스트볼(S), 투심 패스트볼(S),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S), 컷 패스트볼(B), 체인지업(S), 슬라이더(S), 커브(B).
– 보유 스킬 : 심기일전(D), 일일특급(D), 라이징 패스트볼(A), 마법의 1이닝, 무쇠팔(C), 리볼버, 컨트롤 마스터(A), 철인, 에이스, 철마(A), 전력투구, 마구(E), 스위칭(B), 수호신
‘오케이, 구속 오르고.’
이번 시리즈 동안 얻은 포인트로 구속이 무려 2킬로미터나 늘어난 것에 미소가 그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볼 마스터를 썼고.’
그러나 그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2차전 승리와 함께 얻은 플래티넘 룰렛에서 나온 구질 등급 향상 아이템이었다.
‘이제 체인지업도 마스터 랭크다.’
이제는 체인지업도 마스터 랭크가 된 상황.
– 여하튼 쓰레기 게임이야. 골드 룰렛 네 번 돌려서 구속이 두 번 나오는 게 말이 돼?
김진호가 거듭 투덜투덜 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엔젤스 승리를 확신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분명 무언가 낌새를 보셨으니 그런 말을 하셨을 텐데?”
그런 김진호를 상대로 이진용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 일단 차운호는 내일 이길 거거든.
“차 선배가요?”
– 응.
“어떻게 확신하세요?”
– 야, 눈빛만 봐도 알지. 내가 야구 귀신······ 야, 너 또 잡귀라고 하려고 했지?
“왜요? 찔리세요?”
– 진짜 이진용이 이 자식 때문에 어디 가서 귀신이라고도 말 못하겠네. 여하튼 차운호 자체가 큰 무대에 강한 타입이야. 내일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거야. 반대로 데블스는 이미 빈사 상태야. 1패만 더하면 사실상 게임 끝이거든.
“누구 때문에 빈사 상태가 된 걸까요?”
– 누구긴 전국적으로 유명한 또라이 새끼의 또라이 짓에 당해서 그런 거지.
말을 하던 김진호가 이진용을 노려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 그래서 옛말에 미친놈과 똥은 보면 피해라, 라는 말이 있었지.
“비유를 꼭 그런 식으로 해야겠어요?”
– 알잖아? 난 거짓말하면 입에 가시 돋는 거. 보여줄까? 아아아아!
“입 좀 닥쳐요.”
– 어쨌거나 3차전은 엔젤스 승리. 그럼 남은 건 1승뿐인데, 솔직히 이쯤 되면 데블스 입장에서는 게임 끝! 그럼 4차전도 끝! 4대0 엔젤스 한국시리즈 우승!
그 말에 이진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한국시리즈 우승이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진호가 그리 말한다면, 그렇게 될 테니까.
‘이제 드디어 메이저리그구나.’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후에 이진용에게 남은 것은 별들의 세상, 메이저리그가 될 테니까.
“끝내주네요.”
그 사실에 이진용의 심장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이제 김진호 선수가 뛰던 무대에, 내가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메이저리그의 타자들, 그 괴물과도 같은 놈들과 전쟁을 치른다는 사실에.
– 그래 끝내주지. 이진용, 네가 호우호우 지랄하는 꼴을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니까.
“예?”
– 4차전에 게임 끝나면 네가 나올 일이 없잖아?
“어?”
그제야 이진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
김진호의 말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더 이상 이진용이 나올 일은 없다는 것을.
그 사실에 이진용이 놀랐고, 그 모습에 김진호가 말했다.
– 그래서 내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제발 이번 한국시리즈는 4차전에 끝나게 해달라고 새벽기도를 했지!
“에이, 진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요!”
– 꼬우면 너도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해. 제발 우리 팀 한국시리즈에서 지게 해달라고.
“아니, 그건······.”
– 응? 나 포인트 쌓아야 하니까 팀이 지는 걸 원한다고? 에이, 설마. 아무리 포인트에 눈이 먼 이진용이라도 설마 그 정도까지 사악한 생각은 안 하겠지. 그렇지?
“다, 당연하죠.”
– 그럼 당연히 4차전은 더그아웃에서 봐야겠네. 포인트 얻는 것 하나 없지만 팀의 우승을 응원해야겠네. 그렇지?
“그건······.”
결국 이진용이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3차전이 시작됐다.
15.
10월 27일, 하루 휴식일을 마치고 다시 잠실에서 시작된 한국시리즈 3차전.
– 게임 끝!
승자는 엔젤스였다.
– 차운호 선수가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을 거둡니다!
“캬! 차운호가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이라니!”
“이 맛에 현질하지!”
“구 회장님 차운호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차운호.
그가 100억 원이라는 돈을 받고 엔젤스에 온 이유를 세상에 완벽하게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아, 끝났다.”
“3패······ 이제 남은 경기 잡으면 뭐하겠냐? 어차피 이진용 나와서 1승 거둘 텐데.”
동시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해 여전히 뛰고 있던 데블스의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순간이었다.
팬들은 물론 데블스 선수단에도 더 이상 승리에 대한 열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진용 만나서 패배할 바에는 그냥 깔끔하게 내일 경기에서 끝나는 게······.’
‘아, 이진용 그 새끼를 또 만나기 싫은데······.’
5차전 선발로 예정된 이진용을 만날 바에는 그냥 차라리 4차전에서 깨끗한 패배를 당하고 싶다고.
물론 그 속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속으로 삭인 채, 이제는 패배자가 되어 그라운드에서 사라질 뿐.
그리고 그 광경을 이진용은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김진호 선수 말대로 데블스의 전의는 완벽하게 소멸됐다.’
이 순간 이진용은 떠나는 데블스의 표정을 통해,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내일 경기,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경기다.’
– 내 말이 맞지? 응?
김진호의 말대로 내일 열리는 4차전이 엔젤스의 이번 시즌 최후의 무대가 되리라고.
동시에 내일 경기가 이진용의 2017시즌 최후의 경기가 되리라고.
그 사실에 이진용은 이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우승했으면 된 거지.’
그 순간 이진용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던 자그마한 미련을, 아쉬움을 그대로 토해냈다.
“예, 내일 우승 헹가래 해야죠.”
그 모습에 이진용을 놀리려던 김진호가 피식, 웃었다.
더 이상 이것을 가지고 이진용을 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더 나아가 이진용이 그 무엇보다 우승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게 됐으니까.
– 이르긴 하지만 미리 말하마. 수고했다.
“예.”
그때였다.
툭툭!
차갑게 식은 그라운드로 위로 굵직한 빗줄기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몇몇 이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 비 오는 거야?”
“기상청이 비 온다고 했는데 왜 비가 오지?”
“기상청이 뭐라고 했지?”
“오늘 밤부터 내일까지 비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고······.”
그 말에 엔젤스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몇몇이 스마트폰을 꺼내 상황을 살폈다.
이윽고 프런트 관계자 한 명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선수와 코치들이 남아있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말했다.
“내일 호우주의보 발령됐습니다. 엄청 퍼붓는답니다. 어쩌면 우천취소 될지도 모릅니다.”
우천취소!
– 아니, 내일 우천취소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일 폭우라니? 내일 경기가 취소가 됐다 이 말이야?
그 말에 김진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반면 이진용은 짧게 소리쳤다.
“호우!”
그리고 10월 28일, 잠실구장 위로 걷잡을 수 없는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연히 한국시리즈 일정이 하루 연장됐다.
그리고 시작됐다.
[엔젤스 선발은 이진용!]2017시즌 한국프로야구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