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39
8.
2월 1일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됨과 동시에 플로리다 주 곳곳에 위치한 야구장으로 선수들과 야구팬들이 하나둘 모이며 본격적인 야구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훈련의 강도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은 컨디션 조절, 스트레칭, 가벼운 러닝에 불과했던 훈련이 점차 롱토스, 프리 배팅, 베이스 러닝, 타구 수비 훈련 같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야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훈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스트라스버그다!”
“스탠튼이 왔군! 60홈런의 전설!”
“크리스 세일이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정말 별 중의 별과 같은 선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기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메이저리그의 별에 대한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기 위해, 렌트한 자동차를 타고 플로리다 주를 위치한 여러 야구장 사이를 쉴 새 없이 움직이고는 했다.
‘드디어 여기에 왔군.’
황선우, 이제는 한국프로야구가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기자가 된 그 역시 그 고난의 행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메이저리그 전담 기자는 경력과 인맥을 쌓기에 좋을지언정 육체와 정신적으로는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당장 이동거리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됐다.
한국에서는 제아무리 멀어도 서울에서 부산 수준이지만, 메이저리그는 자칫 잘못하면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대여섯 시간을 뜬눈으로 보내야 하는 일도 생긴다.
더욱이 미국이란 나라는 여전히 동양인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었다.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분명 인종차별을 비롯해 보이지만 않을 뿐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차별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황선우가 다시금 메이저리그 전담기자를 자처한 이유는 역시 그 때문이었다.
‘이진용은 잘 지내려나?’
이진용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 싶다는 것.
그런 황선우가 이진용의 연습 경기 출전 소식에 퍼스트 데이터 필드로 달려온 건 당연했다.
“이진용 선수!”
그렇게 황선우는 그토록 보고 싶던 이진용을 볼 수 있었다.
“어, 황 기자님?”
황선우의 등장에 이진용도 반색했다.
“오랜만이야. 골든글러브 시상식 이후 처음이니까.”
“예, 오랜만입니다.”
“그때 시상식은 여러모로 대단했어. 선수들 모두가 난리도 아니었지.”
“예, 경기 끝난 뒤에는 더 난리도 아니었죠. 선수들 모두가 만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메이저리그에서 생활비 떨어지면 전화하라고, 얼마든 지원해주겠다고, 돈 모아서라도 지원해줄 테니까 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서 거기서 은퇴하라고. 그 덕담을 배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하하, 자네가 한국에서 뛰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그 대화 사이로 황선우는 기자답게 자연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때? 메이저리그는?”
“아직 메이저리그 선수 공 던지는 거 본 적도 없는데요, 뭘. 이제 시작이죠.”
“시간 있어? 있으면 곧바로 질문 좀 해도 될까?”
그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황선우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낸 후에 녹음을 시작했다.
그 후 나온 질문은 별거 없었다.
메츠를 선택한 이유, 이번 시즌 목표, 상대해보고 싶은 선수, 앞으로의 각오······ 특별할 건 없지만 모든 이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었고 이진용은 기꺼이 대답해줬다.
더불어 질문도 많지 않았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지.”
“벌써 끝내시게요?”
“아직 시즌이 시작한 것도 아닌데, 굳이 인터뷰 내용이 많을 필요는 없지.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인터뷰해봤자 준비된 대답만 나오거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황선우는 이제는 기자가 아닌 야구팬으로서 질문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느 손으로 할 거야?”
그 질문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느 손이긴요, 전 왼쪽 밖에 안 됩니다.”
“뭐?”
“타격은 지금 좌타자 밖에 안 돼요.”
그 말에 황선우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진용이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오늘 타자로만 출전하는데, 모르셨어요?”
“타자?”
9.
테리 콜린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그는 2011년부터 뉴욕 메츠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15시즌 뉴욕 메츠를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려놓았다.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한 성적.
그러나 그는 2017시즌을 끝으로 감독직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15시즌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랐으나 우승에 실패하고, 그다음 시즌에는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
그리고 2017시즌에는 포스트시즌 진출마저 실패한 콜린스 감독은 자신에게 메츠의 숙원을 이뤄줄 능력이 없음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야구가 이제 오래된 야구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은퇴를 보류한 건 다름 아니라 단장이 잡아준 두 선수 때문이었다.
이진용 그리고 조 존스.
개중에서도 콜린스 감독은 둘 중에 조 존스를 잡은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설마 구단이 조를 잡을 줄이야.’
사실 콜린스 감독은 조 존스가 언제나 탐났었다.
그의 전성기 시절은 모든 감독들을 취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을뿐더러, 메츠의 젊고 강인한 야생마를 조련해주기에는 조 존스 같은 포수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같은 지역 내의 다른 구단이 어마어마한 돈을 거리낌 없이 쓰는 것에 비해 메츠 구단은 그렇게까지 돈을 많이 쓰는 팀이 아니었고, 심지어 요에니스 세스페데스를 잡는데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쓴 구단이 조 존스 같은 퇴물 포수를 영입하는데 1억 달러를 더 쓰리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구단은 그를 잡아 왔다.
물론 그 놀람은 곧바로 읽은 이진용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 앞에서 사라졌다.
‘이런 선수가 있다니!’
이진용, 그는 콜린스 감독이 보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투수였다.
양손 투수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완벽하다. 정말 완벽하게 타자를 잡을 줄 안다.’
이진용이 그 어느 투수보다 타자를 상대로 완벽한 피칭을 한다는 것, 그게 이유였다.
타자와 투수, 그 둘은 먹고 먹히는 관계다.
그게 당연한 생리다.
그러나 이진용은 달랐다. 그는 그저 일방적으로 타자를 먹어치우기만 하는 괴물이었다.
때문에 그 두 선수가 영입되는 순간 콜린스 감독은 더 이상 은퇴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올해는 다르다. 정말 다시 한 번 어메이징 메츠의 이름에 어울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기대감으로 부푼 마음을 안고 스프링 트레이닝을 준비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의 첫 연습 경기가 잡혔다.
마운드가 아니라 타석에 서는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콜린스 감독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보기에 이진용은 어떤 선수인가?”
과연 이진용이란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그 물음에 톰 고든은 대답했다.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즌 중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민폐?”
“예, 시즌이 끝나면 그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콜린스 감독은 당혹감 깃든 눈으로 톰 고든을 바라봤다.
민폐, 콜린스 감독이 생각하는 이진용의 실력에는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었으니까.
‘톰 고든은 실력 좋은 코치다. 훗날 메이저리그 감독을 해도 될 정도. 그런데 그런 그가 이런 평가를 내리다니?’
더욱이 콜린스 감독이 보는 톰 고든은 유능한 코치였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콜린스 감독의 모습에 톰 고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전 어디까지나 타격 코치입니다. 이진용 선수의 타격 외에는 그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습니다.”
“아.”
그제야 톰 고든의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한 콜린스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응?”
그리고 그 안도의 한숨 끝에 의문을 표해야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그 의문에 톰 고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시면 압니다.”
10.
투구와 타격은 박수와 같다.
손바닥 두 개가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때문에 뛰어난 타자는 투수의 투구 매커니즘을 잘 알고, 동시에 뛰어난 투수는 타자의 타격 매커니즘을 잘 안다.
– 타격을 할 때 중요한 건 스트라이크존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폼이 중요해. 타자의 스트라이크존은 폼에 의해 만들어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뛰어난 투수였던 김진호는 어지간한 타자나, 코치들보다 타격에 대해서 잘 알 수밖에 없었다.
– 그 후에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 투수는 모든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을 생각으로 던져도 돼. 하지만 타자는 투수의 모든 공을 칠 생각을 해서는 안 돼. 원래 타격이 그래. 타자들은 자기 수준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칠 수 있는 것만 쳐야 해.
실제로 김진호는 내셔널리그에 있는 카디널스 시절 통산 타율이 2할 7푼에 통산 홈런은 무려 14개나 됐다.
타격에 대해 누군가를 가르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커리어였다.
그렇기에 이진용은 김진호의 조언 그리고 톰 고든의 지도 아래 자신의 폼을 만들었고, 그 폼을 처음으로 세상에 보여줬다.
“어? 폼이 왜 저래?”
“저건 무슨 폼이야?”
그 폼은 분명 독특했다.
마치 겁에 질린 토끼가 몸을 웅크린 듯, 타석에 선 이진용은 자신의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있었다.
“썩 보기 좋진 않네.”
“그것보단 불쌍해 보이지 않아?”
“하긴, 가뜩이나 선수치고는 작은 체격인데 저런 타격폼까지 하니······ 어른 리그에 애 한 명 낀 느낌이네.”
그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투수가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
‘퍽!’
그러나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의 눈에 보이는 이진용은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디에 던지라는 거야?’
타자의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체격 그리고 타자의 타격폼에 의해 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마운드에 올라선 투수, 페레즈의 눈에 보이는 이진용의 스트라이크존은 턱없이 작았다.
덩치 좋은 타자의 반절 정도.
– 투수가 퍽퍽 거리는 게 여기까지 들리네.
당연한 말이지만 이 타격폼은 이진용이 준비한 전략적 노림수였다.
‘아무리 상대가 마이너리그 투수라고 해도 구속이 90마일은 가뿐히 넘는 투수다. 그런 투수를 상대로 고작 일주일 정도 훈련한 내가 장타를 뽑아내면 그건 그냥 행운일 뿐이야.’
김진호의 조언 그대로 이진용은 일단 자기 분수부터 파악했다.
‘이 자리는 행운을 시험하는 자리도 아니다.’
더불어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행운을 바라고 타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운을 배제한 채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
지금의 타격폼은 바로 그 생각의 결과물이었다.
‘어떻게든 그라운드 위로 공을 굴리고, 달린다.’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작게 만듦으로써 삼진을 당할 가능성을 줄이는 한편, 온 힘이 실린 호쾌한 장타가 아니라 어떻게든 공에 배트를 맞추기 위한 스윙을 하기 위한 최적의 폼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상대는 메츠 산하에 있는 마이너리그 소속 선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이너리그에서 4시즌을 넘게 뛰며 4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는 투수.
충분한 재능과 가능성이 있기에 이곳,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석하게 된 선수다.
고작 전략적으로, 그마저도 일주일 정도 가다듬은 타격폼만으로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보고 치는 건 불가능해. 결국 수싸움으로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여야 해. 투수를 읽고, 공을 읽는다.’
그게 이진용이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지 않은 이유였다.
그 사실을 투수와 포수는 당연히 눈치챘다.
눈치채는 순간 그 둘은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고, 곧바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폼이 너무 괴상해서 스트라이크존 상하는 가늠이 안 되지만, 좌우는 모든 타자가 똑같다.’
‘어차피 투수다. 타격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투수. 9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집어넣으면 돼.’
‘그럼 그냥 확실하게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패스트볼만 집요하게 집어넣자고.’
‘오케이.’
말로 했다면 길었을 대화.
그러나 투수와 포수가 나눈 대화는 포수가 손가락을 두 번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투수가 이진용의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그곳을 향해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구속은 90마일.
‘오케이, 낚았다.’
– 오케이, 낚았다.
그 공을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 투수가 그 공을 던지도록 의도한 이진용은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딱!
그렇게 이진용의 배트를 맞은 공이 물수제비처럼 그라운드 위를 가로지르며,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그대로 지나갔다.
깔끔한 안타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영리하군. 일부러 바깥쪽 공을 던지게 유도했어.”
그 광경에 콜린스 감독은 톰 고든이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고든 코치 말대로 시즌 중에 민폐를 끼칠 정도는 아니군.’
반면 톰 고든은 콜린스 감독의 그 말에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더그아웃에 있는 둘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을 무렵, 이진용의 귓가로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렸다.
기꺼운 알림.
– 젠장, 이 빌어먹을 쓰레기 게임.
그리고 당연한 김진호의 짜증에 이진용은 표정 변화 없이 그대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를 살폈다.
‘날 안 본다.’
투수의 낌새를 통해 투수의 심리를 가늠했고, 동시에 포수를 비롯해 그라운드 전체를 훑었다.
‘내가 도루할 거란 생각을 아무도 안 한다.’
그라운드 전체를 훑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하물며 메이저리그 감독이 보는 연습 경기에서 주자 견제를 하느라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투수는 없지. 날 그냥 없는 셈치고 공을 던질 가능성이 커.’
그리고 그렇게 그라운드를 훑으면서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분석하는데 걸리는 시간 역시 찰나에 불과했다.
‘만약 여기서 투수가 날 무시하고 와인드업을 하면 바로 뛴다.’
당연히 이진용이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을 행동에 옮기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케이!’
투수가 이진용의 다음 타자를 상대로 공을 던지는 순간, 투수가 이진용을 무시한 채 그대로 와인드업을 하는 순간 이진용이 2루를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어?”
“어!”
모두가 예상치 못한 도루!
그 도루 앞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물론 포수조차 꼼짝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진용, 그가 그야말로 다리가 아니라 상대방의 허를 찔러 도루를 뜯어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2루를 훔친 이진용을 향해 김진호가 한마디 했다.
– 진용아, 시즌 중에는 도루 할 생각 꿈도 꾸지 마라. 잘못하면 2루수나 유격수가 널 밟아 죽이는 수가 있다. 뭐, 감독이 이제부터는 절대 허락을 안 해주겠지만.
말 그대로였다.
“맙소사!”
이진용의 도루에 콜린스 감독의 머릿속으로는 새빨간 경고등이 번쩍거렸다.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어.’
팀의 주전 투수, 그것도 선발투수가 도루를 하다가 손가락이라도 다친다면 그보다 더 멍청한 짓은 없을 테니까.
당연히 콜린스 감독은 이번 이닝을 끝으로, 이진용에게 도루 금지령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 사실을 이진용이 모를 리 만무했다.
시즌 중에는 감독이 절대 도루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이진용 역시 시즌 중에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도루를 할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게 지금 도루를 한 이유였다.
‘그래서 지금 하는 겁니다. 연습 경기일 때.’
지금은 시즌도 아니고, 시범 경기도 아니고, 그저 연습 경기일 뿐이니까.
그것도 메츠라는 이름 아래에 모인, 어떤 의미에서 한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끼리 치르는 청백전 같은 경기이니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이진용은 시즌 중에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해낼 생각이었다.
그런 이진용의 눈이 3루 베이스를 슬쩍 훑었다.
그렇게 3루 베이스를 훑은 시선은 3루수를 지나, 포수를 지나, 투수를 향한 후에 그라운드 전체를 훑었다.
‘견제는 없다. 죽어도 손해는 아니다.’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은 찰나에 이루어졌고, 결단을 마친 이진용이 숨을 골랐다.
“호우.”
– 허허, 미친놈.
그 숨 고르는 소리에 이진용의 의중을 파악한 김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투수가 타석에 선 타자를 상대로 2구째가 되는 공을 던지는 순간, 그 순간 이진용은 다시 한 번 3루를 향해 질주했다.
이번에는 공을 잡은 포수가 그대로 3루수를 향해 전력을 다해 송구를 했다.
정말 힘찬 송구였다.
공이 아니라 레이저빔을 쏜 듯한 송구, 이진용의 발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송구였다.
“아!”
문제는 그것을 3루수가 잡지 못했다는 것.
“놓쳤다!”
– 가!
그렇게 3루수 뒤로 공이 빠지는 순간 3루를 밟은 이진용은 주저 없이 이제는 홈을 향해 질주했다.
이제는 더 이상 거릴 것이 없어진 질주!
그 질주 끝에 이진용이 홈베이스를 밟았다.
이진용, 그가 어메이징 메츠란 이름에 어울리는 신고식을 치르는 순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