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4
5화. 등판 날이 장날이다 (1).
1.
STARS.
별빛 같은 노란빛 글자가 가슴팍에 새겨진 야구 점퍼를 입고 있는 사내가 고개를 들어, 3월의 봄을 마주할 준비를 마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그제야 사내는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합격했구나.’
자신이 이곳,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독립구단, 고양 스타즈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 준프로다.’
자신이 프로야구선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곳을 바라볼 수 있는 자가 되었음을.
그 사실에 이진용은 감격했다.
– 매월 70만 원을 내고 야구를 한다······.
물론 그런 이진용의 바로 옆에서 좀 더 높은 눈높이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김진호의 감상은 달랐다.
– 난 매년 천만 달러 받고 야구했는데.
“여하튼 인간 기분 잡치게 하는 재주는 정말 대단하시다니까. 꼭 그런 말을 해서 자라나는 새싹의 들뜬 마음을 짓밟으셔야겠어요?”
– 거짓말한 것도 아닌데 뭐. 돈 내고 야구하는 거 맞잖아?
김진호의 말 그대로였다.
고양 스타즈, 독립구단인 이 팀은 당연한 말이지만 재정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코치들 월급도 마음껏 줄 수 없는 수준.
솔직히 말하면 코치들조차도 어느 정도 선수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하물며 그런 재정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연봉을 준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고양 스타즈의 선수들은 매월 70만 원이란 비용을 구단에 지불하고 있었다.
물론 그게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여기 있는 시설 마음대로 쓰고, 식사에 숙소에 코칭에 시합까지. 이렇게 다 해주는데 70만 원이면 거져죠. 장비까지 지원해주잖아요? 무제한은 아니지만.”
오히려 반대, 고양 스타즈 소속으로 받는 혜택과 지원을 고려하면 70만 원은 비용조차 아니었다.
실제로 고양 스타즈 선수들 중 70만 원을 낸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70만 원을 내고서라도 고양 스타즈의 일원으로, 프로 야구 선수를 꿈꾸며 계속 야구를 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감격할 뿐.
이진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러면 안 돼.
하지만 김진호는 달랐다.
“무슨 말입니까?”
–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김진호, 그가 이진용의 눈을 마주 봤다. 그는 유령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강렬했다.
꿀꺽!
이진용이 그 위압감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될 정도.
김진호가 그 눈빛 그대로 질문을 던졌다.
– 너 마이너리그랑 메이저리그의 차이를 알아?
“많이는 들어봤죠.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는 리그로 따지면 한 단계 차이이지만,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 내가 카디널스와 처음 계약을 했을 때,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지. 그런데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어. 내 기량은 이미 그때도 끝판왕이었거든. 기량 향상을 위해서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수업을 받을 필요는 눈곱만큼도 없었지. 그런데 카디널스는 그런 나를 마이너리그에서 1시즌 동안 두고 있었지. 왜 그런지 알아?
“멘탈 강화를 위해서?”
– 넌 내 멘탈이 굳이 강화가 필요하리라 생각해?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에 20승을 한 투수한테?
“음, 그럼 그 더럽고 지랄 맞은 성깔 좀 죽이려고?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햄버거 좀 처먹고 정신 좀 차려라?”
– 뭐, 그런 이유가 없진 않았겠지. 내가 그때 좀 거만하긴 했으니까. 카디널스랑 계약했을 때 20승 달성하면 페라리랑 람보르기니랑 맥라렌 세 대를 한 번에 내 명의로 뽑아주는 옵션 넣어달라고 했거든. 하지만 주요 이유는 아니었어.
“그럼 뭡니까?”
– 탐욕, 갈증.
말을 하던 김진호는 그 날카로운 눈매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그때 때마침 찬바람이 그라운드 위를 지나갔다.
그래서일까?
그라운드가 김진호의 눈빛에 몸을 떠는 듯했다.
– 메이저리그는 나날이 부유해지지만, 마이너리그는 여전히 궁핍하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돈이 없어서?
“그럴 리는 없겠죠. 버는 돈이 얼만데.”
– 맞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당장 마음만 먹으면 트리플A리그의 모든 선수들의 식단을 싸구려 빵과 잼이 아니라 랍스터와 스테이크로 바꿀 수 있어.
“에이, 그건 좀······.”
– 트리플A 리그에 소속된 구단이 30개라고 하면, 거기 속한 선수는 2천 명쯤 돼. 그들 식비로 연 1만 달러를 배정하면 1년에 그들 식비는 얼마가 나올까?
“2천만 달러 나오죠.”
–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공 좀 던지고, 배트 좀 휘두른다는 인간 1년 연봉이지.
그제야 이진용은 천만 달러라는 액수가 가지는 거대함을 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오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충분해.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아. 1세기 넘는 세월 동안 배웠거든.
“그게 뭡니까?”
– 마이너리그에서 배고픔을 느낀 놈들만이 메이저리그에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윽고 김진호가 다시 이진용을 바라봤다.
– 메이저리그는 그런 곳이야. 만족 따윈 없어. 10승을 하면 20승을 하고 싶어지고, 50홈런을 때리면 60홈런을 때리고 싶어지지. 그래서 이미 모든 걸 얻은 놈들이, 부와 명예를 이미 넘치도록 얻었음에도 약에 손을 대는 놈들이 나오는 거야.
“아······.”
– 보통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에서 40홈런과 40도루를 한 시즌에 동시에 기록하는 건 꿈의 기록이지만, 배리 본즈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지. 반대로 말하면 그에게는 그런 탐욕과 갈증이 있었기에 40-40을 할 수 있었던 거고. 그런 거야. 메이저리그의 선수들 중 자기 성적에 만족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어.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 눈매 앞에서 이진용은 기꺼이 반성했다.
“여기에서 만족하면 안 되는데, 만족했네요.”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만족하지 마. 절대. 무슨 대우를 받아도, 그 이상을 요구하고, 그 이상을 해내. 70만 원 내고 여기 있는 걸 누린다는 사실에 만족 따위는 하지 마.
“예.”
그 순간 김진호를 바라보는 이진용의 눈빛은 자신이 평생 섬겨야 할 군주를 보는 신하의 눈빛처럼 변해 있었다.
죽음을 명령해도 기꺼이 따르고도 남을 충신의 눈빛!
김진호가 그런 이진용을 향해 말했다.
– 자, 그럼 나를 따라 외쳐.
“예!”
– 나는 병신이다!
“나는 병······ 아, 진짜!”
– 으하하하!
이진용, 그의 고양 스타즈 선수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2.
“블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한다.”
“예?”
고양 스타즈의 일원이 되어 홈구장을 방문한 첫날, 이진용이 가장 먼저 받은 통보는 다름 아니라 선발 등판 통보였다.
– 우와 벌써 선발이라니! 이거 구단에서 너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대단한 모양인데?
놀라운 일이었다.
트라이아웃으로 막 통과한 선수에게 선발 자리를 맡긴다?
그것도 패스트볼 구속이 120킬로미터에 불과한 투수에게?
– 아니면 70만 원은 이미 받았으니까, 개망신 줘서 쫓아내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몰라. 그래, 그게 맞는 거 같다. 그게 아니면 널 받을 이유가 없잖아? 갑자기 선발 등판 시킨 후에 한 이닝에 만루홈런 두 번 맞을 때까지 마운드에 놔두는 거지.
결코 평범하진 않은 일.
때문에 이진용은 이 사실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김정호 투수코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제게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그리고 자신의 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돌직구를 던졌다.
김정호 투수코치는 그런 이진용의 눈을 직시했다. 이진용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고양 스타즈도 나만큼 필사적인 팀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프로구단만큼 소중한 팀. 그런 팀이 그냥 단순히 내게 선발 등판 기회를 줄 리가 없잖아?’
오히려 자신의 눈빛을 또렷하게 불태웠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뭐든 간에 이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어.’
그 눈빛은 탐욕의 눈빛이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든 간에, 선발로 올려준다고 말했으니 무조건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고 말겠다는 눈빛.
그 눈빛에 김정호 투수코치는 인정했다.
‘심장은 확실하군.’
이진용이 다른 건 몰라도, 심장 하나만큼은 그 어떤 투수들보다 강인하다는 것을.
때문에 김정호 투수코치는 숨기지 않았다.
“자네를 뽑은 건 감독님의 의지였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네에게 별 관심이 없었네.”
김정호 투수코치가 자신의 속내를 진솔하게 토해냈다.
“우리 구단은 독립구단이지만, 사실상 프로 선수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구단 상황은 열악하고, 결국 열악한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네.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자네에게는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인 생각도 없었네. 노골적으로 말하면 관심을 가질 대상이 아니었지.”
이진용은 그 말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이게 그 유명한 팩트 폭력이구나.
상처받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 나한테 감사해야겠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단련시켜준 덕분에 팩트 폭력을 당해도 조금의 아픔도 없잖아?
애초에 이미 다른 한 명에게 그런 진실의 폭행을 수도 없이 당한 덕분에 단련이 끝나 있었으니까.
“현재 우리 스타즈의 최우선 목표는 3월 10일에 잡힌 엔젤스 2군과의 교류시합이네. 매우 중요한 경기지. 블루 드래곤즈와의 경기는 엔젤스 2군과의 교류전을 위한 예열 무대이고.”
“연습 무대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연습 무대에는 그 연습을 도와줄 도우미가 필요하지. 이진용, 자네에게 바라는 건 그거네. 정보가 없는 팀을 상대로 나와 이닝을 소화해주는 것. 3이닝에서 5이닝 사이, 그 이후에는 엔젤스 전에 올라올 투수들이 올라와 1이닝씩 이닝을 소화하게 될 걸세.”
“스윙맨이군요.”
“스윙맨인데 사정에 따라 선발로 나온 격이지.”
상황 설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진용은 자신이 선발로 나오는 이유를 알았으니까.
‘개꿀이네.’
더불어 이진용은 그 사실에 감사했다.
‘이런 식으로 곧바로 경기에 나올 줄이야!’
한 경기라도 더 소중한 이진용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경기야말로 바라던 바였으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때문에 이진용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진심을 담은 말을 뱉었다.
김정호 투수코치는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나름 감탄했다.
‘스물넷.’
이진용의 나이가 핏기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김정호 투수코치의 나이로 본다면 아들뻘이나 다름없는 건 사실.
그러나 지금 이진용이 보여주는 모습 어디에도 치기 어린 느낌 같은 건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결과를 남길 녀석이야.’
때문에 이 순간 김정호 투수코치는 이진용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운 좋게 박준형을 잡고, 트라이아웃에서 9타자 범타라는 기록을 만든 청년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처참한 자신의 처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청년으로.
충분히 도움과 조언을 받을 자격이 있는, 꿈을 품을 자격이 있는 미생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질문하게.”
“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였다.
우웅!
김정호 투수코치의 점퍼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힘차게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실례하겠네.”
김정호 투수코치가 스마트폰을 꺼낸 후에 이름을 확인했다.
‘박 기자?’
발신자는 다름 아니라 스포츠신문에 소속된 기자였다.
‘무슨 일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김정호 투수코치가 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인연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3월 초, 독립구단 소속 투수코치와 스포츠신문 기자가 통화할 일은 거의 없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어, 박 기자. 오랜만이네.”
그렇기에 김정호 투수코치는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로 통화를 시작했다.
“뭐?”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금방 무너졌다.
“알겠네. 감독님께 전해드리지. 고맙네.”
통화를 마친 김정호 투수코치는 곧바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는 잠시 멈칫거렸다.
이 중요한 정보를 과연 이진용에게 말해줘야 할지.
‘골치 아프게 됐군. 어떻게 일이 이런 식으로······.’
만약 이진용을 오늘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는 결코 이 정보를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김정호 투수코치에게 이진용은 충분히 관심과 가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입을 열었다.
“블루 드래곤즈의 선발 투수가 안찬섭이라고 하는군.”
“예?”
그 사실에 이진용은 기겁했다.
“설마 2015시즌에 16승을 한 대구 레이번스의 그 안찬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3.
안찬섭.
그는 흔히 말하는 신이 내린 재능의 소유자였다.
150킬로미터가 넘는 패스트볼을 계속 던질 수 있는 어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있을 때면 가장 먼저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매 시즌 끝나고 연봉 협상 시즌이 시작될 때면 가장 높은 연봉 인상률로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올렸다.
로열로더!
그야말로 왕이 되는 길을 걸었던 선수였다.
그런 안찬섭의 황금길에 먹구름이 낀 건 2016시즌 개막을 앞둔 3월 무렵이었다.
– 도박?
“예. 불법 도박한 게 걸려서 검찰에서 벌금형 받았습니다. 대구 레이번스는 검찰 발표 뜨는 순간 안찬섭을 임의탈퇴시켰고요. 당연히 2016시즌은 통째로 날렸죠.”
– 그래서 내가 몰랐군. 2016시즌에 그 녀석이 나온 경기가 한 경기도 없어서.
불법 도박으로 벌금형을 받은 안찬섭은 자신의 일곱 번째 시즌이 될 2016시즌을 흑역사로 만들었다.
– 그래서 실력은?
하지만 그가 그런 식으로 야구선수 생활이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1년의 자숙기간을 거친 후에 2017시즌에는 어떤 식으로든 프로야구무대에 복귀하리라 예상했다.
– 야구 잘해?
“당연하죠.”
그저 그대로 묻히기엔 안찬섭이란 선수가 가진 재능은 너무나도 대단했으니까.
“150대 초중반의 패스트볼을 100구 이상 던져도 구속이 줄지 않는 강철 어깨의 소유자입니다. 대단하죠?”
당장 외국인 투수를 제외한 투수 중에 안찬섭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었다.
심지어 안찬섭은 완투를 할 수 있는 체력과 내구성마저 가지고 있는 투수였다.
– 야, 그게 무슨 대단한 거냐? 인마, 난 패스트볼 던졌는데 전광판에 150킬로미터 나오면 코치도 아니고 감독이 올라와서 어깨 아프냐고, 괜찮냐고 질문을 받았어!
물론 어느 투수에게는 가소로운 수준이었지만.
“아니, 그쪽을 기준으로 잡으면 어떻게 합니까? 한국프로야구에서 그 정도면 대단한 거지. 실제로 데뷔하고 6시즌 동안 쌓은 승수가 72승이에요. 매 시즌 10승 이상 거뒀어요. 통산 방어율도 2점대 후반이고요.”
– 좆밥이네.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9시즌 뛰는 동안 거둔 승수가······.
“아니, 그러니까 그쪽을 기준으로 잡지 말고 절 기준으로 놓고 봅시다. 절 기준으로.”
– 네 기준? 그럼 야구의 신이겠군.
“아니, 신까지는······.”
– 아니야?
“······젠장, 신이라고 합시다. 빌어먹을 내가 어떻게든 포인트 모아 150짜리 공 던지고 만다. 여하튼 대단한 투수입니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토종 투수 중에는 세 손가락 안에 꼽혀요.”
어쨌거나 안찬섭은 누가 보더라도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자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세상의 관심을 받았으며 프로 데뷔 역시 세상의 관심이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처음 데뷔했을 때 별명이 제2의 김진호였을 정도이니까요.”
안찬섭이 데뷔했을 때, 세상이 그를 제2의 김진호라고 불렀던 것이 그 증거였다.
– 제2의 김진호라고?
“예.”
– 그럼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물론, 고귀한 인격과 인품, 만인의 모범이 될 법한 도덕심과 역사에 길이 남을 애국심은 물론, 언제나 봉사 정신으로 무장한 멋진 청년이겠군.
물론 제2의 김진호란 별명이 붙은 게 그저 단순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 개소리에요? 그런 인간이 도박해서 임의탈퇴에 당하겠습니까? 성격이 개에요. 개. 개새끼라고요.”
안찬섭,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만큼 오만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의 재능은 대단했다.
자연스레 그의 오만함도 대단했다.
“데뷔 1년 차에 팀 내 고참 선수가 수비 실책한 걸 가지고 술자리에서 퇴물이라고 한 걸 누군가 녹음했다가 터드리는 바람에 팀 케미를 개박살낸 경력이 있어요.”
그게 제2의 김진호라 불린 이유이기도 했다.
– 내가 얼마나 성격이 좋은데?
김진호, 그 역시 그다지 좋은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니까.
“예예, 그렇다고 합시다. 성격 좋으십니다. 아무렴요.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꼭 그렇게 대답해드릴게요.”
– 어쨌거나 그런 인간이 블루 드래곤즈의 선수가 되었다, 이건가?
그런 안찬섭이 1년의 자숙 기간 끝에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니라 사회인야구 구단인 블루 드래곤즈였다.
– 딱 보니까 세탁 들어간 거네.
“그렇죠. 세탁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안찬섭이 정말 프로에서 은퇴를 한 후 자신의 야구 인생을 사회인야구에서 보내기 위해 블루 드래곤즈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회인야구 구단에서 뛰는 모습 보여주면서,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 좀 보여주고 그러다가 눈물의 인터뷰 좀 하고, 초등학교나 중학교 가서 코치도 좀 해주고, 연탄 좀 날려주고 그러다가 여론 상황 괜찮아지면······.”
– 야구를 열심히 해서 죄를 갚겠습니다! 헤드라인은 그게 딱 적당하겠군.
말 그대로 세탁, 현역 복귀를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
–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 야구 열심히 해서 죄를 갚을 거면, 연봉 상승액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든가. 또 그런 이야기는 안 해요.
“그렇죠.”
– 여하튼 정리하면, 네가 고양 스타즈 소속으로 첫 등판하는 날 상대가 한국프로야구리그 토종 투수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다?
“예.”
어쨌거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진용은 자신의 첫 데뷔전의 마운드를 안찬섭과 함께 공유하게 될 것이다.
– 내가 이런 경우를 설명해줬지?
그리고 김진호는 이런 상황에 투수가 놓였을 때 대처해야 하는 방법을 이진용에게 가르쳐줬다.
“저보다 네임벨류가 훨씬 더 높은 선수와 매치업이 됐을 때의 대처 방법이요?”
-그래, 내가 뭐라고 했지?
“어차피 그 누구도 내가 승리 투수가 되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게 이유였다.
“그러니까 마운드 위에서 똥을 싸도 문제 될 건 없으니, 마음대로 부담 없이 상황을 즐겨라.”
이진용, 그가 이 상황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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