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44
5.
– 스탠튼 다음 타석에서 한 대 맞겠네.
스탠튼의 배트 플립이 나오는 순간 그 경기를 본 이들은 그가 다음 타석에서 보복으로 몸에 공을 맞는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아무렴, 당연히 맞아야지.
ㄴ 당연한 건 아니지.
ㄴ 무슨 소리야? 불문율을 깼잖아?
ㄴ 솔직히 난 아직도 그딴 게 왜 불문율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 모두가 동의를 보내고, 찬성을 보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 까놓고 말해서 홈런 친 게 미안해서 배트 플립을 안 하는 거면, 그냥 홈런을 치지 말아야지.
– 동감이야.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배려해줄 거면 뭐하러 야구를 해? 차라리 골프를 해. 심지어 골퍼들도 끝내주는 샷이 나오면 제 골프채를 던진다고!
– 투수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야. 타자가 배트 플립 못하니까 투수도 마운드에서 아무것도 못하잖아? 막말로 투수도 삼진 잡을 때마다 입이 근질근질할걸?
– 투수는 뭐 좋아서 빈볼을 던지나? 애초에 빈볼을 고의로 던지는 것 자체가 투수에게도 곤란한 일 아님?
메이저리그 팬들은 배트 플립이 용인되지 않는 사실에 대한 격한 불만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그건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복이 없다고요?”
“감독님이 빈볼 사인은 주지 않았다. 이대로 속행이다.”
“그럼 배트 플립을 용인하는 겁니까?”
“감독님의 의견은 그렇다.”
선수들은 코치들로부터 보복은 없다, 그 사실을 받는 순간 그 사실에 분하기보다는 오히려 눈빛을 빛냈다.
일단 타자들은 이 사실을 반겼다.
‘그럼 우리가 해도 좋다, 이거잖아?’
‘정말 해도 되는 거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케이, 그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오냐, 나도 하나 치고 아주 끝내주는 걸 보여주지.’
‘배트로 펜스를 넘겨주마.’
배트 플립은 타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끝내주는 일이니까.
홈런을 치는 것만으로도 끝내주는데, 그 순간 모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자신이 내지를 수 있는 가장 끝내주는 세레머니를 할 수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일이니까.
‘드디어 해금이 된 모양이군.’
‘젠장, 드디어 이날이 왔군.’
반면 투수들에게는 썩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홈런을 맞는 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타자의 배트마저 날아가는 것을 봐야 하니까.
‘결국 이 꼴을 보게 되는구나.’
하지만 그 사실에 불만을 품을지언정 그 불만을 소리 내어 토로할 생각은 없었다.
‘빌어먹을, 오냐 해보자. 까짓것 안 맞으면 돼.’
그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애초에 타자가 홈런을 친 건 투수 잘못이다. 홈런을 주려고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다.
그런데 홈런을 맞았는데 그걸 가지고 화나니까 세레머니 하지 말라고 투덜거린다?
동네 야구판에서는 그래도 된다.
애들끼리 야구할 때는 그래도 된다.
그러나 공을 남들보다 잘 던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 5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그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것이 투수들이 굳이 이 상황에 대해서 언성 높은 불만을 품지 않은 채 눈빛만을 날카롭게 갈고 닦는 이유였다.
– 빠던 되면 그것도 되겠지?
– 아무렴, 당연히 되겠지.
– 그럼 당연히 하겠지?
– 아무렴 당연히 하겠지.
– 이제 드디어 나도 해보는구나!
그리고 한국야구팬들이 이진용, 그의 등판을 기대하는 이유였다.
6.
오전 10시 시작된 메츠와 말린스의 경기는 3대1 말린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스탠튼, 그가 친 투런 홈런이 쐐기를 박은 게임이었다.
그 후 오후 1시부터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메츠와 말린스의 시합이었다.
“시범경기에서 두 팀이 더블헤더로 붙는 경우가 있나?”
“없던 걸로 아는데?”
“페넌트레이스도 아닌데 왜 두 팀이 연속해서 붙는 거야?”
“그 이유는 경기일정 짠 사무국만이 알겠지.”
사실 그건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대개 시범경기 중에 더블헤더를 치르는 경우에는 각기 다른 구장에서 각기 다른 팀끼리 치르고는 한다.
오전 10시 경기를 말린스와 치른다면, 오후 1시 경기는 양키스와 치르는 식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츠와 말린스의 더블헤더를 페넌트레이스 때처럼 2경기 연속으로 붙여놓았다.
비단 메츠와 말린스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몇 개 팀의 경우에도 이런 식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일정을 잡았을 리는 없었다.
– 아주 작정했군.
“작정이요?”
– 분위기를 봐. 지금 양 팀 선수들이 어떤지. 배트 플립 나온 이후부터 시범 경기 같은 분위기가 아니잖아? 분위기만 보면 양키스랑 레드삭스랑 붙은 느낌이지.
배트 플립 유행, 그것을 위한 사무국의 노림수였다.
“그렇죠.”
첫 경기에서 스탠튼의 배트 플립 이후 양 팀의 분위기는 간단했다.
메츠 타자들은 어떻게든 홈런을 친 후에 끝내주는 배트 플립으로 복수를 하고자 했고, 말린스 투수들은 그것만큼은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전력투구를 했다.
그게 3대1로 경기가 끝난 배경이기도 했다.
홈런만 노리며 전력으로 스윙하는 타자와 홈런을 어떻게든 주지 않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 투수가 만나면 그 경기는 아주 큰 점수 차로 게임이 끝나거나 아니면 이렇게 적은 점수만으로 끝나고는 하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바로 더블헤더를, 두 번째 경기를 치른다?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은 합의하게 된다.
–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뭘 해도 오케이지.
타자가 뭘 하든, 투수가 뭘 하든 빈볼도 없고 벤치 클리어도 없다는 의미의 합의.
“호우를 해도 오케이.”
당연한 말이지만 배트 플립이 허락된 상황에서 마운드 위의 투수가 삼진을 잡고 세레머니를 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리!”
그때 조 존스가 다가왔다.
“오늘 피칭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질문에 이진용은 짧게 대답했다.
“무조건 삼진만 잡는 피칭으로.”
그 짧은 대답에 조 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 모습에 이진용도 고개를 끄덕였다.
– 에휴, 또 그 지랄을 봐야 하는구나.
그리고 김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7.
오후 1시, 플로리다의 햇살이 가장 따가운 시간.
그 햇살 아래 마운드, 그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메츠의 유니폼과 함께 등에는 1이라는 숫자를 짊어진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
“쟤가 이진용이군.”
“생각보다 훨씬 작은데?”
“한국에서 방어율 0점을 찍었다는데 정말 실력으로 찍은 걸까?”
“실력은 무슨, 그냥 편파 판정으로 찍은 거겠지. 이름도 모를 리그에서 사기 치는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아시아리그는 승부조작도 한다며? 뻔하지.”
이진용.
이제는 메이저리그의 투수가 된 그의 등장에 좌중의 모든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이진용을 처음으로 공식적인 경기에서 상대하게 된 말린스의 타자 카를로스 실바는 이진용을 보고 있었다.
‘방어율 0점이라니, 정말 쓰레기 같은 리그에서 온 모양이군.’
정확히는 얕잡아보고 있었다.
‘저런 놈들이 메이저리그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메이저리그의 수치이지.’
그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선수들 중 상당수는 자신감을 넘어 자만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있다.
세상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주 박살을 내주지.’
“박살을 내겠어.”
좀 더 들어가면 그런 자들이 그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타인이 자신보다 더 낫다는 걸 인정해버린다면, 그 순간 그 선수는 자신보다 나은 타인이 수천 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보다 나은 이들 수천 명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걸 과연 인정하고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장담컨대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그걸 못한다.
못하니까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진용이 누구든 간에 그를 얕보는 카를로스의 성격 자체는 문제될 게 없었다.
‘오른손으로 던질 모양이군. 구속이 80마일대라고 했었나? 홈런 치기 딱 좋은 쓰레기 구속이군.’
더불어 카를로스는 눈에 보이는 피지컬 자체는 놀라운 타자였다.
만약 그와 스탠튼, 둘을 세워놓는다면 단순히 보이는 피지컬로는 카를로스가 나을 정도.
실제로 카를로스는 자신의 능력이 이미 메이저리거들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신이 내게 기회를 주신 모양이야. 모두가 보는 이 상황에서 메이저리그행 티켓을 받을 기회를.’
단지 자신이 운이 없어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에서 몇 번 실수를 해서 마이너리그에 있다고 생각할 뿐.
‘스탠튼보다 더 큰 홈런을 쳐주지. 그리고 배트도 그대로 관중석까지 던져버리겠어.’
당연히 그런 카를로스의 목표는 오늘 여러모로 충격적인 홈런을 친 스탠튼의 존재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우고 대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었다.
‘그럼 SNS에 내 이름이 도배되겠지.’
메이저리그 닷컴, 그 메인 페이지 영상으로 자신의 홈런과 배트 플립 영상이 채워지는 것이었다.
“으하하.”
그 사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듯, 카를로스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진용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홈런 치고 싶다, 존에 들어오는 모든 공에 풀스윙을 하고 싶다, 아주 그냥 온몸으로 광고를 해주는군. 아이고 고마워라.’
반면 김진호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 젠장, 겉모양이 튼실하기에 머리 좋은 고래인 줄 알았는데 덩치만 큰 붕어였네. 역시 메이저리그 못 올라오는 놈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까. 겉으로 멀쩡하면 뭐해, 소프트웨어가 병신인데.
그리고 조 존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치고 싶어 안달이 나면, 기꺼이 넣어주면 되지.’
그 순간 조 존스가 사인을 보냈다.
스플리터.
그 말에 이진용은 미소를 지었다.
홈런을 치고 싶어 안달이 난 건 물론, 그 사실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자만에 취한 타자에게 스플리터만큼 확실한 낚싯바늘도 없을 테니까.
당연히 이진용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곧바로 초구를 던졌다.
구질은 스플리터
코스는 당연히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후웅!
그 공에 카를로스의 배트가 허공을 시원하게, 플로리다에 태풍이라도 일으킬 정도로 거세게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퍽!”
곧바로 카를로스의 입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물론 고작 그 거친 소리 한 번으로 카를로스의 분이 풀릴 리는 만무, 그는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재차 타석에 선 채 타격을 준비했다.
그 모습에 조 존스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곧바로 이진용에게 사인을 보냈다.
조금 전과 같은 사인을.
그 사인에 이진용은 미소를 지으며, 글러브로 가린 입 사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라이징 패스트볼.”
그 주문을 마친 이진용이 다시 2구째를 던졌다.
후웅!
그 공에 카를로스의 배트가 다시 한 번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볼카운트가 한순간에 노볼 투스트라이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에 말린스의 더그아웃에 있는 타격코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순간 타격코치의 눈빛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카를로스, 저놈은 저 다혈질 성격과 상대를 깔보는 자만심과 자신이 운이 없어 메이저리거가 되지 못했다는 웃기지도 않는 착각을 버리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메이저리그를 밟을 수 없을 거라고.
재능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는 가소로운 무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사실을 타격코치는 굳이 사인을 통해서 카를로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였으니까.
다른 곳이라면 어떻게든 카를로스를 다독여서, 그를 조련하고자 하겠지만 메이저리그는 아니다.
알아서 살아남은 자들만을 고를 뿐이다.
어차피 카를로스란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를 대신할 선수는 이미 넘치도록 많기에.
‘젠장, 젠장!’
그렇기에 단숨에 벼랑 끝으로 몰린 카를로스는 벤치에서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홀로 싸움을 해야 했다.
‘저 새끼가!’
물론 이 순간 카를로스의 머릿속에 고민이라는 단어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민이란 걸 할 줄 아는 성격이었다면 이진용을 상대하기 전 그가 한국프로야구에서 보여준 피칭을 찾아봤을 것이며 이런 식으로 스플리터에 헛스윙을 두 번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냐, 또 던져봐.’
때문에 이 순간 카를로스의 목표는 하나였다.
이진용이 던지는 스플리터를 어떻게든 배트에 맞춰서 펜스 너머로 보내겠다는 것.
‘스플리터를 노리는군.’
조 존스는 그 사실을 파악하고는 곧바로 이진용에게 몸쪽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그럼 몸쪽 체인지업이면 헛스윙을 가볍게 뽑아낼 수 있겠지.’
카를로스의 몸쪽으로 흘러 들어가듯 감속하는 체인지업은 가장 완벽한 헛스윙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조 존스의 요구에 이진용을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조 존스는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찰나의 순간 동안 이진용이 원하는 공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인을 보내자 이진용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조 존스가 씨익 웃었다.
‘그래, 고작 카를로스 같은 마이너리거를 상대로 스트레이트 펀치는 필요 없지. 가벼운 잽 세 발로 제압해야지.’
그렇게 사인을 나눈 이진용이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라이징 패스트볼.”
한 번.
“리볼버.”
그리고 두 번.
그 주문을 외운 이진용이 다시 한 번 앞서 던진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공을 던졌다.
구질은 스플리터.
코스는 스트라이크존 한복판.
그 공에 카를로스가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전력으로 스윙을 했다.
후우웅!
그러자 거대한 바람이 그라운드를 스쳐 지나갔다.
‘고, 공이 사라졌어?’
그 순간 헛스윙을 한 카를로스는 물론 경기를 보던 모든 이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맙소사. 저게 스플리터라고? 포크볼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85마일짜리 스플리터가 저렇게 떨어지면, 그냥 치지 말라는 거잖아?’
이진용, 그가 보여준 마법과도 같은 공에 대한 경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아우우웃!”
그 경악으로 인해 고요해진 그라운드 사이로 주심의 삼진 콜이 지나갔다.
“호우!”
그리고 이진용의 환호 소리가 그 뒤를 이어 길게, 그야말로 그라운드를 흔들었다.
“헉!”
“뭐, 뭐야?”
“호, 호우?”
그 사실에 좌중이 기겁한 눈으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 드디어 저질렀구나.
메이저리그에 호우주의보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 응? 메이저리그 첫 뭐? 어?
그리고 이진용의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진용아 저 새끼 달려온다!
동시에 이진용의 신고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