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45
8.
호우!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마운드 위에서 터진 그 소리에 그라운드의 분위기는 그대로 경직되었다.
말 그대로였다.
‘응?’
‘어?’
말 그대로 미증유의 사태, 단언컨대 1세기가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을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판단할 수 없으니 대응 역시 불가능했다.
“마더 퍼커!”
가능한 건 오직 하나, 이진용의 도발을 곧이곧대로 직격 당한 카를로스의 본능적인 반응뿐!
순식간이었다.
카를로스가 본인이 그토록 소망한 대로 배트를 아주 화려하게 내던진 채 마운드를 향해 미친 황소처럼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메츠와 말린스 선수들도 움직일 수 있었다.
“마, 막아! 아니, 뛰어!”
“일단 나가! 저 새끼들 막아!”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때문에 메츠와 말린스, 두 팀의 선수단의 반응은 한 박자······ 아니, 두 박자 느릴 수밖에 없었다.
선수단이 더그아웃을 나왔을 때 이미 카를로스는 마운드 위에 있는 이진용을 향해 제 오른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후웅!
그런 카를로스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이진용, 그는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이 카를로스의 주먹을 가볍게 허리를 살짝 뒤로 젖히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권투선수조차 감탄을 토해낼 만한 끝내주는 스웨이였다.
후웅!
후웅!
심지어 이진용은 연달아 이어진 카를로스의 펀치를 똑같이 허리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옆으로 젖히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프로 복서가 아마추어를 링에서 가지고 노는 듯한 광경이었다.
더욱이 선수들 중에서도 덩치 큰 편에 속하는 카를로스와 선수들 중에서도 덩치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하는 이진용이었기에, 그 모습은 마치 동양의 무술고수가 무식한 외국인을 상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와우!”
그걸 보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헉!”
그때 제 힘을 주체 못한 카를로스가 결국 마운드에 있는 이진용의 발자국에 발이 걸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무렵이었다.
“떨어져!”
“나가!”
마운드에 올라온 양 팀의 선수단이 이진용과 카를로스 사이를 가로막으며 그들을 떼어놓았다.
“놔! 놔!”
그 와중에도 넘어진 카를로스는 분노 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헤이, 진정해 카를로스!”
“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의 입에서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가 흘러나왔다.
메이저리그 경력답게 스페인어를 나름 알고 있는 김진호가 잽싸게 통역해줬다.
– 야, 저놈이 스페인어로 널 사랑한다는데?
“놔! 저 개새끼가 날 먼저 도발했다고!”
– 정말 진심으로 사랑해서 빨리 널 껴안고 쪽쪽 뽀뽀까지 해주고 싶다고 하는군.
“저 쪼그마한 호빗 같은 새끼가 날 모욕했다고!”
– 음, 너보고 쪼그마한 호빗 같은 개뽀록 허접쓰레기 땅딸보 투수놈이라고 하는데? 진용아 대답해야지.
거듭된 김진호의 해석에 이진용 역시 기꺼이 대답했다.
“내 마운드에서 꺼져!”
그렇게 경기가 잠시 멈췄다.
9.
– 뭐야?
– 지금 뭐라고 한 거임?
그 사건이 터지는 순간 메이저리그 팬들은 기겁했다.
– 뭐긴 뭐야 호우지!
– 호우다, 호우!
– 드디어 터졌다!
반면 이진용의 그 환호를 오랜 시간 동안 기대하고 고대하던 몇몇 팬들은 드디어 외치기 시작했다.
– 호우 파도타기 갑시다!
ㄴ 호!
ㄴ 우!
ㄴ 호!
ㄴ 로!
ㄴ 아니,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환호를 하는 이들부터 벤치 클리어링 이유에 의문을 품는 이들과 이진용이 보여준 저 행위에 충격을 받은 이들까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 상황 속에서 나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 저 투수가 대체 뭐하는 건지 알려줄 사람?
ㄴ 이호우는 아웃 잡으면 마운드에서 호우 외침.
ㄴ 아웃을 잡으면 세레머니를 한다고?
ㄴ 시즌 내내 그랬음. 그래서 이름이 호우 리임.
질문이 나왔고 대답이 나왔다.
– 저래도 돼?
그리고 논쟁이 시작됐다.
– 타자들이 배트 플립하는데, 투수가 삼진 잡고 환호 내지르는 건 안 됨?
ㄴ 다르지 않아?
ㄴ 다를 게 뭐임? 그럼 삼진 당한 타자 심기 거스르지 않게 삼진 안 잡을까?
– 카를로스가 홈런을 쳤으면 아마 스탠튼보다 배트를 더 크게 던졌겠지. 아마 놈이라면 파울을 쳤어도 배트를 던졌을 거야.
ㄴ 아무렴, 이진용 행동에는 문제없음. 정말 문제를 찾으라면 스탠튼부터 까라고.
– 정리하면 문제없음.
– 꼬우면 니들도 호우하든가!
그렇게 시작된 논쟁은 빠르게 정리됐다.
더욱이 앞서서 첫 번째 경기에서 스탠튼의 배트 플립에 대해 메츠는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상황.
시소로 따지면 말린스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의 환호는 시소를 그나마 균형 있게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했다.
적어도 오늘 메츠와 말린스 사이에서 그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그라운드의 분위기 역시 빠르게 정리됐다.
사실 정리되고 자시고 할 건 없었다.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카를로스가 주먹 세 번이나 휘둘렀으면 보복은 거기서 끝이지.”
어쨌거나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났고, 카를로스는 이진용에게 보복을 위해 주먹을 무려 세 번이나 휘둘렀다.
그 정도면 이미 카를로스는 자기가 표할 모든 보복을 행한 것이다. 그 주먹을 맞추지 못한 건 그냥 카를로스가 못한 것뿐이다.
결정적으로 양 팀 감독이 선수의 행동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아주 제대로 일이 터졌군.’
‘그래, 터질 거면 차라리 크게 터지는 게 낫지.’
오늘 경기에서 선수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대로 간다, 그것은 이미 다른 누구도 아닌 단장으로부터 받은 명령이었으니까.
그렇게 정리된 분위기 속에서 이진용이 다시금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쯧.”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이 짧게 혀를 찼다.
‘팍 식었네.;
달아오른 분위기가 꺼지는 것을 좋아할 투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물며 그것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라면 불쾌함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메이저리그 촌놈 새끼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호우 처음 듣는다고 이렇게 지랄발광을 하네.”
그렇기에 이진용이 불평을 토해냈다.
– 뭐?
그 모습에 김진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리!”
“조?”
조 존스가 마운드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네 그 독특하고 비이성적인 세레머니 대해 할 말이 있다. 호우 말이야.”
그렇게 마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조 존스가 호우라는 단어를 꺼냈고, 그 사실에 김진호가 반색했다.
“말린스의 타자들이 그 소리에 제대로 자극을 받는다.”
– 그래, 제정신이 박혔으면 여기서 이 또라이 새끼보고 자제하라고 충고해야지, 아무렴!
반색하는 김진호를 향해 조 존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계속 부탁한다.”
– 응?
“아주 좋았어.”
말과 함께 조 존스가 엄지를 척 치켜든 후에 그대로 다시 포수석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김진호가 소리쳤다.
– 대체 왜 내 주위에는 또라이 새끼들뿐인 거야?
그 말에 이진용이 대답했다.
“글쎄요, 똥에 파리가 꼬이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요?”
말과 함께 이진용이 자신을 노려보는 말린스 선수단을 바라봤다.
‘꿈에서도 날 보기 싫게 만들어주마.’
먹잇감을 바라보듯이.
10.
승리를 위해선 적을 도발해라!
역사 속 무수히 많은 전략가들이 몸소, 직접, 무수히 많은 희생을 통해 증명한 사실이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도발할 줄 아는 자들은 그 누구보다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고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게임은 이진용이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호우!”
이진용, 그의 도발에 말린스 타자들은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퍼킹 호우맨!”
“저 호빗 같은 새끼! 저 빌어먹을 새끼!”
“저 새끼 어디서 왔다고? 김진호의 나라? 한국? 누가 한국어 욕 좀 검색해봐!”
“호로, 호로 새끼라고 하면 될 거 같은데?”
“호우로 새끼?”
2회 초, 이진용이 자신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다섯 번째 삼진으로 잡는 순간, 그리고 다섯 번째 호우를 내지르는 순간 말린스의 더그아웃에는 분노가 넘쳐흘렀다.
그런 말린스의 더그아웃을 등진 채 마운드를 내려오는 이진용의 뒤에서 김진호가 말했다.
– 애들이 아주 그냥 널 죽일 생각이다.
그 말과 함께 김진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어때? 역시 메이저리그가 재미있지? 여기 애들하고 야구하니까 한국 애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
그 질문에 이진용이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이진용 역시 말린스 타자들만큼이나 뜨겁게, 아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플로리다의 더운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김진호 선수 말대로 정말 끝내준다.’
자신에게 호우 소리를 듣는 와중에, 6명의 타자들이 다섯 번의 삼진을 당하는 와중에, 그야말로 무참하기 그지없는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는 와중에, 그런 와중에도 말린스 타자들의 기세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역시 이래서 메이저리그구나.’
그건 한국프로야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열기였다.
사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진용이 환호성을 내뱉을 때마다 한국프로야구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사실에 발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조금이라도 피를 덜 흘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죽일 듯이 때려도 기세가 절대 안 죽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달랐다.
이곳의 선수들은 피를 덜 흘리는 방법 따위는 몰랐다.
오히려 피를 흘릴수록 더 사납게 이진용을 죽이기 위해 덤벼들 정도.
‘심지어 도발 당한 상태에서 나오는 스윙도 장난 아니야. 아주 등골이 싸늘할 지경이야.’
더욱이 그들은 그냥 선수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혹은 그곳에 근접한 마이너리거들.
이진용의 실수 한 번을 놓치지 않는 건 물론, 그 실수를 단숨에 절망적인 결과로 만들고도 남을 실력자들이었다.
– 자고로 사냥감이란 팔팔하고, 살벌해야지 사냥을 하는 맛이 있는 법이지.
그래서 이진용도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저들의 열기만큼이나 자신 역시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끄집어내야 했으니까.
그건 그동안 100킬로미터로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달리다가 이제는 기본 15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는 달리는 기분과 비슷했다.
‘진짜 재미있다.’
해보면 안다.
그게 얼마나 끝내주는 일인지.
심지어 15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들을 추월할 때의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지금 이진용의 상태가 그랬다.
‘아, 더 던지고 싶다.’
당연히 이진용은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9이닝까지, 오늘 하루 전부를 이곳에서 불태우고 싶을 정도.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선발투수에게 주어지는 이닝은 2이닝에 불과했다.
이미 많은 투수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불펜에서 예열을 마친 상황이기도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진용은 이제 오늘 피칭을 마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때.
그게 이유였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진용이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는 사이 콜린스 감독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는 콜린스 감독 앞에서 옆구리에 끼고 있는 글러브를 다시 손에 꼈다.
2이닝 내내 꼈던 왼손이 아닌 오른손에.
‘일부러 왼손은 안 썼다.’
그 사실을 콜린스 감독이 모를 리 없었다.
‘왼손도 따로 쓰게 해달라, 이건가?’
콜린스 감독 역시 이진용이 2이닝 내내 오른손만을 쓰며, 자신의 왼손을 감추었음을 알고 있었으며 지금 저 제스처가 이제는 왼손으로 더 던지고 싶다는 것임을.
‘오랜만에 멋진 녀석이 등장했군.’
그러한 이진용의 모습은 콜린스 감독의 심장을 뛰게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콜린스 감독, 그는 구시대의 감독이었으니까.
이제는 혹사라고 비난하는 투수의 완투를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구시대의 감독.
그런 콜린스 감독 앞에서 더 던지고 싶다고 꾀를 부리는 투수가 등장한다면?
그 순간 콜린스 감독은 곁눈질을 통해 이진용이 아닌 다른 선수들의 낌새를 확인했다.
“리! 나이스 호우!”
“정말 끝내주는 소리였어. 나도 해봐야겠어!”
“말린스 새끼들 표정 봤어?”
“애초에 배트 던진 놈들이 잘못이지.”
“아무렴.”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과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야수들이 이진용의 피칭에 환호를 내보내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들을 대신해 말린스를 두드려주는 이진용을 향한 환호였다.
그 환호를 보는 순간 콜린스 감독은 고민 따윈 하지 않았다. 곧바로 투수코치를 불러 오더를 내렸고, 투수코치가 그 오더를 말했고, 그 말을 곧바로 이영예가 통역해줬다.
“3회에 던지랍니다. 오직 왼손으로만 던질 자신이 있다면.”
도발 섞인 그 오더에 이진용은 당연히 대답했다.
“13회까지도 던질 자신이 있다고 말해주시죠.”
그 말을 들은 투수코치가 씨익 웃었다.
“정말 배포가 끝내주는군. 그래, 메이저리거라면 그 정도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지.”
물론 투수코치는 몰랐다.
– 역시 메츠 코치들도 이 새끼가 얼마나 또라이 새끼인지 모르고 있군.
이진용이 한 말이 그저 거창한 포부 따위가 아님을.
그렇게 이진용의 3회 등판이 정해졌다.
11.
3회 초, 마운드에 이진용이 올라왔을 때 그 사실에 의문을 품는 말린스 선수는 없었다.
“저 새끼 내가 잡는다.”
“저 새끼가 다시는 지랄하지 못하도록 주둥이를 막아버리자고.”
오히려 말린스 타자들은 그 사실을 반겼다.
이진용이란 투수에게 아직 복수할 기회가 남았음을.
그와 동시에 팬들도 반겼다.
이런 날이 오기를, 투수의 공 하나하나에 환호성을 내지를 가치가 있을 만한 투수가 나오기를 그토록 기다렸으니까.
– 리다! 호우 리가 올라왔어!
– 콜린스 감독이 역시 뭘 좀 아는군. 이런 경기에서 시범 경기라고 2회만 올리고 끝내면 안 되지.
– 메츠에 드디어 진짜배기 스타가 왔어. 내가 장담하지. 저 선수가 메츠를 우승시킬 거야.
물론 이 순간을 가장 기다린 건 그 누구도 아닌 이진용 그리고 김진호였다.
다시금 이진용이 마운드를 서는 순간, 그를 따라 마운드에 선 김진호는 시범 경기라고는 할 수 없는 뜨거워진 분위기 앞에서 잠시 동안 말을 잊어버렸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김진호를 향해 글러브로 입을 가린 이진용이 말을 건넸다.
그제야 침묵에서 깨어난 김진호가 입을 열었다.
– 팬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 글쎄, 호빗 같은 쪼그마한 놈이 올라와서 호우호우 하는 꼴을 보고 저 새끼 별명은 이제부터 호우빗이다, 그러지 않을까?
호우빗.
듣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 별명에 이진용은 당연히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치지 마시죠?”
– 장난이라니? 너 같아도 너 같은 호빗 같은 투수가 호우하면 호우빗이라고 별명 붙일걸?
그 말에 이진용은 반문할 수 없었다.
‘젠장, 진짜 이러다 별명 호우빗 되는 건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 있는 말이었으니까.
‘아니야, 내 별명이 그딴 쓰레기 같은 별명일 리는 없어.’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이진용이 김진호를 무시한 채 경기에 집중하고자 타석의 타자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김진호가 씨익 웃었다.
– 호우빗님께서 왜 이렇게 표정이 굳으셨을까? 응? 너도 내심 인정하고 있는 거지?
“닥쳐요.”
‘호우빗이라니, 그런 별명은 절대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 채 이제는 자신이 잡아야 할 말린스의 7번 타자를 바라보는 이진용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줘야 해. 어떻게든.’
그런 이진용의 왼손은 당연한 말이지만 초구에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펑!
구속 150킬로미터, 93마일!
“뭐야, 저거?”
“93마일? 그것밖에 안 나왔어? 구속은 그보다 더 빨라 보이는데?”
“맙소사, 진짜 좌완 파이어볼러잖아?”
왼손에서 뿜어진 그 갑작스러운 강속구에 말린스 타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게 어느 때보다 필사적인 피칭을 시작한 이진용, 그런 이진용의 좌완 피칭 앞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말린스의 기적은 없었다.
첫 타자를 상대로 내야 뜬공을 얻어낸 이진용은 곧바로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얻어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젠장!”
그리고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뜯어냈다.
– 잘했어, 호우빗!
“닥쳐요!”
3이닝 무실점 7탈삼진, 이진용의 첫 데뷔전 성적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