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6
5화. 등판 날이 장날이다 (3).
7.
– 생각보다 세상에는 야구 잘하는 인간이 많아.
김진호는 말했다.
– 칼 같은 제구력이나, 끝내주는 변화구 구사능력, 끝장나는 패스트볼을 던지는 걸 할 줄 아는 투수는 생각보다 많아. 진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공을 던지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고.
– 문제는 연습에서는 쉬운데 실전은 어렵다는 거지. 다들 그래. 연습에서는 죄다 그렉 매덕스이고, 페드로 마르티네스이고, 랜디 존슨이고, 김진호이지. 하지만 마운드에서는? 연습 때 보인 것에 절반도 못 보이는 놈들이 대부분이야.
하지만 실전에서 그 대단한 실력을 발휘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 왜 그럴까? 가슴이 동네 참새보다 작은 새가슴이라서? 아니면 마운드처럼 높은 곳에 오르면 오금이 저리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사실 이유는 되게 간단해.
김진호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 재능. 그냥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거야. 쉽게 말하면 무대 체질이 아닌 거지. 배우랑 비슷한 거야. 누구는 무대 위에서 가진 것의 반도 못 끄집어내지만, 누구는 가진 것의 120퍼센트를 끄집어내잖아?
이진용이 반문한 건 그 무렵이었다.
“그럼 저는 어느 쪽입니까?”
–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그 반문에 김진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진용은 그 사실에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후우.”
지금 이 순간,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선발투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포인트 획득량이 15퍼센트 증가합니다.] [선두타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포인트 획득량이 20퍼센트 증가합니다.] [첫 타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포인트 획득량이 15퍼센트 증가합니다.]‘포인트는 20포인트.’
그리고 타석에 설 준비를 하는 타자들의 머리에 뜬 포인트를 확인하는 순간 이진용은 자신이 어느 타입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전 무대체질인가 봅니다.”
– 그래, 무대 체질인데 문제는 네 배역이 주연배우가 아니라 엑스트라라는 거지.
정갈하게 다듬어진 마운드.
그 위에 올라선 이진용의 주변으로는 언제나 그렇듯 따가운 눈빛만이 가득했다.
당장 그가 상대하게 될 블루 드래곤즈의 선수들의 눈빛은 당연히 따가웠고, 이진용을 처음 보는 기자들의 눈빛 역시 호의 한 점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고양 스타즈의 선수들조차도 이진용을 향해 응원 가득한 호의 어린 시선 대신 의구심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군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보기 힘든 무대.
그러나 그 사실에 이진용은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건 언제나 그랬다.
그는 비루할지언정, 겁쟁이는 아니었다.
안타를 맞고, 홈런을 맞고 볼넷을 내줄지언정 겁에 질려 던져야 할 공을 던지지 못한 적은 없었다.
– 자, 그럼 시작하자.
“예.”
당연히 지금 이 순간 이진용은 망설임 없이 던질 수 있었다.
– 초구는?
“슬라이더죠.”
이진용, 그가 자신의 첫 데뷔전을 시작했다.
8.
블루 드래곤즈.
사회인야구에서 손꼽히는 팀이다.
당연히 그들의 야구수준은 그저 취미로 야구를 하는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블루 드래곤즈가 고양 스타즈와 경기를 치러주는 건 단순한 취미 생활 때문이 아니었다.
“자! 오늘도 열심히 하자고!”
“우리 한 몸 팔아서 어린 새싹들 도와주자고!”
“다들 최선을 다해 합시다. 다들 선수 때처럼 하자고요!”
봉사 혹은 기여.
열악한 상황 속에서 야구를 업으로 삼은 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고양 스타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블루 드래곤즈의 선수들이 3월 6일이라는 월요일, 황금 같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고양 스타즈의 홈구장을 찾아와 구슬땀을 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블루 드래곤즈의 중심에는 현재 블루 드래곤즈의 감독인 이종후가 있었다.
광주 돌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무려 16년이 넘는 현역세월 동안 나름 손꼽히는 기록들을 내며 은퇴를 한 그는 은퇴 이후 블루 드래곤즈란 팀의 감독이자 코치로 움직이며 고양 스타즈는 물론 한국 야구계에 나름 봉사를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차피 쇼인데 뭘 그리 힘들게들 땀을 빼는지 몰라.”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벤치로 돌아오자마자 푸념을 내뱉는 안찬섭, 그를 블루 드래곤즈의 선발투수로 고양 스타즈와의 경기에 올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안찬섭.”
“무슨 일이십니까, 이 선배님?”
“감독이라고 불러라.”
“아, 예. 이 감독님.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몸 풀어둬라.”
“에이, 이미 풀만큼 풀었습니다. 보셨잖아요? 벌써 140대 펑펑 나오는 거. 고작 준프로 애들 상대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해요.”
“입 조심해.”
“네네, 조심하겠습니다.”
안찬섭.
누가 보더라도 인성적으로, 도덕적으로 부족하기 그가 도박 사건으로 임의탈퇴를 당했을 때, 그 누구도 그의 울타리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그런 꼴을 당했을 때 오히려 꼴 좋다고 생각한 이들이 더 많았다.
막말로 안찬섭이 평소 타의 모범이 되는 올바른 행실을 보여주는 사내였다면, 그는 충분히 동정을 받은 채 2016시즌을 자숙이 아닌 프로야구 무대에서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2016시즌을 끝으로 포스팅 자격을 취득하는 안찬섭의 메이저리그행은 한국 야구계의 아주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그의 울타리가 되어준 건, 다름 아니라 같은 팀도 아니고 오히려 대구 레이번스와 앙숙이나 다름없는 팀이었던 광주 돌핀스 출신의 이종후 감독이었다.
“안찬섭, 자중해라. 네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든 알 바 없지만 이제부터 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할 각오를 하고 행동해.”
물론 이종후 감독은 안찬섭이 불쌍해서 그의 울타리가 되어준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은 야구 인생을 한국야구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보내라.”
현재 한국프로야구 무대에서, 더 나아가 한국야구에서 안찬섭을 대신할 투수가 없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한국프로야구의 흥행 그리고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을 위해서 안찬섭은 꼭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이종후 감독이 욕받이가 되는 각오를 하면서까지 안찬섭의 울타리가 되어준 이유였다.
“예에, 예에∼.”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군.’
하지만 막상 안찬섭이란 골칫거리를 품에 아는 순간, 이종후는 자신의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정말 빌어먹을······.’
안찬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았다.
‘빌어먹을 천재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안찬섭이 가진 능력이었다.
안찬섭은 정말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1년이란 자숙기간 동안 사실상 그냥 놀고먹은 것이나 다름없었음에도 안찬섭의 공은 조금도 위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것이 단순히 노력과 땀의 흔적이 아니라, 그가 그저 타고난 것이라는 증거였다.
‘저런 재능을 가졌음에도······.’
달리 말하면 안찬섭이 땀과 노력으로 자신을 연마했다면 그는 예전에 그의 별명인 제2의 김진호란 별명대로 김진호에 나름 조금이나마 근접한 투수가 됐으리란 말.
이종후 감독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남들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신이 내린 재능을 왜 안찬섭이란 인간에게 신이 내렸을까?
‘이런 골칫거리를 다룰 수 있는 건 김진호 같은 선수뿐인데.’
더 나아가 그 아쉬움은 김진호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으로 이어졌다.
이종후 감독은 현역으로 활약하는 동안 김진호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김진호의 데뷔부터 죽음까지, 그 기간을 함께 했다.
그런 이종후가 기억하는 김진호는 위대한 선수였다.
그저 야구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거칠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지만 그는 결코 재능만으로 먹고 사는 선수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야구에 열정적이었고, 누구보다 승리를 갈망하고 스스로를 더 갈고 닦았다.
그래서 세상은 김진호에게 열광했다.
야구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스포츠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김진호 덕분이었다.
‘정말 아쉽군.’
안찬섭의 행실에 속이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그가 가진 재능에 미련이 계속 남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런 안찬섭을 대신할 투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구나.’
스타가 없으면 한국 국민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야구를 외면할 테니까.
그리고 한국 국민들이 야구를 외면하는 순간부터 한국프로야구라는 무대에서 뛰는 무수히 많은 선수들이 고배를 마셔야 할 테니까.
이종후 감독의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솔직히 이종후 감독은 그 이상 다른 무언가를 고민하고 싶은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이 감독.”
“응?”
당연히 이종후 감독은 경기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아니, 왜 벌써 들어오십니까?”
그런 이종후 감독이 오늘 경기의 상황을 파악한 건, 3번 타자이자 팀의 중심 타자이자, 자신의 선배이기도 했던 전혁수가 벤치로 돌아왔을 무렵이었다.
“벌써 들어오긴 삼자범퇴로 이닝 끝났어. 공수교대야.”
“예? 그게 무슨······.”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 녀석의 수에 넘어갔어.”
“수싸움이라니요?”
전혁수.
이종후 감독만큼은 아니지만, 현역 시절 동안 거의 대부분 주전으로 활약했던 프로였다.
이제 반백의 나이, 오십 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운동을 열심히 하는 선수.
체력과 근력은 현역 시절에 비해 부족할지언정, 노련함이란 무기로 무장한 선수.
그런 그가 투수의 수에 넘어갔다?
“슬라이더를 베이스로 던지고, 패스트볼을 결정구로 던지고 있어. 아니, 체인지업인가?”
“그게 무슨······? 슬라이더를 베이스로 던진다고요?”
심지어 전혁수의 입에서 나온 건, 더더욱 상식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다른 투수들이 패스트볼 던지듯 슬라이더만 던지고 있어. 1이닝 동안 세 타자를 상대로 패스트볼은 단 하나도 없이 슬라이더하고 체인지업만 던졌어.”
그제야 이종후 감독은 처음으로 마운드에 시선을 줬다.
이종후, 그가 이진용이란 투수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9.
프로의 무대에서 뛰는 투수들이 살아생전 가장 많이 던지는 구종은 패스트볼이다.
끝내주는 고속 슬라이더나 말도 안 되는 낙폭을 보여주는 커브, 마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포크볼을 가진 투수라고 해도 100개를 던지면 개중 50개 이상은 패스트볼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 중 가장 빠르고, 가장 위력적인 공이 패스트볼이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고 위력적이라는 건, 달리 말하면 타자의 배트에 맞았을 경우 힘에서 밀려 땅볼이 나오거나, 플라이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의미이다.
그게 바로 투수란 직업이다.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을 순 없고, 단 하나의 안타도 없이 시즌을 마칠 수도 없으며, 단 한 번도 홈런을 맞지 않는 투수는 프로 경력이 짧은 선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오면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 중 가장 위력적인 건 패스트볼이며, 때문에 투수들은 대개 패스트볼을 이용해서 볼카운트를 만든다.
마법 같은 포크볼이나, 헛스윙을 유도하는 슬라이더를 던지는 건 투스트라이크 상황에서인 경우가 많다.
– 이진용, 넌 슬라이더가 패스트볼보다 위력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패스트볼이 너무 구려.
달리 말하면 패스트볼보다 훨씬 위력적인 공이 있다면 그 공을 주력으로 삼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패스트볼 구속이 느린 투수는 다른 구질들의 구속도 느린 법.
패스트볼로 130킬로미터를 던지는 투수가 슬라이더로 140킬로미터를 던지는 일은 없지 않은가?
– 그러니까 패스트볼로 볼카운트를 만드는 것보다 슬라이더로 볼카운트를 만드는 게 나아.
하지만 이진용은 달랐다.
이진용이 던질 수 있는 공 중 가장 빠른 공은 당연한 말이지만 패스트볼이다.
그러나 그의 패스트볼은 E랭크. 그저 구속만 나오는 공일 뿐, 구위도 무브먼트도 형편없다.
반면 일일특급 스킬 효과에 의해 B랭크가 된 슬라이더는 전혀 다른 공이었다.
패스트볼에 비해서 구속이 크게 낮지도 않았고, 꺾이는 각도는 칼날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예리했으며 구위도 제법이었다.
– 슬라이더를 던져서 투스트라이크를 잡으면 그때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유도하는 거지.
여기에 이진용이 가진 또 다른 B랭크의 구질, 체인지업 역시 이미 트라이아웃을 통해 검증 받았다.
선출이든 누구든 결국 프로 레벨에 도달하지 못한 준프로, 사회인야구 레벨에서는 결코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하물며 횡으로 움직이는 슬라이더만 보다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체인지업에 곧바로 적응해서 멋진 타격을 할 타자가 얼마나 될까?
더 나아가 그런 능력을 가진 타자 중에 이진용이 그런 피칭을 하리라고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채 마운드에 선 타자는 과연 블루 드래곤즈에 몇 명이나 있을까?
그 사실에 대한 답을 확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3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삼자범퇴에 성공했습니다. 1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후우!”
삼자범퇴!
이진용, 그가 세 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이용해서 땅볼만을 끄집어냈다.
[1이닝 무실점이 진행 중입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1,219포인트입니다.]자신의 첫 데뷔전의 시작을 완벽하게 장식한 것이다.
– 오케이, 이걸로 브론즈 룰렛 1회 이용권은 확보. 수고했다.
동시에 큰 소득도 얻었다.
또 다시 브론즈 룰렛을 한 번 돌릴 수 있는 소득을.
“지금 블루 드래곤즈 더그아웃에서 날 보는 선수가 한 명도 없어요.”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진용의 눈에 보이는 건 그런 소소한 소득 따위가 아니었다.
– 어쭈? 상대팀 더그아웃을 볼 여유도 있어?
“피칭할 때마다 상대팀 더그아웃을 무조건 확인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요.”
말과 함께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마운드를 내려와 벤치를 향하던 이진용이 주변을 바라봤다.
이진용이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한 순간.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진용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 다들 머릿속에 안찬섭만 있어요. 지금 제가 무슨 공을 던졌는지 블루 드래곤스 벤치는 모를 겁니다.”
– 그렇지.
그 사실에 이진용은 불만을 품지 않았다.
도리어 날카롭게 눈을 번뜩였다.
– 그럴 땐 어떻게 하라고 했지?
그 번뜩이는 눈으로 블루 드래곤스의 벤치를 바라봤다.
“감사히 잘 먹으라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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