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60
1.
누군가 말했다.
“노히트게임이 행운의 여신이 주는 선물이고, 퍼펙트게임이 야구의 신이 주는 선물이라면, 완봉승은 선수가 상대팀에게 주는 엿이다.”
메이저리그의 지배자, 김진호가 남긴 말이다.
완봉승은 그런 기록이었다.
운이 좋아서 나왔다기보다는 투수가 상대팀을 압도했을 때 나오는 기록.
운이 아닌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물.
그렇기에 이진용이 완봉승을, 그것도 그냥 완봉승이 아닌 2게임 연속 완봉승을 거두었을 때 메이저리그 팬들이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 미친! 이거 진짜냐?
– 맙소사, 2게임 연속 완봉승이라니?
– 심지어 내셔널스랑 말린스 상대로? 그 둘은 작년 시즌 지구 1,2위 팀이잖아!
– 어메이징 호우맨!
이진용의 첫 번째 완봉승을 그저 초심자의 행운쯤으로 치부했던 이들에게는 더더욱 큰 충격이었으며, 심지어 메츠 팬들조차 이진용에 대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더욱이 이진용은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 그런데 호우맨은 인터뷰 안 해? 2게임 연속 완봉승했는데 인터뷰 기사가 안 뜨네?
– 호우맨 인터뷰는 왜 이렇게 없어? 메츠 기자들은 뭐하는 거야? 직무유기 아니야?
팬이 선수의 경기 외적인 부분을 알기 위해서는 인터뷰를 통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탓이었다.
물론 이진용이 두 번째 완봉승을 거두었을 때 메이저리그 팬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왜 이진용은 인터뷰를 하지 않는가? 그 질문을 던졌다.
– 호우맨이 인터뷰 거절했다는데?
ㄴ 왜?
–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는데?
ㄴ 낯을 많이 가린다고? 마운드에서 호우하는 놈이?
ㄴ 차라리 말실수 할 것 같아서 인터뷰를 거른다는 게 사실적인 것 같은데?
ㄴ 낯을 많이 가리는 선수라서 지나가는 메츠 팬 잡아서 사인해주는구나. 그렇구나.
그리고 그 의문에 답이 나왔다.
– 오피셜 떴다! 인터뷰 안 하는 이유!
ㄴ 이유가 뭔데?
ㄴ 고작 완봉승 같은 기록 거둔 걸로 인터뷰 할 정도로 염치없지 않다는 게 인터뷰 거절 이유라는데?
ㄴ 뭐?
그 답 앞에서 메이저리그 팬들은 더 이상 말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1세기가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 속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불가사의한 존재는 상식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했으니까.
오직 한 곳의 야구팬들만이 이런 이진용의 행보 앞에서 말문을 이어갈 수 있었다.
– 역시 호우야.
– 이래야 우리 호우지.
– 호우가 호우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한국의 야구팬들, 이미 이진용이라는 선수를 겪어본 그들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 쯧쯧, 호우가 손가락 들었는데 호우 안 하는 거 보소!
– 이래서 메이저리그 촌놈들은 안 된다니까.
ㄴ ㄹㅇ, 한국에서는 그때 전부 호우했는데.
ㄴ 아무렴 한국인이라면 호우해야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여운은 길었다.
심지어 그 소리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의 중심인 뉴욕에서도 울려 퍼졌다.
“호우!”
뉴욕의 중심에 위치한 메츠의 홈구장 씨티필드, 그곳의 클럽하우스 화장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2.
투수는 마운드에서 내려온 후에도 해야 할 것이 많다.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고, 마사지도 받아야 하며, 부상은 없는지 체크도 해야 한다.
그리고 마운드에 오르는 동안 하지 못했던 생리현상들 역시 처리해야 한다.
이진용이 화장실을 방문한 건 그 때문이었다.
– 야, 이진용!
그런 이진용의 중대한 행사를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김진호는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 구렁이를 낳냐? 빨리 좀 싸! 오늘 경기 복기하고, 다음 경기 준비해야지!
김진호의 독촉을 빙자한 방해에 이진용의 표정은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 진용아, 잘 안 나오냐? 내가 심호흡 좀 도와줘? 응? 호우호우 해줄까?
문제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이진용에게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다는 것.
– 진용아 너무 무리해서 싸지 마. 어차피 다음 경기인 쿠어스 필드에서 싸기 싫어도 싸게 될 테니까. 마운드 위에서! 으하하하! 드디어 진용이, 제삿날이 왔구나! 쿠어스 필드에서 홈런 세 방쯤 맞고 질질 우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보여!
‘젠장, 저 인간 주둥이 때문에 나오는 것도 들어가게 생겼네.’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는 순간은 다름 아니라 똥을 싸고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어떻게 저 주둥이를 막을 방법이······ 아!’
그때 이진용의 머릿속으로 김진호의 입을 다물게 할 명안이 떠올랐다.
그 순간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렸고 그 알림을 캐치한 김진호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 이 새끼가 치사하게!
그 말을 끝으로 김진호가 입을 다문 채 힘차게 돌아가는 룰렛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룰렛이 멈췄다.
그 순간 김진호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 그래, 이거지! 역시 시바 신이시다. 앞으로 시바 신만 믿겠습니다. 절대 소고기는 먹지 않겠습니다. 내가 말했지? 넌 끝이야! 이제 더 이상 행운은 없다! 시바 신께서 드디어 내 말을 들어주시기 시작했으니까!
반면 이진용의 표정은 구겨졌다.
“끄응······.”
그 구겨진 표정 사이로 이진용은 다시 한 번 골드 룰렛을 꺼냈다.
그렇게 이를 꽉 문 이진용 앞에서 새로운 골드 룰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1만 포인트를 소모해 꺼낸 룰렛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김진호는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이진용을 도발했다.
– 진용아, 이제 포기해라. 룰렛 돌려봤자 뭐가 나오겠어? 똥이나 나오겠지. 안 그래?
이윽고 룰렛이 멈췄다.
다이아몬드칸.
수백 개의 황금빛 칸 중 하나밖에 없는 그 칸에 멈추는 순간 이진용은 소리쳤다.
“호우!”
– 존? 잠깐, 이거 설마 다이아몬드 칸에 있던 스킬 아니야?
그와 동시에 이진용의 막혀 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뚫리기 시작했고, 그 사실에 화장실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으려던 김진호가 멈칫했다.
– 에이, 진짜······.
본격적으로 쾌변을 시작한 이진용의 모습을 보는 건 죽은 유령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도 김진호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이십여 분 내내 하지 못했던 것을 단 몇십 초 만에 끝낸 이진용이 세상 모든 걸 가진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며 김진호 앞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걸 보여줬으니까.
– 스킬 효과 : 스트라이크존을 볼 수 있다.
스킬 존(Zone).
– 시바 신은 무슨, 쓸모없는 시바 새끼.
신을 저버리게 할 정도로 놀라운 스킬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3.
메츠와 말린스의 4차전, 그 게임의 승자는 메츠였다.
– 게임 끝! 메츠가 말린스와의 4연전에서 3승을 챙기며 씨티 필드를 박수로 가득 채웁니다!
3승 1패.
메츠 입장에서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시나리오였고, 그 시나리오를 품은 채 메츠가 향한 다음 장소는 LA에 위치한 다저스타디움이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팀 중 하나인 다저스와 최근 다시금 기세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메츠의 대결.
더욱이 그 두 팀의 대결은 그저 단순한 팀 대 팀의 대결이 아니었다.
두 팀의 1,2,3선발이 정면으로 붙는 빅매치, 그것도 그냥 선발이 아니라 현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총출동하여 충돌하는 매치업은 메츠와 다저스 팬이 아닌 메이저리그 팬들조차 그 경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 이번 매치업 진짜 끝내주네.
– 이번 경기는 무조건 봐야지.
– 다저스가 전력으로는 우수하지만, 최근 메츠 기세를 보면 승부는 아무도 모르겠지.
– 분명한 건 끝내주는 투수전이 된다는 거겠지.
당연히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이 손에 땀을 쥔 채 그 두 팀이 3일 동안 치를 전쟁을 기다렸다.
심지어 메츠 선수단조차도 결사항전의 기세를 품은 채 다저스와의 전쟁을 준비했으며, 다저스와의 시리즈에 출전하지 않는 이진용조차 다저스의 전력분석 데이터를 읽을 정도였다.
– 뭘 그렇게 봐? 어차피 개박살이 날 텐데.
오직 한 명, 김진호만은 달랐다.
“개박살이요?”
– 응.
“무슨 의미죠?”
– 무슨 의미이긴, 다저스 상대로 메츠가 개박살이 난다는 의미이지.
김진호는 이 경기가 결코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 말에 당연히 이진용은 의구심을 품었다.
“제가 보기엔 해볼 만한데요?”
분명 다저스의 전력은 월드시리즈 무대를 노리는 게 당연할 정도로 훌륭했지만 메츠의 현재 기세도 결코 나쁘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메츠 역시 다저스를 상대로 최고의 우완 파이어볼러 세 명을 내놓았다.
100마일을 던질 줄 아는 투수 세 명이 연달아 나온다는 것, 그것만큼 무시무시한 일이 또 있을까?
‘최소한 일방적인 게임은 안 나올 거야.’
물론 질 수는 있다.
그러나 김진호가 한 말대로 박살이 날 것 같진 않았다.
– 내가 말했잖아? 디그롬, 신더가드, 하비. 이 세 명은 제2의 김진호가 될 수 있다고.
심지어 김진호는 말했었다.
그 세 명은 제2의 김진호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선수들이라고.
“그랬죠.”
– 그게 무슨 의미이겠냐?
“속 좁고, 말 많고, 추잡하지만 야구는 잘하는 선수가 될 수 있겠다, 그런 의미 아닌가요?”
– 에이, 진짜.
“장난이에요, 장난.”
그건 이진용에게 있어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찬이었다.
김진호는 이진용이 본 모든 투수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투수였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진용은 그 셋에 대한 감탄보다는 부러움 그리고 질투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칭찬이잖아요?”
– 칭찬은 칭찬이지.
그러나 김진호는 그저 그 셋을 칭찬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쓴 게 절대 아니었다.
–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걔네들은 제2의 김진호가 못 된다는 의미야.
“아.”
정말 그들이 자신에 버금가는 선수였다면 그런 표현을 쓸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 심지어 이번 엔트리에서 콜린스 감독은 조 존스를 백업 포수로 배정해두었지.
“그랬죠. 조 존스의 볼배합에 셋 모두 그다지 만족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말을 하던 이진용은 조 존스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과 호흡을 맞췄을 때를 떠올렸다.
경기 중에 큰 문제가 터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경기 후 분위기는 별로 좋지 못했다.
‘사실 좋을 수가 없지. 조 성격을 생각하면······.’
조 존스, 그는 다른 이를 다독이고 설득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메츠의 코칭스태프들이 무리해서 조 존스와 다른 투수들을 배터리로 조합할 이유는 없었다.
특히 다저스 같은 팀을 상대로는 문제가 생길 여지 자체를 남겨두지 않는 게 당연지사.
그렇기에 김진호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가 포수가 아니더라고 해도 과연 그 세 명이 쉽게 무너질까요?”
– 그럼 이번 시리즈를 잘 봐야겠네.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와 던질 줄 아는 투수의 차이점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김진호의 말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4.
참패였다.
– 게임 끝! 다저스가 7대2로 승리를 가져가며 메츠와의 시리즈를 전부 쓸어갑니다!
변명은커녕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참담한 패배.
– 생각보다 일방적인 시리즈가 됐군요. 메츠 입장에서는 이렇다 할 싸움조차 하지 못한 시리즈였어요. 특히 메츠가 기대했던 세 선발 투수들이 전부 무너진 게 컸습니다.
그 참담한 패배의 중심에는 메츠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었던 세 투수의 부진이 있었다.
5이닝 5실점, 4이닝 6실점, 5이닝 5실점.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던질 줄 아는 강속구 투수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였다.
그래서 더 뼈아픈 패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 셋이 무너진 거지?”
“그 셋이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믿음이 클수록 실망도 크며, 기대가 클수록 패배했을 때의 상처도 큰 법이기에.
하지만 메츠에게 뼈아픈 상처를 치료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은 프로였고, 프로답게 다음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었으니까.
“젠장, 이런 상황에서 쿠어스 필드라니······.”
“제 발로 무덤으로 걸어가는 기분이야.”
문제는 메츠의 다음 상대가 콜로라도 로키스,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쿠어스 필드라는 것.
때문에 메츠 선수들은 다음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품는 대신 동정심을 품었다.
“리도 안 됐어, 이런 상황에서 쿠어스 필드라니.”
“첫 시즌, 그것도 4월에 쿠어스 필드 신고식을 치르다니, 재수가 없는 거지.”
“어쩌겠어? 타자들이 터져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 처참한 분위기 속에서 쿠어스 필드의 마운드에 처음으로 올라서게 되는 이진용에 대한 동정심을.
그렇게 메츠가 쿠어스 필드가 있는 콜로라도로 향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