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62
10.
스트라이크존.
야구라는 스포츠를 존재케 하는 요소다.
때문에 야구의 모든 것은 이 스트라이크존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렇기에 모든 야구선수들은 이 스트라이크존을 정복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이크존을 정복한 이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트라이크존은 타자마다 그리고 경기마다 심지어 시즌마다 바뀌었으니까.
일단 타자마다 스트라이크존이 달랐다. 타자의 신장 그리고 타격폼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완벽하게 똑같은 스트라이크존을 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또한 주심마다 스트라이크존 역시 달랐다. 바깥쪽 공에 후한 판정을 주는 주심이 있는 반면, 낮은 공에 후한 판정을 주는 주심이 있고, 그냥 판정이 짠 주심도 있었다.
심지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이저리그 흥행을 위해 스트라이크존을 바꾸고는 했다.
투고타저의 시대, 너무나도 투수가 유리한 시대에서는 좀 더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라는 요구를 했고 반대로 타고투저의 시대에서는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라는 요구를 했다.
이렇게 항시 바뀌는 스트라이크존을 정복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건 이진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석에 섰을 때 그의 눈에는 스트라이크존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진용의 스트라이크존일 뿐, 다른 타자들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스트라이크존이 아니었다.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은 몸쪽 낮은 공 그리고 몸쪽 높은 공에 판정이 후했어.’
단지 참고를 할 수 있을 뿐.
‘쉽게 말하면 어지간한 몸쪽은 전부 스트라이크라, 이거군.’
그리고 그 참고를 하는 이가 이진용이라는 것뿐.
그것뿐이었다.
‘그럼 안 던져줄 이유가 없네.’
그리고 그것뿐이면 충분했다.
– 무슨 이딴 게임이 있어? 게임에서 맵핵이 제공되는 게 말이 돼?
이진용, 그가 쿠어스 필드를 타자들의 무덤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11.
언제나 그렇다.
조용하면 사고가 터지고는 한다.
1대0, 메츠의 1점 차 리드로 조용한 경기가 진행 중이던 쿠어스 필드에 사고가 터진 것은 5회 말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5회 말, 마운드에 있는 오른손 피칭을 하는 이진용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루킹 삼진으로 잡는 순간.
“호우!”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진용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순간.
그 순간 삼진을 당한 로키스의 8번 타자 제리 베이는 주심을 향해 소리쳤다.
“젠장, 이게 무슨 스트라이크야! 몸에 맞을 뻔한 공이잖아!”
그 소리에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빌어먹을 눈알이 있으면 똑바로 봐!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인지! 제대로 판정을 하라고!”
제리 베이가 한 마디를 넘어 두 마디째를 내뱉자 주심의 눈매가 싸늘하게 식었다.
넘지 말아야 선을 밟은 상태.
하지만 로키스 선수들 중에 제리 베이를 말리기 위해 당장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베이 말이 틀린 건 없지. 오늘 주심 판정은 쓰레기였어.’
‘저런 몸쪽 공에 스트라이크 콜을 하면 타자보고 뭘 치라는 거야?’
모두가 제리 베이의 심정에 동의하고 있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이 순간 로키스의 모든 타자들의 심정은 제리 베이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다.
모두가 제리 베이와 똑같이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젠장, 저 호우맨 상대로 아직 안타 하나도 뽑지 못하다니······.’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오늘 말도 안 되는 걸 당할지도 몰라.’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투수들의 무덤에서 마운드 위의 자그마한 투수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역시 품고 있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후자의 것이 컸다.
현재 로키스 타자들은 이진용을 상대로 두 번 출루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모두 볼넷으로 인한 출루에 불과했다.
5이닝 내내 안타 하나를 얻어내지 못했다.
‘저 새끼 오늘 왼손은 한 번도 안 꺼냈어.’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이진용은 단 한 번도 왼손 피칭을, 최고 99마일을 찍는 좌완 파이어볼러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였다.
로키스 타자들이 불만을 넘어 불안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상태.
그런 상태였기에 로키스 선수들은 제리 베이의 말에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제리 베이를 말리지 못했다.
“이딴 식으로 판정을 하니까 심판 대신 로봇을 쓰라는 말이 나오는 거야!”
결국 제리 베이가 선을 넘었고, 그가 선을 넘는 순간 주심도 선을 넘었다.
“퇴장!”
“뭐?”
제리 베이에 대한 퇴장 선언이 나왔다.
“자, 잠깐!”
그제야 로키스 선수들이 앞다투어 나와 제리 베이를 말리기 시작했고, 코치가 나와 주심에게 다가가 항의를 시작했다.
메츠의 더그아웃 분위기도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퇴장이라니, 베이 녀석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두 마디 넘어갔을 때 말렸어야지.”
“주심하고는 대화가 길어져서 좋을 게 없는데, 저건 안 말린 쪽도 잘못이 크네.”
그 어수선함 속에서 오로지 한 명만이 조용히 제 할 일을 했다.
“호······.”
이진용.
“우······.”
그만이 더그아웃 한구석에 마련된 산소 호흡기를 이용해 자신의 부족한 산소를 채우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 역시 너도 사람은 사람인 모양이구나. 쿠어스 필드에서는 숨이 차는 걸 보면.
그 모습에 김진호가 실소를 머금었다.
그런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잠시 산소 호흡기를 뺀 후에 나지막이 말했다.
“별로 숨 안 차는데요?”
호······우······.
그리고 다시 산소 호흡기를 차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이진용.
그 대답에 김진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 뭔 개소리야? 숨이 차니까 호흡기 쓰는 거잖아? 숨도 안 차는데 왜 그걸 써?
그 반문에 이진용이 다시금 산소 호흡기를 치운 후에 대답했다.
“미리 해두는 거예요. 호우하다가 숨이 차는 바람에 호우 안 나오면 안 되잖아요.”
– 뭐?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답에 김진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조차 없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메츠 선수들의 눈에 비친 이진용의 모습은 김진호가 보는 것과 전혀 달랐다.
‘리가 전력을 다해 점수를 막아주고 있다.’
이진용은 지금 지쳐 있다고.
‘하긴, 쿠어스 필드에서 5이닝 무실점 피칭을 하는데 여유가 있을 리가 없지.’
쿠어스 필드라는 투수들의 무덤 위에서 점차 지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리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점수를 더 내야지.’
그런 이진용의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주기 위해서는 1대0인 점수 차를 더 벌릴 필요가 있다고.
그 사실을 느낀 메츠 선수단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넘어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메츠의 리더, 데이비드 라이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름을 끼얹었다.
“6회를 빅이닝으로 만들고, 연패를 끊는다!”
“오!”
“그래, 연패는 연승으로 되갚자고!”
“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자고!”
쿠어스 필드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투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 이건 또 뭐야?
진실을 아는 김진호 입장에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
“호······ 우······.”
그 광경 속에서 이진용의 숨소리가 흘렀다.
그렇게 6회 초가 시작됐다.
12.
1대0, 메츠의 1점 차 리드와 함께 시작된 6회 초.
– 6회 초가 시작됐습니다. 점수는 0대1로 메츠가 1점 차 리드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양 팀은 합쳐서 안타 3개, 볼넷 3개만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 쿠어스 필드에 어울리지 않는 스코어군요.
그것은 쿠어스 필드가 가진 악명, 투수들의 무덤이란 별명에 어울리지 않는 점수 차였다.
당연히 쿠어스 필드는 그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 타구가 쭉쭉 뻗습니다! 아! 펜스에 맞고 떨어집니다!
쿠어스 필드에서 본격적인 장타가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에 쿠어스 필드는 보여줬다.
– 큽니다, 타구가 무척 큽니다.
– 넘어가겠군요.
– 넘어갔습니다! 쓰리런 홈런! 메츠가 로키스를 큼지막하게 따돌리는 쓰리런 홈런을 날립니다!
홈런, 쿠어스 필드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이 나왔다.
메츠가 점수 차를 4점 차로 만드는 3점 홈런을 낸 것이다.
하지만 쿠어스 필드는 그 사실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못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홈런 하나에 만족했다면 투수들의 무덤이란 별명은 붙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 아!
– 넘어갔네요.
결국 6회 초에 두 번째 홈런이 나왔다.
– 조 존스, 그가 투런 홈런으로 오늘 경기에 쐐기나 다름없는 점수를 뽑아냅니다.
두 번째 홈런의 주인공은 조 존스였다.
– 이번 시즌 조 존스의 폼이 무척 좋군요. 과거의 조 존스를 떠올리게 하는 홈런이었습니다.
완벽, 그 자체.
쿠어스 필드가 아니었어도, 심지어 그곳이 타자들의 무덤이라는 AT&T파크였었어도 타구를 보자마자 외야수가 공을 쫓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완벽한 홈런이었다.
6대0.
메츠가 삽시간에 로키스를 멀찌감치 따돌리는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6회 초 2사 상황에 9번 타자로 나온 이진용이 다시금 루킹 삼진을 당했을 때 그 사실에 큰 의미를 두는 이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몇몇 메츠 팬들은 생각했다.
– 리 루킹 삼진이네?
– 잘됐네. 괜히 문제 생기는 것보단 차라리 삼진 당하는 게 낫지.
– 그래, 6점 차인데 괜히 출루했다가 힘 빼고 6회 말에 맞을 바에는 안전하게 가야지.
– 아무렴, 투수가 공만 잘 던지면 되지.
차라리 다행이라고.
괜히 이진용이 타석에서 무리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단 삼진으로 물러나는 게 낫다고.
하지만 이진용이 루킹 삼진을 당한 이유는 결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몸쪽이 작아지니, 바깥쪽이 커지네.”
이진용이 보는 세계가 다시 한 번 변했다는 것.
“아, 그럼 어쩔 수 없네. 바깥쪽도 후벼 파주는 수밖에.”
– 에이, 진짜! 로키스 놈들은 괜히 주심 자극해서 존을 넓히고 지랄이야!
그렇게 6회 말이 시작됐다.
13.
조 존스, 그의 홈런이 나오는 순간 로키스 더그아웃에는 오로지 패색만으로 칠이 되어 있었다.
‘졌다.’
‘졌네.’
제아무리 쿠어스 필드라고 해도 남은 4이닝 동안 6점이란 점수를 뒤집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로키스 선수단을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이 그것을 위해 무너뜨려야 하는 투수의 존재였다.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주심의 삼진 아웃콜과 함께 타석에서 물러나는 자그마한 선수.
그 선수를 바라보는 로키스 선수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로키스 타자들은 메츠와의 시리즈를 쉽게 생각했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저스를 상대로 그냥 패배를 넘어 무참한 패배를 당한 채 쿠어스 필드를 방문하는 메츠 선수단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짓더라도 그 미소를 볼 여유조차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이 정도일 줄이야.’
더 나아가 이진용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2게임은 운이 좋았다고.
양손투수라는 특이성이 통했을 뿐이라고.
아니, 저평가를 떠나서 쿠어스 필드 아닌가?
투수들의 무덤, 그곳에서 이진용은 잘해봐야 6이닝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진용이란 이름이 쿠어스 필드를 장식하는 묘비에 새겨지리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오늘 로키스 타자들 앞에 등장한 이진용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주심 판정이 아무리 지랄 맞았더라도 그렇게까지 몸쪽을 제대로 던질 줄이야.’
분명 주심이 몸쪽 공에 후한 판정을 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토록 몸쪽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많지 않았으니까.
몸쪽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컨트롤은 물론 그 컨트롤을 완벽하게 발휘할 정신력과 담력을 가져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진용이 그런 투수였을 줄이야?
‘심지어 왼손은 꺼내지도 않았으니······.’
결정적으로 로키스 타자들을 가장 참담하게 만드는 건 오늘 경기에서 이진용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왼손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진용은 패스트볼의 무덤에서 가장 빠른 패스트볼을 봉인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로키스 타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뼈저린 것이었다.
물론 로키스 타자들은 생각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오른손만으로는 불가능할 거야.’
이제까지는 오른손만으로 버텼지만, 이제부터는 왼손을 꺼낼 것이라고.
‘지더라도 쉽게 질 수는 없지. 남은 두 경기를 위해서라도.’
오늘 경기는 패배하더라도, 앞으로 쿠어스 필드에서 두 경기나 남은 만큼 쉽게 지진 않겠다고.
‘그래, 쿠어스 필드에서 실점 없는 투수를 용납할 순 없지.’
더 나아가 이진용에게 쿠어스 필드에서 무실점 피칭이란 훈장은 절대 줄 수 없다고.
그런 그들 앞에 이진용이 등장했다.
“어? 야, 저거 봐! 저거!”
“응? 글러브가 바뀌었잖아?”
“잠깐! 저거 양손투수 글러브가 아니잖아?”
“······우완투수용이야.”
우완투수용 글러브를 옆구리에 낀 채.
14.
컨트롤이 좋은 투수들이 이닝 초반에 볼을 연거푸 던지거나, 볼넷을 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실에 야구를 볼 줄 아는 팬들은 큰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 투수가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을 파악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투수는 그런 식으로 스트라이크존을 파악했다.
주심이 볼을 주는 코스가 어디인지, 스트라이크를 주는 코스가 어디인지 그 경계면을 찾기 위해 공을 던지고는 했다.
그건 타자에게 있어서도 기회였다.
타자 역시 투수가 던지는 공에 대한 판정을 보고 자신의 스트라이크존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투수가 이미 스트라이크존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피칭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진용이 마운드 위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펑!
“스트라이크, 아우웃!”
8회 말, 이진용이 자신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냈다.
– 리! 그가 8회 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열다섯 번째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더불어 오늘 경기 열다섯 번째 삼진이었다.
– 완벽하네요. 정말 완벽한 컨트롤이에요.
6회와 7회 그리고 8회.
이진용은 마주하는 타자들의 바깥쪽 코스를, 이제는 주심이 잡아주기 시작한 그 코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당연히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졌다는 것을, 바깥쪽마저 잡아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로키스 타자들은, 심지어 이진용의 글러브 체인지라는 도발에 넘어온 타자들은 그런 이진용의 피칭 앞에서 제 힘을 쓸 수 없었다.
그건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웠다.
당한 로키스 타자들 입장에서는 분노마저 상실할 정도로 일방적인 폭력.
심지어 이진용의 폭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호우!”
이진용의 환호성이 투수들의 무덤 위를 가득 채웠다.
“퍼킹 호우맨!”
“어떻게 된 놈이 쿠어스 필드에서 8회 내내 저렇게 소리를 칠 수 있는 거지?”
“저 새끼는 숨도 안 차나?”
쿠어스 필드, 그저 공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살아야 하는 그곳에서 듣는 이의 고막이 터질 듯한 이진용의 환호성은 이제 짜증을 넘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
물론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 8이닝 3볼넷 15탈삼진. 예, 맞습니다. 현재 리는 노히트 게임 페이스를 유지 중입니다.
노히트노런.
정말 중요한 건 이진용이 그 어디도 아닌 쿠어스 필드, 투수들의 무덤에서 타자들의 장송곡을 부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만약 리가 오늘 노히트 게임에 성공한다면 1996년 노모 히데오 선수 이후 쿠어스 필드에서 노히트 게임을 기록한 선수가 됩니다. 동시에 쿠어스 필드에서 노히트 게임을 기록한 두 번째 투수가 됩니다.
쿠어스 필드가 개장한 이후 오로지 단 한 명의 투수에게만 허락했던 기록이 깨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 사실 앞에서 로키스 선수들은 물론 메츠 선수들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쿠어스에서 노히트라니? 그것도 양손 투수인데 오른손만으로?’
‘잠깐, 여기서 노히트 게임을 하면 3게임 연속 완봉승인가?’
‘27이닝 무실점······ 맙소사.’
2게임 연속 완봉승을 거둔 후에 쿠어스 필드에서 노히트 게임을 준비 중인 투수가 있을 순 있다.
그러나 그 투수가 설마 이진용일 줄이야?
당연히 이진용이 더그아웃에 들어왔을 때 메츠의 모든 이들이 이진용을 지켜봤다.
놀람, 존경, 감탄, 의심······ 복잡한 감정들이 섞인 눈이 이진용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이진용은 말없이 벤치에 앉은 후에 산소 호흡기를 끼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
그러자 복잡했던 감정들이 하나로 통일됐다.
모두가 감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말도 안 되는 것을 이룩한 순간, 더 대단한 것을 이룩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하기 위해 산소 호흡기를 입에 댄 채 산소 공급을 하는 이진용의 모습은 그야말로 프로, 그 자체였으니까.
‘대단하다.’
‘프로, 그 자체로군.’
‘실력은 물론 정신적으로 정말 위대한 선수구나.’
그 감동에 몇몇 선수들, 감수성이 풍부한 선수들은 저도 모르게 눈가가 젖을 정도.
물론 김진호는 알았다.
– 그래, 인터뷰하다가 숨차면 안 되겠지. 열심히 처 마셔라. 폐 터지게 마셔라!
이진용이 산소 호흡기를 입에 댄 이유가 무엇인지.
그런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산소 호흡기를 입에 댄 채 짙은 미소를 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