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70
1.
100마일.
야구를 하는 모든 투수들에게는 꿈과 같은 공.
그런 꿈을 이진용이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순간 내셔널스 타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당황이 아니었다.
하이에나인 줄 알고 이빨을 드러낸 상대가 자신들보다 강한 사자임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
놀라는 수준을 넘어 등골이 싸늘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고, 오금이 저리는 기분.
빡!
‘젠장!’
당연히 내셔설스 타자들에게 좋은 결과는 없었다.
– 배트가 부러집니다, 유격수가 공을 잡습니다, 1루 송구!
– 아웃이네요.
– 리! 그가 다시 한 번 4회 초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합니다.
–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두 가지를 절묘하게 이용해서 내셔널스 타자의 타이밍을 앗아가는군요.
이진용의 왼손 앞에서 내셔널스의 4회는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100마일이라니?
‘말도 안 되는 괴물이군.’
내셔널스 타자들에게 있어서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악몽을 마주한 셈.
그러나 내셔널스 타자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씨티 필드를 가득 채운 메츠 팬들이었다.
“100마일이라니!”
이제는 억지로 흠잡을 것조차 없어진 이진용 앞에서 씨티 필드는 인정을 넘어 굴복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맙소사, 대체 호우맨 정체가 뭐야?”
“뭐긴, 우리 팀 에이스지.”
“그래, 꿈에서나 볼 법한 에이스.”
이진용이 강제로 씨티 필드 위에 군림하는 순간이었다.
2.
4회 초, 이진용이 100마일을 찍은 이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더 이상 억지로 구속을 쥐어짜내지 않았다.
더 이상 구속으로 이진용을 윽박지르는 것이 무의미한 짓임을 깨달았고, 빠른 공을 뿌리는 대신 다시금 완급조절을 통해 메츠의 타자들을 착실하게 잡아갔다.
이진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볼버를 통해서만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진용은 그것을 남발하기보다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내셔널스 타자들을 상대로 거듭 허를 찔렀다.
왼손으로 도리어 90마일 초반대 공을 던지는 와중에 90마일짜리 슬라이더를 섞어주며 100마일에만 정신이 팔린 내셔널스 타자들을 문자 그대로 요리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 리가 6회에 남은 두 타자를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으며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6이닝 1피안타 볼넷 하나 없는 무실점을 기록, 동시에 자신의 무실점 이닝 기록을 42이닝으로 늘립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6회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으며 오늘 여덟 번째 삼진을 기록합니다!
그런 그 둘의 피칭 앞에서 양 팀의 타자들은 이미 숨이 멎은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 메츠와 내셔널스, 두 팀의 에이스가 말 그대로 에이스다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전광판의 스코어는 0대0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 오늘 경기는 정말 1점 차 승부가 될 것 같습니다.
– 예, 1점에 승패가 나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전광판이 허락하는 숫자는 1, 그것 외에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그 사실 앞에서 타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솔직히 없었다.
‘두 투수 모두 물이 올랐어.’
‘절대 2점 이상 못 뽑아내.’
‘마운드에서 끌어낼 수도 없고.’
앞서 말했듯이 타자들은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었을뿐더러, 지금 마운드에 오르는 두 투수는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보조하며, 자신들의 능력치를 100퍼센트 이상 발휘하고 있었으니까.
언터처블.
그 표현 그대로 지금 씨티 필드의 타자들은 감히 두 투수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 타자들은 그냥 게임을 포기했네.
오로지 두 투수들만이 서로를 건드릴 수 있을 뿐.
– 이럴 때 내가 어떻게 하라고 했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진용은 이미 김진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팀을 믿고,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품으라고 하셨죠.”
– 장난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라고 했어?
“투수가 나서서 게임 분위기를 바꾸라고 하셨죠.”
– 그래, 그래서 어떻게 바꿀래?
김진호의 거듭된 질문에 이진용은 말했다.
“김진호 스타일로 가야죠.”
– 내 스타일?
“I kill you.”
3.
타자는 투수를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투수의 공에 익숙해진다.
때문에 타자와 투수의 승부가 계속되면, 타자가 안타를 칠 확률은 점차 높아진다.
그 사실을 모르는 타자는 적어도 프로 레벨에는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하물며 7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내셔널스의 2번 타자 브라이스 하퍼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내가 해결한다.’
당연히 그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타석에 이진용을 상대로 확실하게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어떤 손이든 와라.’
더욱이 이미 이진용의 오른손과 왼손을 1회와 4회에 번갈아 가면서 상대한 만큼, 이진용이 어느 손을 꺼내 들더라도 그로부터 분명한 안타를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브라이스 하퍼는 자신이 완벽한 해결사가 되기보다는 선두타자답게 밑거름이 될 각오도 있었다.
‘필요하면 볼넷도 얻는다.’
그건 자존심을 굽힌 게 아니었다.
‘놈을 상대로는 그조차도 쉽지 않겠지만.’
그렉 매덕스나 랜디 존슨을 상대로 볼넷을 얻어서라도 출루하겠다는 것을 그 누구도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브라이스 하퍼 역시 이진용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를 메이저리그 최고 레벨의 투수로 인정했다.
그렇게 타석에 선 채 사냥꾼이 되어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는 브라이스 하퍼를 보며 이진용은 글러브를 왼손에 꼈다.
– 리가 하퍼를 상대로 오른손을 꺼내 들었습니다.
– 이번 승부, 아마 긴 승부가 될 것 같군요.
브라이스 하퍼를 그저 단순히 힘만으로 제압하는 것은 힘들기에, 정교함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와라.’
브라이스 하퍼는 그 결정을 기꺼이 반겼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태세를 갖추었다.
일단 브라이스 하퍼는 자신의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봤다.
‘놈의 오른손은 스트라이크존의 경계면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존을 좁게 보면 루킹 삼진을 당할 뿐.’
타자에게는 그것이 불리하지만, 이진용을 상대로는 그 정도의 불리함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어떻게든 걷어낸다.’
그렇게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을 앞에 둔 채 브라이스 하퍼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런 브라이스 하퍼의 집중력은 이진용에게 있어서도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당연히 둘의 승부 역시 치열했다.
펑! 포수의 미트를 파고드는 소리와 딱! 브라이스 하퍼가 공을 걷어내는 소리가 씨티 필드를 채워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 볼카운트는 이내 풀카운트에 도달했다.
딱!
– 하퍼가 다시 한 번 공을 걷어냅니다!
– 대단하네요.
그리고 그 풀카운트 상황에서 브라이스 하퍼는 이진용의 공을 걷어냈다.
딱!
– 또 다시 걷어냅니다!
무려 세 번이나 연속해서 걷어냈다.
– 하퍼가 리로 하여금 공을 8개나 던지게 만듭니다.
브라이스 하퍼, 그가 이진용에게 무려 8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한 것이다.
그건 오늘 경기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리가 내셔널스 타자를 상대로 8구 이상 던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오늘 이진용의 피칭은 누가 보더라도 맞혀 잡는 피칭, 투구수를 아끼는 피칭이었고 그렇기에 타자를 상대로 던지는 공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타자 한 명을 상대로 이렇게 많은 공을 던지는 건 오늘 처음 있는 일.
“좋아! 하퍼! 그대로 가는 거다!”
“그대로 계속 물고 늘어져!”
달리 말하면 그건 곧 브라이스 하퍼를 비롯해 내셔널스가 이진용을 상대할 방법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딱!
– 또 걷어냅니다!
심지어 브라이스 하퍼는 이진용이 던진 9구째 공마저 걷어내며 이진용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건 생각보다 투수 입장에서 껄끄러운 일이었다.
– 여기서 볼넷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리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 될 겁니다.
당장 이진용의 투구수가 위험 수준까지 많아진 건 아니었다. 앞서서 투구수 관리를 잘했으니까.
하지만 체력이란 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적당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과 어느 순간 그 리듬이 무너지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니까.
솔직한 말로 브라이스 하퍼 입장에서는 이대로 아웃으로 물러나도 솔직히 손해 볼 게 없는 수준.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때문에 브라이스 하퍼가 이진용이 던진 10구째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을 때 내셔널스 선수단은 그 사실에 울분을 토하기보다는 오히려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빈대로 메츠 팬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이런 삼진은 잡아도 잡은 게 아니지.’
‘젠장,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 경기가 꼬일 것 같은데?’
거침없던 이진용의 질주가 갑자기 멈춘 느낌이었으니까.
그런 좌중의 반응 속에서 이진용이 조금은 늦게 소리쳤다.
“호······.”
자신이 잡은 삼진에 대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
그러나 그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작고 가냘팠다.
“지쳤네.”
“지쳤어.”
누가 보더라도 이진용은 지쳐 보였다.
심지어 환호성을 내지른 후에 흐르는 땀을 닦는 이진용의 모습은 처량하게도 보였다.
그 모습에 메츠 더그아웃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콜린스 감독이 투수코치에게 사인을 줬고, 투수 코치가 곧바로 불펜 투수들에게 눈빛을 줬다.
지친 이진용을 무리하게 마운드에 올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더욱이 이진용에게는 불안요소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 호우맨 지친 듯.
ㄴ 지칠 수밖에 없지. 휴식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앞서서 4게임 완봉승을 했다고!
ㄴ 4게임 완봉승 후에 에이스로 나온 첫 경기이기도 하지.
ㄴ 100마일 찍은 거 보면 평소보다 무리한 것도 분명하고.
이번 시즌이 메이저리그 첫 시즌인 투수가 시작과 함께 쉼 없이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4경기에 나와 모든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었다는 것.
오늘 경기가 단순한 경기가 아닌 에이스가 되어 치르는 첫 경기라는 것.
심지어 상대는 리그 최강팀 중 하나인 내셔널스이며, 오늘 이진용은 자신의 최고 구속을 갱신할 정도로 전력투구를 했다는 것.
– 여기까지 이렇게 던진 게 대단한 거야.
– 이 정도면 에이스가 될 자격은 충분하지.
– 오늘 져도, 난 호우맨이 에이스가 되는 것에 조금도 반대하지 않겠어.
ㄴ 애초에 반대한 게 이상한 거지. 이런 투수를 두고 에이스를 하면 아마 그게 더 부담스러울걸?
ㄴ 메츠 구단이 괜히 호우맨을 급하게 에이스로 돌린 게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이진용이 지금까지 피칭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박수 받아 마땅했다.
물론 내셔널스 입장에서는 달랐다.
“드디어 놈이 흔들리고 있어.”
“좋아, 무리해서 큰 것 한 방을 노리기보다는 차라리 놈을 지쳐 쓰러지게 하자고.”
내셔널스 타자들은 브라이스 하퍼가 제시한 방법을 그대로 따랐다.
“최대한 물고 늘어지자고.”
모두가 이진용을 상대로 명확한 승부가 아닌 집요한 승부를 택했다.
그리고 내셔널스 타자들은 원하는 바를 이룩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브라이스 하퍼의 뒤를 이어 나온 라이언 짐머맨은 이진용으로 하여금 8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한 다음에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고, 그 뒤를 이어 나온 4번 타자 대니얼 머피는 이진용에게 무려 9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한 후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세 타자 연속 삼진이지만, 내셔널스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결과였다.
“호우.”
때문에 이진용이 삼진을 뱉을 때마다 내지르는 그 호우 소리에 내셔널스 선수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어이, 지금 들었어?”
“아니, 못 들었는데? 소리가 여기까지 닿지도 않잖아!”
“억지로 쥐어짜내는군.”
“호우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지는 거 아니야?”
누가 보더라도 지쳐가는 이진용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단말마처럼 들렸으니까.
반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7회 말은 이진용이 보여준 7회 초와 전혀 달랐다.
빠악!
다시금 강속구를 뿌리기 시작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고작 공 11개만으로 메츠의 아웃카운트 3개와 배트 2자루를 뺏어왔다.
– 역시 스트라스버그야!
–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투수답네!
마운드 위에서 넘치는 체력을 뽐내며, 신이 내린 재능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8회 초, 당연히 내셔널스의 벤치 오더는 7회와 같았다.
“최대한 물고 늘어지도록.”
이진용에게서 더 많은 투구수를 뜯어내자고.
그런 내셔널스의 시도는 곧바로 결과로 보답받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5번으로 나온 타자는 이진용에게서 8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6번 타자 역시 이진용에게 8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7번 타자는 무려 이진용에게 11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했다.
내셔널스의 타자 여섯 명이 7회 그리고 8회, 두 이닝을 합쳐 무려 57구를 이진용으로부터 뜯어낸 것이었다.
6회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투구수가 58구에 불과했던 이진용의 투구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렇기에 7번 타자가 삼진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셔널스 벤치는 그 사실에 만족했다.
삼진 숫자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호우!”
이진용, 그의 우렁차다 못해 화산이 폭발한 듯한 외침이 내셔널스의 더그아웃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
‘뭐야?’
이제까지와는 전혀 비교되지 않는, 더그아웃은 물론 메이저리그 구장 중에서도 넓기로 유명한 씨티 필드의 외야에마저 닿을 듯한 이진용의 외침에 내셔널스 타자들은 물론 씨티 필드에 있는 모든 관중이 놀란 눈으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지친 거 아니었어?’
‘목소리가 지친 사람 목소리가 아닌데?’
카메라 역시 마운드를 내려오는 이진용을 비추었다.
그런 좌중의 시선 앞에서 이진용은 활짝 편 손가락을 엄지부터 차례대로 접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주먹에서 다시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대로 펴기 시작했다.
여섯, 일곱, 여덟.
이진용은 거기서 셈을 멈추고는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무렵이었다.
– 지금 호우맨 삼진 몇 개지?
– 오늘 10개째 아니야?
ㄴ 10개밖에 안 됨? 6회부터 삼진 엄청 잡은 거 같은데?
경기를 보던 이들이 깨닫기 시작한 건.
– 엄청 잡은 정도가 아니야. 6회 1사부터 8회까지 아웃카운트 전부 삼진으로만 잡았어!
ㄴ 잠깐 그럼 몇 타자 연속······.
ㄴ 여덟 타자 연속 탈삼진. 조금 전 호우맨이 센 게 그거야.
ㄴ 여덟 타자 연속? 잠깐 메이저리그 연속 타자 탈삼진 신기록이 몇 개지?
ㄴ 열 타자 연속 삼진일걸?
ㄴ 그게 누구 기록이지?
ㄴ 톰 시버.
이진용, 그가 메츠의 위대한 전설 톰 시버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유일무이하게 남긴 열 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