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76
1.
[리! AT&T파크를 지배하다!]
11회까지 이어진 기나긴 전쟁이 끝났을 때, 메이저리그와 관련된 모든 것은 이진용의 존재감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건 경악으로 뒤덮인 것과 같았다.
– 이거 실화냐?
– 이건 말도 안 돼.
– 11이닝 무실점 완봉승이라니?
매디슨 범가너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피칭을 했음에도, 다시는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훌륭한 피칭을 했음에도, 그럼에도 매디슨 범가너를 패자로 만들어버린 이진용의 피칭을 상상하고, 가늠한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온 거야?
– 한국에서 야구 시작했다면서? 거기 대체 뭐하는 동네야?
세계 모든 야구팬들이 기겁했다.
물론 한 곳은 달랐다.
– 이호우 11이닝 완봉승했다!
ㄴ 11이닝 완봉승? 뭐야 평소 때의 이호우잖아?
ㄴ 이호우가 평소처럼 호우했는데 뭔 호들갑?
ㄴ 난 또 13이닝 완봉승이라도 한 줄 알았네. 이호우면 당연히 11이닝은 던져줘야지.
이미 이진용이란 괴물에 익숙한 한국야구팬들은 이진용의 활약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한국야구팬들마저도 곧바로 이어진 새로운 사실 앞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황선우 칼럼 떴다!
이제는 이진용 전담 기자가 된 황선우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세상에 알려줬다.
– 이호우 4이닝만 더 무실점 던지면 메이저리그 신기록이다!
이진용이 메이저리그의 역사적인 기록 중 하나인 다저스의 오렐 허샤이저의 59이닝 무실점 이닝 기록을 새로 쓰는 데까지 4이닝만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당연히 세상의 이목은 이진용의 다음 상대로 향했다.
– 이호우 다음 상대가 어디지?
– 홈 경기 아님? 홈에서 컵스랑 붙잖아?
– 자이언츠 전 끝나고 하루 쉰 다음에 다저스랑 원정 4연전 하잖아? 다저스 전에는 못 나옴?
ㄴ 하루 쉬고 4연전이니까 4연전 마지막 경기에 나오려면 나올 수는 있지.
그리고 이진용의 다음 상대를 알게 되는 순간 세상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 잠깐, 다저스 전에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ㄴ 어떻게 되긴 다저스타디움에서 다저스의 오렐 허샤이저가 쓴 기록을 깨는 거지.
ㄴ 참고로 오렐 허샤이저가 다저스 최후의 월드시리즈 MVP임.
ㄴ 만약 이호우가 다저스 전에 나오면 다저스 팬들 뒤집어지겠군.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됐다.
2.
“시나리오 끝내주네.”
경기를 마치고 기사를 통해서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이진용은 감탄을 토해냈다.
“안 그래요?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
현재 상황을 보면 이진용이 다저스 전에서 무실점 최다 이닝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메이저리그에서 무실점 최다 이닝 신기록을 세우기에 이보다 더 끝내주는 무대는 없을 정도.
– 이게 뭐가 좋아?
반면 김진호의 반응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왜요? 시나리오 끝내주잖아?”
– 끝내주긴 개뿔!
“그럼요?”
– 좆도 모르는 병신 삼류 소설가도 안 쓸 법한 시나리오 수준이구먼. 정신 나간 또라이가 아닌 이상 누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쓰냐? 응? 이게 말이 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쓰는 놈이 있으면 싸대기를 한 번 날리고 소설을 못 쓰게 해야지. 아무렴!
김진호의 격한 반응에 이진용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과 함께 이진용이 오늘 경기를 다시금 복기했다.
이진용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어쨌거나 오늘 경기는 끝내줬죠.”
사실 지금 이진용을 가장 만족스럽게 하는 건 매디슨 범가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메이저리그 신기록에 4이닝만을 남겨두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최고의 경기였어요.”
오늘 AT&T파크의 마운드 위에서 과거 김진호와 같은 것을 해냈다는 것.
자이언츠 팬들로 하여금 야유조차 내뱉지 못하는 위엄을 선보였다는 것.
이진용에게는 그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진용의 그 말에 김진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 뭐, 나쁘진 않았지.
“에이, 경기 후반에 보니까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셨던데. 김진호 선수가 봐도 좋았죠?”
– 누가? 내가? 입이 귀에 걸렸다고? 잘못 본 거겠지. 헛것이라도 본 거 아니야?
“혹시 부끄러우세요?”
– 부끄럽냐고? 야! 나 김진호야! 사나이 김진호! 부끄러움 따위는 모르는 사나이!
“부끄러움 따위를 모른다는 게 염치가 없다는 거랑 같은 말 아닌가? 염치가 없다고 자랑하시는 건가요?”
– 닥쳐! 어쨌거나 안 좋았어! 아니 구렸어! 완전 개쓰레기 같은 게임이었어!
김진호의 반응이 이진용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정확히 뭐가 안 좋았는지 말씀해주시죠? 반성하게.”
– 그, 그야······ 그래! 나였으면 진작에 범가너 상대로 홈런 때려서 게임 끝냈어! 새끼, 연장 간 게 자랑이야? 응? 야구선수라면 자기가 홈런을 쳐서라도 9회에 경기 끝내야지!
이제는 문자 그대로 억지를 부리는 김진호 앞에서 이진용은 어깨를 으쓱했다.
– 여하튼 넌 아직 허접쓰레기 개뽀록이야!
그때였다.
베이스볼 매니저가 갑작스럽게 말을 뱉었다.
– 아이, 깜짝이야!
그 갑작스러운 말에 김진호가 놀라며 이진용을 향해 소리쳤다.
– 야!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그래서 어떻게 돌릴까요?”
이진용의 물음에 김진호가 곧바로 반색하며 말했다.
– 어떻게 돌리긴, 남자라면 한 방! 그러지 말고 그냥 포인트 더 모아서 플래티넘이나, 다이아를 돌리자.
“그냥 골드 3번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늘 시나리오를 보니까 여기서 대박 연달아 세 번 정도 터질 것 같은데.”
– 시나리오?
“예, 오늘 시나리오 끝내줬잖아요?”
시나리오란 단어에 김진호가 고개를 세차 흔들었다.
– 진용아, 내가 말했잖아? 이런 시나리오는 삼류 또라이 작가도 안 쓴다니까? 너 삼류 또라이 작가 시나리오에 베팅할래 아니면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투수인 내 말을 믿고 안전하게 투자할래? 응?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당연히 베팅해야죠.”
그 순간 곧바로 황금빛 룰렛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힘차게 돌아가다 이내 멈췄다.
멈춘 칸은 다름 아닌 백금색의 칸!
“호우!”
이진용이 그대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래, 이거지! 내 이럴 줄 알았어!”
반면 김진호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의 낌새 따위는 살피지 않은 채 곧바로 새로운 골드 룰렛을 활성화했다.
“자, 그럼 골드 한 번 더 갑니다!”
그 둘의 눈앞에 다시 한 번 등장한 골드 룰렛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멈췄다.
백금색 칸에.
“어?”
그 사실에 이진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면 김진호는 입을 좀 더 꽉 다물었다.
이진용이 그런 김진호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핀 후에 마저 포인트를 소모해 골드 룰렛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등장한 골드 룰렛이 힘차게 돌아가다 이내 멈췄다.
눈앞에 나온 결과물에 이진용은 더 이상 감탄사조차 내뱉지 못했다.
대신 이진용이 슬그머니 김진호를 바라봤다.
그 순간 김진호가 꽉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 빌어먹을 운빨좆망겜.
그로부터 김진호가 다시 말을 꺼낸 건 무려 1시간이란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3.
메이저리그 일정은 자세히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경기를 치르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이동하는 동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면 동부에 있는 메츠나 양키스가 서부 해안가에 있는 팀과 매치업을 치르게 되면, 그냥 아예 그 근처 팀들과 경기를 치른 후에 홈으로 오게 한다.
만약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원정을 치른 후에 뉴욕으로 돌아와 홈 경기를 치르고, 다시 LA다저스와 경기를 치르기 위해 LA로 간다면 선수들은 미쳐버릴 테니까.
메츠가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 다음에 곧바로 다저스와 원정 4연전을 치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에 하루 휴식일까지 주어진 메츠 입장에서 다저스와의 4연전은 절호의 기회였다.
4월, 메츠가 다저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
달리 말하면 메츠는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다저스를 상대로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조차 다저스에게 시리즈 스윕을 당한다면 이번 시즌 동안 메츠에게 다저스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3연패.
다저스는 2017시즌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마신 분노를 메츠에게 있는 힘껏 풀었다.
2018시즌 메츠가 다저스를 상대로 6전 6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 메츠 4차전마저 패배하면 올해 다저스는 죽어도 못 이김.
– 4차전은 무조건 잡아야지. 최소한 1승은 해야 할 거 아니야?
– 그럼 별 수 없겠네.
– 별 수 없지.
– 호우해야지.
때문에 메츠는 결국 4차전에 그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진용, 그가 다저스와의 4차전의 선발로 등판하게 됐고, 그에 대한 다저스는 기꺼이 맞불을 놓았다.
[오타니 대 리!] [진정한 이도류를 가린다!]오타니 쇼헤이 대 이진용.
동양에서 온 두 이도류 선수의 매치업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4.
다저스타디움.
1962년에 개장한 이후 다저스의 홈구장이었던 그곳은 다저스가 다저스의 이름으로 세운 무수히 많은 영광의 기록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비롯해 정말 많은 영광의 기록이 존재하는 곳.
그런 다저스의 영광을 향해 한 사내가 도전장을 던졌다.
오렐 허샤이저, 그가 가진 59이닝 무실점 기록을 향해 한 사내가 이제 고작 3이닝만을 남겨두었다.
심지어 그 전설을 다른 어디도 아닌 이곳, 다저스타디움에서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는?”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어?”
이진용.
당연한 말이지만 다저스타디움은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도전자 이진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무수히 많은 이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라커룸에 들어갈 수도 없고······ 골치 아프군.”
더욱이 오늘 메츠는 기자들의 라커룸 출입을 막았다.
“어쩔 수 없지. 오늘 메츠가 리에게 거는 기대를 생각하면 바람 소리도 조심해야 할 테니까.”
이상한 조치는 아니었다.
오늘 경기가 이진용에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선발 등판을 앞두고 기자 때문에 이진용의 심리나 멘탈에 영향이 가는 것은 원천봉쇄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리도 신경이 곤두섰을 테고.”
“하긴, 다저스 선수단은 어떻게든 리에게서 점수를 뜯어내려고 달라붙을 테니까.”
하물며 다저스 선수들은 오늘 자신들의 전설이 다른 곳도 아닌 다저스타디움에서 타인의 손에 의해 깨지는 것을 용납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다저스 선수단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야시엘 푸이그는 이진용을 상대로 가장 끝내주는 배트 플립을 준비했으니 기대하라고 말했고, 코리 시거를 비롯해 다저스를 대표하는 타자들 모두가 이진용을 순순히 뉴욕으로 보낼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오타니조차 의지를 불태웠지.”
심지어 오타니 쇼헤이조차 타자로서 어떻게든 이진용을 상대로 점수를 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황이었다.
맹수 우리, 그곳에 제 발로 들어온 이진용은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이 지금 그라운드에서, 더그아웃에서 기자들이 이진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유였다.
“리다!”
“호우맨!”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이진용이 등장했다.
‘헉!’
물론 그런 이진용의 곁에는 통역사 이영예가 함께 하고 있었고, 때문에 기자들이 이진용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대신 기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질문을 던졌다.
“리! 오늘 경기를 앞둔 소감 한 마디만 부탁합니다.”
“다저스를 상대로 어떤 피칭을 할 생각입니까? 오늘도 오른손만 사용할 겁니까?”
그 질문에 이진용은 기꺼이 대답을 해주었다.
“일단 기분은 별로 좋지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번 자이언츠 전은 졸전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대답에 기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졸전?’
‘11이닝 무실점 완봉승 경기가?’
일부는 통역사인 이영예가 잘못 통역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한 명이 질문했다.
“졸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이진용이 곧바로 대답했다.
“잘 풀린 경기였다면 연장까지 가는 일이 없었겠죠. 하물며 10회도 아니고 11회까지 갔는데 그걸 좋은 경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확인사살과도 같은 그 말에 기자들 중 일부는 저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켰다.
다시 한 번 상상 이상을 보여주는 이진용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이진용은 분명히 말했다.
“적어도 오늘은 그런 졸전을 치를 생각이 없습니다. 대답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연습을 해야 하니, 양해 부탁합니다.”
그 말과 함께 이진용이 장비를 챙기고 그라운드로 향했다.
배트와 헬멧을 챙긴 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