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1
4.
6월 5일, 드넓은 아메리카대륙 열다섯 곳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는 순위 경쟁에서 도태되는 순간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하는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곳은 오로지 단 한 곳이었다.
펜웨이파크.
세상의 이목은 그곳에서 치러지는 레드삭스와 메츠의 2연전의 첫 경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누가 이길까?
– 단순히 존재감만 놓고 보면 호우맨이지.
ㄴ 그렇지. 101이닝 무실점 투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ㄴ 11타자 연속 탈삼진도 빼놓으면 섭섭하지.
ㄴ 노히트 2게임 추가요!
ㄴ 투수 최초 히트 포 더 사이클은 왜 뺌?
ㄴ 응, 한 경기 4연타석 홈런.
이진용이 1차전 선발로 출전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세상 야구팬들의 절반은 그 경기를 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그 상대가 남달랐다.
– 그래도 크리스 세일이면 탈삼진 면에서 호우맨에게 지진 않지.
– 아무렴. 작년 시즌 유일한 300탈삼진 투수잖아!
– 이번 시즌도 호우맨에 이어서 리그 탈삼진 2위임.
– 저번 경기에서 한 경기 19탈삼진 잡았지. 1개만 더 잡았으면 한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이었어.
– 방어율도 좋아. 호우맨 정도는 아니더라도 1.85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야.
– 아메리칸리그에서 1.85면 내셔널리그에서는 1점대 초반이나 다름없는 거지!
크리스 세일.
작년 시즌 아메리칸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삼진을 잡은 투수이며, 현재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그는 현재 이진용을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수 중 한 명이었다.
– 드디어 호우맨을 잡을 수 있겠군!
– 호우맨 제삿날이다!
– 제발 이번에는 호우맨이 졌으면 좋겠다!
이진용의 패배를 바라는 이들이 보다 많은 현 상황에서 크리스 세일의 등장은 괴물 앞에 영웅이 등장하는 것과 같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세상 대부분의 이들에게 이진용은 괴물이었다.
메츠를 제외한 모든 구단을 사정없이 짓뭉개는 괴물 중의 괴물!
이대로 놔두면 결국은 월드시리즈마저 집어삼킬 괴물!
당연히 언론은 보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기 위해 이진용을 괴물 취급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이진용을 흔들려는 듯.
심지어 그런 여론과 언론의 공격은 이진용이 선발로 등판하는 날에도 멈추지 않았다.
– 그래, 언론이 뭘 좀 아네. 진용이, 이 새끼가 아주 그냥 악독하고 지랄 맞은 괴물이란 걸 알고 있어.
“귀신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요?”
– 그래서 괴물 취급당하는데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요, 절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죠.”
물론 이진용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개의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이진용은 기꺼이 세상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5.
이진용 대 크리스 세일.
두 선수의 매치업이 잡히는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과연 누가 더 많은 삼진을 잡을 것인가?
하지만 막상 두 선수는 그 부분에 대해 이렇다 할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크리스 세일, 그는 삼진과 관련되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앞에서 무미건조한 코멘트만을 남겼다.
이진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인터뷰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이진용 역시 직접적으로 크리스 세일보다 더 많은 삼진을 잡겠다는 인터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둘의 생각이 어떤지는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알 수 있었으니까.
– 헛스윙 삼진! 크리스 세일이 1회에 네 타자를 상대해 세 개의 삼진만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냅니다!
그렇게 시작된 레드삭스와 메츠의 1차전 1회 초, 펜웨이파크의 마운드를 밟은 크리스 세일이 피칭으로 말했다.
– 1회 투구수가 18구네요.
– 예, 1회 치고는 많지요. 덕분에 분명하게 알 수 있겠네요. 어떻게든 보다 많은 삼진을 잡겠다는 크리스 세일 선수의 생각을 말이죠.
오늘 이진용보다 더 많은 삼진을 잡아보겠다고.
그린 몬스터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겠다고.
그런 크리스 세일의 대답에 그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 역시 피칭으로 대답했다.
일단 첫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는 순간 분명하게 펜웨이파크에 이진용이 왔음을 가장 확실하게 알렸다.
“호우!”
그리고 두 번째 타자도 헛스윙 삼진으로 잡는 순간에도 이진용은 기꺼이 소리쳤다.
“호우!”
마지막으로 세 번째 타자가 뜬공으로 물러나는 순간 이진용 깊은 침묵을 통해 말했다.
– 삼진 잡을 때만 호우하네?
– 삼진 호우 모드다!
– 오늘은 삼진에만 호우한답니다!
오늘 자신 역시 오로지 삼진으로 잡는 아웃카운트에 대해서만 의미를 가지겠다는 것을.
그렇게 두 투수의 탈삼진 레이스가 시작됐다.
6.
보다 많은 삼진을 잡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있다.
하나,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위를 가진 빠른 공.
둘,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자를 잡아낼 수 있는 결정구.
셋, 삼진을 잡고자 할 때 기꺼이 그 공을 던질 수 있는 심장.
즉, 삼진을 잡을 줄 아는 투수들은 누가 보더라도 시원하기 그지없는 피칭을 한다.
그것이 야구팬들이 보다 많은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를 사랑하고, 환호를 보내는 이유였다.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우웃!”
우아아아!
그리고 지금 펜웨이파크를 가득 채운 레드삭스의 팬들이 자신들의 에이스인 크리스 세일의 피칭에 격렬히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더욱이 오늘 크리스 세일의 피칭은 평소와 달랐다.
크리스 세일의 오늘 피칭은 차원이 달랐다.
– 4이닝 10탈삼진!
– 세일이 미쳤다!
4이닝 10탈삼진.
크리스 세일, 그는 4이닝 동안 단 2개의 아웃카운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카운트를 삼진으로만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그건 이제까지 크리스 세일이 데뷔 이후 보여준 피칭 중에서 가장 놀랍고, 위력적인 피칭이었다.
심지어 단순히 잘 잡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투구수가 몇 개가 됐건, 무조건 삼진만 잡으려고 하는군.”
삼진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느낌.
“4이닝에 벌써 투구수가 77구이니까.”
“느낌을 보면 오늘 150구를 던져서라도 9이닝까지 버틸 속셈인 거 같은데?”
그 증거로 현재 크리스 세일은 투구수 관리는 조금도 하지 않는 피칭을 보이고 있었다.
그 사실에 메츠 타자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쉽지 않겠어.’
동시에 메츠 타자들은 우려했다.
‘리에게는 더 힘들겠어.’
‘저런 투수를 상대로 삼진 경쟁이라니······.’
크리스 세일의 피칭이 이진용의 피칭에 미칠 악영향을.
실제로 크리스 세일의 피칭을 보는 이진용의 표정은 그가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보여준 표정 중 가장 좋지 못했다.
“후우.”
거듭 나오는 한숨과 찌푸린 표정, 크리스 세일이 삼진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이는 모습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한 활화산을 보는 듯했다.
문제는 현재 이진용이 3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로 출루시키지 않은 채 6개의 삼진을 잡았다는 것.
훌륭한 피칭을 함에도 그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건 분명 좋지 못한 일이었다.
‘위험해.’
‘여기서 이 이상 무언가를 하려다가는 오버페이스다.’
‘자칫 잘못하면······ 최악의 사고가 일어날지도 몰라.’
당연히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메츠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그런 이진용의 모습을 보는 레드삭스의 더그아웃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놈의 표정을 봤어?”
“똥 씹은 표정이라면 봤지.”
그동안 무결점으로만 보이던 이진용의 모습에서 결점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레드삭스의 공격이 이진용이란 괴물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었으니까.
특히 4회 말 선두타자로 나가게 된 레드삭스의 1번 타자 잰더 보가츠는 이 순간 놀랍게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이진용이 쉬운 상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놈에게 안타를 치거나 출루를 하는 게 쉽지 않겠지.’
아무리 지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이진용이라고 해도 그의 기량은 리그 최고였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러나 잰더 보가츠는 이 순간 이진용을 상대로 굳이 안타나 볼넷을 얻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삼진만 안 당하면 돼.’
노리는 것은 삼진만 피하는 것.
즉, 잰더 보가츠는 이 순간 범타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생각이었다.
지금 레드삭스의 모든 팬들 역시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보가츠! 땅볼도 좋다! 얼마든지 쳐라!”
“플라이로 하나 날려버려!”
“그냥 쓰리번트 아웃 당해도 우리는 응원한다!”
그 사실에 레드삭스의 모든 타자들은 어느 때보다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땅볼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수 있다니, 끝내주는군.”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후로 가장 쉽게 야구를 하는 날인 것 같은데?”
그 상황 속에서 시작된 4회 말.
1번 타자로 올라온 잰더 보가츠는 이진용이 던진 바깥쪽 빠지는 공에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딱!
결코 좋지 못한 소리와 함께 배트에 맞은 공은 너무나도 무난하게 유격수 앞으로 굴러갔고, 그렇게 굴러간 공은 유격수의 글러브를 지나 1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아웃.”
그리고 주심은 여전히 1루 베이스를 향해 걸어오는 잰더 보가츠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아웃을 보여줬다.
잰더 보가츠가 그 사실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삼진을 당하는 건 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1번 타자가 선두타자로 나와 아웃으로 물러나는 게 정말 좋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아직 남아있는 타자의 감정이 한숨을 뱉게 했다.
‘응?’
그때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잰더 보가츠와 마운드에 있는 이진용의 눈이 마주쳤다.
‘어쭈?’
이 순간 이진용은 입꼬리가 비틀릴 정도로 굳게 입을 다문 채 불만과 짜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잰더 보가츠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 봐라?’
그 사실에 잰더 보가츠의 입가에 미소가 그어졌다.
자신의 범타가 마운드 위의 투수에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을 쓰고 있는 최고의 투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이 잰더 보가츠를 미소 짓게 했다.
당연히 잰더 보가츠는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공유하고자 했다.
잰더 보가츠가 대기 타석으로 들어오는 3번 타자 무키 베츠에게 말해줬다.
“놈이 짜증을 내고 있어.”
그 말에 마운드를 바라본 무키 베츠의 눈에는 신경질적으로 마운드의 흙을 발로 짓밟은 이진용의 모습이 보였다.
무키 베츠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빛나는 눈빛 속에서 무키 베츠는 오늘 경기의 시나리오를 다시 한 번 가늠하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에는 많은 점수가 필요 없다. 1점이면 승부가 난다.’
이진용을 상대로 레드삭스가 노려야 할 점수는 단 1점, 그 점수만 낸다면 오늘 레드삭스는 이번 시즌 그 어떤 메이저리그 구단도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리를 흔들 수 있을 때 최대한 흔든 후에 나중을 기약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기에 무키 베츠는 이 순간 이진용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진용을 더 짜증나게 만드는 것.
‘삼진만 안 당하면 돼.’
그 사실에 무키 베츠도 미소를 지었다.
7.
딱!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키 베츠의 배트를 맞은 공이 그대로 하늘 높이 떴다.
뜬공은 곧바로 1루쪽 파울라인을 벗어났고, 1루수가 잽싸게 내려와 자세를 잡고 공을 기다렸다.
펑!
이윽고 1루수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가는 순간 타석에 있던 무키 베츠는 고개를 짧게 한 번 휘둘렀다.
– 아웃! 리가 4회 말을 삼자범퇴로 마무리합니다.
삼자범퇴.
이진용이 레드삭스의 1번 타순부터 시작된 4회 말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진용은 그 사실에 조금의 환호성도 내보내지 않았다.
– 삼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환호성을 내지른 것은 레드삭스 팬들이었다.
“그렇지!”
“이걸로 4개 차다!”
“끝이야! 세일이 이겼어!”
양 팀 투수가 4이닝을 소화한 상황에서 크리스 세일이 이진용을 상대로 탈삼진 개수가 4개나 앞서는 상황에 대한 환호성이었다.
그런 레드삭스 팬들의 환호 속에 이진용은 입을 꾹 다문 채,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한 환호성을 삼긴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런 이진용의 표정이 곧바로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됐다.
– 4개 차, 사실상 세일 승이군.
– 호우맨이 호우를 못하네?
– 이야, 세일이 결국 호우맨을 잡는구나!
– 호우맨 표정 좀 봐.
ㄴ 호우 잃은 표정이군!
온라인은 그런 이진용의 굳은 표정을 즐겼다.
그때였다.
– 어?
– 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진용이 신경질적으로 글러브를 벤치 위로 던지는 것이 방송을 통해 나왔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분노의 표현.
– 호우맨이 앵그리맨으로 진화했다!
– 앵그리 호우!
그것은 레드삭스 팬들이 만들어내는 열기에 끼얹어진 기름과 같았다.
그 영상을 확인한 레드삭스 팬들이 이제는 도리어 그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호우!”
“호우!”
펜웨이파크에 호우 콜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울림에 벤치에 앉은 이진용이 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메츠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그야말로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감히 어느 누구도 이진용에게 다가가 격려나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 야, 진용아 괜찮냐?
김진호, 그만이 이진용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넬 뿐.
물론 진심 어린 위로는 아니었다.
– 그러니까 왜 개뽀록 허접쓰레기 투수 주제에 내 기록을 깨겠다고 깝치냐? 평소에 예의 바르고, 얌전하고, 올바르게 살았으면 이런 일 없잖아, 나처럼 말이야. 안 그래?
그런 김진호의 위로에 이진용은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수건 사이로 표정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감정을 감출 뿐이었다.
‘계획대로야.’
절로 나오는 기쁨의 감정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