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4
1.
야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 모두가 말한다.
퍼펙트게임은 선수가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야구의 신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신의 선물과도 같은 거라고.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진용, 그가 퍼펙트게임을 기록했을 때 그 경기를 보던 이들 중 그 누구도 그것이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악마 같은 새끼.
– 괴물 같은 새끼.
– 호우 하는 새끼.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괴물이 신에게서 퍼펙트게임이란 선물을 강탈했다고, 그리했다고 생각할 뿐.
그 정도였다.
이진용의 퍼펙트게임은 그런 생각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 장담한다. 호우맨의 이번 퍼펙트게임은 오스카 상에 노미네이트 될 거야.
–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호우맨 이 새끼는 각본 쓰고 연기까지 하네.
– 근데 연기력 끝내주긴 하네.
이진용이 경기 도중 레드삭스를 방심시키기 위한 연기를 한 것이 증거 중 하나였다.
이진용이 모든 것을 의도하고, 설계했다는 증거.
그런 이진용의 압도적인 피칭에 메이저리그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세일도 호우맨을 못 잡네.
더 나아가 크리스 세일,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조차 이진용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넘은 절망감마저 느꼈다.
– 그럼 이제 누구 남은 거지?
– 커쇼랑 클루버, 슈어저 정도 남지 않았나?
– 클루버는 인디언스 소속이니까 월드시리즈 아니면 붙을 일 없겠고, 슈어저랑 커쇼랑 붙는 일만 남았네?
– 메츠랑 내셔널스랑 시리즈 하나 더 남지 않았나?
– 남으면 뭐해, 지금 호우맨 피칭을 봐. 지금 언급한 투수들하고 차원이 다르다고!
– 전성기 시절 랜디 존슨이나,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렉 매덕스나 김진호가 아니면 호우맨을 못 잡을걸?
ㄴ 김진호 정도면 모를 듯.
ㄴ 그렇지. 김진호는 다르지.
ㄴ 김진호만한 또라이도 찾긴 힘들지.
이진용의 몰락을 바라는 무수히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있어 더 이상 이진용을 무너뜨릴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제 앞으로 악마 같은 괴물 한 마리가 메이저리그를 짓밟는 광경만이 남았으니까.
물론 그 사실에 좋아하는 팬들도 있었다.
– 드디어 메츠에 이런 괴물이 왔구나!
– 캬, 이 맛에 호우하는구나!
메츠 팬들은 하루하루가 축제의 나날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메츠를 제외한 팬들이 탄식을 토해내고, 메츠 팬들이 환호를 토해낼 무렵.
새로운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2.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지는 건 신이 내린 재능이 가진 이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100미터 육상으로 따지면 9초대에 진입하는 것과 같다.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투수는 더 빠른 공을 던지고자 하고, 세상은 더 빠른 공에 열광한다.
하지만 보다 빠른 공을 던지기란 쉽지 않다.
101마일은 공식 기록으로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100마일을 넘긴 공을 던진 놀란 라이언조차 공식적으로 던져본 적 없으며, 102마일이란 공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파이어볼러로 평가받는 랜디 존슨의 최고 구속이다.
그리고 103마일, 그것은 한동안 메이저리그의 지배자 김진호를 상징하던 숫자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공식적으로 102마일을 던진 이진용이 말했다.
“그때 인터뷰 타임 도중에 한 말은 실수가 아닙니다.”
자신은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던질 수 있습니다.”
이진용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거듭 자신은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결국에는 선언했다.
“못 믿으시는 눈치인데, 좋습니다. 오늘 브루어스 전에서 분명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펜웨이파크를 충격으로 물들인 퍼펙트게임 이후 등판하게 된 밀워키 브루어스 전에서 자신이 허언을 지껄인 것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겠다고.
그 사실에 당연히 모든 이들이 이진용의 피칭에 관심을 가졌다.
– 호우맨 103마일 던지나?
– 설마, 그게 가능할까?
브루어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우맨 경기 전 인터뷰 내용 봤어?”
“당연히 봤지.”
“괴물 같은 놈이 또 괴물 같은 짓을 하려고 하는군.”
메이저리그 최고의 괴물을 맞이하는 상황, 정보가 하나라도 필요한 상황에서 브루어스 타자들은 이진용의 그 인터뷰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빠른 공을 던지겠다, 그러면 왼손으로 던지는 경우가 많겠어.”
“패스트볼 비율도 높겠고.”
“그 부분을 공략하는 수밖에······.”
더 나아가 브루어스 타자들은 그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이진용을 상대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에서 이진용은 보여줬다.
– 리! 그가 다시 한 번 완봉승으로 게임을 마쳤습니다!
고작 88구 만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무실점 이닝을 119이닝으로 늘리는 끝내주는 완봉승 경기를!
하지만 그건 없었다.
– 뭐야? 이대로 끝이야?
– 103마일 보여준다면서, 무슨 스트라이크를 80마일짜리 슬라이더로 잡는 거냐?
이진용이 말한 자신의 최고 구속을 뛰어넘는 공은 없었다.
기대감을 배신당한 상황이었고, 그에 대한 실망감을 토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 상황을 이해하고 이진용을 변호하는 이들 역시 없진 않았다.
– 아니, 사람이 어떻게 만날 최고 구속을 찍나? 찍고 싶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
–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지.
– 최고 구속이 똥꼬에 힘준다고 나오는 줄 아냐?
최고 구속을 갱신한다는 것 자체도 말도 안 되는 일일뿐더러, 이진용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시즌 중에 최고 구속을 갱신하는 건 투수 본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 호우맨이 호우를 할지언정 구라는 안 한다!
– 호우맨이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거야?
무엇보다 이진용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사나이였다.
때문에 고작 한 경기 가지고 이진용을 평가하는 이들은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이진용 본인이 재차 말했다.
“저번 브루어스 전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을 뿐입니다.”
브루어스 전 이후 나흘 동안의 휴식일을 가지고 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맞이한 날, 경기 시작 전 몇몇 기자들을 직접 찾아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오늘은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타이틀을 미리 써두셔도 좋습니다. 리, 최고 구속 갱신이라고!”
이번에는 진짜 보여주겠다고.
그 사실에 이야기를 들은 기자들은 당연히 이 기삿거리를 반기며 속보로 이진용의 말을 기사로 만들었다.
메이저리그 모든 팬들이 다시 한 번 그 기사에 흥분했고, 이진용과 맞붙게 된 파드리스 선수들은 당연히 긴장했다.
“오늘 작심하고 빠른 공 위주로 던지겠군.”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걸 보면 저번 브루어스 전 때보다 컨디션이 좋다는 의미잖아?”
“쳇, 만반의 준비를 하는 수밖에.”
그렇게 시작된 이진용의 선발 등판 경기.
이진용은 그 경기에서 다시 한 번 완봉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진용이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102마일을 뛰어넘는 공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 이진용은 오른손을 이용한 맞혀 잡는 피칭으로 파드리스 타자들을 상대했고, 이진용의 왼손 빠른 공을 예상했던 파드리스 타자들은 아웃카운트를 속절없이 도둑맞으며 결국 83구만에 이진용에게 완봉승을 헌납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 경기가 끝나는 순간 몇몇 팬들은 의심을 제기했다.
– 이 새끼 약 파는 거 아니야?
– 최고 구속 갱신한다는 거 구라 아님?
– 빠른 공 던진다면서 느린 공으로 맞혀 잡는 피칭을 하네?
이진용이 뭔가 또 한 번 수작을 부리는 것 같다고.
경기를 날로 먹으려는 개수작을 부리는 것 같다고.
그런 파드리스 전을 치르고 5일의 휴식기를 가진 후 홈에서 치러지는 카디널스와의 경기를 앞둔 이진용은 다시 한 번 기자들을 데려다가 말했다.
“저번에는 분명 컨디션은 좋았거든요? 근데 이게 너무 좋아서 그냥 맞혀 잡는 피칭이 되어버렸네요.”
그 말에 이제는 기자들도 미심쩍은 듯 질문을 던졌다.
“진짜 할 수 있는 거야?”
“못 하는데 언론플레이하는 거 아니지?”
그 반문에 이진용은 대답했다.
“사실 파드리스 전에서 위기 순간, 실점 상황이 오면 그때 최고 구속을 경신할 생각이었는데, 저번 제 경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위기 상황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대답하는 이진용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자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로 진심 어린 표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오늘은 분명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오늘 전광판에 새로운 숫자를 만들겠습니다!”
때문에 기자들은 이번만큼은 믿었다.
믿고 기사를 썼다.
그리고 시작된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이진용은 시작부터 왼손 피칭을 시작했고, 1회 초부터 이진용은 빠른 공을 위주로 한 볼배합으로 카디널스 타자들을 공략했다.
1회에 최고 구속이 100마일이 찍히기도 했고, 그제야 사람들은 기대감을 품었다.
– 이번에는 진짜 던질 모양인데?
–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호우맨은 호우는 해도 구라는 안 해!
– 호우맨 믿지 못한 놈들은 반성해라!
카디널스 타자들 역시 이진용의 1회 초 피칭을 보고 긴장과 함께 준비했다.
‘오늘 작심하고 최고 구속을 찍을 모양이다.’
‘패스트볼 승부다. 패스트볼만을 던질 거야.’
‘그래, 그럼 차라리 패스트볼을 노리자.’
작심하고 포심 패스트볼만을 던질 이진용의 패스트볼을 본격적으로 노려보자고.
그리고 2회가 시작됐을 때 이진용은 여전히 왼손 피칭을 준비했다.
하지만 패스트볼은 없었다.
슬라이더 그리고 커터를 조합한 볼배합 앞에서 패스트볼만을 기다리고, 대비하던 카디널스 타자들은 순식간에 아웃카운트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4회부터 이진용은 당연하다는 듯이 오른손 피칭의 비중을 높이며 카디널스로부터 고작 86구 만을 던지며 완봉승을 얻어냈다.
그제야 세상은 깨달았다.
– 호우맨 이 새끼 구라맨이었네.
이진용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최고 구속을 경신한다는 것을 이용해 오히려 상대팀들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것을.
“저기 오늘은 정말 던질 수 있거든요? 제임스? 콜린? 아! 황 기자님! 기사 좀 써주세요, 저 정말 오늘은 최고 구속 경신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더 이상 이진용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이진용이 양치기 소년이 된 채 메이저리그 2018시즌 전반기가 끝이 났다.
뉴욕 메츠가 워싱턴 내셔널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달성했다.
[2018시즌 올스타전 시작!]그리고 올스타전이 시작됐다.
3.
올스타전, 메이저리그에서 별들의 전쟁이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굉장히 크다.
일단 메이저리거들은 월드시리즈 무대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올스타전에 참가하고 싶어 한다.
일단 올스타전 자리는 한정된 것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무려 30개나 되는 구단이 존재했으니까.
여기에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팬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오를 수 없는 무대이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 중에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조건으로 올스타전 참가 횟수를 꼽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올스타전에 이진용이 참가하게 됐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반기 동안 모든 경기를 완봉승으로 거두었으며, 두 번의 노히트게임과 한 번의 퍼펙트게임을 기록,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경기를 실점 한 번 없이 끝낸 투수보다 더 빛나는 별은 없었으니까.
더욱이 올스타전에서 야수들은 팬투표를 통해 선정되지만, 투수의 경우에는 감독 추천으로 선정되기 때문에 이진용이 뽑히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혹여 팬투표라고 해도 이진용이 탈락할 가능성은 낮았다.
– 제발 내년 시즌에는 호우맨이 아메리칸리그로 가게 해주세요!
– 호우맨이 얼마나 호우하는지 아메리칸리그 놈들도 알아야 해.
– 아메리칸리그 새끼들, 호우맛 좀 봐라.
내셔널리그에 속한 구단 팬들 입장에서는 이진용과의 매치업을 피한 아메리칸리그 선수와 팬들에게도 자신들이 당한 꼴을 한 경기라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당연히 올스타전에서 모든 이들의 이목은 이진용에게 집중됐다.
그 이목 앞에서 이진용은 당당하게 밝혔다.
“올스타전에서는 제 최고 구속을 갱신해보겠습니다.”
이번 올스타전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물론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 호우맨 저 새끼 또 구라치네.
– 게임에서 똑같은 전략도 세 번은 안 당하는데, 이 새끼는 대체 언제까지 이 짓함?
– 될 때까지 이 짓 할 것 같은데, 그냥 스피드건 조작해서 103마일 던졌다고 해주면 안 됨?
– 이렇게 된 거 채프먼이랑 같이 9회에 등판시켜서, 채프먼이 105마일 공으로 입 다물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솝 우화에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있는 건 그냥 심심해서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니, 어떻게 사람 말을 이렇게 못 믿는 거지?”
그런 여론의 반응을 스마트폰으로 보던 이진용은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그대로 이진용이 김진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진호 선수는 저 믿죠?”
그 물음에 김진호는 이진용을 향해 엄지를 들며 말했다.
– 당연히 믿지. 네가 역사에 길이 남을 또라이라는 사실을.
그때였다.
이진용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그 문자를 확인한 이진용이 미소를 지었다.
“올스타전에서 마무리 투수 데뷔전을 치르게 됐네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