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6
9.
믿기 힘든 광경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이거 사실인가?’
놀라는 대신 의심부터 한다.
‘진짜 104마일이 나온 거 맞아?’
자신이 본 게 맞는 건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지.
혹은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104마일이라니?’
‘이건 말도 돼. 이런 게 가능할 리 없어!’
지금 내셔널스 파크에서 일어난 일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이들이 그러했다.
그 누구도 자신들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사실을 믿지 않았고, 믿지 않았기에 환호하지도 않은 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원흉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진용은 기꺼이 다시 한 번 더 보여줬다.
펑!
“스트라이크!”
104마일, 메이저리그에서 오로지 단 한 명의 투수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숫자를 다시 한 번 전광판에 찍었다.
그제야 관중들의 멈춰있던 사고가 진행하기 시작했다.
“우아!”
“말도 안 돼!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내셔널스 파크 곳곳에서 기겁한 소리들이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서 이진용은 다시 한 번 더 패스트볼을 던졌다.
펑!
이번에는 103마일이란 구속이 전광판에 찍혔고, 이제 모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호우맨이 구라맨이 아니었어?
– 진짜 던졌네?
– 미친, 103마일이 아니라 104마일이라니!
이진용, 그가 이제까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진실을 말하던 것이었다는 것을.
그런 그들에게 이제까지 양치기 소년 취급을 당하던 이진용은 울분을 풀듯 재차 말했다.
펑!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104마일이 다시 한 번 전광판에 기록됐다.
10.
투수들이 보다 빠른 공을 던지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속이 빨라질수록 타자가 공에 헛스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물론 똑같은 구속이라고 해도 공의 움직임과 회전수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지만, 분명한 건 구속이 올라갈수록 타자의 헛스윙률은 올라간다는 점이다.
일례로 메이저리그에서 90마일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타자들의 헛스윙률은 10퍼센트대이다.
하지만 구속이 100마일 근처에 이르면 헛스윙률은 20퍼센트 후반에서 30퍼센트에 이르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채프먼의 포심 패스트볼의 경우에는 헛스윙률이 무려 40퍼센트에 이르게 된다.
헛스윙이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40퍼센트라는 수치는 엄청난 수치다.
하물며 아롤디스 채프먼이 던지는 모든 포심 패스트볼이 항상 104마일을 찍는 것도 아니다.
즉, 104마일이란 공은 어지간한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는 칠 수 없는 공이라는 의미.
“웃음도 안 나오는군.”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 그 공을, 104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칠 수 없는 공을 이진용이 던졌다.
“가뜩이나 괴물 같은 놈의 손에 말도 안 되는 흉기가 쥐어졌군.”
“104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라니, 그건 절대 못 쳐!”
그 사실 앞에서 올스타전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은 강력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올스타전에서 보게 될 줄이야.’
더욱이 올스타전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차라리 이진용이 전반기 경기 중에 104마일을 던졌다면 놀라기만 했을 것이다. 아니, 별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라고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일일이 챙겨보진 않는다.
특히 정규 시즌 동안 이진용과 붙을 일이 없는 팀의 선수들은 이진용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다.
하지만 올스타전은 달랐다.
지금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은 물론 마이너리그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주목하는 경기, 더 나아가 각 구단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들이 직접 참가한 경기.
당연히 메이저리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뇌리에는 이진용이 던진 104마일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이진용이 노리는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 기어코 올스타전에 터뜨리는구나.
이진용, 그는 레드삭스 전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그 날 파이어볼러를 얻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개!
퍼펙트게임을 통해 얻은 다이아몬드 룰렛 이용권과 포인트를 소모해 돌린 플래티넘 룰렛에서 연달아 파이어볼러가 나왔다.
그날 이진용이 어느 때보다 흥분된 기색을 보인 이유였다.
그러나 그 이후 이진용은 일부러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고 구속을 숨겼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참고 또 참았다.
김진호의 말대로 모두의 머릿속에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 여하튼 사람 엿 먹이는 것 하나는 진용이, 네가 최고다. 장담하는데, 아마 10년 후쯤에는 퍼킹하고 호우하고 동의어처럼 쓰일 거야. 길 가다가 싸움이 붙으면 퍼킹 대신 호우를 외치겠지.
더 나아가 이진용이 104마일이란 구속을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고 싶은 것은 감탄 같은 게 아니었다.
– 그보다 슬슬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걸 보니까 다들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군.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라는 걸.
공포, 경악, 탄식.
이진용이 오늘 경기를 보는 이들의 뇌리에 남기고 싶은 건 그런 것들이었다.
당연히 9회 초 2아웃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이진용은 마지막 남은 리볼버 한 발을 꺼냈다.
“리볼버.”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올스타전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은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전광판의 숫자를 향하고 있었다.
104마일.
그 숫자를 본 관중들의 귓속으로 잠시 동안 잊고 있던 것이 들렸다.
“호우!”
이진용의 환호성.
그 소리를 들은 후에야 관중들은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마운드 위에 있는 저 투수가 이제까지 그들이 응원했던 팀을 향해 보여줬던 무자비함을.
‘젠장.’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올스타전이 끝난 지금 이 순간, 저 숫자는 이제 자신들을 향한 흉기가 되리란 사실을.
‘퍼킹 호우맨.’
그렇게 축제가 끝났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전쟁이 재개됐다.
11.
올스타전이 끝나는 순간 메이저리그는 후반기에 돌입한다.
그리고 후반기에 돌입함과 동시에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인 8월 1일 전까지 구단들의 치열한 트레이드가 시작된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팀들은 셀러가 되어 주전급 선수들을 이용해 보다 많은 유망주를 얻고자 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가시권에 둔 팀들은 유망주들을 모아 부족한 전력을 채울 수 있는 즉시전력감 선수 영입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즉시전력감 수준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선수들의 트레이드도 이루어진다.
일명 빅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이루어지는 트레이드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있어서는 큰 축제였다.
특히 기자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올스타전과 다를 바 없는 축제였다.
이 트레이드 과정에서 메이저리그 단장들은 기자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언론플레이를 시도하고 기자들은 그 과정 속에서 끝내주는 이슈들을 터뜨리고는 하니까.
하지만 이번 2018시즌은 달랐다.
올스타전이 끝나는 순간 기자들의 모든 관심은 트레이드가 아닌 이진용만을 향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몇몇 기자들은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은 클릭수만을 높이기 위한 밑도 끝도 없는 찌라시 기사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진용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왔다는 기사가 바로 그 기사였다.
말도 안 되는 기사.
그러나 그런 기사들에 메이저리그 팬들은 더 크게 열광했다.
– 호우맨 트레이드가 말이 됨?
ㄴ 안 될 건 없지.
ㄴ 하긴, 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모르는 일이지.
ㄴ 호우맨이 메츠랑 계약서에 트레이드 마음대로 하는 조항 넣었을 수도 있잖아?
ㄴ 호우맨이 우리 팀에 왔으면 바랄 게 없겠다.
ㄴ 아, 호우하고 싶다!
적으로 만났을 때 이진용은 이 세상 최악의 괴물이지만, 자기 팀 유니폼을 입는 순간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영웅과도 같았으니까.
메츠 팬을 제외한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이 이진용의 트레이드설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 분명한 건 호우맨이 올스타전에서 그냥 양키스 유니폼을 입을 리는 없다는 거지.
– 같은 뉴욕인데, 그냥 오면 안 되나?
더욱이 이진용이 보란 듯이 입은 등번호 104의 양키스 유니폼은 구설수를 만드는데 최고의 떡밥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진용이 양키스행을 원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외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이야기까지.
물론 이진용이 등번호 104를 넣은 양키스 유니폼을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아니, 그냥 104마일 던진다는 의미로 입은 건데 참······.”
등번호 104는 104마일을 던지겠다는 메시지였고,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은 건 애런 저지의 타격을 한 번 경험하기 위함이었을 뿐.
어쨌거나 자신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구설수에 이진용이 투덜거렸고, 그 모습에 김진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축하한다. 네가 원하던 대로 된걸.
“구설수에 휘말린 걸 제가 언제 원했어요?”
그 말에 이진용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김진호 선수도 아니고.”
– 응? 내가 뭘?
“김진호 선수는 구설수에 휘말리는 거 즐기셨잖아요?”
– 내가? 언제?
“그럼 설마 현역 시절에 나온 구설수들이 일부러 저지른 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 야! 구설수 일부러 만드는 인간이 어디 있어?
분노하는 김진호의 모습에 이진용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정말 위험한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김진호는 당연히 불같이 화를 냈다.
– 이 새끼가, 야! 내가 어때서? 물론 내가 현역 시절에 이런저런 사건으로······.
거기까지였다.
– 아니, 뭐 좀 과한 사건들이 없진 않았지만······ 팬들하고도 좀 티격태격 부딪치고, 선수단하고 트러블이 좀 있긴 했지만······.
자신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던 김진호의 목소리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으니까.
– 크흠!
이윽고 헛기침으로 분노를 마무리한 김진호가 화두를 돌렸다.
– 여하튼 축하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진걸.
그 말에 이진용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시나리오요?”
– 새끼, 내가 설마 모를 줄 알았냐? 이미 네가 구속 숨길 때부터 눈치 챘어.
그제야 이진용이 표정을 바꾼 채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김진호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네놈이 절대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할 놈이 아니라는 걸 모를 리가 아니지.
이진용, 그가 무언가를 준비했다.
12.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
인천 국제공항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는 그곳에 황선우 기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그때 황선우가 기다리던 이가 그를 먼저 발견하고는 손을 크게 흔들며 다가왔다.
작년 시즌 동안 황선우를 돕던 후배 기자였다.
그 후배 기자의 모습을 확인한 황선우가 소리치듯 말했다.
“인사는 됐고, 바로 씨티 필드로 가야 하니까 따라와.”
“예?”
놀라는 후배 기자를 향해 황선우가 말했다.
“너 여기 왜 왔어?”
“그야 선배님 도우려고 왔죠. 지금 한국 기자들 중에서 이진용 선수 제대로 인터뷰 따내는 건 선배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일하러 가야지.”
“하지만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많이 남았잖아요?”
후배 기자가 재차 말했다.
“그리고 이진용 선수 경기 내용은 똑같지 않겠어요? 무실점 완봉승! 104마일!”
어차피 이진용 선수 경기 내용은 뻔할 텐데, 굳이 서두르기보다는 뉴욕 관광 좀 해보면 안 될까요?
후배 기자의 그런 의중에 황선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닐 것 같으니까 이러는 거야.”
황선우는 그 말을 뱉자마자 곧바로 등을 돌렸다. 후배 기자가 그런 황선우를 황급히 쫓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니요?”
이진용.
현재 한국에서 그를 향한 인기는 대단한 수준을 넘어서 절대적인 수준이었다.
이진용이 나오는 경기는 공중파 중계가 기본일뿐더러, 이진용 피칭 하나하나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숨죽이고, 열광하는 수준.
그가 황선우를 돕기 위해 미국에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진용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이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됐다.
그런데 지금 황선우가 말했다.
그게 아닐 것 같다고.
이진용이 평소와 같이 무실점 완봉승을 거둘 것 같지 않다고.
그건 곧 이진용이 이제까지와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리란 말.
“선배가 보시기에 오늘 경기에서 이진용 선수가 실점할 것 같아요?”
후배 기자의 물음에 황선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실점이야 할 수 있지.”
“예?”
“설마 이진용이 평생 실점 안 할 것 같아? 하물며 여긴 메이저리그야.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곳. 실점은 언제 어느 순간에든 나와도 이상할 건 없어.”
황선우의 말에 후배 기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후배 기자에게 황선우가 질문을 던졌다.
“올스타전 전까지 이진용의 성적을 기억해?”
“무실점 완봉승이잖아요?”
“최근 세 경기 투구수가 몇 구지? 합쳐서 말해봐.”
“그러니까 최근 세 경기······ 합치면 260구네요.”
말을 하던 후배 기자가 놀라며 반문했다.
“어? 왜 이것밖에 안 되지?”
놀라는 후배 기자에게 황선우는 재차 질문했다.
“그중에서 오른손으로 던진 공이 몇 구인지 알아?”
“그건······.”
“219구다.”
“219구요? 그럼 왼손으로는 고작 41구밖에 안 던진 건가요?”
“기자라면 거기서 질문이 아니라 의문을 가져야지. 왜 이진용이 그런 피칭을 했는지.”
말을 하던 황선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왜 이진용이 그 많은 무대 중에 올스타전에 마무리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104마일을 던졌는지.”
특종의 냄새를 맡은 기자의 미소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