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88
4.
그런 게 있다.
평소 70점을 맞던 애가 갑자기 100점을 받아오면 모두가 놀라고는 한다.
반면 평소에 95점 정도는 가뿐히 맞던 애가 100점을 받아오면 딱히 놀라진 않는다.
이진용, 그의 피칭도 그러했다.
이진용이 레즈 타자들을 상대로 맞혀 잡는 피칭을 통해 빠르게 경기 진행을 했을 때 그 사실에 큰 의문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일부는 생각했다.
– 호우맨 오늘 삼진 개수가 적네?
– 호우맨이 삼진을 못 잡다니, 호우하지 못하군!
– 호우맨 드디어 체력 떨어진 듯.
탈삼진 개수가 줄어든 이진용의 피칭은 오히려 평균 이하의 피칭이라고.
투구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이진용은 맞혀 잡는 피칭을 통해 투구수를 평균 80구 수준으로 끌어내린 상황이었고, 때문에 레즈를 상대로 이닝에 비해 투구수가 적은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일부는 그 사실에 관심조차 없었다.
– 호우맨은 104를 뿌려라!
– 호우맨 왼손으로 던지라고!
– 호우맨이 구속을 숨김.
경기를 보는 대부분의 이들은 이진용이 왼손으로 던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진용이 투구수 39구로 6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순간 모든 이야기는 달라졌다.
– 가만, 메이저리그 최소 투구 완투가 몇 구였지?”
– 매덕스 78구였나?
ㄴ 그럴 리가, 그것보다 20구 더 적은 기록이 있었는데.
ㄴ 레드 바렛 58구 완투승!
이진용, 그가 다시 한 번 전설에 도전하게 됐으니까.
5.
6회 말을 맞이한 시티 필드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호우맨이 최소 투구 완봉에 도전한다고?”
“말도 안 돼!”
관중들은 이진용의 새로운 도전에 놀라기 바빴고, 기자들 역시 기사를 쓰기 바빴다.
시티 필드 기자실이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소리 중에 황선우가 내는 소리는 없었다.
황선우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대신 기자실에 마련된 TV를 통해 경기를 말없이 바라만 봤다.
‘이진용이 투구수를 최대한 줄이는 피칭을 하리란 건 예상했다.’
황선우, 그는 이진용의 의도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이진용이 아무런 이유 없이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음을 강조할 리가 없으니까.’
그것을 파악한 시점은 이진용이 보다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광고하듯 말할 무렵이었다.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나온 거겠지.’
황선우가 아는 이진용은 그저 자랑을 위해서, 그저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런 사실을 말하는 투수가 아니었으니까.
104마일을 던질 수 있다면, 그것을 꼭꼭 숨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꺼냄으로써 상대를 보다 확실하게 잡으려고 하는 사냥꾼이었으니까.
그리고 올스타전에서 이진용이 자신의 왼손을 범접할 수 없는 손으로 만드는 순간 황선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왼손을 언터쳐블의 존재로 만들어서, 타자들이 오른손과 상대하게 만들기 위한 수작이었지.’
이진용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올스타전에 앞서서 오른손 피칭의 비중이 높았던 것도, 평균 투구수가 줄어든 것도 오른손으로 투구수를 줄이기 위한 맞혀 잡는 피칭 스타일을 가다듬기 위함이었고.’
더 이상 줄일 방어율이 없는 이진용이 이제는 투구수를 줄이기 위한 작업에 나섰음을 파악했다.
‘그래도 설마 레드 바렛의 기록을 깨려고 할 줄이야.’
물론 메이저리그 최소 투구 완투 기록인 찰스 헨리 바렛의 58구 완투승 기록을 깨려는 시도를 할 줄은 황선우 역시 상상조차 못했다.
‘역시 괴물이군.’
이진용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
‘하지만 여기까지야. 레드 바렛의 기록을 시야에 두긴 했지만, 그뿐이다. 그 기록은 절대 못 깨.’
그러나 황선우는 이진용이 찰스 헨리 바렛의 기록을 깰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비단 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 신기록? 솔직히 불가능하지.
– 레즈 타자들이 타석에서 멀뚱히 서있기만 해도 3이닝을 소화하는데 27구가 필요해.
– 58구 완투를 깨는 건 현대 야구에서 있을 수 없어.
타자는 각오만 한다면 투수를 상대로 최소 3구는 던지게 할 수 있었으니까.
– 아무리 호우맨이라도 이건 힘들지.
제아무리 이진용이라고 해도,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메이저리그의 전설을 깨며 불가능을 가능케 한 그라고 해도 지금 그 앞에 놓인 문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7회다.”
“드디어 시작이군.”
그런 상황 속에서 6회 말, 메츠의 공격이 끝나고 7회가 시작됐다.
“이제 시작이군.”
이진용이 마운드에 올라섰다.
6.
7회 초 시작되는 순간 시티 필드에 침묵이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내지르던 환호성은 없었다.
꿀꺽!
긴장감 속에 삼키는 침 소리만이 유일하게 침묵을 깨우는 소리일 뿐이었다.
그 고요함에는 김진호도 동참했다.
처벅처벅, 마운드로 향하는 이진용의 귓속으로는 제 발소리만 들릴 뿐 김진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사실에 이진용이 곁눈질로 자신의 곁을 따라오는 김진호를 살펴봤다.
김진호는 그런 이진용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김진호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이군.’
그제야 이진용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지.
“후우.”
그 사실에 짧게 숨을 내뱉은 이진용이 고개를 들어 좌타석에 선 타자를 바라봤다.
레즈의 3번 타자 스캇 쉐블러.
작년 시즌 처음 메이저리그 풀타임을 뛰며, 이제는 진짜 메이저리거가 됐음을 신고하며, 2018시즌 레즈의 중심 타선을 책임지는 타자.
그리고 앞서서 이진용을 상대로 안타를 기록한 타자.
그가 타석에 서는 순간 이진용은 조 존스와 사인을 나누고 바로 투구를 준비했다.
무슨 공을 던져야 할지, 그런 고민을 할 이유는 없었다.
무려 한 달을 넘게 준비한 경기였고, 이진용이 이 순간 스캇 쉐블러를 잡기 위해 던져야 할 공은 확실하게 정해진 상황이었으니까.
그 준비된 공을 던졌다.
이진용, 그가 초구를 던졌다.
던진 공은 다름 아닌 체인지업.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떠올리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체인지업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공에 스캇 쉐블러는 확실하게 대답했다.
딱!
– 아! 공이 파울라인을 벗어납니다.
– 초구 타격이라니, 쉐블러가 리를 상대로 승부를 하려는 모양이군요.
이진용을 상대로 도망칠 생각은 없다고.
“조금 전에 초구 땅볼로 아웃될 뻔했어!”
“맙소사, 정말 승부하려는 건가?”
“그냥 멀뚱히 서있어도 되잖아?”
그 사실에 관중들은 놀랐다.
레즈 타자들이 이진용에게 삼진을 헌납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지켜보는 야구를 하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에 이진용과 김진호는 딱히 큰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 역시 그 광경에 조금의 동요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래야지.’
‘우린 메이저리거다.’
‘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싶진 않아.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도망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이곳은 메이저리그, 그야말로 선택 받을 수 있는 자들만이 오를 수 있는 무대였으니까.
그리고 그게 이유였다.
– 진용아, 메이저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
세상이 메이저리그를 꿈의 무대라고 부르는 이유.
그 사실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었다.
7.
7회 초, 레즈 타자들은 이진용을 상대로 기꺼이 강공을 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배트를 휘두른 건 아니었다.
레즈 타자들은 이진용을 상대로 안타를 치기 위한 최선의 타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진용 역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다.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 그리고 체인지업을 이용해 레즈 타자들의 타격의 타이밍을 앗아갔다.
“아웃!”
그렇게 이진용이 7회를 6구만으로 정리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순간 시티 필드에 있는 모든 관중들이 그라운드를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진용만을 향한 박수가 아니었다.
“레즈, 대단하다!”
“이게 메이저리그지.”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무서워 승부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진용에게 안타를 뜯어내기 위해 더욱더 공격적으로 덤벼드는 레즈 선수들을 향한 박수였다.
한편 그 박수 소리 사이로 더그아웃에 들어온 이진용은 가장 먼저 수건부터 찾았다.
그리고는 그 수건으로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닦았다.
– 아주 똥줄이 타지?
조금 전 7회 피칭이 어느 때보다 힘든 피칭이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그리고 그건 당연했다.
– 안타 맞을 거 각오하고 들어가는 게 참 좆같지?
투수가 맞혀 잡는 피칭을 대놓고 한다는 건 타자에게 있어서도 기회였으니까.
정말 제대로 된 안타를 칠 기회.
즉, 이진용은 지금 어느 때보다 안타를 맞을 확률이 높은 피칭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그냥 타자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타자들,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공조차 홈런으로 만들고도 남을 충분한 괴물들이었다.
– 하물며 지금 레즈 타자들은 어느 때보다 널 죽이려고 집중하고 있어.
무엇보다 지금 이진용이 상대하는 레즈 타자들은 이미 피투성이가 될 것을 각오한 타자들이었다.
장담컨대 이제까지 이진용이 상대한 그 어떤 타자들보다 무서운 상대였다.
– 지금은 땀이 흐르지만, 아마 9회에는 땀조차 흐르지 않을지도 몰라. 등골이 싸늘해질 테니까.
더욱이 이대로 간다면 9회에는 9번 타순 또는 1번 타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컸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고비가 오는 셈이었다.
김진호의 말대로 등골이 오싹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 이래서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해야 한다니까. 정말 끝내주잖아? 안 그래?
그렇기에 김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이진용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 사이로 대답했다.
“호우.”
8.
7회 말, 점수는 없었다.
– 다이빙 캐치! 페레즈가 멋진 수비로 추가 실점을 막습니다!
집중력이 절정에 다다른 레즈 타자들은 그야말로 미친 수비를 보이며 메츠 타자들의 안타를 훔쳐냈다.
그리고 시작된 8회 초에도 점수는 없었다.
– 유격수! 유격수!
6번부터 시작되는 하위 타순을 맞이해 이진용은 7구 만으로 승부를 마칠 수 있었다.
– 아웃! 리! 그가 8회를 52구만으로 마칩니다!
8이닝까지 투구수는 52구.
이제 5구만으로 남은 1이닝을 소화한다면 이진용이 메이저리그 최소 투구 완투 기록 보유자가 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8회 말 레즈 타자들은 여전히 멋진 호수비를 통해 이진용에게 말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도망칠 생각은 없다!
‘5구? 까짓것 하든 말든 알게 뭐야?’
기록의 희생양? 기꺼이 되주겠다!
‘우리가 노리는 건 네 1점이다.’
대신 그 틈을 노려 네놈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주겠다!
그런 레즈 야수들의 의지 속에서 9회 초가 시작됐다.
딱!
– 안타!
그리고 그 9회 초, 이진용이 선두타자를 상대로 안타를 내주었다.
9.
9회 초 시작과 동시에 레즈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대타자를 기용했다.
대타자 존 브레디.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9시즌을 치르며, 한때는 메이저리그에서 3할 3푼의 타율도 기록했던 백전노장의 우타자였다.
– 여기서 레즈가 존 브레디를 투입합니다.
– 이제까지 아끼고 아끼던 최고의 대타 카드를 투입했네요.
레즈가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믿을 수 있는 대타 카드를 내보낸 것이다.
그런 그를 상대로 이진용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우타자의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그냥 그대로 두면 볼이 될 정도로 마구처럼 움직이는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범타를 유도하기보다는 존 브레디의 타격 밸런스를 흔들기 위해 던진 공이었다.
무작정 초구로 승부를 내는 게 아니라 정말 확실하게 잡고자 공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그 공을 존 브레디는 2루수의 옆을 총알처럼 빠져나가는 안타로 만들었다.
– 캬!
그 타구에 김진호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 죽이네. 저걸 어떻게 2루수 사이로 치지?
그 감탄사에 이진용은 볼멘소리조차 내뱉지 못했다.
‘이제 1번부터다.’
김진호의 말대로 이 순간 이진용은 자신의 등골에 한기가 감도는 걸 느꼈으니까.
그건 비단 이진용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거 위험해.”
“이대로 가다가는 최소 투구 완투가 아니라, 실점을 할지도 몰라.”
경기를 보던 기자들 역시 느끼고 있었다.
“레즈 타자들은 지금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야.”
“조금 전 안타만 해도 그래. 그건 안타가 나올 수 없는 공이었어.”
“안타를 억지로 만든 거지.”
지금 레즈 타자들의 상태는 말도 안 되는 상태라고.
“여기서 맞혀 잡는 피칭을 하는 건 이미 터지고 있는 폭탄 손에 손을 넣는 거지.”
반대로 이진용은 이 순간 최소 투구 완투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집어넣어야 했다.
“홈런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겠어.”
이진용의 무실점 경기가 끝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타석에 선 레즈의 1번 좌타자 폴 폴먼은 노리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존에 넣어. 기꺼이 배트를 휘둘러줄 테니까. 더블 플레이로 끝내보라고.”
안타.
대놓고 그 의지를 드러내는 폴 폴먼의 모습에 조 존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심장이 터질 것 같군.’
지금 이 순간 조 존스의 심장은 자신이 야구를 한 이후 가장 크게 뛰고 있었다.
‘킴 이후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인간이 또 나올 줄이야.’
이진용이 하고자 하는 건 그 정도로 미친 짓이었다.
그렇기에 이 순간 조 존스는 미소를 지었다.
‘끝내주는군.’
그런 상황에서 조 존스는 이진용에게 커터를 요구했다.
우완투수가 좌투수를 상대로 던질 경우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배트를 잘라내기에 가장 좋은 공을!
그 사실에 이진용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인 이진용이 곧바로 공을 던졌다.
그리고 존에 들어오는 그 공에 폴 폴먼은 배트를 휘둘렀다.
빠악!
그 순간 폴 폴먼의 배트가 쪼개졌다.
‘저, 저거!’
그라운드로 쪼개진 배트 조각과 공이 유격수를 동시에 날아들었다.
그 순간 이진용이 유격수를 보며 소리쳤다.
“피해!”
이진용의 그 외침에 공을 쫓으려던 유격수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쉬익!
도약한 유격수의 발밑을 칼날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배트 조각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당연히 공은 그대로 좌익수 방향으로 굴러갔고, 그사이 1루 주자는 2루에, 타자 주자는 1루에 안착했다.
평소라면 유격수가 병살타로 마무리했을 타구가 삽시간이 무사 1,2루 상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
시티 필드에 짙은 침묵이 번지기 시작했다.
–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 잘 피했어요. 무리해서 타구를 처리했다가는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침묵 사이로 유격수 아메드 로사리오가 이진용을 향해 당혹감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젠장······.’
아메드 로사리오, 메츠의 유망주로 작년 시즌이 첫 데뷔 시즌인 그에게 이런 상황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떻게든 부상을 감수하고서라도 잡았어야······.’
당혹감이란 감정은 이내 자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진용이 아메드 로사리오를 향해 말했다.
“호!”
갑작스러운 그 외침에 아메드 로사리오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메츠의 3루수이자 메츠의 캡틴인 데이비드 라이트가 무언가를 짐작한 듯 크게 소리쳤다.
“우!”
메츠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데이비드 라이트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제야 아메드 로사리오가 숨을 돌리며, 미소를 지으며 이진용을 향해 말했다.
“호!”
그 말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
그 대화를 끝으로 이진용이 다시 그라운드에 선 채 타석에 선 타자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김진호가 말했다.
– 잘했어. 거기서 피하라고 외친 게 맞아. 거기서 네가 외치지 않았다면 사고가 일어났을 거야.
한편 경기를 보던 이들은 이내 탄식을 내뱉었다.
“끝났군.”
“설마 저런 식으로 배트 조각하고 공이 같이 날아갈 줄이야.”
“그게 아니었으면 더블 플레이였을 텐데.”
“운이 없었을 뿐이지. 그뿐이야.”
9회를 고작 5구로 소화해야 최소 투구 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미 2개의 공을 던졌음에도 무사 1,2루 상황이 나왔다는 건 누가 보더라도 기록 경신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제는 현실적으로 봐야지.”
“아무렴, 최소 투구 완투 기록은 포기하고 무실점 이닝 기록을 이어가야 해.”
때문에 이제는 이진용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리라 생각했다.
최소 투구 완투 기록을 포기하고 대신에 자신의 무실점 연속 이닝 기록을 지키기 위한 피칭을 하리라 생각했다.
“왼손을 꺼내 들어서 삼진으로 잡는 게 좋아.”
“그래, 그게 정답이지.”
“글러브를 바꾸겠군.”
타자를 가장 확실하게 뭉갤 수 있는 왼손을 꺼내드리라 생각했다.
“응?”
“뭐야?”
하지만 이진용은 그런 주변의 생각과는 다르게 글러브를 바꿔 끼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피칭을 준비했다.
‘대체 왜?’
보는 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선택.
그러나 반대로 이진용에게는 당연했다.
김진호에게 배웠으니까.
‘안타 맞을 게 두렵고, 실점할 게 두려웠으면 마운드에 올라오질 말아야지.’
맞을 게 두렵고, 실점할 게 두려워서 도망칠 생각이라면 그냥 야구를 하지 말라고.
당연히 이진용은 실점이 두려워서 여기서 도망치는 선택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상대로 기꺼이 정면승부를 택해준 레즈에 대한 예의였다.
‘난 메이저리거다.’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메이저리거가 갖춰야 할 기본 예의였다.
그 각오 속에서 이진용이 타석에 선 2번 타자 우타자 하비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피칭을 시작했다.
딱!
그렇게 던진 초구를 하비 로드리게스는 파울로 걷어냈다.
“아!”
“끝났다.”
신기록 갱신까지 남은 투구수는 2구.
이제부터는 모든 타자가 범타로 물러나도 메이저리그 신기록 갱신은 불가능해진 상황.
딱!
심지어 하비 로드리게스는 이진용이 던진 두 번째 공도 3루쪽 파울 라인을 벗어나는 파울로 만들었다.
그 파울이 나오는 순간 레즈 선수들은 미소를 지었다.
‘끝이다!’
‘우리가 해냈다!’
당연히 타석에 선 타자도 생각했다.
‘끝이군.’
그 타자를 향해 이진용이 3구째를 던졌다.
타자의 스트라이크존을 향하는 패스트볼.
그 공에 하비 로드리게스는 생각했다.
‘포심이다.’
그 공이 포심 패스트볼이며,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몰리는 공이라고.
안타를 치기에 딱 좋은 공이라고.
이진용, 그의 무실점 이닝에 마침표를 찍기에 가장 좋은 공이라고.
‘친다!’
하물며 원하는 바를 이룬 하비 로드리게스의 마음에는 망설임이라고는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는 곧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 순간 포심 패스트볼이 하비 로드리게스의 몸쪽으로 붙었다.
‘투심?’
빡!
그렇게 부딪친 배트와 공이 격한 소리를 냈고, 그 격한 소리와 함께 공이 3루수를 향했다.
그 순간 공을 잡은 3루수 데이비드 라이트가 3루 베이스를 밟은 후에 단숨에 2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러자 어느새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유격수 아메드 로사리오가 2루 베이스를 밟음과 동시에 도약하며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펑!
그렇게 던진 공이 1루 베이스를 밟고 있는 1루수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던 1루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웃!”
– 헐?
“헐?”
이진용, 그가 메이저리그에 또 한 번 전설을 쓰는 순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