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2
7화. 라이징 패스트볼 (3).
6.
[체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을 확인한 이진용은 어깨를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3월 6일, 선발로 출전했던 그 날 5이닝 동안 65구나 되는 공을 던지면서 생겼던 피로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케이.’
그저 그날의 여운과 느낌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
– 네 체력 회복속도는 시간당 0.7포인트 정도 되네. 하루 푹 쉬면 회복량은 16포인트 정도.
그런 이진용의 등 뒤에서 김진호가 입을 열었다.
– 앞으로는 체력이 중요해질 거야. 당장 심기일전과 라이징 패스트볼, 두 가지를 동시에 쓰면 소모되는 체력 포인트가 6포인트나 되니까. 반면 하루 회복량은 16포인트. 사실 프로가 되면 결국 체력 관리 싸움이지. 160킬로미터짜리 공을 던질 수 있어도 체력 관리에 실패하면 끝이니까.
체력.
처음에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이 능력치였지만, 현재 이진용과 김진호는 체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을 끝낸 상황이었다.
체력은 투구수와 밀접했다.
투구수 1개를 던진다고 무조건 체력 1이 소모되는 건 아니었다.
던지는 구종, 구속, 상황에 따라 소모되는 체력 포인트가 달랐다. 예를 들어 이진용이 전력으로 공을 던질 경우에는 체력이 1포인트 소모되지만, 이진용이 가볍게 던지거나 어깨에 부담이 가지 않는 피칭을 할 경우에는 그보다 더 낮은 포인트가 소모됐다.
“생각보다 스킬 사용 소모값이 크네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킬을 한 번 쓸 때 체력을 3포인트나 소모한다는 건 전력투구를 3번 연속 한 것과 똑같은 체력 소모를 하는 셈이었다.
– 뭐,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 덜 쓰레기 같은 공을 던질 수 있으면 다행인 거지.
“그렇죠. 체력이 바닥이 되어도 좋으니 게임이 잡히는 게 더 중요하죠.”
물론 이런 체력을 고민하는 것도 지금 이진용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선수들에게 가장 최악은 넘치는 힘을 쓸 데가 없을 때이니까.
그렇게 쓸 힘이 없다가 결국 애먼 곳에 쓰는 바람에 은퇴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 그런 의미에서 넌 경기 복은 타고난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진용은 운이 좋았다.
“부정은 못하겠네요.”
고양 스타즈에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블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 후 곧바로 며칠의 휴식일을 거치고 서울 엔젤스 2군과의 시합 엔트리에 포함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꽤 특별한 케이스였다.
“솔직히 진짜 절 이천으로 데려갈 줄은 몰랐습니다.”
독립구단 선수들에게 있어 2군 팀과의 대결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연히 고양 스타즈에서 검증된 그리고 선별된 선수들만이 그 기회를 받는 게 당연지사.
고작 한 경기 치른 올해의 신입, 그것도 보잘 것 없는 구속을 가진 자그마한 체격의 투수에게 줄 기회가 아니라는 의미다.
당장 김정호 투수코치가 처음 이진용을 블루 드래곤즈와의 경기 선발을 앞두고 말하지 않았던가?
“블루 드래곤즈에서 선발 이야기 들을 때만 해도 분명 후순위 카드라고 했는데 말이죠.”
이진용, 너는 여전히 검증이 필요한 후순위 카드라고.
그러니 앞으로 좋은 기회를 받긴 힘들 거라고.
– 난 예상했어.
그러나 김진호는 달랐다.
– 범석이 형이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거든. 무엇보다 범석이 형은 모토가 그거야.
“그거요?”
– 아, 야구 몰라요∼!
“네?”
– 말 그대로. 범석이 형은 제아무리 대단한 전력분석가도 야구를 완벽하게 수치화하고 이론화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 구속이 전부가 아니고, 체격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반대로 결과는 분명 눈에 보이는 거라고 인정하고.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 빌리 빈이라고 알아?
빌리 빈.
그 단어가 나오자 이진용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빌리 빈? 머니볼 영화에 나온 사람이요?”
야구를 좋아하는 이는 물론, 어쩌면 야구에 별 관심 없는 이들도 알 법한 이름이었으니까.
– 어? 머니볼이 영화로 나왔어?
“예, 빌리 빈 배역으로 브래드 피트가 했어요.”
– 뭐? 배우 누구?
“브래드 피트요.”
– 안젤리나 졸리랑 결혼한 브래드 피트? 빌리 빈 영화를 찍는데 빌리 빈 배역을 그 끝내주게 섹시한 배우가 했다고?
“예.”
그 말에 김진호가 허탈한 웃음을 토해냈다.
– 할리우드 애들이 눈알에 납덩이를 박은 모양이군. 어떻게 빌리 빈하고 브래드 피트를 이을 수 있지? 정신이 나갔나?
그 허탈한 웃음을 끝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 그런 식이면 내 영화 찍을 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배역으로 쓰겠네?
“그럴 수도 있죠.”
그 진지한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기꺼이 긍정을 표했다.
“대신 장르는 SF판타지가 되겠지만.”
– 뭐 인마?
“김진호 역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면 그게 판타지죠.”
– 내가 뭐 어때서?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데? 내가 다저스 전 치르러 LA가면 할리우드 배우들이 나 보러 오고 그랬어. 경기 끝나면 소개팅 자리 거절하기 바빴다고!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의 반발에 대답 대신 스마트폰에 대고 음성 검색을 활성화한 후에 말했다.
“김진호 열애설 검색.”
곧바로 구글이 검색 결과를 내놓았다.
이진용은 그 결과를 보여주는 스마트폰 액정을 김진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런 어쩌죠? 김진호 선수와 할리우드 여배우와 열애설 이야기는 제대로 검색되는 게 없네요?”
– 그, 그야 몰래 했으니까! 그래, 몰래! 몰래 했어!
반문하는 김진호를 향해 이진용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고 칩시다. 믿어줄게요.”
– 진짜야!
“예예, 믿어드린다고요. 그래서 빌리 빈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 쳇!
짧게 혀를 찬 김진호가 말을 이어갔다.
– 여하튼 빌리 빈하고 만난 적이 있었어.
“하긴 에슬레틱스에서 빌리 빈 단장이 주가를 한창 높일 때랑 김진호 선수가 리그 초토화시킬 때랑 시기가 같으니까요.”
– 그 무렵에 가장 목이 탄 건 레드삭스였어. 알다시피 새천년이 시작됐는데 밤비노의 저주는 깨질 기미가 안 보였고, 이러다가는 진짜 우승 못하고 1세기 보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요?”
– 그 무렵에 빌리 빈이 나한테 연락을 했어. 만약 레드삭스가 카디널스에서 당신을 데려간다면 나는 기꺼이 레드삭스 단장이 되겠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야구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
“세이버 매트릭스 말이군요.”
– 그는 이제 야구의 비밀이 숫자로 나오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했지. 그렇기에 반대로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진 선수를 가진 팀만이 우승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래서 난 물어봤지. 그런 건 어떻게 아냐고.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결과를 만드는 선수 열 명 중 한 명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
“열 명 중 한 명? 그럼 나머지 아홉 명은요?”
– 일명 뽀록이라고 하지. 어쨌거나 범석이 형의 야구론도 비슷해. 어떤 선수가 자기가 가진 능력 이상의 결과를 계속 만들면 분명 그 선수에게는 기회를 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반대로 말하면 제가 이번에도 기회를 못 만들면 제 모든 걸 뽀록으로 보시겠다, 이거군요.”
김진호는 대답 대신 검지와 엄지를 마주치며 오케이 사인을 만들었다.
그 모습에 이진용은 한숨 따윈 내뱉지 않았다.
– 어쭈? 지금 외줄에 올라탔는데 담담하네?
김진호가 그런 이진용에게 되물었다.
그 되물음에 이진용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 정도 고생도 각오 안 하고 이 바닥에 들어올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말에 김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다. 혹시 알아? 이번 경기를 우연히 엔젤스 구단의 높으신 분이 보고 널 마음에 들어서 데려갈지?
이진용이 피식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 맞아, 개소리 좀 한 거야.
7.
이천 챔피언스 파크.
서울 엔젤스의 모기업인 현성 그룹이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2군 훈련소인 그곳에 서울 엔젤스의 2군 선수단과 매치업을 치르게 된 고양 스타즈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이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야구장을 휘감고 있는 조명들이었다.
“이 조명들 봐.”
“여기는 구름 살짝 낀 낮보다 조명 켠 밤이 더 환하다며?”
“그래서 밤까지 펑고 훈련을 할 수 있다던데?”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을 쓰고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시설을 가진 이천 챔피언스 파크는 고양 스타즈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별들이 뛰는 우주와도 같았다.
– 이야, 야구장 좋네. 이제는 2군 구장도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오는구나.
김진호도 감탄할 정도이니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진용도 마찬가지였다.
“잠실구장보다 더 좋은 것 같네요.”
– 잠실구장이 리모델링한 게 아니라면 거기보다 좋은 야구장보다는 구린 야구장을 찾는 게 더 빠를 걸?
“하긴 그렇죠. 지은 지 오래됐으니까.”
– 그래도 잠실구장은 느낌이 있어.
“느낌이요?”
– 현성 그룹 오너 일가랑 만나면서 한 번 잠실구장 마운드를 밟아본 적이 있는데······ 여하튼 분명 너도 밟아보면 알 거야.
“밟아볼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 순간 김진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 야, 저기, 저기 봐.
“어디요?”
이진용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들 눈에는 서울 엔젤스의 상징, 하얀 옷에 검은 줄무늬, 스트라이프 무늬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단이 보였다.
그들이 그라운드를 채운 고양 스타즈의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이진용이 이를 꽉 물었다.
이진용도 느낀 것이다.
– 장담하는데, 쟤들 오늘 사생결단 낼 생각이야.
고양 스타즈를 마주하는 서울 엔젤스의 2군 선수들이 지금 그 어느 경기보다 절박함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2군 구단에게 지면 1패이지만, 프로에 도전하는 독립구단에게 지면 그건 1패가 아니라 자격 미달이니까요.”
– 아무렴. 메이저리그 선수가 더블A선수한테 당하면 짐 싸야지.
2군 선수들이 2군 선수에게 지는 건 쓰디쓴 패배이다.
그러나 독립구단에게 진다는 건 쓰디쓴 패배가 아니라 그들의 자격에 대해 고찰을 해야 하는 일이다.
– 하물며 네가 빼앗을 자리가 쟤네 자리잖아? 안 그래?
쉽게 말하면 의자 뺏기다.
독립 구단 선수들이 노리는 건 어떻게 보면 2군 선수들이 앉아있는 자리다.
그런 독립구단 선수에게 진다는 건, 그 자리를 언제든 빼앗겨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
“그래도 눈빛이 예상 이상으로 살벌하네요.”
– 안찬섭이 패전투수가 된 것도 이유이겠지.
여기에 한 가지 더, 독립구단은 안찬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2군 선수들에게 있어서도 하늘 위의 별과 같은 그 선수를 온라인상에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 관중이 많은 것도 이유이겠고.
더불어 그 일 때문에 오늘 이 경기에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자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이천 챔피언스 파크를 채우고 있었다.
“꽤 많을 겁니다. 시범경기가 3월 14일부터이니까, 전국에서 시간 나는 기자들은 죄다 여기 왔겠죠.”
이제 시범경기를 3일 앞에 둔 11일, 이미 몸풀이를 마친 기자들에게는 오늘 이 경기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충분했으니까.
‘응?’
그때 김진호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말했다.
– 야, 저쪽으로 가봐.
“어디요?”
– 저기 포수석 뒤쪽으로.
이진용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남성과 여성이 대화하는 것이 보였다.
“와우.”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보는 순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멋진 몸매를 가진 여성이었다.
이진용이 한 마디 했다.
“이런 거 하나는 귀신보다 더 귀신 같이 찾아내시네요. 역시 메이저리거의 눈은 다른 모양입니다. 아주 이런 거 찾는 건 매의 눈이네, 매의 눈이야.”
– 그런 거 아니야!
“에이, 뭘 숨기시나. 남자라면 다 그렇지 뭐.”
– 일단 가 봐!
이진용은 기꺼이 김진호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 역시 저 미인의 얼굴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은 남자였으니까.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이진용은 재차 여인의 미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예쁘네.’
그와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런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 이상하단 말이야. 쟤를 내가 언제 어디서 한 번 본 것 같은데?
김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김진호는 떠올렸다.
– 아! 구 회장 손녀다!
“예?”
– 맞아, 확실해. 내가 한국에 왔을 때 현성 기업 오너 일가하고 만났을 때 거기서 나한테 꽃 줬던 애야.
“구 회장 손녀요?”
그 말에 이진용도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검색을 했다.
“구은서.”
– 그래, 그 이름이었어.
그 순간 그곳에 있던 구은서가 고개를 내려 이진용을 바라봤다.
8.
“누구죠?”
구은서의 물음에 그녀의 옆에 있던 변형채가 고개를 내려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응?’
갑자기 포수석 근처에서 러닝을 시작한 한 선수가 보였다.
점퍼를 입고 러닝을 위해 등을 돌린 탓에 얼굴을 확인하는 건 힘들었지만 변형채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진용 선수입니다. 스타즈 소속입니다.”
저런 작은 신장을 가진 선수는 프로의 수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선수요?”
구은서가 눈을 살짝 찡그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작군요. 내야수인가요? 2루수? 유격수?”
“아뇨. 투수입니다. 안찬섭 상대로 나와서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투수입니다.”
“아.”
그제야 구은서는 변형채가 보내준 경기 결과에서 승리투수 이진용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성적이 어땠죠?”
“5이닝 무실점입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15타자 연속 범타 처리했습니다. 깔끔하게 말하면 5이닝 퍼펙트게임이었습니다. 볼넷 하나 없었죠.”
그 말에 구은서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런 투수가 있다고요?”
“그런데 패스트볼 구속이 120대 초반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패스트볼 구위는 좋지 못합니다. 대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훌륭합니다.”
설명을 하던 변형채는 직감했다.
구속이 120대 초반에 불과합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구은서의 귀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훌륭하다, 같은 자신의 말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구은서가 저 투수에 대한 관심을 곧바로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울 거라고.
“그래요?”
그러나 구은서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는 저 자그마한 투수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았다.
“혹시 그것 말고 다른 건 없나요?”
“다른 것 말입니까?”
구은서는 스스로 말하고도 자신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눈가를 찌푸렸다.
“아니에요.”
“뭔가 저 투수로부터 느껴지는 게 있으십니까?”
변형채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구은서는 자신이 느낀 것을 떠올리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그냥 저 선수를 보니까 예전 기억이 나서 그랬어요.”
“예전 기억이요?”
“김진호 선수를 만났을 때 기억이요.”
그 말에 변형채도 피식 웃었다.
김진호.
메이저리그에서 9시즌 동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아성을 만들었던 메이저리그의 지배자.
그런데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기는커녕 고작해야 120대 초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로부터 그 위대한 투수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피식, 웃음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물론 그 둘은 몰랐다.
– 아! 그때도 미인이었지만 지금은 장난 아니네. 만약 내가 그때 쟤랑 결혼했으면 나도 재벌가 사위 되는 건데, 아쉽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 아깝다. 그때 분명 날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말이야.
“지랄.”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예? 제가 무슨 말 했나요?”
– 지랄이라고 했잖아?
“그럴 리가요? 잘못 들으셨겠죠. 요즘 헛것이 들리시는 모양입니다. 제삿밥으로 보약 좀 올려드릴까요?”
자신들이 참으로 감이 좋은 이들이라는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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