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6
9화. 선발 출격 (1).
1.
[엔젤스 2군, 독립구단 고양 스타즈를 상대로 대승!] [고양 스타즈, 결국 독립구단의 한계에 갇히나?] [고양 스타즈와의 교류 경기, 이대로 괜찮은가?]“후우······.”
스마트폰으로 기사 타이틀을 확인하던 정범석 감독은 긴 한숨과 함께 스마트폰을 끄지 않은 채, 던지듯 자신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고뇌를 시작했다.
‘가차 없군.’
엔젤스 전과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언론은 승자인 엔젤스가 아닌 패자인 고양 스타즈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정범석이 고양 스타즈의 감독이 된 이후 교류전을 치를 때마다 있던 일이었다.
충분히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야구 관련 기사를 쓰는 주요 언론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프로야구구단 편이다.
그리고 프로야구구단들은 고양 스타즈를 비롯해 독립구단과의 교류 경기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야구구단들의 편인 언론들이 고양 스타즈를 물어뜯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범석 감독은 이번 패배가 유독 뼈아프게 느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수가 없다.’
현재 고양 스타즈에 확실하게 1승을 가늠할 수 있는 투수가 없다는 것.
즉, 지금보다 앞으로가 문제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이 있듯이, 쓸만한 투수에 대한 프로야구구단들의 관심은 지대하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제1 목표인 독립구단에 쓸모 있는 투수가 등장한다면?
선수의 기량이 프로 레벨에 비해 조금 부족해도, 프로구단들은 일단 그 선수를 데려간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정말 프로구단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기량을 가진 투수들은 절대 독립구단까지 오지 않는다.
하물며 한국프로야구리그에서는 육성선수 제도가 있다.
예전에는 신고선수라고 불렀던 이 제도를 이용하면 구단은 정식으로 보유할 수 있는 65명의 선수 외의 선수를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으니, 필요한 선수는 고용하지 않을 이유도, 제약도 없다.
더불어 선수 입장에서도 독립구단보다 육성선수로 프로구단과 계약하는 게 낫다.
어쨌거나 육성선수도 그 프로구단의 2군 설비와 코칭스태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결정적으로 육성선수에게도 프로구단은 계약금 없이 2,700만 원이라는 최저연봉을 지급한다.
월 70만 원을 내는 독립구단에서 뛰는 것과 그래도 연봉으로 2,700만 원을 받고 육성선수로 뛰는 것.
무엇이 더 나은 지는 고민하는 것이 우스운 일일 터.
‘정말 한국프로야구의 토양이 최악이라는 게 실감이 나는군. 독립구단을 몇 해 운영하니 아마추어에 그나마 남은 자질 있는 투수가 사라졌으니······.’
어쨌거나 이런 상황 속에서 정범석 감독은 어떻게든 투수를 키우고자 했다.
김정호 투수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철주야, 정말 밤낮으로 투수들의 기량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과 연구를 거듭했다.
엔젤스와의 경기는 그런 노력의 결과를 가늠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경기였다.
내보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들만을 골랐다.
‘겨울 동안 준비한 게 전부 쓸모없게 된 느낌이군.’
그러나 결과는 참담, 그 자체.
‘기량도 기량이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승리에 굶주린 선수가 없다는 거겠지.’
특히 정범석 감독을 머리 아프게 하는 건 선수들 대부분이 패배의식으로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야구는 약팀도 이길 수 있는 스포츠다.’
야구는 제아무리 강한 팀도 6할 승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제아무리 약한 팀도 2할 밑으로 승률이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
즉, 고양 스타즈가 프로야구구단 2군을 상대로 10경기를 하면 한두 경기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의미.
그러나 지금 고양 스타즈에 뿌리내린 패배의식은 그 승리를 할 수 있는 경기마저 패전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점이었다.
고양 스타즈의 선수들은 야구를 시작하고 승자였던 때보다 패자였던 나날이 더 많은 선수들이다.
갈 곳 없이 정말 마지막 기회를 잡아보려는 선수들.
그런 그들에게 승자의 긍지와 야망을 요구한다면 그것을 요구하는 자가 이상한 일일 터.
‘그래도 반전이 필요해. 분위기 반전이.’
이 순간 정범석 감독의 머릿속에는 한 사내가 떠올랐다.
‘이진용.’
이진용.
정범석 감독이 오로지 자의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뽑은 선수.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것뿐인 투수.
고양 스타즈에 있는 모든 투수들 중에서 기량면에서나 피지컬면에서나 가장 허접한 선수.
‘그 선수만 이기려고 했어.’
하지만 승리에 대한 열정으로 마운드에 서는 투수는 그가 유일했다.
단순히 성적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벤치, 그곳에서 승리를 향한 파이팅을 외친 최초의 선수라는 것이 근거였다.
‘분명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진 선수다.’
이진용은 구속을 비롯해 모든 것은 보잘 것 없지만 승리에 대한 열정만은 누구보다 큰 선수였다.
그 선수를 떠올리던 정범석 감독이 다시금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런 정범석 감독의 눈에 일정표의 한 문장이 보였다.
[3월 18일 인천 샤크스 2군과 강화 원정경기, 선발 미정.]2.
김정호 투수코치의 하루 일정은 대개 투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몸은?”
“괜찮습니다.”
그렇게 컨디션 체크를 마친 이후 김정호 투수코치는 선수에 맞게 훈련 매뉴얼을 짜줬다.
“무리하지 말고. 일단 몸부터 제대로 푼 다음에 피칭을 한다. 명심해. 공은 제한된 숫자만큼 던져. 그 이상 던져선 안 돼.”
“예.”
그런 김정호 투수코치의 투구 지론은 다름 아니라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라는 것이었다.
당장 김정호 투수코치부터가 그랬다.
오래전에 야구를 시작한 그는 그가 야구생활을 하면서 만난 모든 지도자들로부터 투수는 많은 공을 던져야 한다고 지도 받았었고, 그렇기에 그는 그 누구보다 많은 공을 던지는 자신의 노력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그의 선수생명을 단축하는 식으로 나왔을 때, 그는 깨달았다.
많이 던지면 분명 도움은 되지만, 결과적으로 어깨는 망가진다는 것을.
그때부터 그는 최대한 공을 적게 던지면서 최대한 높은 효율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유연성 스트레칭은 빼놓지 말고.”
그 연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투수의 몸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종류의 훈련들이었다.
벌크업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면 구속이 증가하지만, 반대로 부상 위험도 늘어나는 만큼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그의 훈련 방식은 분명 일반적인 지도자들이 하는 훈련 방식과 달랐다.
여전히 한국프로야구 무대의 지도자들은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단련된다는 지론으로 무장된 경우가 많았고, 그 지도를 받은 선수들 대부분은 공을 많이 던지는 것이 당연한 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말고! 너무 힘을 주면 안 돼! 근육이 찢어진다고! 천천히 호흡에 맞춰서 몸을 늘려!”
때문에 고양 스타즈의 투수들에게 김정호 투수코치의 훈련은 어색한 것이었고, 김정호 투수코치는 그런 투수들의 훈련에 언제나 개입하느라 그라운드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 김정호 투수코치에게서 자유로운 선수는 딱 한 명이었다.
“코치님.”
“응?”
“전 뭘 할까요?”
“어······.”
이진용.
이제는 김정호 투수코치가 키워야 할 투수.
“평소 하던 대로 몸을 풀도록.”
그러나 이제까지 김정호 투수코치는 이진용에게 무언가 훈련을 지도한 적이 없었다.
무관심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예! 열심히 할 테니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오히려 반대.
‘대체 어디서 저런 훈련법을 배운 거지?’
이진용의 몸 관리 방법은 김정호 투수코치의 터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것이 그에게 어떤 가르침도 주지 못한 이유였다.
그 정도였다.
이진용의 몸 관리를 위한 훈련방식은 김정호 투수코치가 보기에 오히려 배워야 할 정도로 완벽했다.
당장 러닝만 해도 이진용은 그저 무식하게 정해진 거리만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진용은 일단 러닝을 하기 전에 자신의 러닝 코스를 도보로 한 번 확인했다.
러닝 도중에 코스의 문제로 인해 부상이 생기는 경우는 생각보다 잦고, 그런 식으로 발목, 무릎, 햄스트링 등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훈련의 목적이 기량 향상이지, 혹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프로들도 저러기는 어려운데.’
프로선수들조차 보여주지 않는 진정한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김정호 투수코치의 심중을 이진용이 파악할 수 있을 리는 만무.
“아무래도 저 버림 받은 거 같죠?”
– 뭔 소리야?
“김정호 투수코치님이 제 훈련을 한 번을 제대로 봐주지 않잖아요? 역시 날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게 분명해.”
고양 스타즈 입단 이후 김정호 투수코치로부터 제대로 된 코칭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진용에게 있어서는 탐탁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피식 웃었다.
–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 김진호에게 모든 트레이닝을 배웠으니까 터치할 게 없는 거야. 장담하는데 넌 이대로 하면 메이저리그 가서도 코치 도움 필요 없어.
김진호는 지금 자신의 트레이닝 방법에 굳이 교정할 것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에이, 설마.”
– 뭐? 에이 설마? 내가 언제 너한테 구라친 적 있냐? 응?
“구라 쳤잖아요?”
– 내가 언제?
“저번에 러닝할 때는 빨간 삼각팬티를 입어야 도움이 된다고 했잖아요? 젠장, 그때 내가 유니폼이 하얀색인 걸 잠시 잊는 바람에 빨간 팬티 입고 뛰다가······.”
– 인마, 그건 장난이었지!
“네, 그래서 제가 끈팬티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를 믿지 않았죠.”
– 어? 그건 진짜야. 너 모르는구나? 메이저리그 애들 중에 끈팬티 입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심지어 노팬티도 있어! 아니, 못 믿겠으면 한 번 해보라니까? 다음 경기에서 빤스 벗고 해봐! 아마 네 구속이 5킬로미터는 더 나올 걸? 그 해방감이 투수의 리미트를 해제한다니까? 야, 나 김진호야. 메이저리그의 지배자! 내 말 믿고 한 번 해봐.
“퍽.”
– 뭐? 퍽?
“이나. 퍽이나 그러겠네요.”
– 지금 욕했지?
“퍽이나. 한국어 몰라요?”
– 퍽퍽퍽퍽퍽퍽!
결국 말문이 막힌 김진호가 유치하기 그지없는 발악을 하는 것으로 대화는 멈췄고, 이진용은 자신을 향해 쉴 새 없이 욕 같지도 않은 욕을 내뱉는 김진호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은 채 러닝 코스를 파악했다.
‘응?’
그런 이진용의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니라 배팅 훈련을 갑작스럽게 멈추는 박준형의 모습이었다.
훈련을 멈춘 박준형을 향해 타격코치와 함께 처음 보는 중년 사내가, 덩치가 큰 것이 젊은 시절 운동을 제대로 했을 것이 분명한 사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하자마자 곧바로 박준형이 허리를 깊게 숙인 후에 악수를 나눴다.
그 이후 그 셋이 선수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구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뭔가 냄새가 나는군.
훈련 중에 보기 힘든 그 모습에 이진용은 물론 김진호도 관심을 가졌다.
– 가서 보자. 러닝하는 척하면서 슬쩍 근처로 지나가 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러닝을 시작했다.
3.
“생각해보겠습니다.”
박준형의 말에 그의 앞에 있던 중년 사내의 표정이 인정사정 없이 구겨졌다.
“이봐 이건 좋은 기회야.”
중년 사내는 그렇게 얼굴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표정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시즌 마치고 연봉 200퍼센트 인상에 2군 주전 엔트리 보장, 8월 이후 확장 로스터 때 엔트리를 보장해준다니까?”
말을 하면서 중년 사내는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이 정도까지 내가 제안해주는데 감히 네놈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 끝이 좋지 않을 것이야!
그야말로 협박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그런 중년 사내의 눈빛 앞에서 박준형은 고개를 한 번 더 숙였다.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그뿐이었다.
확답은 없었고, 그 사실에 인천 샤크스 소속 스카우트인 백대동은 크게 혀를 찼다.
“쯧!”
그 혀를 차는 모습과 함께 박준형을 노려봤다.
고작 네놈 따위가 내 제안을 거절해?
그의 눈빛에는 그런 심정이, 불쾌함을 넘어 박준형을 향한 적의가 아주 제대로 빛나고 있었다.
“후회하지 말게.”
그 말을 끝으로 백대동이 등을 돌린 후에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백 스카우트님!”
타격코치가 그런 백대동의 모습에 기겁하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어떻게든 프로구단에 선수를 보내야 하는 고양 스타즈의 입장에서 스카우트는 그야말로 신의 대리인과 같은 존재.
때문에 타격코치 입장에서는 백대동 스카우트를 어떻게든 달래야 할 의무가 있는 탓이었다.
그 모습에 박준형은 이를 꽉 물었다. 그 역시 이런 상황에 유쾌할 리는 만무.
그렇게 이를 문 박준형은 곧바로 훈련을 마저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 박준형의 눈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응?’
누구와도 구분할 수 있는 작은 체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그 누구도 자신 앞에서 출루하는 걸 허락하지 않은 투수.
‘이진용?’
이진용, 그가 박준형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이진용의 말에 박준형이 제스처 없이 입만 움직였다.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박준형은 지금 상황이 그리 탐탁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면목이 없었다.
프로에 입단하는 것에 모든 운명을 건 고양 스타즈 선수들에게 프로 입단 제안을 거절하는 박준형의 모습은 기만자의 모습으로 보여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저기 그런데 왜 프로 입단 제안을 거절하신 겁니까?”
이진용의 이 질문처럼.
때문에 그 질문에 박준형은 당황하지도 않았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더 좋은 대우가 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어차피 육성선수로 들어가면 1군에서 뛸 수 있는 건 5월 1일 이후가 되니까, 그 전까지는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까요.”
“저기 그럼 정말 구단한테 입단할 때 조건을, 그러니까 옵션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어진 이 질문은 박준형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혹시 한 시즌만 뛰고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게 방출해달라, 이런 조건도 걸 수 있나요?”
심지어 덧붙여진 이 질문 앞에서 박준형은 감히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박준형의 모습에 이진용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한 소리를 했네요. 여하튼 파이팅입니다.”
그 답변을 뱉은 이진용이 도리어 박준형을 향해 격려 인사를 건넨 후에 자리를 벗어났다.
4.
박준형을 등진 채 러닝을 시작한 이진용이 자신의 옆에 있는 김진호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진호 선수, 제발 제가 남하고 대화할 때는 가만히 경청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것은 마치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 내가 뭘? 조용히 했잖아?
그 모습에 김진호가 이진용의 시선을 외면한 채 대답했다.
“사람 몸뚱이를 지나갈 수 있는 그 투명한 팔을 내 똥구멍에 집어넣고 가랑이로 나오게 한 후에 흔드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난 그냥 거기서 기지개를 켰을 뿐이야. 단지 네 엉덩이 근처에서 기지개를 켜는 바람에 그런 상황이 생긴 거지.
그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옅게 웃었다.
– 그보다 대단하네.
대단하네, 그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단하죠. 스카우트가 주전 보장까지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제안을 칼같이 거절하다니······ 누군 프로 입단하는 게 꿈인데.”
조금 전 박준형과 샤크스 스카우트 사이에서의 대화는 모든 선수가 들었으면 놀랄 만한 내용이었다.
연봉 인상 보장, 2군 주전 보장 그리고 조건부이긴 하지만 8월 이후 1군 출전 기회 보장!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드래프트로 입단한 유망주도 받기 힘든 제안이었다.
“진짜 저런 선수가 왜 드래프트에서 안 뽑혔는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포인트만 해도 그렇죠. 이제까지 만난 선수 중에 100포인트 넘기는 타자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 부럽다. 진짜 내가 키만 박준형 선수 정도 됐으면······.”
박준형, 그에 대한 프로구단들의 관심 그리고 그를 보는 시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아니 그거 말고.
하지만 김진호가 대단하다고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
– 네가 메이저리그를 언급한 거. 난 그걸 말한 거야.
그 대화 도중에 이진용의 입에서 메이저리그란 단어가 나온 것이 김진호를 놀라게 했다.
그런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가 대단한 겁니까?”
– 그야······.
“목표 정도는 크게 잡아도 되잖아요? 더욱이나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이진용의 대답에 김진호는 뱉으려던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그래, 주둥이로는 뭘 못하겠냐? 기왕 내뱉는 거 김진호 선수 같은 위대한 기록을 남기는 게 목표라고 하지?
이진용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 나중에 누가 질문하면 메이저리그에 가서 개뽀록이나 다름없는 김진호 선수의 기록을 죄다 갈아치우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입니다! 라고 대답하죠.”
– 뽀록? 지금 뽀록이라고 했냐?
“응? 제가 언제 그런 표현을 썼습니까?”
– 내 기록이 뽀록이라고 했잖아!
“언제요?”
– 지금!
“에이, 제가 언제 뽀록이라고 했어요. 개뽀록이라고 했지.”
– 와! 이래서 귀신이 악령이 되는 거구나. 너 기다려. 네가 조만간 주온 한 편 찍게 해준다.
“조만간 고스트 버스터즈 한 편 찍어야겠네.”
그렇게 시작된 그 둘의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멈추게 한 건 다름 아니라 김정호 투수코치였다.
이진용을 부른 그가 말했다.
“감독님께서 부르신다. 감독실로 가도록.”
그 말에 김진호가 말했다.
– 신이시여, 부디 이 싸가지 없고, 은혜도 모르는 놈에게 고난과 고행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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