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9
10화. 제 조건은요 (1).
1.
인천 샤크스 2군 대 고양 스타즈.
이 두 팀 간의 시합이 시작됐을 때 그 경기를 보는 모든 이들의 관심은 당연히 박준형에게 꽂혀 있었다.
안찬섭을 상대로 2타수 2안타 1홈런을 뽑아낸 이 타자가 무슨 결과를 보여줄까?
샤크스의 백대동 스카우트의 영입 제안을 거절한 이 타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 기대감 속에서 모두가 그를 집중했다.
그가 벤치에 있을 때면 모든 이들의 시선이 벤치로 향했고, 그가 수비를 위해 나올 때면 모두가 1루를 바라봤으며 그가 타석에 설 때면 카메라가 셔터 소리를 냈다.
찰칵!
그런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박준형이 아닌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향하기 시작한 건 4회 말이 끝났을 때였다.
질겅질겅!
프로의 세계를 꿈꾸는 투수라고 하기에는 단신의 작은 체격, 그 작은 체격에 어울리는 작은 입 쏙 껌으로 핑크빛 풍선을 만들어내며 마운드를 내려오는 그 투수를 모두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12타자 연속 범타.”
“오늘 잡은 삼진이 다섯 개.”
“엔젤스 전에서도 7회에 올라와 2이닝 무실점으로 내려왔다고?”
“안찬섭이 나왔던 블루 드래곤스 전에서도 5이닝 무실점이야. 볼넷도 하나 없고, 안타도 하나 없고.”
“트라이아웃 때도 청백전에서 하나도 안 맞았다던데?”
동시에 그들은 부정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은 거겠지.”
“트라이아웃이나 블루 드래곤즈 타자들은 사회인 수준이잖아? 그냥 치라고 공을 던져도 안타 보다 범타가 많이 나오지.”
“엔젤스 전은 다 끝난 경기였지. 10점 차 상황에서 패전처리를 하러 올라온 거니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눈앞에서 12타자 연속 범타, 단 하나의 안타와 볼넷도 허락하지 않는 투수의 성적과 기량을.
그 투수를 그들이 주목하고, 관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작 120짜리 직구 던지는 놈을 상대로 무슨 짓이야! 정신 차려! 네놈들이 그러고도 프로야?”
그러한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그 투수, 이진용이란 투수를 주목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는 자는 없는 법이니까.
‘빌어먹을, 저 새끼 뭐야?’
‘아, 미치겠네. 이상한 새끼 때문에 경기가 꼬이고 있어.’
‘귀신을 상대하는 기분이네. 젠장, 왜 저런 사회인야구 수준도 안 되는 공을 못 치는 거지?
더불어 보이는 것을 부정한다는 건 또 다른 증거였다.
현재 상황이 부정하는 자들, 샤크스에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증거.
그런 상황 속에서 5회가 시작됐다.
2.
5회 초, 고양 스타즈의 공격은 별 의미 없이 끝났다.
5회 초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이들도 없었다.
박준형이 타석에 서기까지는 제법 많은 타자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모두의 관심은 이제 5회 말, 마운드에 올라올 투수에 집중되어 있는 탓이었다.
그 관심 속에서 선발 투수 이진용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질겅질겅!
더블버블 풍선껌을 쉴 새 없이 씹으며 마운드로 향하는 이진용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조금의 주저함 없이, 머뭇거림 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 이진용의 시선이 타석에 선 타자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의 눈빛이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을 보기보다는 영문 모를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눈빛이라는 사실을 읽었다.
‘그래, 어디를 보더라도 프로 자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선수에게 4이닝 동안 단 한 명도 출루를 못하면 공포 영화가 맞지.’
그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진 않았다.
가질 이유도 없었다.
이것은 이진용이 예상한 바였으며 동시에 의도한 바였으니까.
‘하지만 저 정도로 겁에 질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대신에 지금 샤크스 2군 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엔젤스 2군 타자들이라면 여기서 어떻게든 귀신이 뭔지 파악하려고 했을 텐데 말이야.’
엔젤스 2군.
그들이라면 지금 샤크스 2군 선수들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진용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덤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크스 타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시계 부품보다는 그냥 괜찮은 부품들인 느낌이야.’
타자들은 그저 당장 자신 앞에 있는 이진용을 상대하려고만 할 뿐.
이진용에게 삼진을 당하거나 아웃을 당하면 그저 말없이 벤치로 들어가 고개를 숙일 뿐.
그것뿐이었다.
샤크스 2군 타자들은 경기가 거듭될수록 대화가 줄고, 말수가 줄었다.
타선이라기보다는 타자라는 느낌이 분명했다.
‘이럴 땐······.’
그리고 이런 타자를 상대할 때의 팁을 그는 말해줬다.
이진용이 고개를 돌려 마운드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진호를 바라봤다.
김진호가 그런 이진용의 시선에 말했다.
– 왜? 힘들어? 응원해줄까? 저번에 이 노래 들어보니까 좋더라. 치어업 베이비! 치어업 베이비! 좀 더 힘을 내! 투수가 쉽게 점수를 주면 안 돼!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이 극도로 혐오스러운 것을 봤을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을 지었다.
– 어, 미안.
김진호가 춤을 멈췄고, 이진용이 껌을 씹으며 다시 한 번 마운드를 바라봤다.
타석에 선 타자를 바라봤고, 그러면서 가늠했다.
‘현재 남은 체력은 19포인트, 심기일전은 사용가능한 4회 중 3번 사용했으니 남은 건 한 번.’
자신에게 남은 것들.
‘라이징 패스트볼은 오늘 두 번만 썼지. 그러니까······.’
더 나아가 자신이 아껴둔 것들까지.
‘5회에 모든 것을 녹인다.’
자신에게 남은 것을 확인한 이진용이 껌을 씹던 것을 잠시 멈춘 후 나지막이 읊조렸다.
“라이징 패스트볼.”
3.
커브를 결정구로 쓰는 투수.
그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타석에 선 타자들의 머릿속에는 당연히 커브가 가장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덜 떨어지는 패스트볼, 일명 라이징 패스트볼의 등장은 샤크스 타자들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았다.
[66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5이닝 무실점 피칭 중입니다.] [모든 체력을 소모하셨습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2,442포인트입니다.]그 악몽에 허덕이던 5회 말 마지막 타자를 내야 플라이로 잡는 순간 이진용은 처음으로 마운드에 위에서 소리쳤다.
“호우!”
그 외침과 함께 이진용이 마운드를 내려왔을 때 김진호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 체력 다 썼냐?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전부?
이진용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김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내가 저번에 분명히 말했지?
그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 꽃길을 걷게 될 거라고.
꽃길.
그 단어를 떠오른 순간 이진용의 머릿속에는 곧바로 다른 단어가 떠올랐다.
“불꽃길?”
그때 김정호 투수코치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이진용을 반갑게 맞이했다.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어.”
격한 격려를 하던 김정호 투수코치는 곧바로 이진용에게 질문했다.
“더 던질 수 있지?”
그 물음에 이진용은 멈칫했고, 곧바로 김정호 투수코치 뒤에서 미소를 짓는 김진호를 볼 수 있었다.
‘아.’
그 순간 이진용은 자신이 착각했음을 떠올렸다.
저번 블루 드래곤스 전에서 이진용은 5이닝만을 던졌다.
체력의 여유가 있었지만, 고양 스타즈 코칭스태프는 그런 그에게 더 이상 이닝을 맡기지 않았다.
‘이거구나.’
그때 이진용은 선발투수라기보다는 첫 번째 투수였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블루 드래곤스와의 경기는 승리라는 것보다는 엔젤스와의 교류 경기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위한 무대였다.
이진용의 체력이 넘치듯 말든 고양 스타즈가 이진용에게 마운드를 오롯하게 맡길 이유는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진용은 오늘도 5이닝을 준비했다.
‘이게 차이구나.’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 이진용, 그는 첫 번째 투수가 아니었다.
정범석 감독이 인천 샤크스 2군 팀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위해 고르고 고른 선발투수이지.
그런 상황에서 5이닝 무실점 피칭, 노히트노런을 넘어 퍼펙트게임 페이스를 보이는 선발 투수.
그런 투수에게 과연 감독과 코치는 다른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라는 말을 할까?
할 리 없다.
그것은 투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게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물론 결정권은 투수에게 있다.
이 순간 투수가 힘들다는 제스처를 표한다면, 쉬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다면 코칭스태프는 투수를 배려해줄 것이다.
‘체력은 다 썼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이진용은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썼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마운드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지도 않다는 것.
그때도 그랬다.
블루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던 그 경기에서 이진용은 자신이 내려온 후에 누군가에게 마운드를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경기를 마치더라도 본인이 망쳐야 후회가 덜 남지, 타인의 손을 통해 자신이 이룩한 금자탑이 무너진다는 것이 얼마나 속 쓰린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였구나.’
김진호가 미소를 짓는 이유도, 그가 불꽃길이라는 서슬 퍼런 지옥길을 언급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난······.’
“힘이 많이 빠졌습니다. 만약 실점을 해도 괜찮다면······ 그렇다면 올라가겠습니다.”
김진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진용이 절대 이 순간 체력 같은 것을 운운하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경기를 맡길 놈이 아니라는 것을.
‘어차피 오늘 경기는 교류 경기다. 그 어디에서도, 내 커리어에도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경기. 그저 기사나 기억으로 남을 경기.’
더 나아가 지금 이것은 도리어 기회였다.
‘차라리 맞는다면 지금 이 순간 맞는 게 낮겠지.’
이진용이 자신의 한계를 그리고 훗날 피하지 못할 고통과 속쓰림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
“오늘 마운드의 주인은 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그 말에 김정호 투수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김정호 투수코치가 이진용의 어깨를 두드린 후에 자리를 피하자, 그 너머에 있던 김진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양팔을 벌린 채 말했다.
– 죽어도 마운드에서 죽어야 하는 선발투수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4.
[체력이 없습니다. 구속과 구위가 하락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현재 5이닝 무실점 피칭이 진행 중입니다.]6회 말.
베이스볼 매니저의 경고 속에서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그런 이진용의 눈앞에는 김진호가 있었다.
– 이제부터 패스트볼 구속은 120대조차 나오지 않을 테고, 그마저도 제구는 쉽지 않겠지. 여기에 스킬은 단 하나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변화구 역시 마음처럼 안 될 거야. 반면 타석에 서는 타자들은 이미 네 공이 눈에 제법 익었고, 독기로 가득했지.
김진호는 그런 이진용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 이게 선발 투수, 개중에서도 기대감을 받는 투수가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야.
그런 김진호의 의도는 이진용이 이 순간 보다 더 무겁고, 짙은 부담감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진짜 마운드, 자신의 커리어와 연봉 그리고 선수 생명이 걸린 진짜 무대에서 느끼는 부담감을 견뎌낼 저항력을 가지게 될 테니까.
“진짜 고맙네요.”
그 마음, 그 의중을 이진용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김진호는 이진용을 놀릴지언정, 단 한 번도 그의 야구를 방해한 적은 없었다.
이제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진용은 기꺼이 감수했다.
‘지금 당장 홈런을 맞을 거 같아.’
마주한 타자를 상대로 던진 공이 왠지 실투가 될 것 같고, 그 실투를 타자가 단숨에 홈런을 만들어버릴 것 같은 상황임에도, 그냥 솔직히 마운드를 내려가고 싶은 상황임에도.
그럼에도 이진용은 마운드에서 섰고, 포수와 사인을 나누었고,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각오였다.
‘예방 접종은 언제나 아픈 법이지.’
그런 이진용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
– 아!
이진용이 초구를 던지는 순간, 손끝에서 공이 떨어지는 순간 이진용의 머릿속에는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김진호의 머릿속으로는 이미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고, 그 폭발음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빠악!
폭발적인 소리와 함께 이진용의 머리 위로 하얀 물체가 포탄처럼 날아갔다.
이진용은 그 사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던지는 순간 느꼈다.
‘아, 맞았구나.’
이 공이 실투라는 것을.
모든 힘이 빠진 자신이 결국 실투를 던졌고, 프로 레벨의 타자에게 그 실투는 그야말로 배팅볼이라는 것을.
나름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맞이하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분함이 가슴을 두드렸다.
‘젠장.’
더러웠다.
이보다 더 없을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 제일 기분이 더러운 순간이지. 내가 힘이 없어서 홈런을 맞을 때는 더더욱. 타자가 잘한 게 아니라 내가 못했으니까. 내가 못해서 마운드를 내려간다는 건 더더욱 비참한 일이고.
김진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숙인 고개, 그 아래로 분노의 눈빛을 이글이글 태우고 있는 이진용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 하지만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렉 매덕스도, 랜디 존슨도 그리고 페드로 마르티네즈 모두 마운드에서 타자에게 이런 식으로 홈런을 맞았다. 나도 그랬고.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상처 입은 채 마운드를 내려갔고. 언제나 그랬어. 네가 인정받을수록 언제나 마운드를 내려올 때는 상처를 입거나 혹은 경기가 끝날 때밖에 없어. 이게 싫으면 완투를 해.
“예.”
이진용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런 이진용을 보며 김진호는 옅게 웃었다.
– 이 홈런이 앞으로 네가 걸어야 할 나날 속에서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러는 사이 홈런을 친 타자가 3루 베이스를 지나 홈 베이스로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타자가 홈 베이스를 밟는 순간.
[최초로 홈런을 허용하셨습니다.]– 응?
“응?”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렸다.
[골드 룰렛 이용권이 지급됩니다.]– 이런 씨발!
“우와, 씨발!”
최초로 내준 홈런, 그 홈런이 이진용의 뼈와 살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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