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30
10화. 제 조건은요 (2).
5.
“끝이다!”
고양 스타즈의 더그아웃, 그곳에서 터진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고양 스타즈의 선수들이 불끈 쥔 주먹을 머리 위로 들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그와 동시에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첫 승이다!”
첫 승.
프로 2군 팀을 상대로 거둔 그 귀중하디 귀중한 승리 앞에서 고양 스타즈 선수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고, 감출 필요도 그리고 감춰야 할 의무도 없었다.
기쁨의 환호를 누리는 건 승자만이 누릴 수 있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였으니까.
당연히 이진용도 기꺼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호오오오우!”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연승을 하셨습니다. 브론즈 룰렛 이용권이 지급됩니다.] [5이닝 무실점 피칭을 하셨습니다.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누적 포인트는 4,150포인트입니다.]게임의 끝을 알리는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 소리와 동시에 이진용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김진호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김진호가 혀를 차며 초를 쳤다.
– 젠장, 좋아하지 마라.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어.
“호우!”
– 빌어먹을 놈의 호우!
“호우!”
물론 그런 김진호의 초치기는 통하지 않았다.
– 그보다 저긴 아주 애를 잡네, 잡아. 아, 내가 이진용이를 저렇게 잡아야 하는데······.
한편 승자의 기쁨이 있으면 패자의 슬픔이 있는 법.
“아마추어한테 지면서 무슨 1군은 1군이야! 프로 자격 떼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인 샤크스 2군 선수들, 오늘 다른 팀도 아닌 독립구단에 패배한 그들은 그 패배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진짜 씨발 이딴 식이면 야구 때려 치워! 준프로 새끼들한테 지는데 무슨 프로라고!”
심지어 그들이 지금 듣는 욕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고양 스타즈 선수들이 강화도를 떠나는 순간, 샤크스 2군 구장의 조명이 빛나기 시작할 것이며 2군 선수들은 그 조명 아래에서 입의 단내가 마를 때까지 훈련을 할 테니까.
여기까지도 그나마 낫다.
최악은 오늘 이 경기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선수들에게 이번 시즌의 시작에 애로사항이 꽃피기 시작한다는 점이니까.
퓨처스리그에서 뛸 기회가 줄어들고, 그럼 자연스레 1군 콜업 기회도 멀어질 것이다.
일부는 어쩌면 오늘 일을 계기로 프로에서 방출을 당하거나, 2군 계약이 아닌 3군 계약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이진용은 어느새 환호를 멈춘 채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 동정하냐?
그런 그의 시선에 김진호가 질문했다.
이진용은 그 물음에 옅게 웃은 후에 고개를 저었다.
– 그래, 동정하지 마라. 너한테 동정 받으려고 필사적으로 뛰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아무렴요.’
이 순간 그들을 동정할 자격을 가진 건, 팬과 그들의 가족들뿐, 선수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을 동정할 자격을 가진 이는 없었다.
– 다음에 만나면 오히려 오늘보다 더 가차 없이 처리해. 오늘 1실점 했으면, 다음에 만날 때는 완봉을 노려. 그다음에 만날 때는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고.
오히려 반대, 다음에 만날 때 이진용은 오히려 그들을 더 압박하고, 윽박지를 것이다.
‘예.’
때문에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의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용!”
그때 김정호 투수코치가 이진용을 불렀다.
“이야기 좀 하지.”
그 말에 이진용이 슬며시 김진호를 바라봤고, 김진호도 그런 이진용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 설마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으니 이제 프로로 가라, 이러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이진용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고 김진호도 피식 웃었다.
– 그래, 나도 웃으라고 한 소리야. 트라이아웃 테스트한 게 저번 달인데 벌써 프로 입단이라니, 그게 사실이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6.
“변형채라고 하네. 현재 엔젤스에서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을 총괄하고 있지.”
말과 함께 내민 변형채의 손을 잡은 이진용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김정호 투수코치, 정범석 감독 그리고 박준형을 지나 마지막으로 자신과 비슷하게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진호의 얼굴이 보였다.
“······이진용이라고 합니다.”
그 멍한 표정 사이로 말을 뱉은 이진용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저기 제가 착각을 잘하는 성격이라서 그런데, 설마 엔젤스에서 절 영입하려고 오신 건 아니죠?”
– 진용아 김칫국 마시지 마라. 내가 보기엔 100포인트짜리 영입하고 감독, 코치, 스카우트, 선수가 모여서 사진 찍어야 하는데 사진 찍어줄 사진기사가 없어서 부른 게 분명해. 안 그래? 상식적으로 그게 아닌데 널 부를 이유가 없잖아? 사진기나 달라고 해.
‘그래, 김진호 선수 말이 맞지.’
당연한 말이지만 이진용은 자신이 지금 이 순간 프로에 입단할 가능성을 조금도 높게 보지 않았다.
분명 대단한 성적을 거둔 건 맞지만, 그는 여전히 작은 체격에 고작 120대 중반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투수일 뿐이다.
심지어 오늘 그는 5이닝 이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투수의 또 다른 미덕 중 하나인 이닝 이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다른 곳도 아니고 엔젤스에서 영입 제안을 한다?
“농담입니다, 농담. 설마 정말 절 영입하러 오셨을 리가 없죠.”
이진용은 변형채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가 이 상황에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변형채가 옅게 웃으며 잡고 있는 이진용의 손을 좀 더 세게 잡았다.
“감이 무척 좋군.”
“예?”
“자세한 이야기는 정 감독께서 해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곧바로 바통을 정범석 감독에게 넘긴 변형채가 그대로 소파에 앉았고, 정범석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엔젤스에서 우리 스타즈에 선수 두 명을 데려가고 싶다고 제안을 했고, 계약서 내용에 따라 이 자리를 마련했네.”
‘계약서? 아!’
그제야 이진용은 고양 스타즈 입단 계약서를 썼을 때 봤던 조항 하나를 떠올렸다.
고양 스타즈는 선수 본인이 원할 경우 한국프로야구위원회 휘하 구단으로의 이적을 허락한다.
······라는 조항의 내용을.
“그 두 명이 바로 자네들이고, 보다 공신력 있는 대화를 위해서 잠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네.”
정범석 감독이 말을 마친 후에 변형채를 바라봤고, 변형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몇 가지 짚고 넘어가면 일단 이 자리에서 당장 계약을 하는 일은 없네. 오늘은 서로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화를 기반으로 계약서를 만들어야지. 이 자리는 그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 셈이랄까?”
이진용이 그 말을 들으며 박준형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일단 조건을 말해보게.”
그 질문에 먼저 대답한 건 박준형이었다.
“주전 보장을 원합니다. 5월 1일 이후 정식선수로 등록 후에 바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싶습니다. 최소 30일 동안 엔트리 보장 그리고 출전 기회를 보장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1군 엔트리에 90일 이상 이름을 올렸을 경우 다음 해에 300퍼센트의 연봉 인상 보장을 원합니다.”
박준형의 제안에 이진용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 미친 거 아니야?’
드래프트에서 지명 한 번 받은 적 없는 선수가 다른 것도 아니고 1군 엔트리 보장을 요구한다?
심지어 시즌 끝난 후에 300퍼센트의 연봉 인상?
그 정도로 큰 연봉 인상을 받는 건, 신인선수들 중에서도 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변형채는 놀라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본인이 들은 것을 준비해온 아이패드에 받아 적었다.
– 이야, 저거 신기하다. 저거 뭐야?
김진호가 그런 아이패드와 아이펜슬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의 질문은 가뿐하게 무시했다.
“저기.”
이진용이 입을 열자 변형채가 고개를 돌렸다.
“말하게.”
“정말 아무 조건이나 됩니까?”
그 질문에 변형채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아무 조건이나 들어줄 순 없지. 단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릴 뿐. 일단 뭐든 좋으니 말해보게.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면서 계약서를 만드는 거지. 이게 메이저리그 스타일이기도 하네.”
메이저리그 스타일!
그 단어에 이진용이 스윽 김진호를 향해 눈동자만 굴렸다.
김진호가 그 말에 대답했다.
– 틀린 건 아니지. 메이저리그에서는 구단하고 계약할 때 진짜 별 지랄 맞은 것도 넣거든. 체중에 따라 옵션을 거는 경우도 있고, 바이크 타다 걸리면 연봉 깎이는 옵션도 있고, 구단주가 벌이는 사업에서 지분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월드시리즈 승리 옵션으로 불도저 달라고 한 놈도 있을 정도이니까. 참고로 난 월드시리즈 우승하면 구단주에게 유명 여배우랑 미팅 주선을······ 아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선수에게 불리한 계약이라면 모를까, 선수에게 유리한 계약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으며, 그것이 메이저리그 스타일이었다.
– 뭐, 그 메이저리그 스타일을 한국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김진호가 말과 함께 변형채를 바라봤다.
– 범석이 형하고 안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온 사람이 분명해. 변형채라······ 애슬레틱스에서 한국인 한 명이 일한다는 걸 듣긴 했는데 그 사람인가?
그런 김진호의 말은 이진용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프로 입단만 해줘도 감사할 노릇인데 조건은 무슨 조건이야? 그게 말이 돼?’
이진용, 그의 꿈은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야구선수를 하게 해주겠다?
마다할 게 없는 제안, 더 이상 무언가를 더 요구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다.
때문에 이 순간 이진용은 이 이상 다른 무언가를 조건으로 걸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아무렴.’
그 조건 때문에 프로 입단이 취소된다는 것이 두려웠고, 솔직히 말하면 무엇을 조건으로 걸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 그냥 질러.
그런 이진용의 귀로 김진호가 말했다.
– 정말 원하는 걸 요구해. 못 들어주겠다면 계약 안 하면 되는 거고. 분명한 건 일단 계약 한 번 하면 그때부터는 그 계약 조건을 명백하게 지켜야 해. 그 계약 때문에 네 꿈을 포기하더라도 무조건 그 계약을 지켜야 해. 그게 계약이란 놈이니까.
그 말에 이진용은 떠올렸다.
“제가 원하는 조건은······.”
7.
탁!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 앉은 변형채는 곧바로 컵홀더에 걸쳐진 이어폰을 꺼냈다.
통화와 운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함이었다.
부릉!
그런 그의 의도는 그의 자동차의 엔진이 힘찬 소리를 내뱉을 무렵에 이루어졌다.
– 계약은 어떻게 됐죠?
자동차의 울음 사이로 구은서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변형채의 귓가를 흔들었다.
“조건만 맞춰주면 당장 계약 가능합니다.”
– 박준형의 요구 조건은 뭐죠?
“5월 1일 이후 바로 1군 엔트리 등록, 그 외에는 계약 후 연봉 300퍼센트 인상입니다.”
– 그래서 당신의 판단은요?
“4월부터 시작되는 퓨처스리그 게임 10경기에만 내보내면 1군에서 빨리 보내달라고 안달을 낼 겁니다. 육성선수는 5월 1일 이후 1군 엔트리에 등록될 수 있다는 조항만 아니면 사실 그냥 1군부터 시작해도 될 만한 타자입니다.”
– 이진용은요?
이진용이란 이름이 나오는 순간 변형채는 잠시 멈칫했다.
– 그는 무슨 조건을 요구했죠?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제대로 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구 팀장님이라고 해도 이해하실 겁니다. 한 달 전에 고양 스타즈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선수에게 프로 입단 제안을 한다면, 하물며 이진용 선수는 보통 선수가 아니잖습니까?”
– 허무맹랑한 조건을 내세우던가요?
“일단 연봉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안 했습니다.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 그럼요?
다시금 말을 멈춘 변형채는 이 순간 고민했다.
과연 그것을 말해야 할지 말지.
그 고민을 끝난 변형채가 입을 열었다.
“만약 자신이 엔젤스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면, 그 조건을 충족하면 자신을 방출해달라고 합니다.”
– 방출이요?
“예.”
– 그게 무슨 소리이죠?
“1년만 엔젤스에서 뛰고, 엔젤스를 나가겠다는 겁니다. 자유계약 선수가 되고 싶다는 거죠.”
– 스스로 나가겠다고요? 이유는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건 아닐 겁니다. 이진용 선수 스펙으로 메이저리그는 어림도 없으니.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 조건을 우리가 들어주느냐, 마느냐.”
– 조건을 들어주는데 문제가 있나요?
“만약 이진용 선수가 대단한 활약을 했는데 그를 곧바로 방출한다면 한국프로야구위원회나 언론 반응이 좋진 않을 겁니다.”
– 규정상으로는요?
“구단이 선수를 방출해서 자유로 만들어주겠다는데 그걸 막는 규정이 있을 리 없죠.”
그 순간 통화도 잠시 멈췄다.
말을 뱉는 자도, 듣는 자도 말문이 막힌 상황.
– 좋아요.
그 상황에서 구은서가 입을 열었다.
– 1군 엔트리 보장도 아니고, 연봉 협상도 아니고, 올해 엔젤스가 우승만 한다면야 그 선수를 방출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죠. 하물며 그가 한국시리즈 마운드에서 던진다면 이야깃거리로는 충분하네요.
“그렇다는 건?”
– 계약하세요. 둘 다.
“알겠습니다.”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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