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31
10화. 제 조건은요 (3).
8.
“내가 미쳤지.”
이진용이 고양 스타즈에 출퇴근하기 위해 구한 보증금 1천에 월세 50만 원짜리 오피스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그곳에서 이진용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 야, 이거 뒤로 좀 돌려줘.
그런 이진용의 옆에는 세워진 태블릿PC를 통해 2016시즌 월드시리즈 경기를 보는 김진호가 있었다.
– 야! 빨리! 내 손으로는 터치 안 된단 말이야!
김진호의 거듭된 요청에 이진용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지금 그게 눈에 들어와요?”
– 응! 요즘 화질 장난 아니네. 눈에 겁나 잘 들어온다. 아주 끝내줘! 캬!
김진호의 해맑은 반응에 이진용이 이를 꽉 물었다.
“아니, 지금 내가 그 자리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는데, 신경도 안 쓰입니까? 예?”
– 아, 그거.
말을 뱉는 이진용의 머릿속으로 그날의 대화가, 변형채 엔젤스 스카우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미쳤지! 거기서 그런 식으로 개소리를 지껄여서 프로 입단 계획을 날리다니!”
선수의 프로 구단 입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스카우트와의 대화.
프로 입단의 운명이 걸린 그 대화에서 이진용은 고민 끝에 원하는 바를 말했다.
“팀 우승하면 방출시켜달라니······.”
자신이 팀의 우승에 기여를 한다면, 방출해달라고.
그것도 다른 이유도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아무런 조건 없이 갈 수 있기 위해서!
“내가 미쳤지, 아오!”
이진용의 반응처럼 미친 짓이었다.
변형채 스카우트가 콧방귀를 뀌면서 구단 높으신 분에게 이진용의 정신 상태가 심히 의심되니 절대 영입하지 말 것! 같은 스카우팅 리포트를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친 짓.
–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김진호의 반응은 달랐다.
“그럴 수도 있다고요?”
– 그럼 한국에서 9년 동안 공 던지고 메이저리그 갈래?
“그건······.”
– 그렇잖아? 한국프로야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고졸 선수가 포스팅 자격 취득하는 데에는 7시즌 동안 뛰어야 하고, FA자격 얻으려면 9시즌 동안 뛰어야지.
그 말 그대로였다.
김진호의 말대로 이진용이 프로야구구단과 정상적인 계약을 할 경우, 그가 메이저리그에 가게 되는 건 머나먼 미래의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진용은 생각했다.
‘아니, 메이저리그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건가?’
그런 식으로라도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라고.
실제로도 그랬다.
한국프로야구무대에서 뛰는 무수히 많은 선수들, 개중에서도 고액 연봉을 받고 팀의 프랜차이즈 대우를 받는 이들조차도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서 뛰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프로야구무대에서 최고가 되어야만 그나마 제대로 도전이라도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였고, 그런 메이저리그 무대를 나이 서른이든, 마흔이든 뛴다는 건 야구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일이었다.
–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그 조건을 말로 뱉은 건 내가 시킨 게 아니야. 그렇지?
“예.”
– 네 마음속에서 나온 가장 진솔한 욕망이었지.
“그렇죠.”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은 고민을 접었다.
그 말이 맞았다.
그 순간 이진용이 그런 조건을 운운한 건 결국 그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지, 결코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젠장, 좋은 기회가 다 날렸네요.”
– 좋은 기회를 날린다는 건 FA나 다름없는 네 신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그냥 구단과 일방적인 계약을 맺는 것을 말하는 거지. 그보다 영상 좀 돌려달라니까? 리플레이 한 번만 더 보자.
“아니, 크리스 브라이언트 타격 영상을 대체 몇 번을 보는 겁니까?”
– 몇 번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 녀석이 2016시즌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를 몸소 실천한다는 거지.
“그 전에 룰렛이나 마저 돌립시다.”
룰렛.
그 단어에 김진호가 자리를 바꾸고는 곧바로 이진용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몇 번이나 돌릴 수 있지?
“골드 룰렛 한 번, 브론즈 룰렛 한 번. 여기에 4천 포인트가 넘게 있으니까 이걸 포함하면 브론즈 룰렛은 최대 다섯 번이요.”
– 솔직히 내 생각에는 이제는 드디어 개끗발이 나올 때가 왔다고 생각돼.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은 반문하지 못했다.
“그동안 운이 너무 좋긴 했죠.”
– 좋은 정도가 아니었지. 만약 네가 다른 곳이 아니라 카지노 룰렛에서 그 정도로 운이 좋았으면 카지노에서 고용한 금발의 끝내주는 미녀가 너한테 와서 술 한 잔을 건넬 거야. 그 술에는 당연히 약을 탔고, 넌 그 약에 취해서 바카라나, 블랙잭을 시작할 테고 그러다가 딴 돈을 전부 잃을 거야. 그리고 정신을 떴을 때는 라스베이거스 호텔 방에서 주문한 룸서비스를 지불할 돈이 없어서 당장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돈을 꿨겠지.
“너무 디테일한데 혹시 경험담입니까?”
– 그, 그럴 리가! 난 도박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검색 한 번 해볼까요? 김진호 카지노로?”
– 에헤이! 룰렛 돌려! 돌리라고!
그 말에 이진용이 곧바로 룰렛을 돌렸다.
일단 4천 포인트를 소모해 브론즈 룰렛을 네 번 돌렸다.
[체력이 1상승합니다.] [체력이 1상승합니다.] [체력이 1상승합니다.] [체력이 1상승합니다.]– 이야, 체력 잭팟 떴네! 체력 부자! 축하한다!
김진호가 크게 웃었다.
그런 김진호 앞에서 이진용은 브론즈 룰렛 이용권을 이용해 다시금 브론즈 룰렛을 돌렸다.
“변화구 하나 나와라. 투심, 커터, 스플리터 중 하나만 제발. 싱커도 좋다.”
– 새끼, 바라는 것도 많네. 신이시여, 이 새끼 보셨죠? 이렇게 탐욕스러운 놈에게는 그냥 체력 1포인트만 주면 충분합니다!
그 순간 룰렛이 돌아갔고, 이내 은색 칸에서 멈췄다.
[구질 습득 비약(E랭크)을 획득하셨습니다.]“어?”
– 응?
습득한 것은 다름 아니라 구질 습득 비약.
그리고 그 구질 습득 비약은 바로 이진용에게 적용됐다.
[투심 패스트볼(E)을 습득하셨습니다.]이진용이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렇지!”
– 미친, 이 게임 왜 이래? 이게 무슨 룰렛이야? 룰렛이면 확률이 있어야지! 사기네, 사기야.
투심 패스트볼!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종류의 패스트볼이 이진용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호우!”
이진용이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김진호가 보는 앞에서 힘차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외침에 김진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그놈의 호우, 호우. 그래, 그 소리가 그렇게 좋으면 앞으로 네가 마운드 올라갈 때마다 네 엉덩이 근처에서 나도 호우 외쳐준다. 어디 한 번 똥구멍에서 호우 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는지 보자!
“호우!”
이진용이 여전히 기쁨을 주체 못하는 듯 재차 도발을 시도했고, 김진호가 그런 이진용 앞에서 입을 꽉 물었다.
– 아우! 약 올라!
유치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이진용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골드 룰렛을 돌렸다.
이 순간 이진용은 골드 룰렛에서 무엇이 나오든 상관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골드 룰렛에서 무엇이 나오든 이진용이 손해 볼 건 없을뿐더러, 투심 패스트볼이란 무기를 얻은 것만으로도 이미 오늘 계산은 끝난 셈이었으니까.
이윽고 룰렛이 멈췄고, 이진용과 김진호가 그 룰렛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둘은 봤다.
“헐.”
– 나 안 해.
“헐!”
– 씨발 나 안 해!
[마법의 1이닝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이진용, 그에게 다시 한 번 백금색의 기적이 일어났다.
9.
선수를 영입한다는 것은 그저 스카우트 한 명이 개인적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영입하는 것은 구단 측에서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수를 기용하는 건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인 법.
구단이 어떤 선수를 영입하든 그 선수를 어떻게 쓸지는 감독에게 달려있다.
“우 감독님.”
변형채 스카우트가 엔젤스 2군 감독, 우지욱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구 운영팀장님이 이 두 선수 영입을 원하십니다. 이미 구단에서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4월 3일부로 이 두 선수는 엔젤스 육성선수 소속으로 2군에 뛰게 될 겁니다.”
변형채는 말과 함께 자신이 가지고 온 두 개의 문서파일을 우지욱 2군 감독에게 건네줬다.
파일을 건네받은 우지욱은 문서파일의 첫 장만 살폈다.
“박준형.”
그리고 그 파일 속 주인공들의 이름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진용.”
박준형과 이진용.
“둘 다 아는 얼굴이시지요?”
변형채의 물음에 우지욱 2군 감독은 대답에 앞서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변형채를 바라봤다.
변형채는 그 모습에 살짝 비틀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좀 봐주십시오, 그런 느낌의 미소였다.
사실상 구단주나 다름없는 구은서 운영팀장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실세답지 않은 미소.
달리 말하면 우지욱 2군 감독의 입지와 경력 그리고 능력이 구단의 실세조차 자세를 낮춰야 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일단 한 가지는 분명히 하지. 내가 2군 감독에 부임했을 때 2군 선수 운영에 대해서는 전권을 보장받았지. 그리고 그 사실은 지금도 유효하고.”
“아무렴요.”
우지욱.
2년 전에 엔젤스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본래 엔젤스 2군 감독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프로야구리그인 NPB의 팀 중 하나인 지바 롯데에서 배터리 코치를 거쳐, 수석 코치까지 올라섰던 그의 다음 목적지는 그 어느 것도 아닌 메이저리그 코치였으니까.
그것도 한국프로야구구단의 모기업인 대기업, 재벌 그룹의 지원을 받아서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우지욱은 프로 출신이긴 하지만 그런 모기업 차원의 지원을 받을 만큼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즉, 우지욱 2군 감독은 오로지 자력으로 메이저리그마저 인정하는 지도자가 된 사내였다.
그런 그를 엔젤스가 2군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해 들이 공과 노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엔젤스는 2군 운영에 대한 확고부동한 전권을 그에게 줬다.
사실 한국프로야구리그에서 감독 그리고 코치라는 자리는 굉장히 힘든 자리다.
당장 한국프로야구리그에서 3년 이상 한 팀에서 감독으로 부임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팀을 연거푸 우승시킨 감독조차도 성적이 안 좋거나 혹은 성적이 좋아도 구단과의 불화로 경질되는 게 당연할 정도.
하물며 감독이 바뀔 때면 자연스레 코칭스태프도 물갈이되는 게 한국프로야구의 특성······ 아니, 한국사회의 특성이었다. 제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윗사람이 물러나면 그 아랫사람도 같이 물러나는 한국사회의 특성.
1군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그러한데 2군의 처지가 좋을 리 없다.
그런 상황에서 2군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너무 유능하면 이런 게 문제이지.’
더욱이 우지욱 2군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가 먹히지 않을 경우 그냥 옷을 벗으면 된다는 아주 강력한 선택지가 있었다.
그만큼 실력도 확실했다.
당장 엔젤스 2군의 선수들이 다른 2군 선수들보다 뛰어난 기량과 실력을 보여주는 게 그 증거다.
사실 그렇기에 변형채가 선수 영입 후에 우지욱 2군 감독을 찾아와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는 없었다.
변형채가 좋은 선수를 데려오면 그 선수를 알아서 잘 키워줄 지도자 아닌가?
‘박준형만 아니었으면······.’
문제는 박준형이었다.
박준형은 단순히 엔젤스가 전력 증가를 위해 영입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상품.
엔젤스가 이번 2017시즌 우승을 단순한 우승이 아닌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영입한 존재였다.
‘다른 건 몰라도 박준형은 어떻게든 키워야 해.’
그리고 작금의 시대는 상품이 가지는 스토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주는 시대다.
즉, 박준형은 특별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요청하는 것이 변형채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괜히 말 돌리지 않겠습니다. 박준형 선수에 대한 특혜가 필요합니다. 그 선수는 어떤 식으로든 엔젤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선수입니다.”
변형채 스카우트의 말에 우지욱 2군 감독은 대답에 앞서 들고 있는 파일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 지론은 간단하네. 옥석을 가릴 시간이 없을 때는 옥석끼리 부딪치면 옥만이 살아남는다는 것.”
우지욱 2군 감독은 그 말과 함께 툭툭, 손가락으로 박준형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담긴 파일을 두드렸다.
“특혜를 받을 옥인지 아니면 그럴 가치가 없는 돌멩이인지는 옥석끼리 부딪쳐보면 될 일이지.”
변형채 스카우트는 그 말에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특혜를 줄 생각이 없다는 거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알겠습니다.”
그 사실에 변형채는 여기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다.
‘최선이 안 통하면 차선을 택해야 하는 법.’
“그럼 앞으로 두 선수를 어떤 식으로 테스트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신 우회했다.
‘우 감독 계획을 확인한 후에 그에 맞춰서 박준형을 도와주는 수밖에 없지.’
우지욱 2군 감독의 계획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추기로 했다.
그 말에 우지욱 2군 감독은 대답했다.
“4월 5일부터 퓨처스리그가 시작되지.”
“압니다. 데블스와 3연전이죠.”
“그 무대면 충분하겠지.”
“예?”
“문제라도 있나?”
“그, 그게······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두 선수를 영입하는 건 4월 3일입니다.”
“그럼 4월 5일 경기에 나올 수 있겠군.”
“그러니까 그게······.”
“설마 당장 프로의 무대에서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다, 같은 이야기를 할 생각인가?”
“아, 아뇨.”
“그게 아니면 프로의 무대, 그것도 2군 무대에서도 당장 뛰지 못할 선수를 영입했다,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가?”
변형채는 그제야 깨달았다.
우지욱 2군 감독도 충분히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하고 그에 맞는 강수를 준비했다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박준형은 득점권 찬스에서 대타로만 내보낼 것이네.”
그것도 보통 강수가 아니란 엄청난 강수를.
“그리고 이진용 선수는······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9회에, 세이브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려보면 되겠군. 투수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는 그것보다 좋은 무대 없지. 안 그런가?”
말도 안 되는 강수를 준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두 선수에게 내 말 잘 전해주게.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경우 앞으로 더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게 되리란 말도 덧붙여서.”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박준형이 알아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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