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
1화. 귀신이 보인다 (3).
5.
노력은 절대 재능을 이기지 못한다.
장담할 수 있다.
150킬로미터짜리 직구는 노력한다고 해서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140킬로미터만 해도 그렇다.
당장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대부분의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130킬로미터대인 것은 그들이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타고난 재능이 있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기에 브라운관 너머에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능의 벽을 마주한다면, 그냥 뒤돌아서 다른 길을 찾는 게 좋다.
그게 편하게 사는 가장 확실한 왕도(王道)다.
‘여기 또 서게 되는군.’
그리고 그게 이진용이 편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때도 그랬다.
재능의 벽 앞에서 이진용이 포기했다면, 그는 좀 더 순탄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주제를 몰랐고, 그 벽을 부수겠다는 웃기지도 않는 일념 하에 벽에 거듭 몸을 던졌다.
그 결과가 지금 이진용의 발아래 있었다.
– 마운드, 진짜 오랜만이네.
그곳은 이진용이 다니는 공장, 그 공장 옆에 있는 공터를 이용해 만든 야구장이었다.
물론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피어나 있고, 벤치가 있으며, 조명과 그물망이 있는 그런 야구장은 아니었다.
잡초조차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척박한 땅 위에 분가루로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외야에 판자 몇 개를 세우고, 세상 모든 모래를 모아 만든 듯한 괴팍한 흙더미를 쌓아놓고 마운드라고 우기는 야구장.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 완전 쓰레기이지만.
때문에 이진용, 그는 이 마운드에 지금 자신의 처지에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 같은 놈에게 어울리는 곳이죠.”
재능 앞에 무릎 꿇고, 부상 앞에 고꾸라지고, 결국 돈 앞에 야구를 포기한 이에게 딱 어울리는 곳 아닌가?
– 뭐, 그건 지금부터 차차 보면 될 문제이지. 네가 정말 쓰레기일지 아닐지.
그 말을 끝으로 김진호는 이진용 앞에서 제 반투명한 검지로 제 입을 가렸다.
김진호가 입을 다물자 이진용의 세상이 고요해졌다.
“어이구, 힘들어.”
그렇게 고요해진 세상 속에서 포수 마스크 사이로 앓는 소리를 뱉으며 자리에 쪼그려 앉는 성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자리에 앉은 성 부장이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크게 흔들었다.
공을 던지라는 의미.
무슨 공을 던지라는 소리는 없었다.
사회인야구, 그것도 1부 리그와 2부 리그 같은 나름 야구 좀 한다는 곳이 아니라 정말 취미로 야구를 하는 3부 리그 수준인 리그에서 150킬로미터자리 포심 패스트볼이나, 130킬로미터짜리 슬라이더나, 뚝 떨어지는 커브, 마구와도 같은 포크볼 같은 게 나올 리 없다.
기껏해야 100킬로미터를 넘기는 패스트볼이 있을 뿐.
그마저도 제구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달리 말하면 사회인 야구에서는 포수가 투수에게 무언가를 주문해도 그 주문대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의미.
패스트볼을 주문했는데 너클볼이 오더라, 그건 껄껄 웃어넘길 수 있는 곳이 사회인 야구다.
즉, 주문대로 올 리가 없으니, 주문을 할 이유도 없는 셈.
‘어깨는 용케 풀렸네.’
때문에 이진용은 망설임 없이 초구를 준비했다.
그런 이진용의 투구폼은 분명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꽈배기처럼 몸을 꼰 후에 그 폼을 풀며 던지는 투구폼이 마치 토네이도 같았다.
만약 야구를 좀 오래 본 이들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투수 노모 히데오를 떠올릴 법한 투구폼.
작은 체격에서 어떻게든 힘을 끌어내기 위해 이진용이 택한 생존 방법이었다.
“어이쿠!”
그렇게 던진 공은 성 부장이 내민 포수 미트를 아주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왼쪽으로 빠졌다.
“죄송합니다!”
이진용이 곧바로 사과를 했고, 성 부장이 대답 대신 새로운 공 하나를 이진용에게 던져줬다.
공을 잡은 이진용은 곧바로 2구째를 던졌다.
펑!
2구째는 성 부장의 미트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성 부장이 미트로 잡았다.
“좀 빠지네.”
이번에도 제법 빠지는 공을 성 부장이 나름 캐치한 것이다.
펑!
3구째는 좀 더 깔끔하게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오, 좋아!”
성 부장이 처음으로 칭찬을 뱉었다.
“근데 좀 더 빠르게.”
그리고는 주문을 했다.
“아니, 빠르게 던지라고 해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으면 내가 잠실야구장에 있지 여기에 있겠습니까?”
평소 이진용이라면 그런 혼잣말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진용은 그런 말을 뱉지 않았다. 심지어 마음으로조차 그런 말을 뱉지 않았다.
‘영점이 잡혀간다.’
마운드 위에서 자신의 몸을 하나하나, 정신을 하나하나, 감각을 하나하나 다듬었다.
이윽고 4구째를 던졌을 때.
펑!
이번에는 성 부장이 굳이 미트를 움직일 필요 없이 공이 깔끔하게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휘이잇!
성 부장의 입에서 짧게 휘파람이 터졌다.
“좋아, 계속 가보자!”
점차 제구가 잡혀가는 이진용의 모습에 나름 포수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듯 성 부장이 기세를 올렸다.
– 거기까지.
그런 그 기세에 찬물을 끼얹은 건 이제까지 침묵하던 김진호였다.
성 부장으로부터 공을 받은 이진용이 그대로 마운드로 걸어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 사이 이진용이 김진호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제 공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 응? 아니, 없어. 네 야구 실력은 문제없어.
이진용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야구 실력에 문제가 없다니, 구속이 안 나오고, 제구도 안 되고, 구위는 개판이고, 변화구는 던질지도 모르는데요?”
– 너 야구 네 스스로 포기했지?
“그럼 스스로 포기하지, 남이 포기시킵니까?”
– 대부분은 그래. 제 스스로 깔끔하게 포기하는 경우는 없어.
“예?”
– 프로의 세계에서 제 발로 은퇴하는 선수는 생각보다 없다고. 기량은 하락하고, 연봉 많이 받고, 자리 차지하고, 베테랑이랍시고 감독이랑 코치가 다루기도 쉽지 않아지면, 그때쯤이면 감독이랑 코치가 선수를 경기에 안 내보내기 시작하지. 그렇게 1년 경기 출전 못하면? 퇴물 되는 거지. 그러다가 은퇴하는 게 제 발로 은퇴하는 건 아니잖아?
“에이, 설마······.”
– 기억을 돌려봐. 자기가 이번 시즌에 은퇴한다고 말하고 그 시즌에 풀타임 가깝게 뛰고 은퇴한 선수가 몇이나 되는지. 아마 손에 꼽을 걸? 장담컨대 은퇴식 자체를 제대로 하는 선수 10명 대라고 하면 너 10초 안에 댈 수 있어? 메이저리그 포함해도 10명 못 댈 걸?
이진용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기억이, 결코 추억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고교시절의 나날들이 지나갔다.
– 본론으로 돌아오면, 아마 네가 야구부에 있을 때 감독은 너를 계속 주전으로 기용했을 거야. 맞지?
김진호의 말대로였다.
고교시절 이진용이 야구부에 있을 때 그는 또래보다 피지컬에서 뒤처졌지만, 감독은 그런 이진용에게 꾸준히 기회를 줬다.
그 사실에 큰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이진용은 무슨 전국구 수준의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결과를 내는 선수였으니까.
당연한 기용이라고 생각했다.
– 고교 야구부 감독들의 목표는 고교대회 우승이 아니야. 청룡기, 봉황대기 백날 우승하면 뭐해? 자기 밑에 있는 놈이 드래프트에서 계약금을 얼마 받느냐에서 감독 이름값이 달라지는데. 부모들도 그렇잖아. 제발 우리 아들 3경기 연속 완투로 어깨가 너덜너덜해져도 좋으니 봉황대기에서 우승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비는 부모 봤어? 프로에 가서 드러누워도 좋으니 드래프트에서 계약금으로 3억만 땡길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빌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피지컬이 부족한 이진용에게 기회를 주는 것보단 피지컬이 뛰어난 다른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게 분명 유망주를 키우는데 더 합리적인 일이었다.
“제가 야구에 재능이 있다는 겁니까?”
– 넌 네가 가진 걸 전부 쓸 줄 알아. 6년 만에 야구한 놈이 4구 만에 영점 찾는 거 봐. 그것도 그런 투구폼으로. 메이저리그에는 평생 공을 던져도 영점을 못 잡는 애들도 있는데, 이 정도면 재능이 있는 거지. 단지 문제는 네가 가진 게 좆도 없다는 점이지만. 어쨌거나 감독은 기대했겠지. 네가 키가 1년 만에 10센티미터만 더 커지면서 힘이 붙고 구속도 좀 나온다면 프로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뭐, 꽝이었지만.
“저기 그런데 꼭 표현을 좆도 없다고 해야 합니까?”
– 그럼 있냐?
“당연히 있죠? 아침에 봤잖아요? 내가 다른 걸 몰라도 그거 하나만큼은······.”
– 야! 더럽게 그 이야기는 왜 꺼내?
“아니, 좆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냈습니까?”
“진용아! 어디 아프냐? 문제 있어?”
그 순간 성 부장의 아주 훌륭한 개입으로 더 이상 추잡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진용은 몸을 돌려 성 부장을 바라봤고 손을 흔들었다.
“잠깐 숨 좀 골랐습니다.”
“야, 고작 이거 던지고 숨 고르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그보다 3구만 더 던져보겠습니다.”
“3구?”
“대충 영점은 잡힌 것 같으니까 제구 좀 봐야죠. 코스는 성 부장님이 미트 위치로 표시해주세요.”
성 부장은 대답 대신 자신의 오른 주먹으로 자신의 미트 안을 펑펑 때렸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진용이 자리에 앉은 성 부장을 봤을 때 성 부장이 포수 미트를 움직였다.
우타자 기준으로 몸쪽 코스.
노린다고 해서 집어넣을 수 있으면, 어딜 가서 야구 좀 할 줄 안다고 콧바람 좀 내면서 야구시합 끝나고 회식에서 회식비 정도는 퉁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코스다.
‘아, 근데 스킬 어떻게 쓰지?’
그때 새로운 문제가 이진용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스킬을 외쳐야 하나?’
평생 스킬이라고는 써본 적 없는 인간이 마땅히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심, 심기일전?”
결국 이진용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뭐야? 왜 갑자기 혼자 지랄이야?
당연히 김진호가 그런 그를 미친놈 보듯 봤다.
“으헉!”
– 으악!
그 순간 이진용의 입에서 튀어나온 괴성에 김진호가 덩달아 깜짝 놀랐다.
성 부장도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 야, 이진용! 제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쫌!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이진용의 고막을 두드렸다.
그 아우성 속에서 이진용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알을 세차게 굴리며 말했다.
“버, 벌이 있어서······.”
“벌? 이 겨울에? 12월인데?”
“아, 그게······.”
– 귀신 봤다고 해. 구라는 아니잖아?
“제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성 부장이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괜찮은 거지?”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지?”
“아무렴요.”
“너 혹시 귀신 같은 거 보고 그러냐? 그건 아니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무당도 아니고······.”
“계속할 거야?”
“예, 부탁드립니다.”
그 짧은 대화를 끝으로 성 부장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 성 부장이 내민 미트, 그 미트 위로 노란빛이 별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 빛은 이진용의 사고에 따라 움직였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김진호도 마찬가지였다.
– 이거 장난 아닌데?
이진용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 저기 공이 꽂히면 이건 진짜다.’
이윽고 이진용이 그 빛을 향해 자신의 손끝에 있는 공을 던졌다.
그렇게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이진용은 느꼈다.
지금 던진 공이 앞서 던진 공보다 훨씬 무겁고 버겁다는 것을.
퍼엉!
그리고 자신에게 생긴 이것이 망상이 아닌 기적이라는 것을.
– 와우!
마지막으로 김진호 유령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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