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3
14화. 무쇠팔 (3).
8.
프로의 세계에서도 1군과 2군이 있듯이, 기자들의 세계에도 1군과 2군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다지 재미도 없고, 대중의 관심에서도 먼 2군 경기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2군 기자들이었다.
“젠장.”
그러나 지금 이천 챔피언스 파크의 주차장에 세운 차에서 나오자마자 입에서 전자담배 연기와 함께 쓴소리를 토해내는 듬직한 체격의 사내, 황선우는 2군 기자가 아니었다.
‘결국 이천까지 왔구나.’
오히려 반대, 그는 잘나가는 기자였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 다른 기자들이 언제 자신 앞에 있는 수천만 원짜리 카메라를 향해 공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야구 경기를 볼 때, 기자석에 노트북을 놔둔 채 구단 관계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기자.
‘빌어먹을, 구단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면 꼭 1년에 한두 번은 이렇게 고생을 한단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황선우가 이천까지 온 이유였다.
엔젤스 구단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그에게 엔젤스 구단이 요청을 한 것이다.
‘박준형 특집 기사라······.’
박준형에 대한 특집 기사를 써달라고.
‘진짜 구 팀장이 작정을 한 모양이군.’
그 이유와 배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선우는 그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긴, 구 팀장 입장에서는 야구는 애들 장난이지. 현성 그룹에서 어느 계열사를 받느냐가 걸린 일인데.’
이번 요청을 거절할 경우 앞으로 남은 기자 인생에 애로사항이란 이름의 꽃길을 걷게 될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당장 박준형을 어찌할 게 아니라, 투수가 더 급한데 말이야.’
그런 황선우는 박준형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엔젤스의 상황에 조소를 머금었다.
‘엔젤스는 장담하는데 5월 중으로 투수진에 문제 생길 게 뻔해. 무엇보다 빅게임 피쳐가 없는 게 크지.’
황선우가 봤을 때 지금 엔젤스에 필요한 건 신인왕을 탈 만한 타자가 아니라 투수였으니까.
‘엔젤스를 상대하는 구단들의 전력분석팀들 탈모를 가속화시킬 만한 투수가 필요해. 그래야 엔젤스를 상대하는 구단들이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고 그게 실수로 연결되는 거니까.’
그것도 그냥 투수가 아니라 그 투수를 마주하는 모든 이들이 입에서 씨발씨발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아주 지독한 투수.
‘뭐, 알아서들 찾겠지. 내 문제도 아니고.’
물론 황선우의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엔젤스의 스카우트도, 전력분석관도, 코칭스태프도 아닌 그가 그 이상 고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그가 해야 할 고민은 하나, 모든 이들이 클릭을 하고 댓글을 달게 만들 만한 이슈를 만드는 것.
‘그보다 박준형이 놈은 운이 좋군. 타이틀에 자기 이름 걸린 기사 하나 만들지 못하고 은퇴하는 애들이 부지기수인데, 기사가 나오기도 전에 포털 사이트 메인 칸이 보장되어 있다니······ 참 잔혹한 세계야.’
그렇게 고민을 마치며 전자담배의 연기를 길게 들이마신 후에 내뱉었다.
“응?”
“어?”
그때 지나가던 한 중년 사내가 황선우를 보며 놀란 표정 그리고 이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황 기자, 이게 얼마 만이야?”
“성 코치!”
황선우를 반긴 건 다름 아니라 엔젤스 2군의 불펜코치 성영훈이었다.
그 둘은 곧바로 반갑게 악수부터 했다.
“간만에 보네.”
“그래 간만이지. 자네가 2군에 올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가?”
그 악수로 인사를 나눈 그 둘이 곧바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쪽에서 불렀지. 뭐, 긴 설명 안 해도 알잖아?”
“준형이 때문이군.”
“그렇지. 그래서 박준형이란 선수, 어떤 선수야?”
“난 불펜코치야. 내가 준형이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 깜냥이 있겠어?”
“괜한 질문을 했군.”
황선우는 여기서 더 깊게 박준형에 대해 캐려고 하지 않았다.
성영훈 불펜코치 말대로 그가 박준형의 실력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었을뿐더러, 솔직히 황선우는 딱히 박준형에 대해 궁금한 게 없었다.
이미 박준형에 대한 정보는 엔젤스 구단이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제공해줬으니까.
‘사실 특종거리는 없지.’
더불어 박준형은 실력과 재능은 대단해도, 특이한 무언가는 없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주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랄까?
감동을 줄 순 있지만, 재미를 주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슈가 필요한 기자에게는 그다지 재미없는 선수인 셈.
“그럼 투수 중에 뭐 재미있는 선수 없어?”
때문에 황선우는 다른 것을 찾고자 했고, 성영훈 불펜코치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진용이라고, 골 때리는 놈이 있어.”
9.
선발 투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선발 투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마운드에 오르기 1시간 전. 그때가 선발투수에게 가장 중요하지.”
경기 시작 1시간 전이라고.
“그때가 되면 무조건 올라가야 하는 마운드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볼 수 있지.”
그때가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마운드에 올라서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봤을 때 투수는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게 돼.”
그리고 그렇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선발투수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오늘 경기를 위해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아니면 대충 했는지. 오늘 내가 만반의 준비를 한 건지 아닌지. 지금 자신에게 있는 게 자신감인지 아니면 허세인지.”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그때가 그 투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였고, 때문에 황선우는 언제나 그 시간을 노렸다.
그것 때문에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간대에 투수를 찾아갔고, 그 덕분에 황선우는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선발 투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오빠 템 뽑았다, 널 잡으러 가∼! 응? 뭐라고요? 어?”
그런 그에게 있어 그는 처음 보는 타입이었다.
“누구시죠?”
이진용.
오늘 한국프로야구위원회에 정식 기록으로 남게 될 선발 등판을 앞둔 그는 라커룸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춤을 춤고 있었다.
‘이 새끼 뭐야?’
놀랍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프로 경력 없다며? 구속 120대라며? 첫 선발이라며?’
누가 보더라도 내세울 것 없는 놈이 자신보다 내세울 것 많은 선수들을 앞에 두고 여유를 보인다?
아니, 이진용이 보이는 여유는 단순한 여유가 아니었다.
황선우는 이진용의 그 여유를 보는 순간 예전 그의 선배 기자가 해준 표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미 울타리 안에 갇힌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맹수의 여유라는 표현을.
‘미친 건가?’
그렇게 당황한 황선우는 자기소개를 잊은 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름은 황선우, 직업은 기자이지.”
결국 성영훈 불펜코치가 나서서 황선우를 소개했다.
“아, 기자님!”
그 말에 이진용은 반색했다.
“엔젤스 소속 등번호 119번 이진용입니다! 키는 175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진용이 자신을 어필했다.
– 키 175? 야, 너 그렇게 구라치면 나중에 뒈져서 지옥 가서 혀가 뽑혀요, 혀가.
당연히 김진호가 그 사실에 태클을 걸었지만,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를 무시하며 기자님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질문해주십시오!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그 적극적인 모습 앞에서 황선우가 정신을 차린 듯 어색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어색함을 풀려는 듯 곧바로 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낸 후 자신의 명함을 건네줬다.
“황선우 기자일세. 오늘 선발이라지?”
“네!”
“이야기는 들었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아주 대단하다고.”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머릿속을 정리한 황선우가 이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 어떤 피칭을 할 생각인가?”
그것은 그가 신인 투수들, 그것도 아직 경기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을 상대로 던지는 질문이었다.
대개 신인투수들, 경험 없는 투수들은 이 질문을 받으면 짧은 대답을 하고는 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같은 대답들.
무언가를 준비했어도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기에 술술 털어 넣는 경우는 없었다.
‘허세인지 아니면 미친 건지 확실하게 까발려주마.’
여기서 이진용이 얼빠진 대답을 한다면 그의 여유가 단순한 여유가 아닌 그냥 미친놈이 보여주는 여유일 터.
“레인저스 타자들은 저를 상대로 최대한 많은 득점을 하려고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올 겁니다. 그 점을 역으로 공략해서 저도 공격적인 피칭을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했는데 만약 3회까지 레인저스가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그때부터는 레인저스 벤치 오더가 달라지겠죠. 그러니까 4회에 레인저스의 달라진 벤치 오더를 파악한 후에······.”
하지만 황선우 기자의 생각과 다르게 이진용의 입에서는 술술, 마치 준비된 보고서를 앞에 두고 읽는 듯이 말이 흘러나왔다.
“그, 그만.”
결국 황선우가 이진용의 말을 멈추게 했다.
이진용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그 정도면 됐네. 내가 듣고 싶은 건 각오를 듣고 싶은 거라서 말이야.”
“아, 각오!”
그제야 이진용이 짤막한 답변을 했다.
“혼자 마운드에 올라가서 혼자 내려오는 게 제 각오입니다.”
그 각오에 황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진용의 어깨를 두드렸다.
“멋진 각오군.”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럼 각오만큼 멋진 피칭 기대하지.”
황선우는 도무지 이 짐작조차 못하는 투수 앞에서 제대로 된 정신 상태로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었기에, 그 말을 끝으로 바로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는 흡연석을 찾아 이동한 후 그곳에서 전자담배를 입에 문 채로 생각했다.
‘또라이 놈이군.’
또라이.
이진용을 한 단어로 정리한 황선우의 머릿속으로 이진용을 만났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표현이 떠올랐다.
‘가만.’
울타리 안에 갇힌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맹수의 여유.
그 표현은 황선우의 선배 기자가 메이저리그의 한국인 투수 한 명을 두고 쓴 표현이었다.
동시에 황선우는 이진용이 내뱉은 각오도 떠올렸다.
마운드에 혼자 올라가서, 혼자 내려온다는 각오.
‘김진호?’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전부 김진호, 그가 한 말들이었다.
그게 이유였다.
“후우.”
단숨에 전자담배 연기를 내뱉은 황선우가 표정을 고치고 다시금 경기장 안으로 발걸음을 돌린 이유.
‘뭔가 냄새가 난다. 특종의 냄새가.’
10.
황선우가 나가고, 이제는 라커룸에 혼자 남게 된 이진용.
이제는 그라운드에 가는 순간 그 누구도 밟은 적 없는 마운드를 밟아야 하는 이진용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진용의 표정은 경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니었다.
“제가 기자한테 뭐 잘못한 걸까요?”
이진용, 그의 표정을 굳게 만든 건 다름 아니라 황선우 기자의 모습이었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황선우 기자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는 걸 모를 정도로 이진용은 눈치 없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 기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기자들은 감이 좋아.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황선우 기자는 감이 더 좋아 보였고. 그게 이유일 거야.
“이유요?”
– 네가 또라이 새끼라는 걸 감으로 눈치 깐 거지.
그 말에 이진용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김진호는 그런 이진용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놀리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네가 황선우 기자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120짜리 패스트볼 던지는 투수가 2군 첫 선발 매치업에서 마운드에 혼자 올라가서 혼자 내려오겠다느니, 레인저스 타자는 이렇게 잡겠다느니, 주절주절 말하면 뭐라고 느끼겠냐?
“이 선수 참 매력적이고, 도전적이다?”
이진용의 대답에 김진호가 마치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어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어쩌다 내가 이런 또라이 새끼랑 함께 하게 됐는지. 구은서 같은 재벌집 손녀에 빙의 됐으면 로맨스를 3편을 찍고도 남았을 텐데.
그 푸념과 함께 김진호가 대화 주제를 바꿨다.
– 뭐, 기자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오늘은 선발 출전 경기이니까 그것만 집중하자고.
“예.”
그 말에 이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그럼 일단 점검부터 다시 해보자. 오늘 화성 레인저스 엔트리 확인은?
“다 했습니다.”
– 타자들 공략법은?
“숙지 완료.”
– 연습 피칭은?
“퍼펙트!”
– 식사는?
“탄수화물 위주로 잘 채웠죠.”
– 간식은?
“바나나랑 포도당 사탕 준비했습니다. 이미 코치님에게 허락도 받았고요. 벤치에 놔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못 먹게 제 이름도 제대로 써놓았고요.”
– 마지막 비장의 무기는?
그 질문에 이진용은 대답 대신에 스윽, 주변을 둘러본 후에 자신의 라커룸 앞에서 조심스레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렇게 꺼낸 상자 안에는 팬티 하나가 있었다.
팬티라기에는 너무나도 면적이 적은 팬티.
“후우······.”
티팬티였다.
그 티팬티가 이진용이 오늘 피칭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준비물이었다.
“김진호 선수.”
– 왜?
“구라 아니죠?”
당연한 말이지만 김진호의 추천이었다.
– 구라라니! 내가 말했잖아? 해방감이 다르다고. 장담하는데 이거 입는 순간 네 방어율은 일단 -1점 먹고 들어간다. 솔직히 가장 좋은 건 노팬티인데 그건 좀 그렇잖아?
솔직히 평상시라면 무시했을 말.
‘살다살다 내가 이제······.’
그러나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무대를 앞둔 이진용은 밑져야 본전인 심정으로 티팬티를 구매했다.
이제는 착용할 일만 남은 상태.
“만약 구라면 그 순간 우리 다음 목적지는 바티칸입니다.”
그 짧은 말과 함께 이진용이 심호흡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진호가 갑작스레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 미안, 사실 구라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진용이 그대로 정지했다.
“뭐라고요?”
– 장난친 거야.
“장난?”
–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진짜 이게 피칭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아오, 진짜!”
김진호가 어색하게 웃었고, 화가 난 이진용이 그런 김진호를 향해 티팬티를 던졌다.
“그런 건 구매 버튼 누르기 전에 했어야죠!”
물론 그렇게 던진 티팬티는 김진호를 통과한 후에 라커룸 입구 근처에 곱게 너부러졌다.
그 무렵이었다.
“이진용?”
성영훈 불펜코치가 라커룸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진용의 목소리를 듣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건.
“응?”
‘뭐지?’
그렇게 라커룸으로 들어온 성영훈 불펜코치가 라커룸 입구 앞에 너부러진 티팬티를 주웠다.
“헉.”
이윽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성영훈이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티팬티를 이진용에게 건네주며 마저 말을 마쳤다.
“······열심히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성영훈이 도망치듯 라커룸을 빠져나갔고, 적막감이 홍수처럼 몰려왔다.
그렇게 짙은 적막감이 깔린 라커룸에서 김진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 진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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