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4
15화. 라스트 스탠드 (1).
1.
4월 23일 일요일.
평소보다 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이천 챔피언스 파크 야구장.
그런 야구장 어느 한 구석에 마련된 시계가 오후 2시를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조금 전까지 몸을 푸는 선수들로 어수선했던 그라운드에 고요함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편 경기장을 채우는 숫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유난히 평소보다 많이 보이는 건 다름 아니라 기자들이었다.
“지금 박준형 성적이 어떻지?”
“타율이 5할에 벌써 5홈런 기록 중이지. 타점도 14타점이 넘어가고 있고.”
“아주 2군을 씹어드시는군. 이 기세면 5월 1일에 곧바로 정식 선수 등록해서 1군에 갈 수 있겠어.”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고, 중요한 건 어떻게 올라가느냐, 그거지.”
그런 기자들의 이야깃거리는 박준형에 대한 것이었다.
애초에 기자들 중 상당수가 박준형을 꾸미기 위해 이곳에 온 셈이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 좋은데, 뭔가 확! 타오를만한 스토리가 없어. 안찬섭 상대로 홈런 치거나 그런 게 필요한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안찬섭은 언제 복귀하지?”
“5월 중으로 기사 뿌린다고 하던데?”
“5월 중에 2군 들어가고, 그럼 1군 콜업은 6월쯤에 이루어지겠군.”
“만약 박준형이 안찬섭 상대로 다시 홈런을 친다면 스토리 만들기는 좋겠지.”
때문에 평소 때라면 여기서 이야기는 멈췄을 터.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보다······.”
오늘 기자들의 관심선상에는 새로운 선수 한 명이 더 있었다.
“쟤가 이진용인가? 작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멀리서 보니까 더 작게 보이네.”
“다른 걸 몰라도 1군에 올라가면 별명 붙이긴 좋겠어. 최단신 투수가 될 테니까.”
지금 마운드에 올라온 작은 체격의 투수가 바로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그 한 명이었다.
“H트리오를 한 번에 잡았다면서?”
“문혁이랑 이야기해봤는데, 투심이 괴상하다더군.”
“괴상? 표현이 이상하네. 뭐, 표현이 뭐든 간에 H트리오를 잡았다면 확실히 뭔가 있긴 있다는 거겠지.”
이진용.
화성 레인저스와의 3차전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엔젤스의 선발투수로 올라온 그는 이제 더 이상 무명의 투수가 아니라, 그 경기를 보는 이들의 주목을 끌 만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H트리오에게 기꺼이 도전하고, 그들로부터 승리를 쟁취해낸 대가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마운드를 향해 쏟아지는 주목과 관심, 시선은 이진용이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선 속에서 마운드를 제 발로 툭툭 다지는 이진용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 진용아 봐봐, 기자들부터 관중들까지 전부 널 보고 있어! 이제 너도 프로로 인정받고 있다고!
그 이유는 이진용의 옆에 있었다.
“그게 아니라 내 엉덩이에 팬티 자국이 있나 보는 거겠죠.”
김진호, 그의 장난으로 인해 이진용은 한순간에 검은색 티팬티를 입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놈이 되어버렸다는 것.
이진용이 지나갈 때마다 엔젤스 선수들이 이진용의 엉덩이를 슬그머니 바라본다는 것.
“믿은 내가 등신이지.”
– 걱정하지 마. 1년만 참고 내년에 메이저리그로 가버리면 문제 될 거 없잖아? 안 그래? 아니, 솔직히 티팬티 입는 게 불법도 아니잖아? 차라리 이럴 땐 정공법으로 가는 게 답일지도 몰라. 티팬티 열풍을 일으켜보자고!
“닥쳐요.”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은 대답 대신 그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3루쪽 더그아웃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그 3루 더그아웃을 가득 채운 화성 레인저스 선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의 머리 위를 채우고 있는 숫자들도 보였다.
“후우.”
그 숫자들을 확인한 이진용이 숨을 골랐다.
그런 이진용의 곁으로 김진호가 다가와 말했다.
– 진용아, 티팬티 때문에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것 때문에 오늘 경기를 망치면 기분이 나쁜 수준에서 그치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이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차려야지.’
김진호의 말대로 오늘 경기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이진용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기였다.
그런 경기를 티팬티 때문에 망친다면, 그건 그냥 이진용의 깜냥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티팬티 때문에 이 경기를 망치면 쪽팔려서라도 은퇴해야지.’
그리고 솔직히 티팬티 때문에 멘탈이 흔들려서 오늘 경기를 망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터.
어쨌거나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 법.
무슨 이유가 있든 간에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프로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이고, 이진용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프로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 없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그리고 이빨은 날카롭게.”
그렇게 주문을 외운 이진용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대기타석에 있던 타자가 몸을 가볍게 풀며 타석을 향해 움직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계를 확인한 주심이 소리쳤다.
“플레이 볼!”
그와 동시에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렸다.
[선두타자를 상대합니다.] [선두타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포인트 획득량이 20퍼센트 증가합니다.] [선발로 출전합니다.] [선발투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포인트 획득량이 15퍼센트 증가합니다.] [첫 타자를 상대합니다.] [첫 타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포인트 획득량이 15퍼센트 증가합니다.] [일일특급 효과에 의해 포심 패스트볼의 구질 랭크가 B랭크로 상승했습니다.]게임이 시작됐다.
2.
화성 레인저스의 1번 타자 이제성.
오른쪽 배터 박스에 올라선 그는 마운드 위의 투수를 보는 순간 생각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네.’
마운드 위의 투수가 자신의 상상보다 더 작게 보인다는 것을.
그것은 타자에게 기꺼운 일이었다.
재능이 전부인 세상, 육체적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무대에서 왜소하다는 것, 작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없었으니까.
‘아니지.’
그 순간 이제성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방심은 금물.’
방심하지 말라고.
‘저래 보여도 데블스 상대로도 세이브를 2개나 거둔 투수.’
이제성의 생각대로 마운드 위의 투수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투수였고 결과를 만드는 투수였다.
‘H트리오도 잡았고.’
그 사실을 화성 레인저스의 타격코치도 연거푸 언급했다.
구속이 느리고, 체격이 왜소하다고 해서 이진용을 무시하고 그 앞에서 방심하지 말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진용을 대단한 괴물로 포장한 건 아니었다.
“제아무리 높게 평가를 하더라도 이진용의 스펙은 보잘 것 없다. 투심 패스트볼이 특별하다지만 투심은 마구가 아니야. 무엇보다 이진용의 투심 패스트볼 구속은 120대 중반에 불과한데 그걸 못 친다면 프로 자격이 없는 거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진용의 스펙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쉽게 말하면 이진용이란 투수는 괴물이 아니다. 부족한 능력으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투수일 뿐. 그뿐이다. 단순한 기량 대 기량, 힘 대 힘, 기술 대 기술로 붙어서 너희들이 질 이유는 없다.”
때문에 타격코치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상황을 어렵게 볼 필요가 없다. 애매한 공은 버리고, 존에 들어오는 공을 적극적으로 공격해라. 단, 방심은 하지 마라. 그러면 충분히 점수를 낼 수 있다.”
이진용이 수싸움을 시도할 경우 그 수싸움에 일일이 대응하다 휘말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타격을 하라고.
‘코치님 말이 정답이지.’
이제성은 그 사실을 되새김질했다.
‘굳이 수싸움에 휘말려줄 필요는 없다. 존에 들어오는 공을 노린다. 무슨 공을 던지든 힘과 기술에서 내가 밀릴 이유는 없으니까.’
그 되새김질이 끝났을 때, 마운드 위의 이진용이 왼발을 뒤로 뺐다.
그 순간 이제성은 생각했다.
‘정면승부는 없다. 분명 존에 걸치는 아슬아슬한 공을 던질 거야. 어설픈 공은 그냥 보내자고.’
이진용이 자신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할 리가 없다고.
저런 피지컬을 가진 투수가 정면승부라는 선택지를 고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이진용이 초구를 던진 건 이제성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무렵이었다.
‘온다.’
다리를 들고, 제 몸을 회오리처럼 만든 이진용의 오른 손끝에서 떠난 야구공이 이제성의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정직하게 날아왔고, 이제성은 이렇다 할 고민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빠악!
그러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멀리, 저 멀리, 좌측 펜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그렇게 날아간 공은 펜스를 넘어갔다.
“아깝군.”
“파울 홈런이네.”
파울 라인도 같이 넘어갔다.
“좀만 더 타이밍이 맞았으면 홈런이 나왔겠어.”
이진용 입장에서는 천만다행.
“그래도 저 정도 날아가는 걸 보면 역시 구위가 정말 보잘 것 없는 모양이군. 이제성이 강타자도 아닌데 말이야. 1군에서 홈런 친 적도 없잖아?”
“아무리 특별한 게 있어도 구속이 안 나오는 투수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 어쩌면 그동안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솔직히 3이닝을 던진 게 전부잖아?”
하지만 이 순간 경기를 보던 모든 이들은 생각했다.
“그보다 초구를 던졌는데 이런 타구가 나왔으니······ 등골이 오싹해지겠군.”
“아마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집어넣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아무렴. 존에 넣는 게 마치 폭탄 속에 손을 집어넣는 기분일 테니까.”
마운드 위의 이진용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대신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거라고.
‘오케이.’
이제성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방심만 안 하면 돼.’
이제성은 자신이 이진용의 공을 못 칠 이유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겠군.’
동시에 이제성은 마운드 위의 투수가 이 순간 심각하게 고뇌에 빠졌으리라 예상했다.
‘초구부터 이런 거 나오면 투수는 미치지.’
스트라이크존 안에 넣은 공이, 그것도 초구가 홈런이 될 뻔했으니까.
이진용의 구위로는 이제성을,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 중에서도 힘이 없는 쪽에 속하는 그조차도 압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실투를 던지는 순간 무조건 홈런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마주했으니까.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 심호흡이라도 크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는 투수가 만약 그대로 공을 던지고자 한다면, 포수가 나서서라도 투수를 향해 숨을 돌리라는 사인을 보낼 때도 있었다.
‘응?’
그러나 그런 이제성의 예상과 다르게 이진용은 포수와 사인을 나눈 후 곧바로 투구 자세를 취했다.
‘뭐야? 왜 이렇게 빨라?’
고민은커녕 조금 전 공에 대한 회상을 할 시간조차 두지 않은 채 이진용이 2구째를 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던진 공은 조금 전 던진 공과 같았다.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펑!
그 공 앞에 이제성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쉼 없이, 갑작스럽게 들어온 이진용의 공을 상대로 몸이, 머리가 반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스트라이크!”
그 공에 주심은 당연히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스트라이크를 줬다.
‘젠장!’
이제성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지는 순간.
그 순간 포수는 서둘러서 미트 안에 들어온 공을 이진용에게 던졌다.
그 공을 잡은 이진용이 곧바로 이제성의 모습을 본 후에 투구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이제성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문 채 타격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그건 실수였다.
‘아차! 타임!’
타임을 외쳤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이제성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으니까.
‘젠장!’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제성을 향해 이진용이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이번에 던진 공의 구질은 역시 포심 패스트볼.
코스는 스트라이크존 안.
그 공을 향해 이제성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패스트볼은 무조건 노린다!
사전에 여러 번 되새김한 각오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스윙은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 펜스 정도는 맞출 수 있는 위력적인 타구를 만들어낼 만한 스윙이었다.
뻑!
이진용이 던진 그 공이 덜 가라앉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선두타자로 나와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게 된 이제성.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다는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저 투수, 설마 저 구속으로 정면승부를 할 생각인가?’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기에.
3.
“이진용 투수 말입니다······ 우리를 상대로 정면승부를 할 모양입니다.”
1회 초, 이진용이 던진 3구째 공에 내야 뜬공으로 물러난 1번 타자 이제성이 벤치로 돌아오며 그 말을 했을 때, 그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정면승부를 한다고? 저 투수가? 저 구속으로?”
일부는 고작 120대에 불과한 공을 던지는 투수가 정면승부를 해준다는 사실이 가소로웠다.
“뭐, 알아서 덤벼주겠다는데 마다할 건 없지.”
그리고 일부는 굳이 어렵게 머리 굴릴 필요 없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당연히 벤치에서도 굳이 준비한 작전을 바꾸지 않았다.
이진용을 상대하는 타자들은 공격적으로 나오는 이진용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갔다.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들어오는 이진용의 패스트볼에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안타다!”
“혁이가 쳤어”
2번 타자인 임혁이 곧바로 안타를 쳤을 때만 해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아, 병살!”
“쳇.”
이후 3번 타자 오동수가 병살타를 쳤을 때도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자신들의 선택이 정답이라는 사실에 레인저스의 타자들 누구도, 코치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건 엔젤스 역시 득점 없이 1회 말을 보내고, 2회 초가 됐을 때였다.
이진용이 4번 타자와 5번 타자를 연달아 유격수 앞 땅볼로 처리했을 때.
6번 타자가 중견수 앞 안타로 출루했지만, 이후 7번 타자가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을 때.
“지금까지 포심하고 투심만 던진 거지?”
“그렇지. 패스트볼만 던졌지.”
“전부 존 안으로 던졌어.”
“그러고 보니 빠지는 공조차도 없었네.”
그 무렵에 몇몇 이들이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지금 패스트볼을 전부 존 안에 넣고 있다는 거잖아?”
이진용이 2회까지 7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오로지 투심과 포심만을 던졌고, 모든 공을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던졌다는 것을.
그 사실은 3회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진용은 똑같이 던졌다.
쉼 없이, 망설임 없이 타자가 타석에 서면 그 타자의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투심 혹은 포심만을 던졌다.
“젠장!”
“씨발!”
그리고 그런 이진용의 너무나도 단순한 피칭 앞에서 8번과 9번 타자가 물러났을 때.
“뭐야 이거? 왜 저걸 못 쳐?”
“고작 120대 패스트볼이잖아! 투심이고 나발이고 존 안에 들어오는데 당연히 쳐야지!”
화성 레인저스 더그아웃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성아 이번에는 쳐라!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째는 쳐야지!”
그 불길함 속에서 이제성이 이진용을 상대로 두 번째 타석에 섰고, 그 무렵 화성 레인저스의 타격코치가 이진용의 피칭 내용을 기록한 기록표를 감독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감독님, 이진용이 3이닝 동안 던진 구질과 구속 그리고 코스입니다.”
“이건······.”
그제야 화성 레인저스는 알 수 있었다.
“타자를 상대로 똑같은 패스트볼을 던진 적이 없습니다. 코스가 다르고, 구속이 다르고······ 심지어 공의 움직임도 다릅니다. 똑같은 120짜리 패스트볼인데도 어느 건 덜 가라앉습니다. 이게 정말 의도한 거라면 이진용은······ 패스트볼이 네 종류나 있는 셈입니다.”
이진용의 피칭이 단순히 스트라이크존에 패스트볼을 집어넣는 피칭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그리고 준비된 피칭이라는 것을.
“아! 또 땅볼!”
“젠장, 이게 대체 뭐야?”
그리고 이제성이 다시 한 번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을 때, 그제야 화성 레인저스는 들을 수 있었다.
“호우!”
이진용, 그가 지금 자신들을 사냥감으로 취급하는 소리를.
4.
구속이 아주 느린 투수가 프로의 무대에서 타자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한다면?
대부분의 이들이 미쳤다고,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타자들에게 아주 난타를 당할 거라고 할 것이다.
당연히 구속이 느린 투수라면 다른 재주를 부려야 한다고, 정면승부가 아니라 도망치면서 유인구를 던져 상대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허를 찌르는 기습과도 같은 공을 던져야 한다고 할 것이다.
– 모든 투수는 공격적으로 피칭해야 해. 그게 기본이고, 상식이야.
하지만 김진호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 당장 네가 이름을 기억할 만한 투수들 중에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투수가 있었어? 그렉 매덕스가 구속이 느리다고 도망가는 피칭을 했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놀란 라이언은? 로저 클레멘스······ 아, 약쟁이는 제외해야지. 여하튼 살아남아 이름을 남긴 투수들 중에 도망자는 없다.
김진호는 도망가는 피칭 따위는 그저 패배자들을 분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런 김진호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진용은 단 한 번도 도망가는 피칭을 한 적이 없었다.
– 중요한 건 어떻게 공격하느냐.
화성 레인저스를 상대로도 이진용은 이제까지 그러했듯 적극적으로 싸울 속셈이었다.
– 그렉 매덕스는 말했지. 나는 마운드에서 똑같은 공을 던지지 않는다. 80구를 던지라고 하면, 80가지의 공을 던질 것이다. 이게 바로 선발투수가 가져야 할 정답이지.
그런 이진용에게 김진호는 조언을 해주었다.
– 내가 왜 그동안 보다 느린 공을 던질 수 있는 훈련을 하라고 했는지 알겠지?
그리고 동시에 김진호는 훈련도 시켜줬다.
말 그대로였다.
– 구속의 완급조절, 더 나아가 공의 궤적인 로케이션마저 컨트롤이 된다면 장담컨대 9시즌 뛰고 자동차 사고로 죽지 않는 이상 쿠퍼스 타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다.
김진호는 이진용의 옆에서 그가 더 느린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도록 훈련시켜줬다.
보다 빠른 공은 노력한다고 던질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보다 느린 공은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던질 수 있었으니까.
이진용이 공을 던질 때마다 그의 투구폼을 교정해주고, 조언해줬다.
즉, 지금 이진용이 이룩한 건 그 모든 것에 대한 결과물일 뿐이었다.
[65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삼자범퇴에 성공하셨습니다.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3이닝 무실점 피칭 중입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1,545포인트입니다.]“호우!”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에 이진용은 당연히 기쁨을 표출했다.
– 야, 너무 좋아하지 마! 타순 한 바퀴 돌았으니까 네 공이 어느 정도 눈에 익었을 거다. 그리고 이제 화성 레인저스 애들도 작전을 바꾸겠지. 아웃 당하더라도 지금처럼 그냥 막 때리려고 덤벼들다가 아웃 당하진 않을 거야. 악착 같이 달라붙을 거야.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결과물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2단계 작전을 준비했잖습니까?”
그렇게 배웠으니까.
– 젠장, 너무 많은 걸 가르쳐줬어. 개고생하는 꼴을 보면서 조금씩 가르쳐주는 건데······.
“제가 스승님 은혜 덕분에 삽니다.”
– 언제는 동생이라며?
“아, 제 동생하고 싶으시구나? 어쩔 수 없지. 진호야, 이제부터 형이라고 부르렴.”
– 좆까!
그 누구도 아닌 가장 위대한 투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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