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5
15화. 라스트 스탠드 (2).
5.
“호우!”
이진용이 마운드에서 아홉 번째 호우를 내지르는 순간, 경기를 보던 기자들 몇 명은 말했다.
“아웃 잡을 때마다 저 지랄을 하네, 완전 또라이 새끼야.”
“아주 자길 죽여 달라고 도발을 하는군.”
이진용이 지금 아주 도발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구속도 느린 놈이 대체 무슨 배짱인 거야?”
“똥배짱이지, 무슨 배짱이겠어?”
“아주 그냥 매를 버네, 벌어.”
무례한 짓을 하고 있다고.
‘그래, 저거지.’
하지만 경기를 보는 황선우의 생각은 달랐다.
‘메이저리그도 아니고, 배트 플립이 허용되는 한국 야구에서 투수가 저 정도 퍼포먼스는 보여줘야지. 애초에 서로 치고받는 거 보려고 보는 게 야구인데.’
그는 이진용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잘하고 얌전한 놈보다 좀 못해도 지랄 맞은 놈이 더 화제가 되는 법이고.’
이진용의 인간성을 떠나서 이진용 같은 선수야말로 기자들에게는 보물이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기사들에게 필요한 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이슈였고, 이진용 같은 선수는 이슈를 만들기에 꽤 괜찮은 조건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미친놈은 아니었고.’
동시에 황선우는 이진용이 꽤 훌륭한 피칭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공격적으로 존에 공을 넣고 있어.’
사실 지금 이진용이 3회까지 보여준 피칭 자체는 독특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아주 정석적인 피칭이었다.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는 건, 투수가 가져야 할 기본이자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투수들은 많지 않았다.
‘보통 멘탈은 아니야.’
무서우니까.
애초에 스트라이크존이란 개념은 타자가 그 공을 제대로 칠 수 있는 범위를 말함이다.
즉,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는다는 건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을 넣어준다는 의미.
당연히 구속이 느린 투수일수록, 구위가 부족한 투수일수록, 가진 변화구가 좋지 못한 투수일수록 공포감은 더 커진다.
‘가슴 하나는 내가 보기에 엔젤스 2군에서······ 아니, 1군까지 통틀어서 제일 단단할 것 같군.’
심지어 마운드는 고독한 장소다.
대화를 나눌 누군가도 없고, 오로지 눈빛과 수신호 몇 가지만으로 대화를 나눠야 하며, 그 대화마저도 상대팀 코칭스태프, 타자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공포감은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폭탄 속에 손을 넣거나, 절벽 위에 매달릴 때 느끼는 공포에 가깝다.
‘뭐, 어떻게 보면 또라이는 또라이지.’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은 겁에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보잘 것 없는 공을 던지며, 도발까지 하고 있었다.
‘문제는 4회부터인데······.’
물론 황선우가 보기에 이진용의 진짜 위기는 4회부터 올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황선우는 이진용이 한 말을 떠올렸다.
라커룸에서 이진용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준비했다는 듯이 해주었던 말을.
‘이천까지 온 보람이 있군.’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황선우는 자신의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타닥타닥!
새로운 소리가 그라운드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회 말이 시작됐다.
6.
빠악!
경쾌하다 못해 청아하기까지 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넘어 펜스까지 반으로 갈랐다.
“아!”
그 소리에 모든 이들이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오로지 한 명, 지금 이 소리를 만들어낸 타자만이 감탄 대신 침묵을 머금은 채 그라운드를 달리기 시작했다.
박준형, 그가 0대0 균형을 깨는 2점 홈런을 쏘아 올리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놈이군.”
홈런을 치는 건 어렵다.
“박준형,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야. 단순히 홈런을 치는 게 아니라 중요할 때 쳐준다니까.”
그리고 0대0 상황에서 승부를 기울게 하는 홈런을 치는 건 훨씬 더 어렵다.
“클러치 히터 재능이 있는 거지.”
그것이 박준형을 향해 많은 이들이 감탄과 찬사 그리고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직 한 명만은 그 사실에 감탄과 찬사,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 진용아 점수 나왔다.
“예.”
– 그럼 어떻게 해야지?
이진용은 이 상황에 오히려 담담함을 넘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이 점수를 지켜야죠.”
–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 점수를 사수(死守)해라.
오늘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예.”
7.
2대0.
이제는 지고 있는 입장이 된 채 4회 초를 마주하게 된 화성 레인저스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점수를 내야 하니까 더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나가!”
선발투수를 상대로 점수를 내는 것에 주력할 것인가?
“일단 선발투수를 무너뜨린다.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말고 최대한 공을 봐라. 투수의 투구수를 갉아먹어!”
아니면 선발투수를 지치게 만드는 것에 주력할 것인가?
물론 가장 좋은 건 그냥 쉴 새 없이 투수의 공을 난타해서 투수를 강판시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가능했다면 1회부터 3회까지, 10명의 타자가 나와 고작 하나의 안타만을 치는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터.
그 고민 속에서 화성 레인저스는 결단을 내렸다.
“혁아.”
“예, 코치님.”
“일단 선발부터 끌어내린다. 공격적으로 가기보다는 최대한 많이 보고, 최대한 많이 걷어내.”
화성 레인저스가 내린 선택은 이진용에게서 점수를 뽑기보다는 그를 지쳐 내려가게 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길게 승부한다.’
4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2번 타자 임혁은 그런 오더를 기꺼이 수행할 생각이었다.
그는 이진용이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들 속셈이었다.
‘일단 초구를 보자.’
그런 그가 이진용의 초구를 지켜보겠다는 선택을 하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그가 그런 의지를 타석에서 보여줬다는 것이었다.
– 첫 번째 타석 때보다 홈플레이트에 더 가깝게 붙었군. 거기에 배트는 짧게 쥐었고.
누가 보더라도 공격적인 타격이 아니라, 기나긴 승부를 준비한다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
– 이제는 초구는 그냥 볼 거 같은데? 어떻게 할래?
그리고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정상적인 투수가 아니라는 것.
“도발 한 번 해보죠.”
– 느린 공 던지다가 맞으면?
“저렇게 배트를 짧게 쥐었는데 설마 홈런이 나오겠어요?”
– 그래도 나오면?
“그럼 제가 김진호 선수 형이라고 부르죠.”
– 야, 내가 원래 형이야!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아저씨죠.”
– 아, 아저씨?
이진용이 결코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수라는 것.
“김진호 아저씨, 그럼 2단계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그런 이진용이 임혁을 상대로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존 낮은 곳을 향해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
펑!
구속은 110킬로미터.
‘어?’
임혁에는 마치 공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느린 공.
“스트라이크!”
그 공이 임혁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8.
4회 초 이진용이 자신의 초구를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110킬로미터짜리 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그 누구도 이진용이 힘이 빠져서 그런 공을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허허허, 미치겠군.”
지금 이진용이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을 얕보고 있다는 사실을,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완전 우리를 좆밥으로 보네.”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고작 패스트볼 구속이 120대에 불과한 투수에게 얕보이는 일은, 고교 시절에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오, 빡쳐!’
‘확 벤치 클리어링 일으켜버려?’
당연히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의 인내심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폭발하는 이들은 없었다.
‘릴렉스, 침착하자. 괜히 휘말릴 필요는 없어.’
‘도발에 넘어가서 좋을 건 없어. 내 타격대로 하면 되는 거야.’
프로선수였으니까.
상대가 도발한다고, 자신들이 얕보인다는 이유로 분노하고 흥분해서 게임을 망치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은 이진용이 선두타자인 임혁을 땅볼로 잡는 순간.
“호우!”
이진용이 마운드 위에서 보란 듯이 오늘 열 번째 호우를 외치는 순간.
“저 새끼······.”
그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죽여 버리겠어.”
그저 이진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만이 남아있을 뿐.
9.
“호우!”
임혁을 상대로 열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이진용은 언제나 그렇듯 환호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 환호를 내지름과 동시에 이진용은 김진호를 향해 스윽 눈빛을 줬다.
그런 김진호의 시선은 이진용이 아니라 3루쪽 더그아웃, 화성 레인저스 벤치를 향하고 있었다.
“분위기 어때요?”
– 뭐, 특별한 건 없어. 오늘 경기 끝나고 밤길 좀 조심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이 총기휴대가 합법화되지 않았으니, 총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 뭐 그 정도 분위기다.
“후우.”
이윽고 나온 김진호의 대답에 이진용은 작은 소리로 속에 있던 숨을 내뱉었다.
그 숨과 함께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탄식도 같이 토해냈다.
“아, 체력만 넘치면 이따위 짓을 할 필요도 없는데.”
말과 함께 이진용은 머릿속으로 11명의 타자, 10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느라 소모한 체력을 떠올렸다.
‘이제 남은 체력은 30포인트.’
이진용의 최대 체력은 78포인트.
당연한 말이지만 이 체력은 선발투수로 이닝을 소화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체력이었다.
당장 라이징 패스트볼을 서너 개만 던져도 10포인트가 넘는 체력이 추가로 소모되는 상황에서 이진용은 그런 라이징 패스트볼을 적지 않게 던졌다.
오히려 그런 상황 속에서 11명의 타자를 상대로 체력을 48포인트밖에 소모하지 않은 게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게 가능했던 건 이진용이 공격적인 피칭을 하고, 화성 레인저스가 그 공격적인 피칭에 기꺼이 공격적인 타격을 해준 덕분이었다.
손바닥이 서로 부딪쳐준 덕분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진용 입장에서는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이 자신을 상대로 끈질긴 승부를, 투수의 투구수를 갉아먹기 위한 승부를 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어떻게든 레인저스 타자들이 날 죽이려고 덤벼들게 만들어야 해.’
그게 도발을 하는 이유였다.
– 그보다 효과 죽이긴 하네. 나도 메이저리그에서 던질 때 너처럼 할 걸. 생각해보면 너무 신사답게 행동했어.
이진용에게 있어 도발은 자신이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행위였으니까.
“더그아웃에서 자기 보고 뭐라고 하는 타자에게 양손으로 더블 퍽유를 날려서 주심에게 경고 받고, 1만 달러 벌금을 내는 게 신사가 갖춰야 할 매너이긴 하죠.”
– 내가 그랬어?
“예, 그러셨어요.”
– 기억이 잘 안 나네.
“기억날 수 있도록 지금 눈앞에서 보여드릴까요?”
– 그것보단 일단 이제부터 널 때려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타자들부터 상대하는 게 먼저 아닐까?
물론 그냥 도발만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고 위험한 짓이다.
맹수를 도발할 때는 언제나 그 맹수를 잡을 준비와 함정을 파놓아야 하는 법.
당연히 이진용은 도발만 준비하지 않았다.
“예, 이제 체인지업을 쓸 때가 왔죠.”
이진용, 그가 4회에 자신이 가진 세 번째 무기인 체인지업을 꺼냈다.
그게 이진용이 준비한 2단계 작전, 작전명 나 이것도 있지롱! 이었다.
9.
패스트볼을 어떻게든 치고 싶어 안달이 난 타자에게 좋은 공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많은 대답이 나온다.
변형 패스트볼을 답으로 적는 이도 있을 것이고,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나 포크볼을 답으로 적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은 그 공을 말할 것이다.
“패스트볼로만 머릿속이 가득 찬 타자에게 체인지업은 아킬레우스의 뒤꿈치와 같지.”
체인지업.
그 혼자서는 나약하지만, 패스트볼과 함께라면 감히 마구조차 될 수 있는 공.
실제로 이진용은 이제까지 출전한 경기에서 체인지업을 자주 사용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진용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체인지업은 구속이 느린 투수가 프로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꼭 습득해야 하는 구질이었기에.
그러나 화성 레인저스 타자들이 그 사실을 깨달은 건 경기가 시작되고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딱!
“아!”
“젠장, 이번에도 체인지업에 당했어.”
4회가 되었을 무렵.
“저 체인지업에 세 명이나 당했어.”
“젠장, 대비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보다 체인지업도 장난이 아니야.”
그 체인지업에 세 명이나 되는 타자가 제물이 되었을 무렵.
“미치겠군. 결국 5회에도 점수를 내지 못했잖아?”
어느덧 5회 초 공격마저 득점 없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그 덕분이었다.
[45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5이닝 무실점 피칭 중입니다.]이진용이 5이닝 3피안타 무실점 피칭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리고 그 덕분에 이진용은 드디어 마주할 수 있었다.
– 진용아 축하한다!
[현재 남은 체력은 8입니다.]– 드디어 지옥문이 열렸구나! 으하하! 그래 이걸 보고 싶었어!
이진용, 그의 앞에 드디어 벽이 등장했다.
10.
그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5회 말, 엔젤스 타자들이 연속 안타로 2점의 추가득점에 성공한 덕분에 4대0, 4점 차 리드로 시작된 6회 초.
빠악!
“어?”
“응?”
5이닝 3피안타 볼넷 하나 없는 놀라운 피칭을 보이며 6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이진용이 선두타자를 깔끔하게 땅볼로 처리한 후 두 번째 타자를 상대했을 때.
“홈런?”
이진용은 그 날 처음으로 실점을 했다.
“뭐야, 갑자기?”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빠악!
1사 상황에서 솔로 홈런을 내준 이진용은 다음 타자를 상대로 안타를 내주었다.
빠악!
그리고 그다음 타자를 상대로도 안타를 내주었다.
“3연속 안타?”
5이닝까지 고작 3개의 안타만을 내주었던 이진용이 갑작스레 홈런을 포함한 3연속 안타를 내주며, 1실점 그리고 1사 주자 1,3루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라운드의 분위기는 당연히 바뀌었다.
“갑자기 왜 저래?”
개중에서도 분위기가 가장 급격하게 바뀐 건 다름 아니라 화성 레인저스였다.
“구위가 급격하게 하락했군.”
“패스트볼 구속이 110킬로미터도 안 나옵니다.”
이제까지 이진용에게 당하기만 하던 화성 레인저스는 반격을 넘어 복수를 할 수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공격적으로 간다!”
“예!”
반면 엔젤스 벤치는 분위기의 변화가 없었다.
변화고 자시고 이 순간 모든 결정권을 가진 우지욱 2군 감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는 투수코치를 올려보내 이진용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도 않았다.
‘구속이 떨어지면서 구위도 떨어졌다.’
결코 이진용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게 피칭을 하고 있다.’
오히려 반대, 지금 이진용은 타자들에게 맞고 있을지언정 정답에 가까운 피칭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였다.
‘구속을 억지로 끌어올리기보단 오히려 힘을 더 빼더라도 제구에 신경 쓰면서 계속 존에 공을 넣고 있어.’
이진용은 구속이 떨어졌다고 해서 도망가는 피칭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격적인 피칭을 했다.
‘그리고 넣는 코스는 타자의 타율이 낮은 코스, 핫존을 최대한 피하고 있고.’
동시에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더라도 상대적으로 그 타자의 타율이 약한 코스를 노렸다.
핫존(Hot zone), 스트라이크존 안에서도 유독 타자의 타율이 높은 코스를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볼넷은 여전히 제로.’
결정적으로 이진용은 맞을지언정 볼넷을 남발하지 않고 있었다.
볼넷을 주지 않는 피칭, 볼넷을 줄 바에는 차라리 안타를 주는 피칭, 타자가 상대적으로 타율이 좋지 못한 코스를 노리는 피칭.
이 피칭에 과연 무슨 조언이 더 필요할까?
‘훌륭하군.’
도리어 감탄이 나올 지경.
‘마운드 위에서 죽을지언정 도망칠 생각은 없다, 이거군.’
때문에 오히려 우지욱 2군 감독은 이런 이진용의 피칭을 더욱더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도 보고 싶었고, 지금 2군에 있는 투수들이 이진용을 보고 깨닫기를 소망했다.
‘1군은 승자들이 올라가는 무대. 그럼 일단 싸워야지.’
물론 그런 생각 속에서 우지욱 2군 감독은 다음을 준비했다.
제아무리 이진용이 열심히 싸운다고 해도 모든 것이 바닥나버린 투수를 마운드에 올릴 수는 없었으니까.
‘아직 4대1. 일단 1점 차까지는 봐주지.’
그렇게 우지욱 2군 감독은 커트라인을 정해두었고, 그것을 정해두는 순간 투수코치에게 말했다.
“이진용이 3실점을 하는 순간 교체다.”
“예.”
빠악!
그 순간 그라운드에서 다시 한 번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외야로 뻗기 시작했다.
“크다, 커. 넘어가나?”
“아니, 좀 부족할 것 같은데?”
그렇게 날아간 타구는 펜스 근처까지 이동한 우익수의 글러브 속에 들어갔다.
“뛰어!”
그 순간 3루에 있던 주자가 홈을 향해 질주했다.
여유 넘치는 질주였고, 화성 레인저스가 희생 플라이로 두 번째 득점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오케이.”
그리고 이제까지 굳어있던 표정을 짓고 있던 이진용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순간이었다.
이진용의 표정을 본 이들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이 6회에 마주한 여섯 번째 타자를 상대로 아웃카운트를 잡았을 때.
“후우!”
이제까지의 이진용이라면 오늘 내지른 환호성 중 가장 큰 호우! 를 외쳤어야 하는 상황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이진용의 귀로 목소리가 들렸다.
[55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무실점 피칭이 5이닝에서 종료됩니다.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2,232포인트입니다.]베이스볼 매니저의 목소리.
[무쇠팔 효과가 발동됩니다.] [체력이 30증가합니다.]그 목소리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3단계 작전, 작전명 쇼타임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진호는 언제나 그렇듯 푸념했다.
– 빌어먹을 물빠따 새끼들, 그렇게 던져줬는데 2점밖에 못 내고 지랄이야. 이러다가 진용이가 완투라도 하면······ 진용아, 수고했다. 오늘 여기까지 하지 않을래?
그렇게 두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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