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7
4.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제 어느 순간에 영웅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어제까지 무명이었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박준형이 그러했다.
화성 레인저스와의 경기가 끝났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7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한편 그런 박준형에 비하면 태양 옆의 반딧불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하루 전과는 전혀 다른 유명세를 누리는 이가 있었다.
“어디 보자······ 어때요?”
이진용.
화성 레인저스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둔 그 역시 나름의 유명세를 누리는 중이었다.
더불어 그는 그 나름의 유명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정도 사인이면 괜찮죠? 멋지죠?”
– 미친놈, 고작 기사 하나 나온 거 가지고 팬사인을 연습하고 자빠졌네.
그 대비란 다름 아니라 사인 연습이었다.
“유비무환이란 말도 모르십니까? 언제 어느 순간 팬들이 절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할지 모르는데 준비해둬야죠.”
계약서에 하는 사인이 아니라, 팬들에게 해주기 위한 사인.
야구선수들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멋진 사인을 한두 개쯤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 유비무환 모르겠고, 대신 지랄염병이란 단어는 알고 있다.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진 거 같으신데,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 없어.
“없긴, 아주 그냥 혓바닥이 날이 서셨구먼. 아!”
그 순간 사인 연습을 하던 이진용이 자신의 능력치 창을 활성화시켰다.
– 최고 구속 : 129
– 보유 구질 : 포심 패스트볼(E), 투심 패스트볼(A), 스플릿 패스트볼(D), 체인지업(B), 슬라이더(F), 커브(B)
– 보유 스킬 : 심기일전(D), 일일특급(E), 라이징 패스트볼(E), 마법의 1이닝, 무쇠팔(F), 리볼버 [일일특급 효과에 의해 커브의 구질 랭크가 B랭크로 상승했습니다.]
“이거 때문에 그러시구나.”
이진용이 자신의 새롭게 변한 능력치를 김진호에게 보여주며 깊은 미소를 지었다.
“제자가 쑥쑥 성장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오시죠?”
– 닥쳐.
이진용, 그는 리볼버 스킬을 습득한 후에 곧바로 획득한 5천 포인트로 브론즈 룰렛을 다섯 번 돌렸다.
그중 네 번의 룰렛이 브론즈 칸에 걸렸고, 구속과 체력이 2씩 상승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체력이 80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브론즈 룰렛으로 체력이 증가하지 않습니다.] [구속이 130에 도달하면 더 이상 브론즈 룰렛으로 구속이 증가하지 않습니다.]물론 안타까운 통보도 받았지만, 그 통보에 대한 아쉬움은 다섯 번째 룰렛을 돌리는 순간 사라졌다.
[구질 습득 비약(D랭크)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플릿 패스트볼(D랭크)을 습득하셨습니다.]다섯 번째 룰렛에서 걸린 실버 칸에서 엄청난 대박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 진짜 쓰레기 같은 게임이야.
김진호는 그 사실에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푸념을 뱉었다.
– 신이시여, 이러다가 애 망칩니다. 고생 좀 시킵니다, 고생 좀!
“고생이야 김진호 선수가 대신하는데 제가 고생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를 언제나처럼 놀렸다.
– 뭐 인마?
“일심동체나 다름없는데 역할 분담하면 좋은 거죠. 제가 꿀을 빠는 역할을, 김진호 선수가 고생하는 역할을. 환상의 듀엣 아닙니까?”
– 아오! 이놈이 날 상대로 애걸복걸하면서 질질 짜는 걸 죽기 전에 봐야하는데!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해?
“장담하고 자시고 이미 죽으신 분이 죽기 전에 뭘 볼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에이, 진짜!
결국 제 분을 이기지 못한 김진호가 이진용을 향해 신나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아오 얄미워! 아오! 한 대만 때리고 싶다, 한 대만!
물론 그 주먹은 그저 이진용을 통과할 뿐, 이진용에게 그 어떤 위해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진용은 그 주먹세례 속에서 여유를 가진 채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이제 1군 콜업 되겠죠?”
– 무슨 근거로?
“아니, 2군에서 완투하면 끝난 거 아닙니까?”
그 순간 김진호가 주먹을 멈춘 후에 이진용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 일단 대기자 명단에는 올라가겠지.
“대기자 명단이요?”
– 사실 엔젤스 1군 입장에서 베스트 시나리오는 선수교체가 없는 거야.
이진용은 반문하지 않았다.
반문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한국프로야구리그는 로스터 숫자는 27명이다. 27명만이 1군 선수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 구단 감독,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들 본인들은 이 27인 로스터에 변동이 없기를 소망하고 동시에 노력한다.
로스터에 변동이 생겼다는 건, 누군가는 2군으로 내려갔다는 거고 그건 곧 그 누군가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의미이니까.
– 뭐, 그래도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부진하니까 기회는 언젠가 오겠지.
물론 로스터 변경 없이 한 시즌을 치르는 경우는 절대 없다.
당연히 누군가 2군으로 내려오거나, 1군에서 이탈하게 되고 그럼 그 자리는 당연히 2군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2군 아닌가?
대기자들은 1군에 자리가 났을 경우 바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자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진용은 저번 완투로 그저 2군 선수 중 한 명이 아니라,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상황이었다.
– 문제는 자리가 어디에 나느냐, 이거지.
문제는 이게 은행처럼 대기표를 뽑으면 그 순번대로 1군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것.
– 만약 공이 빠른 불펜 투수가 이탈하면 너한테 기회가 올 가능성은 제로지.
공이 빠른 투수가 이탈하면 1군은 당연히 공이 빠른 투수를 2군에서 뽑는다.
– 좌완 투수가 빠져도 마찬가지. 좌완이 빠진 자리에 우완을 넣는 경우는 없지.
그게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1군 코칭스태프는 2군 투수들 중에서 공이 빠르거나 좌완인 투수를 선호한다.
좌완으로 145킬로미터 이상 되는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으면 성적이 어지간히 개판이 아닌 이상 1군에 어떻게든 자리를 보전한다.
괜히 좌완 파이어볼러를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달리 말하면 우완에 구속이 느린 이진용은 솔직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뽑힐 가능성은 낮았다.
“그럼 제가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글쎄, 네가 2군에서 3경기 연속 완봉을 하는 정도?
“예?”
– 그럼 궁금해서라도 콜업해줄 거 아니야.
“젠장, 완투도 아니고 완봉을 세 번이나 하라고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지 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이진용은 김진호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3경기 완봉을 해야 한다는 건 개소리였다.
진심은 그다음에 나왔다.
– 그게 아니면 팀 내 3선발 혹은 4선발이 이탈하는 경우가 네게 유리하겠지.
“선발이 이탈하는 게 저한테 유리하다고요?”
– 3선발이나 4선발이 이탈하면 보직 전체가 이동하게 되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충 끼어 맞출 수 없다는 거지. 예를 들어 좌완 원포인트가 이탈하면 좌완으로 공 빠른 애들을 넣으면 어느 정도 땜빵이 되지만, 선발은 그게 아니잖아? 2군에서 콜업을 하든 스윙맨을 하던 애를 넣든 누구를 넣는다고 해서 땜빵이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그럼 그 자리가 비면 제가 당장 선발로 가는 겁니까?”
– 그럴 리가 있냐? 너 같으면 이제 프로 1년 차인 놈을 4선발 자리에 넣을 수 있어? 그런 건 나 같은 규격 외의 괴물이나 가능한 일이고, 중요한 건 엔젤스 1군의 투수 보직 전체에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네게 기회가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거지.
그 말에 이진용이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잘해도 자리가 안 나면 답이 없구나.’
– 그보다 일단 그 황선우 기자라는 사람한테 연락해서 고맙다고 해.
“황 기자님이요?”
– 아마 네가 1군 콜업이 되면 그 기자가 써준 기사가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그 기자가 코치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거 보니까 엔젤스랑 관계도 보통이 아닐 거야.
이진용이 눈빛을 바꾸었다.
“무슨 상관이 있나요?”
– 1군에서 선수를 콜업할 때 2군 성적과 2군 코칭스태프의 조언만 보진 않아.
“왜요?
– 무조건 믿을 수가 없으니까. 2군에서 4할 치는 놈을 콜업했는데 1군에서 1할 치다가 결국 일주일 만에 내려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잖아?
“그렇죠.”
– 결국 1군에서는 보다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엔젤스 팬들 데려다가 의견을 물을 순 없잖아? 가족들에게 물을 수도 없고.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겠냐?
“기자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진용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미 저장해둔 황선우 기자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5.
푸후, 푸후, 푸후!
마치 증기기관 기차처럼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전자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황선우의 표정은 누가 보더라도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기자가 기사 쓴 게 죄인가?’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엔젤스 홍보팀장과의 통화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엔젤스 홍보팀장은 말했다.
왜 이진용의 완투 기사를 썼냐고.
‘완투를 했으면 기사를 내야지. 프로리그보다 완투보기 더 힘든 게 퓨처스리그인데.’
물론 그냥 단순히 완투 기사를 썼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내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기사를 왜 메인에 노출시켰느냐, 하는 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준형 기사가 그냥 아무런 과정도 없이 메인에 노출된 건 아니었다.
로비를 통해 엔젤스는 메인에 노출되는 칸 중 몇 개를 얻어냈다.
박준형만을 위해 마련된 칸이었다.
그런데 그 칸에 황선우가 제멋대로 이진용 기사를 올린 것이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엔젤스가 만들어놓은 상품진열대에 황선우가 제멋대로 자기 취향의 상품을 올린 셈.
그 사실을 이 바닥 생리를 잘 아는 황선우가 모를 리 없었다.
한 소리를 듣고 흡연실에서 뻑뻑 담배를 피울 각오는 기사를 올리기 전에 이미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각오를 한 건 그냥 이진용이 귀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렇게 투자했는데 꽝이기만 해봐.’
투자.
이진용이란 선수와 기꺼이 접점을, 그것도 다른 기자와 비교할 수 없는 끈적끈적한 접점을 만들기 위한 투자.
때마침 황선우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이진용.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확실히 뭔가 있어.’
그가 보낸 문자 내용을 읽은 황선우는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
그때 흡연실 안으로 후배 기자 한 명이 부리나케 들어왔다.
그 등장에 황선우가 후배를 보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엔젤스!”
“엔젤스가 뭐?”
“큰일 났습니다!”
후배의 그 말에 황선우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기자라는 놈이 의사 전달을 그렇게밖에 못 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이거 몰라?”
“엔젤스의 양윤섭이 지금 일본 요코하마로 떠났습니다.”
“양윤섭이?”
“예.”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투수가 요코하마로 가는 이유야 뻔하지 않습니까?”
“요코하마면 미나미공제로 갔겠지.”
그 순간 황선우는 표정을 바꾸고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무언가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후배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5월이 되기도 전에 팀의 토종 에이스가 수술이라니······.”
“엔젤스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긴 좆된 거지.”
그 순간 무언가 이름을 찾은 황선우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능숙한 일본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기무라 상, 황선우 기자입니다. 예, 예. 다름 아니라 혹시 미나미공제 병원에서 서울 엔젤스의 투수 양윤섭이란 사람이 어느 의사분과 만났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황선우가 후배 기자를 부르며 말했다.
“단독 달고, 기사 올려. 양윤섭 팔꿈치 부상으로 전반기 끝이라고.”
6.
양윤섭.
서울 엔젤스 소속으로 프로 8년 차.
우완 정통파 투수로 구속은 140킬로미터 중반대.
다양한 구종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완급조절과 제구가 좋으며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 한국에서 손꼽히는 이닝이터로 불리는 그는 서울 엔젤스의 마운드를 7년 동안 지키며 무려 1,051이닝을 소화한 투수였다.
그러면서도 통산 방어율은 3.30에 불과한 그는 외국인 투수를 제외하고 믿을 수 있는 에이스, 일명 토종 에이스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때보다 우승을 노리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한 엔젤스에게 있어 그는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자, 대체해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결과는?”
그런데 지금 그 양윤섭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팔꿈치에서 뼛조각이 발견됐습니다.”
그가 선발 등판을 마친 이후 심각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 소견은?”
이후 엔젤스는 그를 투수 수술과 재활로 유명한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미공제 병원으로 보냈다.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재활해봤자 결국 내년에 수술하게 될 거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 병원에서 의사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게 조금 전, 20분 전의 일이었다.
“양윤섭 본인 의사는?”
“속내는 안 밝히는데 본인도 수술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동안 참고 던진 것도 던진 건데······ 아시다시피 윤섭이한테는 이번 시즌보다는······.”
“내년 시즌이 더 중요하겠지. FA자격을 취득하는 시즌이니까.”
더불어 작금의 상황을 보면 양윤섭이 수술대에 오를 확률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나온 상황.
“미치겠군.”
그러나 정말 최악은 이 상황 속에서 푸념만 내뱉을 여유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4선발부터 선발을 한 칸씩 앞으로 당기고.”
푸념을 뱉는다고 해서 양윤섭의 팔꿈치에 있는 뼛조각이 사라지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양윤섭의 부재를 엔젤스를 제외한 9개 구단이 격렬하게 환영하는 건 물론 그 점을 아주 집중적으로 후벼 파내리란 점이었다.
“5선발은 재일이를 넣도록.”
“예.”
당연히 지금은 어떻게든 양윤섭의 틈을 메워야 할 때.
“그리고 이거, 2군에서 올려준 스카우팅 리포트입니다.”
“봤나?”
“예, 간단히 검토했습니다.”
“혹시 선발자원으로 쓸 만한 선수가 있나?”
더 나아가 임시조치가 실패했을 경우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있었으면 진작에 뽑았을 겁니다. 선발이 넘치는 팀이 국내 구단 중에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래도 혹시 원하시는 기준이 있다면 기준에 맡게 선수들을 추리겠습니다.”
투수코치의 말에 봉준식 감독은 잠시 고민했다.
일단 그는 지금 상황을 분석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상황은 2군에서 올라오는 투수들이 마주하는 상황 중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토종 에이스 투수의 부재 속에서 2군 선수는 자기 보직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콜업이 되는 격이니까.
‘특별히 신경 써줄 상황도 아니고.’
이런 혼란 속에서 솔직히 1군 코칭스태프가 올라온 2군 투수를 배려하고, 신경 써주기도 쉽지 않다.
또한 1군은 그런 곳이 아니다.
어르고 달래는 무대가 아니라, 올라온 이상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곳이지.
‘새가슴은 안 돼.’
때문에 어느 때보다 멘탈 그리고 단단한 심장을 가진 투수가 필요하다는 게 봉준식 감독의 판단이었다.
‘음.’
그 순간 한 선수가 봉준식 감독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진용도 혹시 있나?”
이진용.
그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투수코치의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있습니다. 그런데 설마 정말 이 선수를 콜업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진용에 대해서는 투수코치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퓨처스리그에서 완투한 투수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억할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이진용에게는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그리고 부정적인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제아무리 완투를 했다고 해도 패스트볼 구속이 120대에 불과한 투수입니다. 2군 레벨, 그것도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타입이라서 먹힌 거지 1군에서는 하루조차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무엇보다 이제 1년 차 아닙니까?”
“구속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하고, 저번 완투 피칭 기록을 보니까 7회 이후에 오히려 구속이 다시 회복됐다는 걸 보면 무언가 더 나아질 수도 있는 재목이지.”
말을 한 봉준식 감독은 곧바로 자신의 말을 부정했다.
“물론 1군이 성장을 위한 무대는 아니지.”
이진용을 콜업하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봉준식 감독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그 이름이 떠올라서 언급했을 뿐.
“일단 당장 급한 불은 꺼야 하니 정수호를 올리도록.”
정수호.
현재 엔젤스 2군에서 뛰는 선수로 나이가 이제 서른하나가 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구속을 비롯해 프로 레벨에서 뛰어난 건 없지만, 베테랑 취급을 받을 만큼 험난한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능력을 가진 선수.
급한 불을 일단 막기 위해서 뽑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수였다.
“예.”
때문에 투수코치는 그 이름 앞에서는 군말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수호가 무너질 경우도 대비해야지.”
그러나 반대로 그 생존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몰랐다.
정수호가 정말 1군에서 오래 통할 만한 선수였다면 그런 선수가 2군에 있을 이유가 없었을 터.
더 나아가 정수호 자체가 어떻게 보면 위급한 상황에서 급하게 꺼내 쓰는 조커와 같은 카드였다.
한 번 쓰면 다시 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조커.
그런 조커를 썼으니, 이제 새로운 조커를 마련해둬야 했다.
“2군에게 전달하게. 대기조 중의 투수들 중에 1군에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확실한 카드를 3장 뽑아달라고.”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투수코치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봉준식 감독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투수조에 이야기 정리해주고, 내일 경기 준비하도록.”
“예.”
오늘은 4월 24일 월요일, 이제부터 그들이 준비해야 하는 건 바로 내일부터 시작되는 인천 샤크스와의 3연전이었으니까.
7.
4월 24일 월요일.
해가 꺼지고, 밤이 짙게 깔릴 무렵.
“정수호 선배가 콜업됐데. 지금 인천으로 떠났데.”
“정 선배가?”
이천 챔피언스 파크는 어느 때보다 긴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정수호 선배가 올라가는 건 당연하지. 급한 불 끌 만한 투수는 정 선배밖에 없잖아?”
“젠장.”
“젠장은 무슨 젠장이야? 설마 콜업되기 바란 거야?”
“솔직히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진 않잖아?”
“하긴, 그 누구도 양 선배를 대체할 수 없으니까. 누구든 콜업되도 이상할 건 없지.”
양윤섭의 이탈은 그런 거였다.
2군 투수들 전부를 들뜨게 하는 일.
어찌 보면 비정한 일이었다.
타인의 고통, 그것도 팀의 기둥과도 같은 선수의 고통 앞에 들뜬다는 건 적어도 천사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프로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맞아. 난 1군에 올라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어.”
하물며 2군 선수들에게 있어 1군 무대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올라가고 싶고, 올라가야 하는 무대였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숨을 쉬고 있는 그들에게 1군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건 이제까지 야구를 하며 살아온 나날 전부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하는 셈이었으니까.
“그럼 여기서 콜업은 끝일까? 더 없으려나?”
“모르지. 하지만 최소한 정 선배가 빠졌으니까 이제는 그 정 선배 자리를 채울 누군가를 뽑아야겠지.”
“다음 콜업 1순위 후보 말이군.”
“그게 아니더라도 정 선배가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 솔직히 1군에서 오래 버틸 기량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양윤섭 선배가 이탈한 걸 정 선배가 매울 수 있을 리 없잖아? 1군 투수조 전체에 과부하가 갈 테고, 그럼 또 누군가 이탈하겠지.”
그렇게 엔젤스 2군 투수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무렵.
“골치 아프군.”
그것은 2군 코칭스태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후보군을 꾸려야죠.”
“그렇지.”
양윤섭의 이탈은 곧 엔젤스의 위기인 상황 속에서 엔젤스 2군은 비상체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당장 성적은 신경 쓰지 말고 1군에 올릴 선수를 선별하는 식으로 일정을 기획하도록.”
가장 먼저 우지욱 2군 감독은 퓨처스리그 성적 자체를 포기했다.
앞으로 일정을 성적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양윤섭을 대신할 투수를 발굴하기 위한 무대로 쓰고자 했다.
즉, 이제까지 계획했던 일정을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일정을 짜야한다는 의미.
“일단 커피부터 좀 마시고 시작하지.”
“예.”
당연히 코칭스태프들도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준비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긴 밤을 감은 눈으로 보내는 이는 그가 유일했다.
– 진용아, 진용아?
“호······.”
– 너 설마 진짜 자냐?
“우······.”
– 이 또라이 새끼, 진짜 자네?
이진용, 그만이 긴 밤을 꿀잠으로 지새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