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56
4.
주전 선수들에게 월요일은 꿀맛 같은 휴일이다.
특히 주말 경기가 홈경기인 선수들에게 월요일은 소원할 수밖에 없는 가족과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휴일 다음에 치러지는 주중 경기가 홈경기이거나 멀지 않은 곳에서 치러지는 원정경기라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터.
때문에 주전 선수들은 월요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주전이 아니라, 언제든 2군으로 내려갈지 모르는 선수에게는 달랐다.
그 선수들에게 월요일은 운명의 날이었다.
다음 경기장으로 향하는 구단 버스에 탈지 아니면 2군행 버스를 탈지 정해지는 운명의 날.
“빠라빠빠∼ 빠라빠빠!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그 운명의 날 이진용은 연안부두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그건 명백한 증거였다.
“부두의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아∼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게에엤지!”
이진용이 인천 샤크스와의 일정을 치르기 위해 인천행 버스에 타게 됐다는 증거.
– 야, 좀 닥쳐!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양쪽 귀를 막은 채 소리쳤고, 이진용은 그 모습에 보다 목소리를 높이며 연안부두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내질렀다.
“말해다오오오! 말해다오오오! 연안부두 떠어나는 배야아아!”
– 에이, 진짜!
결국 김진호가 고개를 숙였고, 이진용은 기어코 연안부두 2절까지 부른 후에야 노래를 멈췄다.
그런 이진용을 보며 김진호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 더러워서 성불을 하든가 해야지······.
“제가 메이저리그 가는 건 보고 성불하셔야죠.”
– 그 전에 내가 어떻게든 성불할 거야.
“메이저리그에서 제가 박살나는 거 보고 싶으시다면서요?”
이진용의 말에 김진호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내뱉은 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진용이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그가 박살나는 것을 보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갑자기 달라진 김진호의 모습.
그런 모습의 원인은 다름 아니라 이진용이 새롭게 습득한 스킬 [컨트롤 마스터] 때문이었다.
– 스킬 효과 : 컨트롤이 향상된다.
컨트롤 마스터.
이 스킬의 효과는 설명 그대로 투수의 컨트롤, 제구력을 향상시켜줬다.
정말 단순하고 담백하기 그지없는 스킬.
하지만 그 가치는 결코 단순하지도, 담백하지도 않았다.
– 빌어먹을······ 어떻게 이런 스킬이 존재할 수 있지? 이게 말이 돼?
야구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구속이 빠른 투수가 당첨 확률이 높은 복권을 가진 것과 같다면 제구가 좋은 투수는 고액 연금을 받는 것과 같다고.
– 컨트롤 향상 스킬이라니······.
구속이 빠른 투수는 엄청난 성적을 낼 수 있지만,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안정적인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컨트롤 마스터 스킬에는 스킬 랭크가 있었다.
즉, 이진용의 제구는 스킬 랭크가 오름에 따라 앞으로 더 향상될 수 있다는 의미.
“다 김진호 선수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진용 역시 이 스킬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향 한 대 피우실래요? 불붙여드릴까요?”
그렇기에 이진용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김진호에게 기꺼이 감사를 표했다.
– 꺼져!
“에이, 그러지말고 향 한 대 쭉! 피우신 후에 다음에도 기도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보수로 제사상에 맛난 거 올려드릴게요. 피자 올려드릴까요? 아니면 치킨?”
그런 이진용의 거듭된 도발과 놀림에 결국 김진호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 앞으로 조언은 없다! 이번 샤크스전 준비는 알아서 해!
하지만 그 말에 이진용은 놀라지 않았다.
“아무렴요. 그동안 배운 게 있는데.”
김진호는 언제나 이랬으니까.
그는 이진용에게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렇게 가르쳐준 방법을 직접 실전에서 해내는 것을 보고, 그에 따라 새로운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기에 이진용은 경기에 출전한다는 사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회만 오면 아주 제대로 보여드리죠.”
그저 자신에게 기회가 오기를 기다릴 뿐.
5.
5월 9일 화요일.
인천 샤크스의 홈구장인 문학구장.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까지 제법 시간이 남았음에도 문학구장의 더그아웃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박준형 선수, 오늘 4번으로 출전한다는데 팀의 4번 타자가 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저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번에 역전 만루 홈런을 칠 때 무슨 기분이 들었습니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흐름을 이어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올 시즌 홈런 몇 개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까?”
“두 자릿수 홈런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만, 최우선 목표는 주전으로 시즌 끝까지 활약하는 겁니다.”
“그래서 박준형 선수 이상형은 어떻게 됩니까?”
“그건······.”
“저번 어린이날 시타로 온 데이지스의 멤버인 이사랑 양과 잘 어울리던데 그런 여자가 이상형인가요?”
“그게······.”
이제는 정말 별이 되어버린 박준형, 이번 시즌 핫 아이템이 되어버린 박준형과의 인터뷰를 그리고 친분을 쌓기 위해 달라붙은 기자들이 북적거림의 이유였다.
그 북적거림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던 황선우는 생각했다.
‘구 팀장 안목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진짜 구 팀장이 원하는 대로 박준형이 히트 상품이 됐어.’
구은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박준형이 엔젤스의 신성이 되었다고.
그뿐이었다.
‘확실히 좋은 선수지.’
황선우는 박준형에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하고 자시고 이미 실력을 증명하고, 결과를 만들고, 명성을 얻은 선수에게 그 이상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게 이상한 일일 터.
때문에 황선우는 굳이 더 이상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그는 박준형과 기자들로 가득 찬 벤치가 아니라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훈련을 하는 엔젤스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응?’
그중에서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건, 누가 보더라도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요소를 가진 선수였다.
‘이진용이군.’
작은 체격.
좋을 것 없는 차별성을 가진 이진용이 열심히 러닝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뛰네?’
동시에 황선우는 이진용이 조깅을 시작한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선발처럼 몸을 푸는군.’
분명 투수들에게 러닝 훈련은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기초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하체 강화에도 도움이 되며 동시에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건, 마라톤과 같이 고독한 싸움이니까.
하지만 경기 시작 전 러닝 훈련을 많이 하는 건 선발투수들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패전처리투수인 이진용에게 어울리는 훈련량은 아니었다.
‘이상한 놈이야.’
여러모로 이상한 놈.
‘그래도 최소한 술이나 처먹으면서 프로답지 못한 놈보다는 훨씬 더 프로답지.’
그러나 황선우 기자는 알고 있었다.
이진용이 이상하긴 해도, 그가 하는 행동이 막연한 행동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이진용!”
그런 이진용이 벤치를 지나갈 무렵, 황선우 기자가 이진용을 불렀다.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던 이진용이 황선우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고 이제 황선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만반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황선우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늦었지만 첫 승 축하해.”
“감사합니다!”
“그보다 오늘 왜 이렇게 열심히 뛰어? 설마 몰래 이거, 이거 하고 땀 빼는 거야?”
말을 하던 황선우가 술을 마시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말에 이진용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전혀 아닙니다. 술이라니,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제가 미쳤다고 술을 마십니까?”
살짝 당황한 그 모습을 기다렸다는 듯이 황선우 기자가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아니면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오늘 선발투수도 아닌데?”
당황한 이만큼 진심을 듣기 좋은 상대도 없는 법.
그런 황선우의 수작은 제대로 통했다.
“언제든 만전의 상태로 마운드에 올라야 하니까요.”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너무 힘 빼는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죠,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힘들겠어.”
“지고 있는 게임에 남이 밟은 마운드에 오르고, 남의 손에 이끌려서 마운드를 내려오는 게 더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죠.”
이진용이 진심을 토해냈다.
“그런 거에 비하면 경기 시작 전에 러닝 좀 하는 건 힘들 것도 없습니다.”
그 진심에 황선우가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러닝 마저 하겠습니다. 잘 던지면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는 황선우를 뒤로한 채 이진용이 다시금 러닝을 시작했다.
“젠장, 한 번만 더 대화 도중에 가랑이 사이에 얼굴 집어넣으면 그때는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그런 이진용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나왔지만, 황선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황선우는 그저 놀란 눈으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동시에 그는 느꼈다.
‘저놈, 뭔가 터뜨린다.’
이진용, 그에게 남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6.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제창을 끝으로 인천 샤크스와 서울 엔젤스, 두 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이팅!”
“파이팅!”
인천 샤크스의 야수들은 분주하게 그라운드를 채우기 시작했고 인천 샤크스의 선발투수이자, 외국인 투수인 알렉스 브레디는 마운드에 올라선 후에 자신의 발로 마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으으, 어제 너무 쉬었나? 몸이 찌뿌둥하네.”
“아, 아직 5월이구나. 정말 힘들다, 힘들어.”
“서울에서 인천 오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다음 주 부산 원정은 힘들어서 어떻게 갈까?”
한편 서울 엔젤스 선수단은 마치 개미굴로 들어가는 개미들처럼 더그아웃을 향해 들어갔다.
그렇게 더그아웃에 들어간 엔젤스 선수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타자들은 대부분 그라운드가 좀 더 잘 보이는 바깥쪽에 앉았고, 투수들은 뒤쪽 좌석에 앉았다.
타자들은 마운드 위의 투수의 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함이었고, 투수들은 그런 타자들과 굳이 같이 앉기보다는 뒤편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타자가 아닌 투수 하나가 껴 있었다.
이진용.
투수, 그것도 패전처리투수인 그가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늘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이미 예정된 것처럼.
그런 이진용의 등장에 몇몇 선수들 그리고 코치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얘는 왜 여기 앉아?’
‘뭐하는 거지?’
하지만 이진용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특별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이진용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의문이 담긴 시선일 뿐, 적대감이나 불쾌함 따위가 담긴 시선이 아니었으니까.
혹여 그렇다고 해도 이진용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패전처리 투수인 나는 지는 경기에만 나올 수 있다.’
바로 경기에 출전하는 것.
‘그렇게 본다면 4,5선발이 공을 던지는 오늘과 내일 경기가 내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4선발과 5선발 투수가 출전하는 경기가 이진용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이진용이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그런 경기에 준비를 하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
무엇보다 이진용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1이닝이든, 타자 한 명이든 어떻게든 내 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한다.’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받을 가치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애초에 1군에 콜업해준 것이 고마운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한 기회를 받았다는 것을.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1군이 날 로스터에 넣을 이유는 없어.’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원하는 만큼 던지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웃기지도 않는 일.
무엇보다 이제까지 이진용은 그런 상황 속에서 직접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기회를 받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타자를 한 명을 상대하더라도 코칭스태프가 이진용을 써먹어야 한다고 필요성을 느낄 만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진용은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보여줘야 했다.
그게 지금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이유였다.
‘야구에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춰야 해.’
어쨌거나 언제 어느 순간에 투입될지 모르는 이진용이 그날 경기의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일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오늘 나는 선발이다.’
이진용, 그는 오늘 선발투수들처럼 자신의 호흡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 진용아, 어차피 나오지도 못할 경기 벤치에 앉아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관중석 쪽으로 가자.
그게 바로 지금 이진용의 뒤에 있는 사내의 가르침이었다.
– 내가 절대 치어리더들이 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투수, 김진호의 가르침.
“역시 총각귀신이었어.”
– 아니라니까! 나 총각귀신 아니라니까!
그 가르침을 되새김질하며 이진용이 그라운드에 집중했다.
그렇게 샤크스와 엔젤스의 주중 3연전, 그 첫 경기가 시작됐다.
7.
한국프로야구에서 구단들은 대개 5선발 로테이션을 돌린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5선발 투수를 보유한 구단은 많지 않다. 4선발까지만 확실해도 리그 정상급 선발진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런 선발 로테이션은 처음에는 각 구단의 사정에 따라 각기 다르게 돌아간다.
어느 선수의 부상, 우천 취소, 선발 로테이션 변경 등의 요소가 이루어지며 때문에 팀의 에이스와 팀의 가장 약한 선발이 붙는 미스 매치업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샤크스와 엔젤스의 주중 3연전 첫 경기는 그런 종류의 미스 매치업이었다.
“예상대로군.”
“뭐, 너무 뻔했지. 방어율 1점대 투수와 방어율 6점대 투수의 매치업이었으니까.”
샤크스의 선발은 이번 시즌 샤크스가 13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영입한 알렉스 브레디로 4월 동안 선발 방어율이 1점대인 샤크스의 에이스였고, 그런 그를 상대로 엔젤스가 내놓은 선발 카드는 양윤섭의 이탈로 5선발에서 4선발로 지위가 상승한 이도섭으로 현재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선발투수였다.
“엔젤스 타선이 데블스 전에서 기세를 탔다고 해도, 단순 타격만으로는 샤크스가 엔젤스를 상회하지.”
여기에 타선의 파괴력을 가늠할 수 있는 팀타율, 팀홈런, 팀 장타율 등의 기록 역시 샤크스가 엔젤스보다 뛰어났다.
아무리 야구가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승자를 알 수 없는 게임이라지만, 이 정도 미스 매치가 이루어진다면 굳이 뚜껑을 열어볼 필요도 없는 게 사실.
실제로 경기 내용은 모두가 예상을 하던 대로 진행됐다.
“삼자범퇴! 깔끔하군!”
“알렉스 피칭은 언제나 무시무시하군.”
“직구 구속은 140대 중반인데 구위가 보통이 아니니까. 심지어 공격적으로 꽂아 넣는데 간간이 섞는 투심 패스트볼은 상대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지.”
알렉스 브레디는 자신이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모습 그대로를 마운드에서 보여주며 엔젤스 타자들을 지옥으로 보냈다.
“쯧! 또 맞았군. 차라리 맞을 거였으면 깔끔하게 맞든가, 투스트라이크 잘 잡고 볼 남발하다가 풀카운트에서 안타를 주다니······ 최악의 피안타군.”
“이도섭은 4선발 자리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애초에 이번 시즌 5선발로 온 것 자체가 실험적인 거였으니까. 멘탈이 좋은 투수도 아니었고.”
“공은 참 좋은데 말이야. 직구 구속은 잘 나오는 날에는 140대 후반도 나오고, 100구 가까이 던져도 구속이 떨어지지 않고, 슬라이더도 나름 날카롭고, 커브도 괜찮고.”
“제구가 안 좋고, 새가슴인 것만 빼면 이도섭만한 선수도 없지. 괜히 엔젤스가 4억 원 계약금 주고 1라운드에 지명한 게 아니라니까. 프로 데뷔 이후 통산 방어율이 6점대인데 매 시즌 기회를 주는 것도 그 때문이고.
이번만 해도 솔직히 성적만 봤으면 진작에 2군 내려갔어야지. 재능이 있으니까 남아있는 거지.”
반면 이도섭은 나름의 기대치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1회부터 첫 실점을 시작으로 3회 말까지 4실점을 했다.
“또 실점이군.”
“이도섭은 5회 정도까지만 던지고 내려오겠군.”
4회 말에도 다시 한 번 실점을 하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줬고, 그 무렵 엔젤스는 불펜을 움직였다.
추격조와 패전처리조, 두 조의 투수들이 불펜으로 향했다.
그렇게 불펜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봉준식 감독이 커트라인을 정했다.
“일단 도섭이에게 5회까지 맡긴다.”
이도섭에게 5이닝 피칭을 맡겼다.
이도섭이 긴 페넌트레이스에서 싸워나갈 선발투수가 될 수 있도록, 오늘 경기를 희생해 경험을 주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불펜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당연히 불펜 투수들 역시 그에 맞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도섭이가 일단 5회까지 던질 거니까, 6회 말에는 올라올 수 있도록 몸을 풀어둬라!”
6회 말 등판을 염두에 두고 몸을 풀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고, 예상하던 상황이었다.
“어? 어!”
“맙소사!”
하지만 4회 말 1아웃 상황에서 이도섭에게 생긴 사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들것! 들것!”
이도섭, 타자가 친 타구에 맞아 마운드 위에 쓰러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고, 당연히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봉준식 감독은 곧바로 불펜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불펜 투수 중에 그나마 몸이 더 풀린 투수가 누구지?”
질문을 하면서도 봉준식 감독은 곧장 대답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6회 말 등판을 염두에 두고 몸을 풀기 시작한 불펜에 몸이 제대로 풀린 투수가 있을 리 만무했기에.
– 그게······.
그러나 방호민 불펜코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 이진용은 바로 투입 가능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