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61
1.
샤크스와 엔젤스의 주중 3연전 첫 경기, 그 경기의 승자는 샤크스의 선발투수 알렉스 브레디였다.
완봉승,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방법으로 승리를 거둔 알렉스 브레디의 피칭은 훌륭했고, 결과물은 완벽했다.
자연스레 그의 기사가 온라인 세상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찬사와 찬양이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초점이 알렉스 브레디에게만 맞춰지는 건 아니었다.
3.2이닝 2피안타 무실점 그리고 10탈삼진.
누가 봐도 놀랍기 그지없는 성적을 보여준 이진용의 존재감은 완봉승을 거둔 알렉스 브레디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진용은 그 성적과 별개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 얘가 그 호우냐?
– 이 녀석이 그 호우임?
– 이 새끼가 그 호우라고?
마운드 위에서 격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진용의 피칭 스타일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금방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물론 좋은 의미로만 유명해진 건 아니었다.
– 미친 새끼 아님? 이래도 됨?
– 우리 팀 상대로 저 지랄하면 내가 마운드에 달려가서 주둥이에 주먹 날려버릴 것.
– 저러다 조만간 참교육 한 번 받지.
ㄴ 헤이, 진용! 돈 두 댓!
오히려 반대, 대부분의 팬들은 이진용의 모습에 비판은 물론 비난과 욕설을 아끼지 않았다.
– 아니, 타자는 배트 플립하는데 투수가 호우 좀 하면 안 되나?
– 왜 우리 꼬맹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호우 좀 할 수 있지!
– 답답하면 니들도 호우하든가!
몇몇 팬들이 이진용을 변호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진용이란 엔젤스의 새로운 기대주가 아주 빌어먹을 쓰레기가 되는 데에는 몇 시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몇 시간 만에 엔젤스 구단을 제외한 프로야구 9개 구단의 공공의 적이 된 이진용은 자신의 숙소에서 머리를 쥐어 잡은 채 고뇌하고 있었다.
“아, 미치겠다.”
이제까지 이진용이 보여준 고뇌 중 가장 깊은 고뇌였다.
김진호 역시 그런 이진용의 등 뒤에서 고뇌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런 그 둘이 온라인상의 반응 때문에 고뇌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 둘을 고뇌케 하는 건 다름 아니라 그들이 새롭게 얻은 아이템, 스킬업이었다.
이진용이 가진 스킬 중 하나를 A랭크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기회!
그게 고뇌의 원흉이었다.
“무슨 스킬이 좋을까요?”
이진용은 이제 이 스킬업을 적용할 스킬 하나를 골라야 했으니까.
그건 마치 끝내주는 스포츠카 여러 대를 앞에 두고 개중 하나를 고르는 것과 같았다.
누구라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일.
그런 이진용에게 김진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 심기일전 어때?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나잖아? 엄청 좋을걸?
그 제안이 이진용이 눈빛을 반짝였다.
“무쇠팔도 좋지 않을까요?”
그 반짝임에 김진호도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 당연히 좋지! 아니, 끝내주겠다! 무쇠팔이 A랭크가 된다면, 6이닝을 소화하는 순간 나머지 이닝은 사실상 체력 걱정이 없잖아?
말을 하던 김진호가 박수를 곁들였다.
– 그래, 무쇠팔이 좋겠다. 이제 선발인데, 무엇보다 체력이 필요할 때이니까. 바로 무쇠팔에 써버려! 진용아, 리틀 최동원이 되는 거다!
“라이징 패스트볼도 좋지 않을까요?”
그런 김진호에게 이진용이 재차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김진호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훌륭한 판단의 표본이로군! 그래, 라이징 패스트볼로 가자! 진용아, 마구 한 번 던져보자.
그 말에 이진용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결정했습니다!”
이윽고 결단을 내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슬쩍 이진용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 그래? 라이징 패스트볼에? 아니면 무쇠팔에? 심기일전?
“제가 미쳤어요?”
이진용, 그가 컨트롤 마스터의 스킬에 스킬업을 사용했다.
– 으아, 안 돼!
그 사실에 김진호가 절규를 내뱉었고, 그런 그를 보며 이진용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디서 약을 팔아요? 누가 보더라도 컨트롤 마스터에 써야지. 훌륭한 판단의 표본이군?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럴 소리하시려면 씻나락이나 까드세요.”
사실 이번 일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김진호의 말대로 심기일전, 무쇠팔, 라이징 패스트볼의 스킬 랭크를 올리는 건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컨트롤 마스터 스킬에 비하면 앞선 스킬들은 솔직히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다.
– 에이, 진짜!
그걸 알고 있기에 김진호는 이진용이 어떻게든 컨트롤 마스터가 아닌 다른 스킬에 스킬업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이진용의 말에 맞장구를 친 이유였다.
– 그래, 그냥 너 다 해먹어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먹겠습니다.”
그리고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를 놀리기 위해 그의 장단을 맞춰줬다.
결국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에 토라진 김진호가 표정을 잔뜩 찌푸리며 푸념을 내뱉었다.
– 아, 진짜 이건 사기야. 꿀을 떠먹여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제 아주 그냥 혈관에 포도당을 주입하네.
이진용이 그런 김진호의 푸념을 배경음 삼은 채 자신의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 최대 구속 : 130
– 보유 스킬 : 심기일전(D), 일일특급(D), 라이징 패스트볼(E), 마법의 1이닝, 무쇠팔(F), 리볼버, 컨트롤 마스터(A)
보이는 상태창 속에서 컨트롤 마스터(A)라는 존재가 유난히 밝게, 화려하게, 아름답게 보였다.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너무 아름다워서 몸마저 달아오를 정도.
그럴만했다.
‘F랭크 때만 해도 코너워크 제구가 됐는데, A랭크라면······.’
솔직히 이진용에게는 오늘 치른 샤크스 전에서의 코너워크 제구 자체도 신세계였다.
‘상상도 안 되네.
스트라이크존의 좌우, 그곳의 경계선을 노린다는 피칭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것이 얼마나 끝내주는 일인지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보다 더 대단한 제구력을 손에 넣게 됐다?
‘당장 시험해 보고 싶다.’
몸이 달아오르지 않을 리 만무.
– 너무 좋아하지 마라.
그런 이진용의 달아오른 몸에 김진호가 찬물을 뿌렸다.
– 제구가 좋아졌다는 것만 믿고 제구만으로 피칭을 하다 보면 개박살이 날 테니까.
그건 그저 단순히 악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무슨 의미인가요?”
– 제구가 좋다는 건 계획한 바를 잘 실행할 수 있다는 것뿐이야. 계획 자체를 끝내주게 만드는 게 아니라.
금과옥조.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값진 조언이었다.
– 그렇기에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들일수록 더 필사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머리를 쓰지.
그 말과 함께 김진호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이진용의 머리를 두드렸다.
– 투수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팔이 아니라 뇌라고 불리는 두 귀 사이에 있는 것이다.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마스터, 그렉 매덕스의 말이었죠.”
그 순간 김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 응? 무슨 소리야? 이거 내가 한 말인데?
“예?”
– 그렉 매덕스라니, 이거 내가 남긴 명언이거든?
“무슨 말이에요, 당장 구글 검색해보면 나오는 그렉 매덕스의 명언인데?”
– 아, 매덕스 그 양반이 내 명언을 훔쳐갔네. 그 양반 성격이 좀 괴팍한 건 알았지만 내 명언도 훔쳐갈 줄이야.
말과 함께 김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진용은 반박할 수 없었다.
김진호가 활약한 시기는 그렉 매덕스가 활약한 시기와 겹쳐 있었으며, 김진호와 그렉 매덕스는 그 시대를 풍미하던 최고의 투수로 경쟁하는 경쟁자였으니까.
“진짜요?”
때문에 이진용이 놀라며 되물었고, 그런 이진용에게 김진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아니, 구라야.
“에이, 진짜!”
– 으하하!
김진호가 자신을 놀렸다는 사실에 이진용이 짜증을 부렸고, 그런 이진용을 향해 김진호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그 폭소 사이로 나지막이 말했다.
– 매덕스는 그라운드 밖에서는 이상한 양반이었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마술사였지. 왜 마술사였는지는 알아서 찾아봐. 분명한 건, 그냥 제구만 좋았다면 지금의 매덕스는 없었으리란 거지.
그 조언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용의 눈빛에는 더 이상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 아이의 기색 따위는 없었다.
‘김진호 선수 말대로다. 제구가 좋아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오히려 이게 시작이다.’
새로운 표적을 찾는 맹수의 눈빛만이 있을 뿐.
그리고 그런 이진용에게 표적이 제공됐다.
2.
선발투수의 갑작스러운 강판, 상대팀 에이스 투수의 완봉승, 갑자기 튀어나온 투수의 호투······.
예상치 못한 사건을 연달아 치르고, 패배마저 당한 엔젤스의 코칭스태프 회의 분위기는 좋을 수가 없었다.
“최소 8주라······.”
그런 상황 속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주던 4선발 투수의 부상 소식은 확인사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휴.”
“에휴.”
모두가 긴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몇몇은 저도 모르게 담배가 들어있는 주머니에 손이 갔다가 황급히 그 손을 책상 위로 올렸다.
“일단 선발 자리를 채우는 게 우선이겠지. 추천할 만한 선수가 있으면 추천하도록.”
그런 그들에게 봉준식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이진용을 한 번 올려보죠.”
대답은 곧장 나왔다.
“어차피 마땅한 선발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기회를 한 번 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투수코치, 그가 대답했다.
“이진용이 선발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봉준식 감독이 질문을 던졌고, 투수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3.2이닝 2피안타 무실점, 10탈삼진. 솔직히 성적만 보자면 인상적인 수준을 넘어 압도적입니다.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경악에 가까웠고. 이 정도 모습을 보여줬는데 더 이상 검증은 필요 없다고 봅니다. 검증을 하더라도 선발 무대 정도만이 검증의 무대가 되겠지요.”
투수코치는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준비한 말을 꺼냈다.
“불펜코치 생각은?”
“기회는 줘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펜코치마저 이진용의 기용에 찬성을 하자, 봉준식 감독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선발 로테이션이 이대로 소화되면, 이진용이 나올 경기는······ 이번 주말 타이탄스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가 되겠군.”
봉준식 감독이 바로 결론을 내렸다.
“이진용에게 5월 14일 일요일 타이탄스 전에 출전하라고 통보하도록.”
3.
페넌트레이스.
3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 6개월에 걸쳐 144경기를 치르는 이 기나긴 전쟁의 무서운 점은 여러 가지다.
개중 하나는 바로 상처투성이 상태에서도 휴식 없이, 치료 없이 다음 상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상대가 어마어마한 괴물이더라도.
그 사실을 엔젤스가 깨달은 건 샤크스와의 주중 3연전을 1승 2패, 루징 시리즈로 마치고 자신들의 홈구장인 잠실구장에서 부산 타이탄스와의 주말 3연전, 첫 경기를 치르는 순간이었다.
–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
– 넘어갔네요.
– 홈런! 타이탄스의 4번 타자 김태용 선수가 엔젤스를 추락시키는 만루홈런을 기록합니다.
– 이 홈런은 아마 내일 그리고 내일모레 있을 엔젤스에 치명적인 상처가 될 듯하군요.
그건 난타를 넘어 도살이었다.
타이탄스 타자들은 엔젤스의 투수들을 도살했고, 그 결과 9회 초 엔젤스 대 타이탄스의 점수는 4대19, 아득하기 그지없는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타이탄스 애들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더욱이 그 점수는 단순히 많이 난 점수가 아니었다.
“미친, 잠실에서 팀홈런이 하루에 4개나 나온다는 게 말이 돼?”
똑같이 10점을 내더라도 선수들은 안다.
그 점수가 타자가 잘해서 나온 건지, 투수가 못해서 나온 건지 아니면 운이 없어서 나온 건지.
“약을 빨아도 저 정도는 아닐 거야.”
타이탄스가 만든 결과는 명백히 그들이 잘해서, 그것도 장난 아니게 잘해서 만든 것이었다.
“하필 우리랑 붙을 때 각성을 하다니······.”
“투수들 다 죽겠다 이놈들아!”
경기를 벤치에서 보던 엔젤스 선수들이 어처구니없는 수준을 넘어, 영혼이 반쯤 나간 표정을 지은 채 그라운드의 타이탄스 선수들을 바라보는 이유였다.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실화냐?”
“영화도 이 정도는 아닐 거 같은데?”
“에이, 진짜! 거인 새끼들아 돈은 넣고 쳐라!”
엔젤스의 줄무늬 유니폼과 천사 날개 모양의 머리띠를 쓰고 있는 엔젤스 팬들의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악마를 보았을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참담한 현장을 보기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코칭스태프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음······.”
봉준식 감독은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는 듯 거듭 손으로 제 입 주변을 마사지했고, 투수코치는 마치 아내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들은 어느 가정의 아버지처럼 불펜과 이어진 수화기를 붙잡은 채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엔젤스의 분위기 속에서 미소와 웃음을 짓고 있는 오로지 한 명이었다.
– 캬!
김진호.
– 타이탄스 애들 끝내주네. 진용아, 너 타이탄스 팬이라고 했지? 축하한다, 타이탄스가 올해 우승할 듯? 최소한 엔젤스 정도는 개박살을 낼 수 있을 듯?
그는 타이탄스의 말도 안 될 정도로 물오른 타격감에 기쁜 기색을 격렬하게 드러냈다.
기쁜 이유야 뻔했다.
– 진용아 어쩌냐? 선발이라서 튈 수도 없는데?
이진용이 이제 저 물이 오르다 못해 미쳐 날뛰기 시작한 타이탄스 타자들을 상대하게 됐으니까.
‘이게 선발의 무서움이군.’
그제야 이진용은 알 수 있었다.
왜 그토록 잘 던지는 투수들도 선발이란 무대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지.
동시에 실감했다.
‘김진호 선수 말대로 피할 곳은 없다.’
적 팀의 타자들이 말도 안 되는 타격감을 보이더라도, 예정된 시간에 마운드 위에 올라 그 타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선발투수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 진용아, 딱 10실점만 하고 이천 가자. 지금도 늦지 않았어. 이천쌀과 운명을 같이 하는 벼진용 모드로 가자!
“좀 닥쳐요.”
– 호우? 호우우? 호우우우?
“아, 진짜······.”
– 왜? 그냥 휘파람 좀 분 건데?
그러나 이진용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
“변 팀장님, 잠실에서 경기 영상 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금 전력분석을 다시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가 미리 넘겨준 스카우팅 리포트에 문제가 있는데 A/S는 당연히 해줘야지.”
전력분석팀장 변형채, 그가 팀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