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65
16.
5회 말, 엔젤스의 타자들은 앞선 4이닝 동안 보여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 타구가 너무 높게 뜨네요.
– 중견수 이형섭 선수가 두 팔을 흔듭니다. 이형섭 선수가 공을 잡았습니다. 이것으로 5회 말, 엔젤스의 공격이 종료됩니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5회 말에도 이렇다 할 득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아, 진짜 안 터지네.”
“미치겠네. 이번 주 대체 왜 이래?”
그렇게 5회 말이 끝나자 벤치를 채운 엔젤스 타자들의 입에서 푸념 같은 변명이 주절주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휴, 더워. 그보다 일요일인데 우리 팬은 왜 이렇게 없냐?”
“죄다 타이탄스 유니폼밖에 안 보이네. 누가 보면 타이탄스 홈구장인 줄 알겠어.”
그런 엔젤스 타자들의 변명은 평소 때보다 훨씬 더 오래 벤치 안을 채우고 있었다.
5회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라운드 정비를 위한 클리닝 타임이 시작된 탓이었다.
본래는 글러브를 챙기고 그라운드로 나갔어야 할 타자들이 벤치를 지키고 있었고, 자연스레 그들의 푸념 소리도 평소보다 더 많이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푸념 소리는 더그아웃을 잠시 나갔던 이진용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사라졌다.
‘이진용이다.’
‘아이고······.’
모두가 꾹,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이진용이 고개를 갸웃하며 슬쩍 김진호에게 시선을 보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겁니까?
그런 물음이 담긴 이진용의 눈빛에 김진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양심이 있으면 5이닝 무실점 투수 앞에서 아가리를 싸물어야지.
김진호의 말대로였다.
오늘 이진용은 무지막지하던 타이탄스를 상대로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엔젤스 타자들은 이제까지 제대로 된 득점 찬스도 만들지 못한 상황.
최소한 이진용 앞에서는 변명 따위를 지껄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 그리고 자존심이 있으면 입을 놀릴 게 아니라 어떻게든 점수를 내기 위해 이를 갈아야지.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은 엔젤스 타자들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다.
‘솔직히 이진용하고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 그래도 승리투수는 만들어줘야지.’
‘그리고 이대로 지면······.
타이탄스와의 주말 3연전, 그중 앞선 두 경기에서 엔젤스는 처참한 패배를 경험했다.
심지어 3연전 마지막 경기인 오늘, 4회 초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타이탄스, 그들이 엔젤스를 상대로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다.
이유는 있다. 분위기 쇄신을 한다는 이유가.
‘······쪽팔려서 야구 못하지.’
그러나 결국 본질은 타이탄스가 엔젤스를 우습게 봤다는 것이다.
만약 타이탄스가 엔젤스를 두려워했다면, 그들은 절대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지 않았을 거다.
그게 현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분노도, 폭력도 자기보다 센 놈 앞에서는 잘 조절되는 법이니까.
‘그래, 질 땐 지더라도 이렇게는 못 지지.’
‘타이탄스 새끼들 그렇게 안 봤는데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오냐, 내가 어떻게든 하나 친다.’
엔젤스 타자들이 내뱉는 변명과 푸념 사이로 빠드득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이유였다.
– 진용아! 저기!
그때 김진호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이진용을 불렀다.
– 배터리코치랑 포수가 대화하는데 좀 가까이 가봐. 내가 몰래 들어줄게.
그렇게 김진호가 가리킨 방향에는 엔젤스의 배터리코치인 김영준과 오늘 주전 포수로 출전한 이호천이 경기를 앞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이진용의 표정이 굳었다.
“저기,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요?”
그 굳은 표정으로 이진용이 김진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 그야 6회부터는 볼배합을 다양하게 하라고 하겠지. 상식적으로 스플리터랑 포심만 던지는 건 미친 짓이잖아?
“그래도 5타자 연속 탈삼진 잡았는데, 이대로 가자고 하지 않을까요?”
말을 하면서도 이진용은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포심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두 가지 구종으로만 볼배합을 하는 건 위험하다.
분명 그게 잘 먹히면 삼진을 잡기에는 이보다 좋은 조합이 없겠지만, 안 되면 안타를 내주기에는 이보다도 나쁜 조합도 없으니까.
하물며 이진용에게는 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이라는 멋진 구질이 존재했다.
그런 구질을 두고 계속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결코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못한 짓일 터.
– 하지만 만약 이호천이란 포수가 뭔가를 느꼈다면 이대로 한 이닝 정도 더 보자고 제안할 수도 있지.
“예?”
하지만 원래 야구라는 스포츠는 합리적이고, 이성으로 해석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 5타자 연속 삼진을 잡았잖아?
“운빨 뽀록이라면서요?”
– 그래, 운빨 뽀록이지.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오히려 반대, 사람들이 야구라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건 이 야구라는 놈이 결코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기에, 그렇기에 야구팬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 노히트노런, 퍼펙트게임, 한 경기 20탈삼진 같은 건 말이야, 기량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운빨 뽀록으로 만들어지는 거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운이 따르고 있는 이진용의 피칭 스타일에 굳이 무언가를 손댈 필요는 없었다.
이 운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 게 더 나을 선택일 터.
“김진호 선수가 세운 10타자 연속 탈삼진도요?”
– 당연히 그것도 운빨뽀록······ 야, 인마. 그건 당연히 실력이었지! 나 김진호야, 김진호! 메이저리그의 지배자!
“아까는 이럴 리가 없다고, 원래 이러면 안 된다고 궁시렁궁시렁거리시던게 누구시더라?”
– 그, 그건······ 에이, 진짜! 이 새끼 귀는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야?
그때 배터리코치와 대화를 마친 이호천이 이진용에게 다가왔다.
“진용아.”
“예.”
“배터리코치님하고 대화 나눴다. 배터리코치님이 6회부터는 투심 비율을 높이자고 하시더라.”
그 말에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기선 팀 오더를 따라야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표정을 애써 숨겼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것보단 5회 했던 그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어진 이 말에 이진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솔직히 말하면 통쾌했어.”
통쾌하다.
그 대답과 함께 이호찬이 고개를 돌려 3루쪽 더그아웃, 타이탄스의 벤치를 바라봤다.
– 그래, 사실 이런 경기에서 가장 엿을 많이 먹는 건 투수가 아니라 포수이니까.
그 모습을 본 김진호가 설명을 해줬다.
– 타자들이 배터 박스에 나와서 주절거리는 말이 진용이, 네 귀에 들릴 리는 없지만 포수 귀에는 다 들리거든. 아마 타자들이 포수를 흔들라고 지껄이는 소리를 네가 듣는다면 넌 아마 1이닝도 못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타자 얼굴에 주먹부터 날릴걸?
모든 프로스포츠가 그러하겠지만, 야구 역시 브라운관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일어난다.
특히 주심, 타자, 포수가 모이는 홈플레이트 근처에서는 별의별 일이 일어난다.
타석에 선 타자가 홈플레이트를 향해 모래를 툭툭 발로 차서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애매하게 만드는 건 기본 중의 기본.
포수의 아내를 룸살롱에서 봤다는 거짓부렁을 지껄이거나 심지어 포수를 향해 너 정수리가 더 훤해진 것 같다? 같은 아주 치명적인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물며 오늘처럼 타이탄스에게 게임 시작 전부터 얕보이는 상황 속에서 타이탄스의 타자들이 배터 박스에서 가만히 있었을 리 만무.
굳이 말이 오고갈 필요도 없다.
“명색이 프로인데 같은 프로에게 그런 취급 받았는데 기분 좋을 리 없잖아?”
이호찬 정도 되는 베테랑 포수라면 대화 없이도, 타석에 선 타자의 행동만 보더라도 알 수 있으니까.
오늘 타이탄스 타자들이 엔젤스란 팀을 얼마나 같잖게, 가소롭게 여기는지.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비웃는지.
“심지어 벤클까지······ 참 좆같은 경우지.”
그런 와중에 터진 벤치 클리어링 사실상 이호천의 인내심에 대한 마침표와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들리더군.”
만약 그때 그 소리를 못 들었다면 그는 폭발했을 것이다.
“마운드에서 네가 한 소리가.”
이진용이 마운드에서 내지른 그 소리.
내 마운드에서 꺼지라는 그 외침.
“아, 그건 그냥 제가 홧김에······.”
이진용이 그때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여긴 잠실구장이다. 우리의 홈구장.”
그런 그에게 이호찬이 말했다.
“네 마운드가 맞다.”
그 말과 함께 이호찬이 이진용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이윽고 포수 장비를 챙긴 이호찬이 이진용을 향해 말했다.
“네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라. 만약 문제가 생기면, 코치님들한테 내가 했다고 말해.”
그런 그의 모습에 이진용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다.
– 쉿.
그런 이진용의 앞에 김진호가 검지로 입을 가린 채, 왼쪽 눈을 감은 채 말했다.
– 이럴 땐 말로 하는 게 아니지.
그 말과 함께 김진호가 제 입에 가져다 댄 검지를 움직여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운드가 있었다.
클리닝 타임 동안 깨끗하게 정비된 마운드가.
17.
클리닝 타임 동안 깨끗하게 정비된 마운드 위로 발자국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피처 플레이트, 투수판 위에 올라선 이진용은 그대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 긴 숨소리에 응답하듯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었다.
그 비보와도 같은 알림에 김진호가 말했다.
– 삼진을 잡는 피칭은 언제나 많은 투구수를 대가로 요구하지.
오늘 마운드에 오르기 전 이진용은 당연히 부족한 체력을 커버하기 위해 맞혀 잡는 피칭을 계획했었다.
– 폭주도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고.
투구수를 낭비하지 않기 위한 피칭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4회 초, 벤치 클리어링 이후 이진용은 스타일을 바꾸었다. 삼진을 잡기 위해서 공을 던졌다.
그 결과는 분명 아름다웠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그 아름다운 결과물은 이진용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현명하게 맞혀 잡는 피칭을 하는 게 어때?
그런 그에게 김진호가 이 상황을 벗어난 대책을 말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이었다.
그러나 이진용은 그 대책을 택하지 않았다.
“김진호 선수라면 여기서 이렇게 말했겠죠.”
그 대책 대신 위대한 투수의 일화를 떠올렸다.
– 응?
“나는 삼진을 잡겠다.”
– 그렇지.
“영어로 하면 I kill you.”
– 에이, 진짜! 야! 그때는 내가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니까!
그 말에 김진호가 길길이 날뛰었고, 그 모습에 이진용이 입가에 지은 미소 사이로 말했다.
“마법의 1이닝.”
6회 초가 시작됐다.
18.
6회 초.
“이제 6회다.”
이제 4번 밖에 없는 공격 기회 중 한 번을 써야 하는 타이탄스는 더 이상 어제 그리고 엊그제와 같은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이제는 무조건 선취점을 내야 해.”
이제는 타순 한 바퀴가 돌아갈 동안 어떻게든 점수를 내야 하는 그들은 이 타순 한 바퀴를 가지고 어떻게든 1점을 먼저 내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채훈아 일단 공부터 봐. 분명 맞혀 잡는 피칭을 하겠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일단 피칭 스타일부터 파악하자고.”
“예.”
6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8번 타자 양태훈에게 정찰이란 임무가 주어진 이유였다.
그렇게 양태훈이 타석에 섰을 때, 타이탄스의 타자들과 코칭스태프는 더 이상 여유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눈빛으로 타석에 선 양태훈을 바라봤다.
“스트라이크!”
“볼!”
“스윙 스트라이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양태훈이 네 개의 공으로 삼진을 당하는 순간 타이탄스의 타자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새끼 5회랑 똑같이 포심하고 스플리터만 던지고 있어.”
“아주 우리를 좆으로 본다, 이거군.”
이진용이 체력을 아끼기 위한 맞혀 잡는 피칭이 아니라, 타이탄스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두 개의 이빨만을 앞세운 저돌적인 피칭을 한다는 사실을.
“오냐, 그렇게 나오면 우리야 고맙지.”
그리고 곧바로 9번 타자가 올라서게 됐을 때, 타이탄스는 거기서 승부수를 걸었다.
“대타 배종호!”
대타로 좌타자 배종호, 다리가 빠르고 배트 컨트롤이 좋은 타자를 내보냈다.
타이탄스가 내세울 수 있는 대타 카드 중 가장 높은 확률로 출루할 수 있는 카드를 내보낸 것이다.
“종호야 무조건 출루해라. 네가 출루하면 1번부터 시작이다.”
“예!”
어떻게든 6회에 선취득점을 내기 위해서, 상위타순에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네가 잡히면 상위타순이 이번 이닝에 묶이니까.”
동시에 어떻게든 출루율이 높은 상위 타순을 출루시킨 후에 중심 타선을 통해 점수를 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만약 9번 타자가 아웃당하면 2아웃 상황에서 1번 타자가 올라오게 되고, 혹여 1번 타자가 출루를 하더라도 2번 타자에서 아웃이 되면, 다음 타순은 3번부터 시작되니까.
타이탄스의 3번 타순부터 5번 타순은 장타는 기대할 수 있을지언정 주루플레이는 기대할 수 없는 무거운 타선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놈은 지금 스플리터와 포심만 던지고 있어. 하나만 제대로 노리면 돼.”
“알겠습니다.”
그런 여러 임무를 그리고 노림수를 품고 타석에 오른 배종호를 상대로 이진용은 네 개의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그냥 포심 패스트볼.
“볼!”
덜 가라앉은 포심 패스트볼.
“스윙!”
그냥 스플리터.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더 빠르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제구마저 완벽하게 된 그 네 종류의 공 앞에 배종호가 삼진을 당하는 순간, 타이탄스는 보다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이진용이라는 새끼 진짜 말도 안 되는 공을 던지고 있잖아?”
“그냥 완급조절 좀 한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이진용이 지금 단순히 포심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두 종류의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평범한 패스트볼과 라이징 패스트볼 그리고 그냥 스플리터와 끝내주는 스플리터를 던진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제대로 보니까 구속 빼고 말도 안 되는 놈이었잖아?”
타이탄스가 처음으로 이진용이란 투수를 제대로 바라보는 순간이었고, 그 순간 더 이상 타이탄스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아······.”
그 순간 타이탄스는 자신들이 이진용을 상대로 준비한 모든 정보들과 공략법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뒤늦은 깨달음이었고, 그 뒤늦은 깨달음은 타이탄스에게 그만한 대가를 요구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가 공 5개짜리 승부 끝에 삼진을 당했다.
그제야 타이탄스는 또 한 번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 쟤 지금 탈삼진 몇 개째지?”
“11개 아닌가?”
“아니, 그게 아니라······ 4회 벤클 이후부터 모든 아웃카운트 삼진으로 잡았잖아?”
“어······ 아마도.”
“그럼 몇 개지?”
“하나둘셋······ 여덟 개?”
지금 잠실구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국프로야구에서 최다 연속 탈삼진 신기록이 몇 개지?”
“10개였을 걸?”
그리고 지금 그들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꿀꺽!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말은 없었다.
19.
[최초로 7타자 연속 탈삼진에 성공하셨습니다. 골드 룰렛 이용권이 지급됩니다.]
[8타자 연속 탈삼진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6이닝 무실점 피칭 중입니다.]
[무쇠팔 효과가 발동됩니다.]
– 호우!
이진용이 여덟 번째 연속 탈삼진을 잡는 순간 마운드에 있던 김진호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지!”
그 공을 잡은 포수 이호천 역시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진용은 이 놀라운 상황 앞에서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 진용아, 왜 호우 안 해?
그 모습에 김진호가 의구심을 표할 무렵, 이진용이 1루쪽 관중석을 바라봤다.
엔젤스 팬들로 가득 찬 그곳을 바라보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새끼.
그 모습에 김진호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 행동의 의미를 김진호가 모를 리 없었으니까.
이진용, 그는 무쇠팔 효과로 회복된 체력을 이용해 보다 긴 피칭이 아니라, 그 전부를 7회 초에 소모할 생각이었다.
그게 엔젤스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이유였다.
‘죄송합니다.’
삼진을 잡기 위해, 자신의 기록을 위해, 팀의 승리를 외면할 생각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승리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를 배신할 생각이기에.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말했다.
– 사과로 끝내지 마라. 그런 건 의미가 없으니까. 팬들에게 오늘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결과로 보답해라.
그 말에 고개 숙인 이진용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예.”
이진용, 그가 결의를 품은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