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66
20.
6회 말 엔젤스가 자신들의 여섯 번째 공격 기회를 무득점으로 마쳤을 때, 평소라면 마땅히 그라운드로 뛰쳐나왔어야 할 엔젤스 팬들의 푸념과 분노는 없었다.
“야, 진짜 오늘 신기록 나오냐?”
“여기서 탈삼진 2개만 더 잡으면 타이기록, 3개를 더 잡으면 신기록.”
“에이 안 될 거야. 엔젤스잖아? 괜히 기대하지 말자고.”
대신 엔젤스 팬들은 기대감 그리고 초조함과 우려의 기색을 흘리고 있었다.
타이탄스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잠실구장들을 타이탄스의 홈구장으로 만들었던 그들의 열광은 이제 아스팔트 위로 내린 첫눈마냥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대체 우리 빠따 병신들은 구속이 130밖에 안 나오는 공을 못 치고 이 지랄이야?”
“여덟 타자 연속 삼진? 느그가 프로가?”
“만약 여기서 신기록 내주면 프로 때려치워라!”
그 상황 속에서 7회 초가 시작됐다.
마운드 위로는 이진용이 올라왔고, 배터 박스 위로는 이형섭이 올라왔다.
4회 초 펼쳐진 벤치 클리어링의 근원지들이 다시 한 번 마주보는 순간이었다.
“벤치 클리어링 이후 둘이 처음 보는 거지?”
극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킨 이형섭과 그 벤치 클리어링 이후 현재까지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이진용.
“완전 영화네, 영화야!”
“각본도 이렇게 쓰기 힘들지.”
그 둘의 만남은 이진용의 현재 기록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스토리 있는 기록으로 만들어줬다.
‘이 새끼, 넌 뒈졌어.’
물론 이형섭은 그런 이진용에게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타석에 선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여기서 땅볼을 쳐서라도 네놈 기록을 깨주마.’
이진용의 기록을 여기서 끊는 것!
그것을 위해 이형섭은 이진용이 던지는 공이라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이라고 해도 기꺼이 배트를 휘두를 생각이었다.
땅볼이든 플라이볼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이진용의 기록을 자신의 타석에서 끊을 속셈이었다.
그리고 그게 연속 탈삼진 기록이 나오기 힘든 이유였다.
그 어느 팀도 신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와라.’
마음 같아서는 번트라도 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나마 자존심이 있기에 번트를 대지 않을 뿐.
그런 이형섭의 각오를 마운드 위에 있는 이진용이 모를 리 없었다.
‘어설픈 공도 건드릴 속셈이겠지.’
그리고 이진용이 아는 걸 김진호가 모를 리 없었다.
– 존에 걸치는 공이고 나발이고 일단 무조건 건드리려고 할 거야. 여기서 가장 좋은 건 체인지업 하나 던지는 거지만, 그러면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겠지.
그렇기에 김진호는 이 순간 조언을 해줬다.
– 여기서 무슨 공을 던져야 하는지까지 말해주면 저놈이 불쌍하니까 말하지 않을게.
물론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다.
하지만 이진용은 고민하지 않았다.
‘하이 라이징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존 위를 지나가는 패스트볼을, 그것도 라이징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라이징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에도 배트를 휘두를 속셈으로 가득 찬 이형섭이라면 분명 건드릴 공.
허나, 건드린다면 공의 밑부분을 건드리며 파울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공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리볼버.”
때문에 이진용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던지고자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마친 후에 이진용은 공을 던졌다.
7회 초, 이진용이 초구를 던졌다.
딱!
그리고 그 공은 이형섭의 배트를 맞고 그대로 포수석 뒤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파울.”
주심이 파울 선언을 내뱉었고, 곧바로 볼 주머니에서 공을 꺼내 이진용에게 던져줬다.
파울이 나왔을 경우라면 언제나 볼 수 있는 광경.
그러나 그 광경 속에서 두 명은 아주 귀중한 단서를 놓치지 않았다.
‘어?’
이호찬, 그는 이 상황에서 이형섭의 상태를 바라봤다.
파울을 친 그의 낌새를 가늠했다.
‘이 자식 침착하네?’
평소라면 길길이 날뛰는 정도를 넘어 입에서 쉴 새 없이 식빵을 외쳤을 이형섭이 이 순간 게슴츠레 뜬 눈으로 벤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단서였다.
‘벤치 오더대로 타격한다, 이거군.’
이형섭이 자기 스타일대로 타격을 하는 게 아니라, 벤치의 오더를 그대로 따른다는 단서.
‘이형섭 성격이라면 여기서 무조건 공을 건드린다. 하지만 타이탄스 벤치라면······ 이진용이 존을 벗어나는 공을 던지리라 예상하고 오히려 참으라고 하겠지. 조금 전 존을 벗어나는 공을 던지기도 했고.’
이호찬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김진호의 눈빛도 가늘어졌다.
– 진용아, 포수가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김진호, 그는 이형섭의 모습을 그리고 그 이형섭을 바라보는 이호찬의 눈빛의 의미를 파악했다.
그 조언에 이진용은 군말하지 않았다.
‘포수 사인대로 가자.’
이호찬이 사인을 내주는 순간, 평소처럼 자신이 원하는 공이 나올 때까지 고개를 흔들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에 이호찬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던진 이진용의 2구는 이형섭의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높은 곳을 찌르고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사각형 모양의 스트라이크존, 그 꼭짓점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패스트볼!
그 공에 무슨 공이라도 칠 것 같았던 이형섭이 멀뚱히 공을 바라봤다.
“스트라이크!”
곧바로 주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했고, 그제야 이형섭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 순간 이형섭의 눈빛은 그야말로 짐승과도 같은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벤치에서 타격코치가 사인을 보냈음에도 그는 그곳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벤치 오더를 따라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더 이상 벤치 오더가 아닌 제 깜냥대로 상대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했다.
그런 이형섭을 바라보며, 이진용이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팔을 툭 쳤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그 모습에 이호찬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진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이진용을 내려다봤다.
– 얍삽한 새끼.
그런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옅은 미소를 지은 후에 곧바로 3구째를 던졌다.
그렇게 던진 이진용의 3구는 다름 아니라 커브였다.
‘이형섭,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포심과 스플리터만을 염두에 둔 타자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커브.
‘그러니까 넌 특별대우다.’
그리고 조금 전 골드 룰렛에서 나온 구질 향상 아이템을 사용해 만든 B랭크의 커브였다.
“컵?”
그 커브 앞에 놀란 이형섭의 배트는 그대로 허공만을 갈랐고, 그 모습에 주심은 소리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아아웃!”
격한 주심의 삼진 아웃 콜에 이진용이 화답하듯 소리쳤다.
“호우!”
이진용 그가 전설에 닿을 기회를 손에 넣었다.
21.
이진용 대 박준동.
10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한국프로야구의 유일무이한 기록을 유이한 기록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둘의 승부에는 타인의 의견이나 감상 따위는 무의미했다.
만약 이진용이 유일무이한 기록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된다면, 훗날 그 기록을 보거나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타인의 감상이나 의견이 아닌 담백한 사실뿐일 테니까.
이진용이 초구로 던진 스플리터에 박준동이 헛스윙을 했다는 사실.
이진용이 던진 2구를 박준동이 골라내며 1볼 1스트라이크 상황이 됐다는 사실.
이진용이 던진 3구에 박준동이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파울을 쳤다는 사실.
이진용이 던진 4구 역시 파울이 됐다는 사실.
이진용이 던진 5구를 박준동이 참아내며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이 됐다는 사실.
이진용이 던진 6구에 박준동이 배트를 휘둘렀다는 사실.
그리고······.
“스윙 스트라이이크, 아아아아웃!”
그렇게 이진용이 한국프로야구 최다 연속 탈삼진 타이기록 보유자가 됐다는 사실만이 기억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훗날 사람들은 이 순간 이진용이 마운드 위에서 나눈 대화를 알 도리가 없었다.
– 새로운 전설을 쓸 기회다. 긴장 풀지 마. 이런 기회는 네 평생에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예.”
이진용, 그가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22.
우아아아!
이진용, 그가 10타자 연속 삼진을 잡는 순간 잠실구장은 엔젤스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광이 잠실구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타이기록은 줬다.’
그 상황 속에서 김태용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신기록은 못 주지.’
여기서 자신마저 삼진을 당한다면, 오늘 이진용이 이곳에서 타이기록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기록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절호의 기회다.’
동시에 그는 노리고 있었다.
‘놈이 삼진을 잡고자 한다면, 좋은 공이 올 테니까. 여기서 하나만 날리면 돼.’
승리.
그 무엇보다 값진 그것을 김태용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하나만 치면 게임은 끝이다.’
하물며 지금 상황은 여전히 0대0상황, 김태용의 홈런 하나가 승리가 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타석에 선 김태용은 단순한 땅볼이나, 뜬공 따위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한 방을 노렸다.
그게 이유였다.
이진용이 던진 바깥쪽 낮은 공, 포심 패스트볼에 김태용이 기꺼이 배트를 휘두른 이유.
빠악!
전력을 다한 스윙으로 그 공을 홈런이나 다름없는 파울을 만들어버린 이유.
“어우!”
“깜짝이야······.”
그 파울 한 번에 과열됐던 잠실구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그 정도로 강렬하기 그지없는 파울이었다.
‘쳇.’
그렇게 단숨에 투수의 등골을 싸늘하게 만든 타구를 만들어낸 김태용이 마운드 위의 이진용을 노려봤다.
널 죽이겠다!
그 의지를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진용도 눈빛으로 표현했다.
나도 널 죽일 건데?
‘애송이 새끼가······.’
그런 이진용의 도발 가득한 적의에 김태용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드루와라, 드루와.’
이진용이 굳이 삼진을 잡기 위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선택지를 좁혀준다면, 타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런 김태용을 향해 이진용이 곧바로 2구째를 던졌다.
몸쪽 낮게 들어오는 공, 134킬로미터짜리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빠악!
그리고 그 공을 김태용은 다시 한 번 홈런이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파울을 만들어냈다.
“어어어······ 어휴, 다행이다.”
“젠장, 넘어가는 줄 알았네.”
경기를 보던 엔젤스 팬들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타구.
팬들이 느끼는 감정이 그 정도인데 투수가 느끼는 정도는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투수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정도를 넘어서 그대로 마운드에서 얼어붙어도 이상할 게 없는 타구였다.
그래서일까?
이후 이어진 이진용의 피칭은 겁에 질린 듯했다.
3구째는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높은 공을, 4구째는 포수마저 놓칠 정도로 바깥쪽으로 빠진 공을, 5구째는 스트라이크존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공을 던졌다.
“볼!”
“볼!”
“볼!”
그리고 그 모든 공을 김태용은 골라내며, 주심으로부터 3볼 판정을 얻어냈다.
“김태용이 눈알에 현미경 박았냐? 저걸 어떻게 다 고르지?”
“느낌 싸하네. 하나 맞을 거 같다.”
이진용이 삽시간에 풀카운트 상황에 몰리는 상황이었고, 경기를 보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는 순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태용에게는 기회였다.
‘볼넷은 없다. 죽든 살든 아웃을 잡으러 오겠지.’
마운드 위에 있는 이진용이란 놈은 유일무이한 신기록 보유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볼넷으로 날리는 바보는 아니었기에.
‘삼진을 잡으러 들어온다.’
당연히 이진용은 맞든 말든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한 피칭을 할 게 분명했다.
‘스플리터 아니면 하이 패스트볼, 이런 상황이라면······ 쳐볼 테면 쳐보라는 심정으로 스플리터를 던지겠지.’
때문에 어느 때보다 스플리터를 던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진용의 스플리터는 대놓고 던져도 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김태용은 확신했다.
‘그래, 스플리터다.’
이진용이 끝내주는 스플리터를 던질 것이라고.
그런 이진용의 속셈을 예상한 김태용은 스플리터를 쳐내기 위한 스윙 궤적을 그렸다.
궤적을 그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늘 수도 없이 봤고, 타석에서 그 스플리터에 직접 당해도 봤다.
김태용 정도 되는 타자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진용의 스플리터를 공략하기 위한 타이밍을 찾는 데에는.
‘쐐기를 박아주지.’
그렇게 타이밍 세팅마저 끝낸 김태용은 자신의 모든 집중력을 이진용의 손끝에 집중시켰다.
그 사이 포수와 사인을 나눈 이진용이 고개를 들어 자세를 취했다.
일촉즉발.
모두가 긴장감에 침 삼키는 것마저 잊은 가운데, 이진용이 김태용을 향해 6구째 공을 던졌다.
그 순간 잠실구장의 모든 것이 그대로 멈췄다.
‘아!’
그렇게 멈춰버린 공간 속에서 이진용이 던진 공이 거대하기 그지없는 포물선을 그리는 그 공 앞에서 김태용의 사고도 그대로 멈춰버렸다.
시속 69킬로미터의 이퓨스 볼.
그야말로 허의 허를 찌르는 그 공이 기어코 멈춰버린 세상 속에서 살포시 포수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팡!
이진용, 그가 새로운 전설이 되는 순간이었다.
22.
7이닝 1피안타 14탈삼진.
말이 필요 없는 기록을 달성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진용은 말이 없었다.
그는 마치 쓰러지듯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는 순간 이진용의 온몸으로 지독한 피로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끝났다.’
당연한 결과였다.
‘다 태웠어.’
7회 초, 이진용은 세 개의 삼진을 잡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체력을 소모했고 동시에 자신이 오늘 이 무대에서 꺼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소모했다.
특히 마지막 공인 이퓨스 볼은 이진용이 오늘 던진 공 중 가장 많은 집중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공이었다.
‘내가 미쳤지.’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잡기 위해, 평생 던진 공 중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짓은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니까.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좌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점수를 내야 하는데······.’
‘11타자 연속 탈삼진을 잡고도 패전투수가 되면 미치겠지.’
이 순간 이진용에게는 격려조차 하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으니까.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봉준식 감독은 이 순간 이진용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정을 품고 있었다.
‘이진용을 내려야 하나?’
봉준식 감독은 지금 이진용을 내리고 싶었다.
점점 힘이 떨어지는 이진용을 계속 세우는 것보단 이미 예열을 마친 필승조를 투입하는 건 누가 봐도 합리적인 판단이니까.
무엇보다 오늘 경기는 선취득점이 사실상 결승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맞은 후에 내리면 늦는다.’
이진용이 실점을 한 다음에는 투수교체는 사실상 안 하니만 못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7이닝 1피안타 피칭을 하는 투수를 내리는 게 과연 말이 될까?
솔직히 이토록 멋진 투수를 바로 내린다면 엔젤스 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최악은 오늘 경기를 패배하는 것이었다.
‘메이저리그에도 없는 11타자 연속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고도 진다면······ 5월은 끝장이다.’
오늘 엔젤스가 패배한다면, 이진용이 패전투수로 기록된다면 그건 엔젤스가 이번 시즌 경험할 수 있는 패배 중 가장 치명적인 패배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봉준식 감독은 차마 이진용에게 다가가 그의 의사를 묻는 것조차 쉽사리 할 수 없었다.
만약 이진용이 더 던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봉준식 감독은 절대 그를 교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물론 봉준식 감독은 몰랐다.
‘왜 아무도 더 던질 수 있냐고 질문하지 않는 거야?’
지금 이진용은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애초에 7회까지만 던질 속셈으로 모든 걸 불태웠다는 사실을.
– 진용아, 이러다가 너 8회에도 올라가겠는데?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이대로 8회의 마운드에도 이진용이 올라가야 할 상황이었다.
– 킁킁!
그 사실에 무언가 낌새를 맡은 김진호가 스윽, 고개를 내밀었다.
– 냄새가 난다. 11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 세운 투수가 8회에 홈런 맞고 패전투수가 되는 어메이징한 냄새가.
김진호의 놀림에 이진용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못하겠다고 직접 말해야 하나?’
여차하면 이진용이 나서서 직접 못 던지겠다고 말을 해야 할 듯싶었다.
– 설마 11타자 연속 삼진을 잡고 내려왔는데 못 던지겠다고 직접 말하진 않겠지? 진용아, 생각해 봐. 네가 그런 말을 하면 감독하고 코치들이 널 어떻게 보겠어? 이 새끼 봐라, 자기 편할 때만 던지고 내려와? 아주 이기적인 호로 새끼네? 그렇게 보겠지. 안 그래?
그런 이진용의 심중을 읽은 듯 김진호가 이진용의 행동을 막는 말을 뱉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더 던질 수 없으면, 없다고 말하는 게 팀을 위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와는 별개로 지금 이대로 가면 정말 팀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이진용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건 그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 이진용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아.’
이진용이 내뱉는 한숨의 끝에 탄식이 터졌다.
빠악!
“어?”
“어!”
그로부터 몇 분 후 터졌다.
“홈런이다!”
“미친, 박준형 이 미친 새끼!”
박준형, 그가 기어코 다시 한 번 홈런포를 터뜨렸다.
– 미친, 오늘 내내 죽 쓰던 새끼가 왜?
그와 동시에 곧바로 봉준식 감독이 직접 이진용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진용 앞에 선 그는 선글라스를 벗은 채 말했다.
“진용아, 수고했다. 8회부터는 불펜을 가동하겠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대로 드러낸 봉준식 감독의 눈에는 미안한 감정이, 이대로 이진용이 자신의 승리를 제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간 것에 대한 미안함 가득했다.
그런 봉준식 감독의 말에 이진용은 대답에 앞서 김진호를 슬쩍 바라본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넵! 그럼 저는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진용이 어깨춤을 추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김진호가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 아, 신이시여! 진정 이놈 자식 엿 먹는 꼴은 못 보는 겁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