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70
5.
“톰 글래빈?”
톰 글래빈.
메이저리그 통산 305승을 거두며, 56번의 완투와 25번의 완봉승을 거두는 동안 방어율은 3.54를 기록했던 투수.
그리고 1991년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그렉 매덕스와 존 스몰츠와 함께 그야말로 전설을 만들었던 투수.
종국에는 쿠퍼스 타운, 명예의 전당이라는 위대한 곳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투수.
“자신의 모든 공을 바깥쪽에만 집어넣는 투수죠.”
그런 어마어마한 업적을 오로지 하나, 타자의 스트라이크존 바깥쪽만을 노리는 피칭으로 이룩한 투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누구도 톰 글래빈이 이룩한 커리어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는다.
“별로 좋아하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톰 글래빈이란 투수의 피칭 스타일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이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저랑 성향부터 다르죠.”
톰 글래빈의 피칭에는 타자에게서 삼진을 뜯어내기 위한 공격성은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하고 마운드를 같이 쓰면 경기 시간이 30분은 더 늘어납니다.”
동시에 타자와 타이밍 승부를 하느라 투구 사이사이의 시간도 길었기에 그의 피칭에서 관중들은 짙은 지루함과 피곤함을 느끼고는 했다.
때문에 몇몇 이들은 톰 글래빈의 피칭을 도망가는 피칭으로 치부하며,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지언정 정면승부가 미덕인 메이저리그에 어울리지 않는 도망자라고 조롱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더 짜증나는 건 그가 정말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도망자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절대 톰 글래빈은 도망자가 아니었다.
“장담컨대 누가 마운드 위에서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타자 몸쪽으로 공을 던지라고 해도 그는 타자의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무슨 공이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찔러 넣을 겁니다. 그래서 더 짜증나는 거죠. 톰 글래빈과 마운드를 같이 쓰면 시간도 시간대로 끌리면서도 그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김진호, 톰 글래빈이란 전설과 비교해 부족함이 없는 그가 보기에는 분명 그랬다.
즉, 김진호는 알고 있었다.
톰 글래빈의 피칭을 따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저 타자의 바깥쪽만을 공략할 수 있는 제구가 아님을.
“볼!”
“풀카운트네.”
“여기서는 하나 집어넣겠지? 빠지면 볼넷인데?”
당연히 김진호는 이진용에게 가르쳐준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 진용아 볼 나오면 볼넷인데,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던지는 게 어때?
톰 글래빈, 그가 가진 가장 무서운 건 그저 바깥쪽을 노릴 수 있는 제구력이 아니라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과 같은 집요함을 고수할 수 있는 정신력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강심장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현했다.
풀카운트 상황.
김진호 말대로, 경기를 보는 모든 이들 말대로 볼 판정을 받으면 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키는 상황.
당연히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아슬아슬한 코스를 노리기보다는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스플리터나, 땅볼을 유도하는 체인지업 또는 투심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 안에 찔러 넣는 게 안전한 상황.
“늘어나라 존, 존.”
– 짜식.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은 김진호가 가르친 그대로.
그리고 김진호가 말해준 톰 글래빈이 그랬던 것처럼 왼쪽 타석에 선 레인저스의 5번 타자 이제욱의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그리고 그 공에 주심은 짧게 머뭇거린 후에 곧바로 스트라이크 콜을 소리쳤다.
“아아아웃!”
마지막으로 아웃 콜을 외치는 순간, 타석에 있던 이제욱이 주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이게 왜 스트입······.”
그것은 과거 톰 글래빈을 상대하던 타자들이 무수히 많이 보이던 모습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진용, 그가 톰 글래빈이 보여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
물론 이진용은 톰 글래빈조차 가지지 못한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호우!”
“······니 저 개새끼가! 아, 아니 주심한테 욕한 게 아닙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저 투수 새끼한테······ 죄송합니다.”
이진용, 그가 그렇게 새로운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6.
분석하고 예상한 후 대비하는 것.
그것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 당연하게 해오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야구도 그랬다.
야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자는 그리고 투수는 서로를 분석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가 자신을 상대로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고, 예상함으로써 대비를 했었다.
이진용을 홈구장에서 맞이한 레인저스 역시 그렇게 했다.
“이진용의 구속이 느리지만 탈삼진 능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건,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든 후 아주 뛰어난 투심 패스트볼이나 스플리터 그리고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삼기 때문이지.”
그들은 이진용을 분석했다.
“당연히 우리를 상대로도 그 피칭 스타일 그대로 나올 거다. 코너워크 공략을 통해 2스트라이크를 잡은 후에 결정구로 삼진 혹은 땅볼을 유도하는 식. 동시에 이진용은 볼넷을 주지 않는다. 그건 달리 말하면 공격적인 투수라는 의미. 좌우 코너워크 제구를 하더라도 절묘하게 스트라이크존을 노릴 거다.”
분석을 통해 그가 어떤 피칭을 할지도 예상했다.
“볼넷을 주는 경우가 적은 만큼, 공을 보고 볼넷으로 걸어나갈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아. 오히려 스트라이크존에 적극적으로 공을 넣는다는 걸 노려서 공격적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 좀 더 들어가면 카운트가 만들어지기 전에 승부를 보는 것도 좋지. 초구나 2구째 구질을 예상하고 적극적으로 노리는 거다.”
마지막으로 대비했다.
여러모로 완벽한 대비였다.
분석부터 예상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것 없는 대비.
물론 변수는 있었다.
이진용이 자신의 피칭 스타일을 바꿀 경우.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투수의 피칭 스타일이란 건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결정적으로 이진용은 그런 피칭 스타일로 11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한국프로야구 신기록을 세웠다.
자신을 패전처리투수에서 단숨에 한국프로야구 신기록 보유자로 만든 피칭 스타일을 바꾼다?
있을 수 없는 일.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스트라이크, 아웃!”
“예? 이게 왜 스트입니, 저 개새끼가! 아, 아니 주심한테 욕한 게 아닙니다.”
지금 고척 돔구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1회부터 3회까지, 모든 공이 타자 바깥쪽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몸쪽 공은커녕 스트라이크존 가운데 들어오는 공조차 없습니다.”
이진용, 그는 경기가 시작한 후 모든 공을 좌타자, 우타자 가릴 것 없이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집어넣었다.
“때문에 볼넷도 3회까지 5개로 많고······.”
물론 이진용이 그런 피칭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아주 그에게 유리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이진용의 이러한 피칭 스타일은 오히려 볼넷을 남발하는 피칭이 됐다.
1회에 볼넷 2개, 2회에 볼넷 2개 그리고 3회에 볼넷 1개.
3회까지 무려 볼넷으로 다섯 명을 출루시켰다.
출전한 경기가 많진 않지만, 1군 콜업 이후 단 한 번도 볼넷을 준 적 없는 이진용답지 않은 피칭이었다.
투구수도 많았다.
“투구수도 3회를 끝으로 61구, 많습니다.”
3회까지 61구.
1이닝에 20구 정도를 소모하는 셈이다.
보통 선발투수의 투구수를 100구 정도로 잡는 걸 염두에 둔다면 이진용을 이대로 두면 그는 5이닝에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가 되어버릴 것이다.
사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이진용의 피칭은 분석하고, 예상하고, 대비해온 것과 전혀 다른 피칭이지만 굳이 문제될 건 없었다.
이대로 가면 이진용은 자멸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보고하는 레인저스의 수석코치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뭔가 할 게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수석코치가 말한 그대로였다.
지금 이 순간 레인저스가 이진용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아시다시피 바깥쪽 공은 무리하게 노려서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듭니다.”
기본적으로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공은 타자 입장에서는 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이진용은 지금 바깥쪽 낮은 코스를 더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습니다.”
특히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낮은 코스의 공은 리그 수준급 타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코스다.
타자의 타격 메커니즘 때문이다.
먼 곳에 있는 공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배트를 더 뻗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제대로 힘이 실린 스윙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질 좋은 타구가 나오는 히팅 포인트에 맞추기도 어렵다.
물론 바깥쪽 코스만 노리는 건 투수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막말로 바깥쪽 코스만을 노리는 게 그토록 효과적인 일이었다면 모든 투수가 그리했겠지만, 현실은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바깥쪽만 노려서 역사에 남을 결과를 만든 투수는 한 명, 톰 글래빈 밖에 없다.
그만큼 바깥쪽만 노린다는 건 어렵다.
일단 기본적으로 제구가 되어야 한다.
제구를 할 줄 모르는데 바깥쪽만 노리는 건 노리는 게 아니라 그냥 도망치는 거다.
스트라이크존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타자의 심리도 읽어야 한다. 바깥쪽 승부만 하면 자연스레 타자도 바깥쪽 공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런 타자를 상대로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면 타자의 허를 찔러야 하니까.
결정적으로 심장이 튼튼해야 한다.
“변하지 않은 건 배짱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예를 들어 두 명의 타자를 이미 볼넷으로 내보낸 상황에서 풀카운트 상황에 직면했을 때, 투수들은 과연 바깥쪽 공을 던질 수 있을까?
볼이 되면 볼넷으로 타자가 출루하고, 볼넷만으로 만루가 되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포수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온 후에 맞아도 좋으니 스트라이크존에 넣으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이진용은 자신의 피칭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엔젤스는 이런 이진용의 피칭 스타일을 굳이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엔젤스 역시 그런 이진용을 터치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수석코치의 보고가 끝났을 때, 보고를 받은 레인저스의 고경수 감독은 고민을 시작했다.
‘이진용이 이대로 공을 던지면 길어야 7회다.’
고경수.
그는 감이나, 촉에 의존하기보다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을 추구하는 감독이었다.
당연히 지금도 그는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엔젤스는 어제 레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불펜을 다수 소모했다.’
이진용이 지금처럼 던진다면 그가 소화할 수 있는 이닝은 7이닝이 한계이며, 어제 레이번스와 11회 말까지 가는 경기를 치르며 불펜을 소모한 엔젤스에 불펜 싸움으로 가서 밀릴 건 없다고.
‘무엇보다 강훈이의 공이 좋다.’
마지막으로 오늘 레인저스의 선발로 올라온 한강훈의 공이 어느 때보다 좋았다.
‘강훈이라면 오늘 완투는 물론 완봉도 가능하다.’
생각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괜히 타자들에게 바깥쪽 공을 치기 위한 무리한 타격보다는 애매한 공은 그냥 거르고 볼넷으로 골라내는 식으로, 이진용이 자멸하게 놔두지.”
“예.”
고경수 감독이 오더를 내렸고, 수석코치가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투수코치와 타격코치를 불렀다.
그 광경을 끝으로 고경수 감독이 다시금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어느새 바뀌어버린 그라운드의 풍경을, 4회 초의 풍경을 바라봤다.
바라보며 느꼈다.
‘느낌이 안 좋군. 안 좋을 이유가 없는데······.’
알 수 없는 싸늘함이 자신의 등골을 뱀처럼 지나가는 것을.
7.
[109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3이닝 무실점 피칭 중입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10,901포인트입니다.]
“호우!”
3회 말, 5번 타자 이제욱을 상대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후에 마운드를 내려가는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말했다.
– 진용아 잘했다.
그 칭찬에 이진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갸웃하는 이진용의 얼굴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이 양반이 또 뭔 소리를 하려고?’
김진호, 그는 칭찬에 인색했다.
좀 더 들어가면 그가 뭔가 좋은 말을 하는 경우는 대개 정말 좋은 말을 해주기보다는 안 좋은 말을 하기 전에 밑밥으로 던지는 경우였다.
때문에 이진용은 기울어진 고개를 똑바로 하며,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일 리는 없고, 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사과할 거 있으면 솔직하게 사과하세요.”
-응,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다!
이진용의 말에 김진호가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 내가 하라고 시키긴 했지만, 사실 난 네가 3회쯤에 볼넷 남발하다가 자멸하고 교체될 거라고 예상했거든.
자멸!
그 섬뜩한 단어의 등장에 이진용이 으르렁거리듯 작게 말했다.
“······그런 건 보통 경기 시작 전에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말해주면 이렇게 안 했을 거 아니야?
“당연히 안 했죠!”
말과 함께 이진용이 좀 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됩니까?”
– 그야 이 페이스대로 던지면 6회쯤에 투구수가 100구 근처가 될 테고······ 그나마 철인 스킬이 있으니까 6회까지 버틸만한 거고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3회 끝났을 때 체력 오링 났겠지.
그 말에 이진용이 이를 꽉 물었다.
사실 이진용은 그걸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굉장히 비효율적인 피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투구수가 그 증거였고, 볼넷이 그 증거였다.
김진호 말대로 철인 스킬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진용은 5회를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용이 기꺼이 이런 피칭을 한 건, 김진호가 그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김진호에 대한 이진용의 믿음은 그랬다.
아무리 티격태격 싸워도, 야구에 있어서만큼 이진용이 신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존재.
김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만약 이진용의 패배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진용이 그 패배에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무의미한 패배는 이진용 본인이 용납해도, 김진호가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 뭐, 그런데 네가 내 상상 이상으로 잘해서 말이야. 덕분에 재미난 일이 일어났지.
“재미난 게 뭔데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진호, 그가 이진용에게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만을 노리는 아웃라이너 피칭을 요구한 건 그것으로부터 배울 게 있었기 때문이다.
– 조금 전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느낌이 어땠지?
“예?”
– 스트라이크존이 늘어난 느낌이 들어?
그 말에 이진용은 3회 말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떠올렸다.
그러자 굳어있던 이진용의 표정, 그 표정 사이에 박힌 그의 눈동자 두 개가 커지기 시작했다.
– 공 반 개 분량 정도보다 좀 더, 한 개 분량은 안 되는 만큼이 늘어났지?
“······정확하시네요.”
– 존 잡는 능력은 내가 귀신같거든. 아, 지금은 귀신이긴 하지만.
김진호의 말 그대로였다.
3회 말, 주심이 잡아주는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 판정은 1회 때보다 공 반 개 분량 정도 더 커져 있었다.
– 소름 돋지?
이진용은 그 사실에 정말 소름이 돋았다.
스트라이크존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일은 장담컨대 그의 일생에서 느낀 적이 없었으니까.
– 왜 그런 지 알아?
당연히 그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이진용이 고개를 저었다.
– 볼넷이 많이 나와서 그래.
“그게 무슨······.”
“진용아 수고했다.”
그때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진용에게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그런데 투구수가 너무 많다. 네 피칭에 딱히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좀 더 투구수를 줄일 수 있는 피칭을 해라.”
투수코치가 간략한 조언을 해줬다.
이진용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인 후 어깨가 식지 않도록 점퍼를 입은 채 벤치에 앉았다.
그런 이진용에게 조금 전 투수코치가 한 말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이진용의 모든 관심은 김진호가 하던 말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그렇기에 자리에 앉은 이진용은 먹이를 물고 온 어미새를 보는 아기새처럼 김진호를 올려다봤다.
– 3볼 상황에서 주심은 스트라이크 판정이 후해져. 그게 부담감이 적거든.
김진호가 그런 그에게 먹이를 주었다.
– 예를 들어 3볼 노스트라이크 상황을 보자고. 여기서 애매한 공이 왔을 때 주심이 볼을 선언하면 볼넷으로 타자는 출루하고, 투수는 길길이 날뛰면서 주심 이 개새끼야 눈알 박혔으면 똑바로 봐! 하고 화를 내겠지.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면 3볼 1스트라이크가 되고, 타자는 그냥 눈살만 찌푸리고 넘어갈 거야.
그 설명에 이진용이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스트라이크 콜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바깥쪽 공에 대해서 스트라이크가 후해지지. 1회부터 피칭할 때, 풀카운트 상황에서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을 떠올려봐. 내 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다시금 이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게 톰 글래빈이 부리던 마법의 비결 중 하나야. 어때? 대단하지?
이 말에도 이진용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자, 그럼 스트라이크존이 늘어났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줄 필요는 없지?
그리고 이 말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엔젤스 벤치의 선수, 코치들은 생각했다.
‘저 새끼 미친 건가? 왜 허공에 대고 고개를 끄덕이지?’
‘진짜 여러모로 또라이 새끼라니까.’
더그아웃에 또라이 한 명이 있다고.
그리고 그 또라이가 4회 말,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다.
말도 안 되는 마법을 부리기 위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