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74
12.
금요일 밤, 고척 돔구장에서 치러진 레인저스 대 엔젤스의 주말 3연전의 첫 경기는 엔젤스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금요일 밤의 하이라이트는 엔젤스의 승리가 아니었다.
노히트노런.
한국프로야구 정규시즌 역사 속에서 고작 열세 번, 포스트시즌의 기록을 포함해도 열네 번에 불과한 그 대기록이 주인이었고, 그 대기록의 주인인 이진용이 주인공이었다.
지금 그 이진용이 말했다.
“저기 화장실 다녀오면 안 될까요?”
화장실 좀 가겠다고.
“뭔 헛소리에요?”
그 말에 엔젤스 홍보팀 소속 김가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진용을 향해 말했다.
“인터뷰하셔야죠!”
당연한 말이지만 경기가 끝난 지금 남은 건 MVP 인터뷰였고, 그 대상은 더 당연하게도 이진용이었다.
심지어 노히트노런, 경기의 끝까지 서있던 이진용에게 화장실로 갈 시간적 여유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더 나아가 오늘 인터뷰는 이진용 본인은 물론 홍보팀에게도 매우 중요했다.
“절대 저번처럼 사고 치면 안 돼요.”
이진용에게 있어 이번 인터뷰는 지난 번에 저지른 방송 사고에서의 이미지를 씻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이번에도 사고 치면 제가 모가지에요, 모가지!”
그리고 홍보팀에게 있어 이번 인터뷰는 당장 올해 추석에 회사에서 보낸 치약, 스팸 세트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걸린 아주 중대한 일이었으니까.
“제발 그냥 평범하게 하세요.”
“예.”
“인터뷰 도중에 호우 그러면 저 진짜 팀장님한테 불려가요. 그리고 팀장님은 운영팀장님한테 쪼인트 까이······ 아니, 아니에요. 여하튼 무조건 평범하게, 무난하게. 그냥 인터뷰에 대답만 하세요.”
거듭된 김가인의 부탁에 이진용은 더 이상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진용 선수 대기해주세요!”
그 사이 방송국 직원이 이진용을 불렀다.
김가인은 이진용을 향해 애절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바라봤고, 이진용이 그런 김가인을 뒤로한 채, 한국프로야구 후원사들의 로고가 가득한 간판이 세워진 인터뷰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이진용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최악의 날이네.”
최악의 날.
한국프로야구의 열다섯 번째 노히트노런 달성자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 그래, 최악의 날이겠지.
우스운 건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네가 노히트노런 달성하고 관중석을 향해 호우 콜 외쳤다가 외면당한 영상이 이미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수십만이 넘어가고 있을 테니까.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은퇴했다.
이진용에게 있어 가장 화려하고 완벽해야 할 노히트노런의 마침표, 오늘 잡은 스물일곱 번째 아웃카운트는 이제까지 그가 잡은 무수히 많은 아웃카운트 중에 가장 처참했으니까.
“외면당한 거 아니거든요?”
물론 이진용은 그 사실을, 이 현실을 부정했다.
이진용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지막이 말했다.
– 뭔 개소리야?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다들 당황한 거예요.”
그런 이진용의 현실 부정에 김진호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그래, 당황은 했지. 얼마나 당황했으면 너한테 물 끼얹으라고 뛰쳐나오려던 팀원들이 그대로 일시 정지했을까? 난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니까?
“제가 인터뷰에서 상황을 설명하면 다음번에는······.”
– 야, 아까 홍보팀 직원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질문하는 것에만 대답해.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입술만 내밀뿐.
그 모습에 김진호가 혀를 찼다.
이윽고 인터뷰 장소에 선 이진용이 주변을 둘러봤다.
큼지막한 방송용 카메라와 기자들의 대포 같은 카메라들이 이진용을 녹일 듯한 플래시를 토해내며 그를 찍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이진용은 자세를 잡았다.
당연히 입도 다물었다.
이토록 카메라가 넘치는 곳에서 김진호와 대화를 한다면, 정말 다음 대면 상대는 상대팀 타자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가될 테니까.
– 그보다 화장실은 왜 갑자기 가려고 한 거야?
물론 카메라가 수십수백 대가 있든 말든 상관없는 김진호의 입은 쉬지 않았다.
– 진짜 똥 마려워? 응?
그런 거듭된 김진호의 물음에 이진용은 머릿속으로만 대답했다.
‘그야 플래티넘 룰렛하고 다이아몬드 룰렛 돌리려고 했죠!’
그 순간.
갑자기 플래티넘 룰렛이 활성화됐다.
– 깜짝이야! 야 이진용! 너 진짜 이럴래? 깜빡이 켜고 들어오라니까!
김진호가 그 사실에 기겁했다.
“헉!”
그리고 이진용도 기겁했다.
그 기겁하는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축하합니다, 이진용 선수!”
그와 동시에 인터뷰가 시작했다.
“일단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인터뷰 시작과 함께 아나운서, 이혜선이 자신이 쥔 마이크를 이진용의 입에 가져다 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진용은 그 마이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 어? 어!’
정면에 있는 카메라와 옆에 있는 아나운서 그리고 눈앞에 있는 룰렛을 보느라 눈알이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소감이 나올 리도 만무했다.
– 돈다, 진용아 룰렛 돈다!
심지어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백금색의 룰렛이 이진용의 마음과 상관없이 힘차게, 세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이진용의 눈알도 데굴데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 이진용의 머릿속은 블랙아웃 상태였다.
– 야, 나 기도할까 저주할까? 진용아 어떻게 해줄까? 응?
김진호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
“어, 음······.”
그렇게 머릿속이 새카맣게 변해버린 이진용의 입에서는 불길하기 그지없는 조짐이 흘러나왔다.
“이진용 선수?”
그 사실을 곁에서 본 이혜선은 당연히 떠올렸다.
이미 일찍이 이진용이 저지른 방송 사고를.
그 사고를 떠올린 그녀가 잽싸게 이진용의 입가에 있던 마이크를 제 입 앞으로 가져왔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정이 복받치시는 모양입니다.”
그녀가 잽싸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도 역시 기분은 좋으시죠?”
그리고는 이진용에게 단답을 요구했다.
“네, 기분은 당연히······.”
그때였다.
플래티넘 룰렛이 멈추며 아이템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을 보는 순간 이진용은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와우!”
A랭크 구질 상승 비약!
대박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아이템 앞에서 저도 모르게 나온 환호성이었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환호성이기도 했다.
“예?”
이혜선 아나운서가 굳은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 야, 이진용 이 미친 새끼야 정신 차려! 너 또 사고 칠래?
그리고 김진호의 경고했다.
“와우! 그런 말밖에 안 나오는 기분이었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진용이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정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에는 모든 걸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표현할 도리가 없을 정도라서······.”
“아.”
그제야 이혜선 아나운서가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정말 기분이 좋으셨나보네요.”
“예, 너무 갑작스러운 기록이라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옵니다. 하, 하, 하.”
이진용의 어색한 웃음과 함께 질문이 마무리됐고, 이혜선 아나운서는 잠시 이진용의 낌새를 본 후에 그가 제정신이라는 것을 파악한 후에 다음 질문을 뱉었다.
“오늘 이진용 선수의 피칭 스타일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바깥쪽 공략을 집중적으로 하셨는데, 이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구속이 느린 저는 뭐든 해야 하는 투수입니다.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피칭은 그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피칭을 할 것입니다. 그게 제가 프로의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이번 질문에는 이진용이 능숙하게 그리고 수려하기 그지없는 말솜씨로 대답했다.
이혜선 아나운서가 그제야 눈빛을 바꿨다.
무언가 정상적인 인터뷰가 되겠구나, 방송 사고는 없겠구나, 하는 안도의 눈빛이었다.
– 야, 어떻게 된 거야? 룰렛이 갑자기 돌아가?
그 사이 김진호가 질문을 던졌고, 이진용이 그 질문에 대답 대신 머릿속으로 조금 전 상황을 생각했다.
‘아니, 왜 갑자기? 그냥 머릿속으로 룰렛을 돌리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베이스볼 매니저의 기능인 룰렛을 사용하는 방법은 사실 제대로 정해진 게 없었다.
이진용이 그 룰렛 이용권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면 될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오로지 그저 생각만으로 룰렛이 돌아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저 의지만으로도 룰렛이 돌아갈 수 있었던 건가? 다이아몬드 룰렛 돌리고 싶어? 이렇게 간절히 바라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봤다.
그러자 이번에도 룰렛이 활성화됐다.
다이아몬드 룰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 아이, 깜짝이야!
이번에도 김진호가 기겁했다.
“헉!”
이진용도 기겁했다.
“이진용 선수?”
그리고 그런 이진용이 갑작스럽게 내뱉은 숨넘어가는 소리에 이혜선 아나운서도 기겁했다.
좌중의 반응도 싸해졌다.
모두가 의심과 우려 어린 눈초리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아, 그게······.”
무언가가 필요할 때였다.
“다시 생각해도 제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는 게 너무 꿈만 같아서······ 솔직히 저번에 11타자 연속 탈삼진 신기록을 달성하고 마음고생이 심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진용이 그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런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제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크흑!”
말을 하던 이진용이 그대로 고개를 돌린 채 자신의 미간을 가볍게 꼬집었다.
연기, 이진용이 꺼낸 무언가는 바로 눈물 연기였다.
– 헐, 이 새끼 이제 연기도 하네?
물론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김진호가 그런 이진용을 미친놈보듯이 바라봤다.
반면 장내 분위기는 그런 이진용의 모습 엄숙해졌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생각했다.
‘하긴, 스펙을 보면 프로에 올라온 게 기적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처음에 거뒀으니, 기쁨보다는 오히려 걱정이 앞섰겠지.’
이진용이 남들은 모르는 깊은 마음고생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섰으며, 누구보다 힘들게 공을 던졌다고.
“이진용 선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런 이진용에게 이혜선 아나운서 역시 진심 어린 다독임을 건넸다.
“예, 고맙습니다. 모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이진용이 그 다독임에 울먹거리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울지 마! 울지 마!
그리고 조금 한 박자 늦게, 스마트폰으로 현장보다 좀 더 늦게 송출되는 영상을 통해 이진용의 행동을 본 관중들이 이진용을 향해 격려의 응원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아름답게, 낭만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노히트노런이란 대기록, 그 대기록을 마무리하기에 너무나도 적당한 그림이.
그렇기에 방송국 PD는 이혜선 아나운서에게 주문했다.
이 분위기대로 인터뷰를 마치자고.
그 명령을 받은 이혜선 아나운서가 곧바로 이진용에게 마이크를 댄 채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럼 마지막 소감 한마디 부탁합니다.”
그와 동시에 돌아가던 다이아몬드 룰렛이 멈췄다.
당연히 이진용은 소리쳤다.
“호우!”
두 번째 방송 사고였다.
13.
노히트노런.
한국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문 기록이 나오는 순간 그리고 그 주인공이 인터뷰를 위해 그라운드에 나온 순간.
당연히 그 순간을 찍기 위해 무수히 많은 기자들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있었다.
황선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이군.’
물론 그가 내려온 이유는 사진을 찍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유현이 메이저리그에 간 이후로는 처음이었지.’
유현.
한국프로야구무대의 지배자가 되어 당당히 메이저리그 무대, LA다저스란 팀의 일원이 된 투수.
그런 그가 떠나버린 이후 오랜만에 자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투수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진용, 놈은 무조건 메이저리그로 갈 거다.’
그 정도였다.
황선우, 그가 보기에 이진용에게 한국프로야구무대가 너무나도 작은 투수였고 때문에 황선우는 이진용이 한국프로야구무대를 발판 삼아 하늘 위의 세계, 별들의 세계에 도전하리라 확신했다.
“호우!”
확신했기에 황선우는 이진용이 다시 한 번 방송 사고를 일으켰을 때, 모두가 놀라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때 황선우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황선우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낸 후에 잠금을 풀었다.
그러자 후배 기자로부터 온 문자가 보였다.
그 사실에 황선우가 실소를 머금었다.
‘안찬섭에게서 뭔가를 느꼈던 적이 있었지.’
안찬섭.
제2의 김진호라고 불릴 정도로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도 두근거림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데뷔 시즌에만 느낀 거지만.’
발전이 없었으니까.
안찬섭은 그저 타고난 재능만으로 살아가는 선수일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안찬섭이 데뷔했던 시즌에는 정말 김진호가 등장한 느낌을 받고는 했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황선우는 이진용의 등장이 반가웠다.
‘아무렴 상관없지. 이제 이진용이 있으니까.’
이진용이 한국프로야구무대에 새로운 바람을, 그것도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이번 시즌 재미있겠어.’
그때 황선우가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격렬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응?’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그러나 황선우를 더 당황케 한 것은 전화가 온 사실이 아니라, 발신자의 이름이었다.
“헉!”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은 황선우가 곧바로 도망치듯 그라운드를 벗어나면서 전화를 받았다.
“제임스!”
– 헤이, 황!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이야. 그래서 LA날씨는 어때?”
그리고는 곧바로 영어로 통화를 시작했다.
– 지금 날씨가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통화 분위기는 삽시간에 진지해졌다.
– 호크스의 관계자가 다저스 관계자와 만났어.
“호크스? 대전 호크스?”
– 그래,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당연히 유가 참석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황선우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주변의 그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정말이지 목소리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대화를 했는데?”
– 정확한 건 모르지. 하지만 웨이터에게 팁을 두둑이 찔러주니 몇 가지 주워들은 단어를 알려주더군.
그로부터 몇 초 후 스마트폰을 끈 황선우는 고개를 돌렸다.
‘유현이 한국프로야구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이진용을, 홍보팀 직원에게 혼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 순간 황선우의 감이 말해줬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무언가가 이제 조만간 일어날 거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