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80
9.
선발투수에게 선발 등판일은 무척 힘든 날이다.
한 번 출전하는 것만으로 사나흘 간 녹초가 될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토해내는 자리이기에.
그렇기에 제아무리 대단한 기록을 거둔 투수도 그 당일에 그 사실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대한 감탄보다는 그냥 빨리 침대에 기어들어 가서 잠을 자고 싶을 뿐.
이진용도 그랬다.
이진용, 그가 자신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에 대해 진심 어린 감탄을 한 건 자신이 공을 던진 5월 25일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
“후후후!”
5월 26일 금요일, 오전 11시.
뜨거운 햇살이 이제 중천이라 부를 만한 곳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야 비로소 이진용은 실감할 수 있었다.
“10이닝 완봉승······ 캬!”
자신이 엄청나게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는 것을.
– 스킬 효과 : 1선발로 경기에 출전할 경우 다음과 같은 효과가 추가됩니다.
– 체력 +20
– 구속 +2킬로미터
– 보유한 구종 중 하나의 구종 랭크 상승.
– 획득하는 포인트량 20퍼센트 증가.
– 승리 시 보너스 포인트 지급.
– 완투 시 보너스 포인트 지급
“에이스, 캬!”
그리고 놀라운 것을 얻었다는 것을.
“역시 인생은 노페인 노게인이라니까. 고통 없이 얻는 건 없다!”
그런 이진용의 거듭된 감탄에 김진호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 말은 바로 하지?
“뭐가요?”
– 네가 무슨 노페인 노게인이야?
“왜요? 10이닝 완봉 고생했잖아요?”
– 조금 페인, 아주 씨발 좆나게 게인으로 정정해야지. 새끼가 양심이 없어요, 양심이.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은 눈가를 찌푸렸다.
그러나 김진호의 말에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한 이진용이 결국 인정했다.
“그러시든지, 말든지.”
– 젠장, 자식 놈이 설거지했다고 용돈으로 건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 빌어먹을 쓰레기, 가비지 게임.
김진호가 긴 푸념을 뱉었고, 그 푸념에 이진용이 다시 한 번 에이스 스킬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에이스라.”
그 순간이었다.
이진용의 얼굴에 만연하던 미소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저기 김진호 선수, 그런데 1선발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에이스 스킬.
보기만 해도 놀라운 스킬이다.
일일특급 스킬과 무쇠팔 스킬 그리고 리볼버 스킬이 동시에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심지어 리미트도 없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어쩌면 A랭크 구종을 S랭크, 마스터 랭크로 만들어줄수도 있다.
문제는 1선발 투수, 팀의 에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
– 1선발?
“예. 되는 방법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질문에 김진호가 간단하게 답했다.
– 난 그냥 숨만 쉬니까 되던데?
“예?”
– 그냥 숨만 쉬고 공 좀 던지니까 어느 순간 그냥 로테이션 바꾸고 내가 1선발로 던졌어.
“에이, 장난치지 말고요.”
이진용의 말에 김진호가 도리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진짠데? 궁금하면 내 데뷔시즌 살펴봐. 마이너리그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 애들 박살낸 후에 다음 해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시작됐을 때 2선발로 시작했어. 그 후에 1선발이 부상자 명단에 이름 올리는 순간 내가 에이스가 됐고, 그때부터 1선발 자리는 내 자리였지.
이진용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김진호가 쐐기를 박았다.
– 원래 1선발 자리는 1선발이 부상자 명단에 이름 올리지 않는 이상 안 바뀌어.
“예?”
–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안 바뀐다고!
“그게 무슨······.”
– 1선발이란 자리는 에이스의 자리고, 이 자리는 심장 같은 거야. 넌 심장이 평소보다 덜 뛰고, 뭔가 질환 하나 생겼다고 해서 심장 바꾸는 거 봤어? 그거랑 똑같아. 1선발 자리는 쉽게 바뀌지 않아. 생각해봐. 에이스 자리에 있던 선수가 한 달 정도 부진하다고 2선발로 내려 봐. 그럼 에이스 투수가 어떻게 할 거 같아?
“미쳐 날뛰겠죠.”
– 미쳐 날뛰면 다행이지. 클럽하우스에서 온갖 행패를 부리다 못해 감독하고 설전 벌이겠고, 그러다가 여차하면 감독이 목이 날아가.
“감독 목이요?”
– 메이저리그는 감독이 그렇게까지 권한이 큰 게 아니니까. 하물며 메이저리그 1선발 투수는 단장이 심혈을 기울여 데리고 온 선수이거든. 1선발은 사실상 단장이 정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야. 근데 감독이 그걸 멋대로 바꾼다?
말을 하던 김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 뭐, 한국은 좀 다르지만.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2선발 투수가 1선발 투수보다 잘한다는 이유로 그 선수를 1선발 자리에 앉히는 건 그리 좋은 선택지가 못 돼.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 네가 직접 경험했잖아? 그냥 잘 던지는 것과 에이스가 되기 위해 던지는 게 얼마나 차이가 큰지. 2선발 투수가 에이스 자리에 앉는다? 버티면 오케이지만, 못 버티면?
이진용은 대답 대신 입을 꽉 다물었다. 김진호의 말에 허점은 없었으니까.
김진호는 그런 이진용에게 보다 확실하게 말해줬다.
– 사실 선발 로테이션이란 게 되게 쉬워. 좀 더 들어가면 로테이션을 돌릴 땐 별 차이도 없어. 5선발 다음 1선발 나오잖아?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물론 한국, 일본, 저기 쿠바에 멕시코까지, 페넌트레이스는 물론 포스트시즌이나 국제대회까지, 야구를 하는 모든 것은 1선발 자리부터 때로는 6선발까지, 자리를 만들고 그 구분을 칼같이 하지. 2선발 투수는 아무리 잘해도 에이스 투수가 아니지만, 1선발 투수는 부진해도 팀의 에이스 대우를 받지.
1선발 자리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자리인지.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 제일 합리적인 건 네가 이대로 계속 잘 던지면서 전반기를 마쳤을 경우이지. 에이스가 가장 많이 바뀌는 건 올스타 전 전후이니까.
“7월······.”
– 그러니까 지금 네가 할 일은 에이스 스킬 같은 건 그냥 없는 셈 치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거야. 정리하면 에이스 스킬은 꽝이나 다름없다고! 에이스 스킬은 이진용에게 똥 같은 스킬이다! 호우!
마지막 부분에서 환호성을 내지르는 김진호의 모습에 이진용이 기어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진용의 시선이 김진호를 피해 스마트폰을 향했다.
휙휙!
이진용이 제 엄지로 다른 기사를 찾아봤다.
“어?”
그리고 발견했다.
“안찬섭 선수 6월 1일 복귀전이라는데요?”
김진호의 시선을 끌 만한 떡밥을.
– 뭐?
당연히 김진호가 잽싸게 그 떡밥을 물었다.
– 안찬섭? 너보다 2배 정도 더 빠른 공을 던지는 걔?
“2배가 말이 됩니까?”
– 타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걸?
“어쨌거나 안찬섭이 우리팀 상대로 선발 출전하네요.”
안찬섭, 그의 복귀 소식을.
그 순간 머릿속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계산하던 이진용이 눈빛을 빛냈다.
“그럼 얘랑 우리팀 1선발인 벤자민하고 붙는 건데······.”
그 말을 하던 이진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 얘하고 붙으면 되는데, 뭐 방법이 없을까?”
여전히 1선발 자리에 집착하는 이진용에게 김진호가 혀를 찼다.
– 아서라, 아서.
그 말에 이진용이 대답했다.
“사람 일 모르잖아요?”
– 지랄을 한다. 네가 이 경기에서 1선발로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장을 지져!
“장 지져지지도 않는 분이.”
– 그럼 널 형이라고······ 아니, 널 아버지로 부른다, 아버지로!
김진호의 거듭된 호언장담에 이진용이 말없이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10.
‘이야기는 끝났다. 호크스는 유현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다시 메이저리그행을 원하면 조건 없는 방출을 약속했다.’
황선우.
흡연실의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전자담배를 머금은 그가 담배 연기를 길게 토해냈다.
‘남은 건 유현의 결정. 이대로 메이저리그에 남으면 어차피 이번 시즌 끝나고 자유계약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자유계약에 풀려도 제대로 된 값어치를 받을 가능성은 없고, 다저스는 유현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 반년 정도라도 좋으니 메이저리그에 가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몸값을 다시 한 번 올릴 수 있겠고 다저스 외의 다른 팀과도 접촉이 가능하다. 여기에 국보급 투수라고 평가받는 유현 정도라면 방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국민 여론은 오히려 힘을 실어주면 실어줬지, 반대여론이 나올 가능성은 없고.’
그때였다.
황선우가 다시금 담배 연기를 머금는 순간.
“선배!”
흡연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후우우우!”
황선우가 단숨에 담배 연기를 토해냈다.
“무슨 일이야?”
그리고는 곧바로 방문의 이유를 물었다.
“찌라시 기사 떴습니다.”
이어진 후배 기자의 말에 황선우가 눈매를 날카롭게 떴다.
“승부 조작?”
“아뇨.”
“약물?”
“아뇨.”
“뇌물?”
“아뇨.”
거듭된 반문에 황선우가 이제는 얼굴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럼?”
“안찬섭이 사고 쳤습니다.”
안찬섭.
그 이름에 황선우는 그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6월 1일이 안찬섭 복귀전이지.”
“예?”
그 되물음에 오히려 후배 기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재 한국프로야구 판에서 가장 뜨거운 투수는 자숙 끝에 복귀가 확정된 안찬섭 그리고 엔젤스의 신성 이진용, 둘이었으니까.
그런데 안찬섭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인다? 황선우답지 못한 일.
“선배 무슨 일 있어요?”
“뭐?”
“아니, 안찬섭 이야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게 이상해서요.”
“그냥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그래. 넌 신경 쓸 거 없어.”
후배 기자의 물음에 황선우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서 안찬섭이 이번에는 또 뭔 짓을 했는데 찌라시에 이름을 올린 거야?”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후배 기자가 그런 황선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안찬섭이 기자들 앞에서 선수 한 명을 아주 제대로 씹었습니다.”
“안찬섭이 그런 짓을 한 게 설마 신기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황선우는 말을 하면서도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어진 후배 기자의 말에 황선우는 더 이상 헛웃음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근데 걔가 씹은 게 이진용입니다.”
“뭐?”
“안찬섭이 기자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진용 같은 투수가······.”
11.
“······A구단의 B선수는 C구단의 D선수를 지칭하며, 그런 허접한 투수에게 기록을 헌납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프로야구수준이 낮아졌다는 증거라며 한국프로야구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통해 찌라시 기사를 읽은 엔젤스의 수석코치 송재만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끄며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안찬섭이 이진용을 제대로 씹은 내용입니다.”
그 말에 봉준식 감독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송재만 수석코치의 재차 이어진 물음에 봉준식 감독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머릿속에 있는 고민을 좀 더 제대로 숙성시켰다.
“그냥 넘어갈 사안은 아닙니다. 이진용은 물론 팀을 위해서라도. 비공식적으로라도 항의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 봉준식 감독에게 송재만 수석코치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건 송재만 수석코치가 무척 화가 났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화가 나야 하는 일이었다.
“술자리에서도 아니고, 기자들 앞에서 이런 소리를 지껄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할 거면 기사를 막든가, 완전히 우리 보고 대놓고 엿 먹으라는 거 아닙니까?”
안찬섭.
도박이라는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1년이 넘는 자숙기간을 가진 그가 드디어 한국프로야구에 복귀를 하게 됐다.
그 사실에 대해 야구팬들의 여론은 대개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중요한 건 한국프로야구위원회가 안찬섭의 복귀를 받아들였으며, 이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그가 마운드에 올라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안찬섭이라는 나름 재능 넘치는 선수가 이대로 묻히는 걸 원치 않는 야구계 관계자들도 많으니까.
문제는 여전히 자숙을 해야 하는 그가 기자들 앞에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진용을 씹었다는 것.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이런 선수에게 무실점 기록을 헌납하는 게 프로야구수준이 떨어졌다는 증거라니······ 누가 누굴 보고 프로야구수준을 운운하는 건지······.”
“누군가 기자 한 명의 수작에 넘어간 거겠지.”
그때 봉준식 감독이 입을 열었다.
“기자 한 명이 이진용을 언급하면서 안찬섭 신경을 건드렸겠고, 결국 안찬섭이 폭발했고 안찬섭답게 남다른 폭발력을 만들어냈고.”
그 설명에 송재만 수석코치가 입을 꽉 다문 채 자신의 입꼬리를 비틀었다.
합리적으로 보면 봉준식 감독의 말이 맞았다.
안찬섭이 인격적으로 덜 성숙된 인간인 건 맞지만, 가만히 놔뒀는데 자기가 욕먹을 짓을 할 정도로 욕먹는 걸 즐기는 인간은 아니니까.
그가 직접 나서서 이진용을 먼저 힐난했을 리는 없었다.
문제는 봉준식 감독의 말대로 건드리면 뭔가 나오는 안찬섭 같은 타입을 기자들이 가만히 놔뒀을 리 없다는 것.
오프 더 레코드, 일단 기자들은 그렇게 말한 후에 안찬섭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진용에 대한 이야기를 거듭 꺼내며 안찬섭과 비교를 하면서.
“더군다나 안찬섭에게는 이진용에게 안 좋은 기억도 있고.”
더욱이 이진용에게는 안찬섭에게 쓰라린 기억을 준 적이 있었다.
안찬섭의 프로 복귀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를 아주 제대로 짓밟아준 기억이.
만약 그 일만 아니었다면 안찬섭은 6월이 아니라 5월에 프로무대에 복귀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때 경기가 기자 입에서 언급되는 순간 안찬섭은 당연히 폭발한 후에 이진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격한 방법으로 했을 것이다.
그게 지금 이니셜로 범벅이 된 찌라시 기사가 나온 배경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흔하기에 이런 이니셜로 나오는 소위 찌라시 기사에는 구단 차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도 있었다.
이런 찌라시에 일일이 반응했다가는 나중에는 찌라시에 휘둘리는 일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그래도 안찬섭은······.”
하지만 송재만 수석코치는 이런 상황에서 안찬섭을 변호해주는 듯한 봉준식 감독의 의중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물론 봉준식 감독은 정말로 안찬섭을 변호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레이번스의 안찬섭 따위보다 더 중요한 건 이진용이야.”
엔젤스의 감독은 그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무언가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고, 지금 이 순간 엔젤스가 할 수 있는 건 안찬섭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이진용에 대한 케어였다.
“이진용의 상태가 어떤지 보고 오게.”
그제야 송재만 수석코치가 표정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렇게 송재만 수석코치가 자리를 떠나는 순간 봉준식 감독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만약 이대로 이진용이 이 찌라시에 흔들린다면······.’
이 순간 봉준식 감독은 이진용을 우려하고 있었다.
찌라시 기사란 그런 거였다.
보는 이는 즐겁지만, 당사자는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심지어 어디 가서 푸념을 뱉을 수도 없고, 무언가 대응조차도 할 수 없는 것.
그저 구설수가 되어 껌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씹히다가 어느 순간 버려지기를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는 것.
프로에서 닳고 닳은 베테랑들도 쉽사리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골치 아프군.’
그런 일을 이제 프로 1년 차인 이진용이 담담히 버틸 것이라고 봉준식 감독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진용, 그는 이 찌라시 기사를 담담히 넘기지 못했다.
12.
“으아아아!”
이진용, 그가 스마트폰을 쥔 채 괴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양손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안찬섭 만세! 찌라시 만세!”
그 외침에 김진호가 이진용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드디어 네가 미쳤구나.
“왜요?”
– 이진용 같은 허접쓰레기가 노히트노런을 하는 것이 한국프로야구의 수치이다, 그런 말을 듣고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만세를 외치는 게 그럼 정상이냐?
“아니, 왜 없던 말을 만드세요? 어디까지나 기사 내용에는 기록을 헌납······.”
– 그 말이 그 말이지. 그리고 무슨 말이든 간에 네가 하는 짓은 미친 또라이 짓이고.
“기회가 왔잖아요.”
– 기회?
김진호의 반문에 이진용이 스마트폰을 다시 보며,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찬섭하고 붙을 수 있는 기회요!”
– 무슨 소리야?
“제 시나리오를 들어보실래요?”
– 시나리오?
“일단 조금 있다가 수석코치님한테 전화가 올 거예요. 그리고 말하겠죠. 기사 내용 봤냐? 그럼 전 침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겠죠. 예, 봤습니다. 그럼 송 수석코치님이 말하겠죠. 감독님이 부르신다, 감독실로 와라.”
– 그다음은?
“당연히 감독실로 간 후에 이야기를 나누겠죠. 봉준식 감독님 성격상 먼저 말을 걸기보다는 지그시 절 볼 테고, 그럼 저는 결국 그분에게 이렇게 말하겠죠.”
크흠, 이진용이 목소리를 가담은 후에 연기를 시작했다.
“기사 내용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 분합니다. 제가 무시당했다는 것도 화가 나고, 엔젤스란 팀이 무시당한 것에 더 화가 납니다. 분명 제가 안찬섭보다 공은 느립니다. 하지만 전 그보다 잘 던질 자신이 있습니다.”
크흠, 이진용이 재차 헛기침과 함께 목소리 톤을 바꾼 후에 말했다.
“어음, 네 생각은 알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지?”
– 그럼 네 대답은?
“제 대답은······.”
호우! 호우! 호우!
그 순간 이진용의 스마트폰이 특별하게 저장된 벨소리를 내뱉기 시작했고, 이진용이 대화를 멈춘 채 스마트폰 발신자를 봤다.
송재만 수석코치님.
그 발신자를 보는 순간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3.
“기회만 주시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안찬섭보다 더 잘 던지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부진 결의, 단호한 각오로 무장된 이진용의 말을 듣는 순간 봉준식 감독은 준비했던 대답을 삼켰다.
대답을 삼킨 채 자신의 앞에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투수를 바라봤다.
그 후 좀 더 생각을 마친 후에 입을 열었다.
“로테이션 조절은 어려울 것 없다. 10이닝 완투한 너를 위해서 이미 로테이션은 조절해두었으니까. 하루 정도 더 쉬면 안찬섭에 등판하는 6월 1일에 올라올 수 있다.”
“보내주십시오.”
“그러나 그 자리는 1선발 자리다.”
1선발 자리.
그 말에 이진용이 입을 꽉 다물었다.
“1선발 자리는 에이스 자리다. 그 자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자리이다. 물론 그냥 지나가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1선발 투수가 그저 하루 더 쉬는 것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널 그 자리에 올릴 생각이 없다.”
봉준식 감독의 말에 이진용이 꽉 다문 입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에이스 자리에 앉을 각오가 있다면 그래도 좋다. 대신 대가도 짊어져라. 네가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경기에 지는 순간 널 2군으로 보내겠다.”
그런 이진용에게 봉준식 감독이 섬뜩한 이야기를 건넸다.
“겁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정도 각오가 필요한 자리이다. 못한다면 차라리 2군으로 내려갈 각오를 해야 하는 자리.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팬들은 물론 선수들이 널 인정할 것이다. 그저 아무런 리스크 없이 에이스 자리에 오르는 건 그 누구도 인정할 리 없으니까.”
패배는 투수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장 이진용만 하더라도 그가 9이닝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면, 그는 어쩌면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패배를 하면 무조건 2군으로 보내겠다?
섬뜩함을 넘어, 언젠가는 2군으로 보내겠다는 선고!
“올려주십시오.”
그러나 이진용은 그 선고 앞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한 경기라도 패배하면, 제가 패전투수가 되면 기꺼이 2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니 올려만 주십시오.”
그 말에 봉준식 감독은 놀란 표정을 지은 후에 이내 손을 저었다.
“네 각오는 알겠다. 일단 코치들과 회의한 후에 결과를 통보해주지.”
“예.”
그 말과 함께 이진용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문으로 향했다.
그때 이진용이 문고리를 잡기 전 멈칫한 후에 몸을 돌린 후에 봉준식 감독에게 깊게 허리를 숙였다.
‘아.’
그 모습에 봉준식 감독은 터져 나오려는 감탄을 간신히 삼킨 후에 그저 손만 내저었다.
나가도록.
그 제스처를 본 후에야, 그제야 이진용이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관람한 김진호가 말했다.
– 진용아, 그냥 할리우드 가자. 사이영상은 개뿔,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노려보자! 너라면 할 수 있어!
“아들아.”
– 으, 응? 뭐라고?
“어디서 아버지한테 버릇없게 반말해?”
– 어, 어······ 아, 씨발!
이진용,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았다.
끝